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 건강 이상설 왜 나오나
최근 들어 푸틴 대통령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온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건강 이상 의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특별 군사작전을 진행하면서 증폭되었고, 스테로이드 과다복용으로 인한 분노 조절 장애, 판단 능력 저하 같은 정신 건강 이상을 비롯해 파킨슨병, 갑상샘암, 혈액암에 이르기까지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의혹들을 정리해보며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지, 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 이야기한다.
꾸준히 푸틴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을 쏟아낸 서방
푸틴 대통령의 건강과 관련해선 이전부터 다양한 소문이 이어져 왔다.
미국 국방부는 푸틴 대통령이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는 보고서를 2008년 내놓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 나타난 푸틴의 행동이나 표정 변화 등을 분석해 본 결과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이 아스퍼거 증후군의 흔적이라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2015년 3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9일 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건강 이상설을 비롯해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당시 서방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2015년 3월 5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의 회동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3월 11일 남오세티야 공화국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이 취소되고 다음 날 예정된 카자흐스탄 방문이 연기된 것을 이상하게 봤다. 또한 언론들은 그동안 꾸준히 참석했던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연례회의에도 불참한 것을 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사진을 공개했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악수를 하면 상대의 손가락을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라고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영국 일간지 ‘더선’은 2020년 11월 6일 러시아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건강 악화 때문에 2021년 초에 퇴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나오는 동영상을 분석한 관찰자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의자 손잡이를 잡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펜이나 컵을 잡고 있을 때 손가락이 경련하는 것도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모스크바 정치학자 발레리 솔로베이의 발언을 소개하며 앞선 증상이 파킨슨병 증상이고 푸틴 대통령이 2021년 1월 하야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조만간 후계자 될 사람을 총리로 임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건강 문제로 퇴임하려 하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일축하면서 “그의 건강은 아주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페스코프 대변인은 더선의 보도에 대해 “논평할 게 아무것도 없다”라며 “완전한 헛소리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특별 군사작전을 진행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건강 이상설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022년 2월 26일 푸틴 대통령이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면서 성격이 이상해졌다”라며 오만 증후군 증상으로 자기도취증(나르시시즘), 과대망상, 판단력 저하, 위험 인지능력 감소, 타인 경멸, 개인의 이해관계를 국가의 이해관계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 등이 거론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미국을 기반으로 한 러시아 온라인매체 ‘프로엑트’는 4월 1일 푸틴 대통령이 2016년과 2019년 사이에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4월 21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하는 푸틴 대통령의 모습을 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말에 비해 푸틴 대통령의 분명 몸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라는 주장을 펼쳤고, 루이스 멘시 전 영국 하원의원(보수당) 등 서구 인사들도 “푸틴 대통령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탁자를 강하게 잡는 것은 오른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크렘린이 당시 공개한 12분간의 동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회담을 시작한 직후부터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회의 내내 오른손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꽉 붙잡고 발을 연신 까딱거리는 것이 보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건강 논란에 다시 한번 기름을 부은 것은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군사정보부장이었다.
부다노프 부장은 5월 13일 영국 ‘스카이 뉴스’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암과 다른 질병들로 인해 매우 아픈 상태(very sick)”라며 “러시아의 지도자 교체는 이미 시작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스카이 뉴스 측의 쿠데타가 맞냐는 질문에 부다노프 부장은 “그렇다”라며 “(쿠데타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고위 당국자가 이 같은 ‘충격적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정확히 밝히진 않았다.
미국 잡지 ‘뉴라인스’는 5월 14일 익명의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의 녹취록을 인용해 그가 “푸틴 대통령이 혈액암에 걸려 고통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 대통령이) 수술받았다”, “푸틴 대통령이 암이나 쿠데타 등으로 사망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 정보기관 MI6 요원 출신인 크리스토퍼 스틸은 5월 15일 스카이 뉴스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다른 곳의 정보원들에게서 듣기로는 푸틴이 실제로 심각하게 아프다고 한다”라며 “그 병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불치병인지 말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5월 28일에는 영국의 한 매체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은 현재 암 투병 중이며 3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력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으며 팔다리 떨림 증상도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행사 때 모습을 두고도 “푸틴 대통령이 예전보다 부쩍 쇠약해진 모습을 노출했다”, “참전 용사들과 나란히 앉은 가운데 혼자만 무릎 위에 두꺼운 담요를 올려놓았다”, “걸음걸이도 예전과 달리 절룩거리는 모습이었다” 등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5월 23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에선 왼발을 잇달아 비틀며 꼼지락대는 것이 포착됐다”, “5월 24일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 자정 미사에선 입술을 자주 깨물고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매년 직접 출전해 ‘만능 스포츠맨’임을 과시하던 아이스하키 경기에 푸틴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과 목 부분이 부은 것으로 보아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고 있다” 등의 의혹도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서방, 친서방 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건강과 관련된 작은 신호들에 자극적으로 반응하며 다양한 추측과 소문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건강 이상설, 왜 나오는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5월 29일 프랑스 TF1 방송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매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라며 “제정신인 사람들은 푸틴 대통령한테서 무슨 병에 걸린 징후를 봤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은 매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화면에서 그를 볼 수 있고, 그의 연설도 읽고 들을 수 있다”라며 “그런 (건강 이상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양심에 맡긴다”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도 5월 2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대통령과 나는 동년배다(역주-쿨릭 대사는 1953년생, 푸틴 대통령은 1952년생이다). 평소 그의 건강 절반만이라도 닮고 싶을 정도다. 러시아에는 ‘오이처럼 생겼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젊어 보인다는 의미다. 푸틴 대통령에게 적용할만하다”라고 답했다.
서방 진영은 이전부터 북·중·러 지도자에 대한 건강 이상설 의혹을 종종 쏟아냈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는 5월 17일 시진핑 주석이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중 위험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료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뉴스위크는 시진핑 주석은 서구식 수술보단 중국 전통의 민간요법을 통한 치료를 선호하고 국정 공백을 우려하는 등의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의 건강 이상설은 2021년 말에도 한 차례 제기됐지만, 당시 인민일보 등 현지 관영매체가 시진핑 주석이 정상적으로 대외활동하는 모습을 보도하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이러한 의혹들이 만드는 궁극적인 목표는 해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서방 지도자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건강 이상설은 장관 실각설, 러시아 내부 분열, 푸틴 대통령 암살 시도 주장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별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3월 11일 모스크바 군 병원을 방문해 부상병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일정 후에 보이지 않는다며 건강 이상설과 실각설 등이 떠돌았다.
뉴욕 타임스는 3월 22일 러시아 군사전문가라는 안드레이 솔다토프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실패가 러시아 권부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라며 “쇼이구 장관이 (최근) 직위에서 해제됐다”라고 전했다.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3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푸틴의 강력한 비난 이후 쇼이구 장관이 심근경색을 앓았고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라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건강 이상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러시아 국방부가 “해당 소문은 가짜”라며 방위비 조달에 관한 회의를 주재하는 쇼이구 장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해 쇼이구 장관의 건강 이상설과 실각설을 일축했다.
부다노프 부장은 5월 23일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와 인터뷰에서 “이른바 코카서스 대표자들에 의한 암살 시도가 최근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아니었다. 완전히 실패한 시도였지만, 두 달 전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다노프 부장이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 건강 이상설에 이어 사실상 근거 없는 의혹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한 부다노프 부장과 인터뷰한 언론들조차 ‘흑색선전이 아니냐’라고 물을 정도로 이러한 의혹들이 일종의 전쟁 외곽에서 이뤄지는 선전, 선동의 일환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대결에서 밀리고 있는 서방이 러시아군의 기세를 약화하고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러시아 민심을 꺾어 보려는 의도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건강 이상설부터 내부 분열을 꾀하는 의혹들을 퍼뜨리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