시스템 생물학적인 접근으로 생명의 신비를 음악의 요소로 대비하여 풀어낸 『생명의 음악』. 저자는 생물의 각 부분을 명명하고 기능을 파악한 후 모든 것을 구성성분으로 환원하는 분자 생물학적 방식에 대해 벗어나 시스템 생물학적인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체의 각 레벨에서 다양한 구성 요소들은 통합네트워크 또는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고 각 시스템은 저마다 고유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시스템 구성 성분의 특징을 탐구하는 것만으로는 시스템의 전체적인 논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를 작곡가로, 뇌를 오페라 극장으로 음계와 음조를 세포의 하모니로 비유하면서 설명하며, 생명을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으로 들으며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종신교수이자 시스템 생물학의 세계적인 석학 데니스 노블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생명 현상을 유전자가 아닌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전자는 생명 그 자체가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라보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유전자와 세포, 조직, 기관, 신체 그리고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통한 서로 다른 레벨의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생명이란 하나의 과정이며, 복잡한 네트워크의 그물망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의 표현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은 음악과 같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방법은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조차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과학자들마다 이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같은 시대에서도 이 질문에 대해 매번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생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많은 의문이 풀렸지만 계속해서 더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우리가 찾아낸 답변은 그 동안 추구한 탐구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우리는 살아있는 시스템을 가장 작은 구성요소로 분해함으로써 개별 유전자와 분자에 도달하였다.
예를 들어, 중년에 이르러 심장병으로 사망하게 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이 인과사슬의 거의 모든 주요한 과정은 알지만, 정확히 어떤 특정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심장병이 발생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한 예는 인간유전체사업(Human Genome Project)이 발표될 당시 낙관론자들이 예측했던 만큼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보건의료 서비스에 도움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왜 그럴까? 이제 그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낮은 레벨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다 높은 레벨에서 일어나는 일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분자 메커니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다음 도전은 더욱 높은 레벨로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시스템 전체를 지배하는 프로세스를 밝히는 데 우리의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가 유전자로부터 암호화하는 단백질 혹은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제 분자와 유전자 데이터를 해석하고 또 이것을 토대로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 담론에 관해 참신하고 유용한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그 복잡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1944년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유전암호가 ‘비주기적 결정(aperiodic crystal)’, 즉 규칙적인 반복성이 없는 화학 서열이라고 정확히 예측하였다. 그의 많은 통찰은 그 후에 우리가 배운 것들과 잘 연결되어 있다. 그는 100쪽도 안 되는 책으로 생물학의 기본 패러다임을 이동시켰던 것이다.
이 책은 시스템 생물학에 관한 것이다. 또한 시스템 생물학의 필수조건과 함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생명을 탐구하는 단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기본부터 다시 검증하려는 자세다.
분자생물학은 각 부분을 명명하고 기능을 파악하는 식의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구성성분으로 환원하고 철저하게 정의한다.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접근하는 데 완전히 익숙해졌으며 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비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시스템 생물학이 바로 우리가 옮겨갈 곳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따로 떼어놓는 대신 함께 놓고, 분해(환원)하는 대신 통합하는 것이다.
시스템 생물학은 환원주의 접근법에서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환원주의와는 다른 통합에 관한 사고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시스템 생물학에는 순수하게 과학적인 것을 넘어서는 함의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철학을 말 그대로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 차원에서 생명을 보는 것은 음악과 비교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악보는 어디에 있고 작곡가는 누구인가? 이 책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중심 문제는 ‘만약 생명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다. 내 책의 주제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없으며, 생물계의 인과관계에는 어떠한 특권을 가진 레벨이 (분자 레벨에서 개체 레벨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