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반아별서 ●지은이_지리산문예학교 4인방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2. 10. 15
●전체페이지_168쪽 ●ISBN 979-11-91914-30-6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지리산 ‘반아별서’에서 ‘북두칠성’까지 달려가는 삶의 시편들
지리산문예학교 4인방의 시집 『반아별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서 나이와 성별 등에 상관없이 시를 통해 만나고 소통하던 4인방이 의기투합하여 시를 묶은 것이다. 그동안 4인방 곁에서 지켜봐온 박남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반벙어리처럼 시문을 갈고 닦아 퇴고, 조탁한 반아자들의 시집을 펼치면 거기 네 사람이 걸어온 시향의 길이 강을 따라 흐”른다고 한다. 또 이원규 시인은 “삶이 앞서가고 시가 그 뒤를 발자국처럼 따라온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이남희-안순자-서만임-구칠효, 지리산 4인방 시인은 ‘시 쓰기’를 넘어 ‘시를 살아온 것’이니 더 기쁘고, 소중하고, 눈물겹다”며 4인방 곁에서 함께해온 소회를 적고 있다.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이남희의 시는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유학을 좋아하시던 아버님 품성”과 “이타행이 절로 몸에 밴 어머님의 심성”이 만나서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난 자양분”(「이상희」)으로 이루어졌으니 귀족적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같이 공부하는 안순자 시인이 이남희 시인을 두고 “로얄 알버트 커피잔”(안순자, 「지리산은 보름달이었다」) 같다고 했을까.
내 이름은 두 개였다/상희로 불리는 날과 남희로 불리는 날이 있었다/이상희는 이남희를 부르고/이남희는 이상희를 불렀다//먼 동이 어둠을 헤치며 온누리 밝힐 때/은하계 떠돌던 불씨 하나 새 생명 꿈꾸며/진성 이씨 아버지, 고령 신씨 어머니 태에 불을 지폈다/이슬에 맺힌 풀들은 새로운 성장을 하고/꽃들은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며/태중 생명은 사랑의 힘으로 사대육신을 키웠다//유학을 좋아하시던 아버님 품성/이타행이 절로 몸에 밴 어머님의 심성/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난 자양분//삶이란 먹을수록 입에 달라붙는 당기는 매운맛,/맛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 망설임의 쓴맛,/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체험하는 두근두근 설레는 단맛,/수없이 만나는 교차점에 경륜과 지혜를 얻었다//기쁨과 슬픔 다 지나간 시간/어제는 삶 속에 꿈틀대는 오늘로 이어지고/오지 않은 내일은 희망의 비상구/아직 남은 나의 여정은 옹이 박힌 매화나무
―「이상희」 전문
안순자의 시는 무한긍정의 힘으로 당당하다. 그의 시는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만큼 매사에 거리낌 없이 당당해 보인다. 그런데 그 당당함이 오히려 눈물겹다. 비단 그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여서만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깊고 어둡고 무섭고 고통스러웠을 세월은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나이 든 지금이 더 좋다”고, “조용히 미소”짓고 싶다고 말할 때 읽는 사람은 울컥하는 가슴과 시큰하는 코끝 때문에 잠시 시선을 먼 곳으로 보내야 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땅을 밟고 같은 하늘을 보며/나란히 걷고 싶다//맨발로 걸으며, 지구를 느끼며/말간 눈물 속에 비친/내 그림자 보며 걷고 싶다//짝 맞지 않는 신발 던져 버리고/푸른 신호등 켜지는 황혼길/성큼성큼 걸어보고 싶다//내 자식 등에 업고, 고생했다 아가야/마음고생 시켜 미안했다 아가야/조아리며 걷고 싶다//단 한 번도 내 눈을 바로 보지 못하던/늙으신 엄마를 업고/고달픈 노랫가락 늘어지던 들녘을/한없이 한없이 걷고 싶다//흰 속살 보이도록 짧은 미니스커트 입고/뭇 남자의 시선 받으며 당당하게 걷고 싶다
―「걷고 싶다」 전문
서만임의 시는 따뜻하고 넉넉하고 푸짐하다. 시인의 천성이 마을 부녀회장처럼 오지랖이 넓고, 마음 씀씀이가 살뜰하다. 마치 작은 시골초등학교 총동창회 총무 같다. 그의 시는 이런 시인의 천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서만임의 시는 곧 서만임이다. 그의 시를 읽을 때에 오는 감동과 재미는 구수한 입담과 더불어 진정성에서 기인하는 박진감을 준다.
비너스 대리점 가게 문을 열자/공중그네를 타고 있는 거미/아침 거미는 재수가 있다는데/은근히 하루 매출을 점쳐 본다//여름 신상품 매시 쿨 브라 앞에서/만지작 만지작 입질만 하더니/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점점 멀어지고/허걱, 거미 똥이다/이놈의 거미를 화악 그냥!//밤새 켜둔 할로겐 등 아래 하루살이들/거미의 손놀림이 분주하다/저 거미,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 있을지 모른다/보증 잘 서주는 마음씨 좋은 남편과 늙은 노모/먹성 좋은 아이들 두셋은 있을지도//종이 깍대기 위에 거미를 올려/슬그머니 문밖으로 내보낸다
―「거미」 전문
구칠효 시인의 시를 읽으며 확인한다. 그의 시는 낫낫하고 싹싹하다. 재불재불 떠드는 사내아이처럼 밉상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체로 말이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의 시답게 한다.
어머니, 당신만 믿고 나도 주체적으로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봤습니다 별 하나에 윤동주와 별 하나에 김환기와 별 하나에 고흐와 별 하나에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이름을 불러본들 여전히 역사 교과서에 한 줄 나오지 않는 국내 인구 262순위 창원구씨 부사공파 24대 손일 뿐! 지어내 붙여줄 법도 한 태몽 하나 없이 여섯 번의 유경험 산모가 고무신 점방 열려고 갑바 걷다가 쑥 세상에 나온 나, 나를 찾는 별과 눈빛을 맞추려 고개를 들어도 북반구의 밤하늘은 전부 자기 임자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황후장상의 씨도 민란의 선봉자도 아닌 건빵 봉지 별사탕의 배경에 붙다가 만 설탕가루 같은 미물인가 천억 개 은하 안의 별들 속 성간의 티끌 속조차에도 없을 것 같은 나의 존재감, 인정이 두려워 찾아 헤맨 피란민의 눈빛을 거둔다 진정 내 별은 없는가!
―「별과 설탕가루」 부분
일단 초창기 ‘지리산학교’ 시절부터 지금의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시를 놓쳤다 붙잡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시라는 허망한 밧줄로 스스로를 묶으려고 안간힘을 쓴 개개인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눈물겹다. 그리고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0에 이르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다그쳐가며 꺼져드는 시의 불씨를 되살리는 이들의 시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건강함을 본다. 그들이 시를 좇는 이유가, ‘시를 쓰면서 만난 오랜 인연으로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이남희), ‘시를 쓰면 막다른 길이 끝나고 새로운 길이 보여서’(안순자), ‘인터넷에 댓글 한번 폼나게 달고 싶어서’(서만임), ‘인생의 고갯길마다 시가 함께 넘어주어서’(구칠효)라고 한다. 물론 핑계일 것이다. 그냥 시가 좋아서일 것이다.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가. 시라는 허망한 밧줄로 서로를 묶어서 기차놀이하듯이 칙칙폭폭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놀다보니, ‘은하철도999’처럼 어느새 ‘반아별서’에서 ‘북두칠성’까지 달려온 것이리라. 그래, 그러면 됐다. 시로써 한세상 잘 놀면 되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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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이남희
도돌이표 사랑
봄·11
매화석·12
봄치마·13
반아별서(半啞別墅)·14
비금도 미루나무·16
사과론·18
어머니 밥상·20
운동산 산책길·22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네·24
이상희·26
종이별·28
프리즘으로 바라본 인생·30
겸상·32
무풍(巫風)·34
도돌이표 사랑·36
2548·37
비꽃·38
청매·39
안순자
철자도 모르면서 시를 쓴다고
지리산은 보름달이었다·43
두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44
저 혼자 피어도 꽃은 꽃이다·45
나이 든 지금이 더 좋다고·46
자랑질도 급이 있다·48
너는 아프니 나는 기쁘다·49
걷고 싶다·50
마네킹과의 이별·52
울 엄마·54
요양원 울 엄마·55
내 그림자·56
속 비운 대나무처럼·57
당신의 아픈 손가락·58
급함과 느긋함의 동행·60
철자도 모르면서 시를 쓴다고·62
인생은 마라톤이다·64
손님 떠난 나룻배·65
바람의 언덕·66
서만임
굳은살이 더 아프다
동창회·69
MADE IN KOREA·72
가위마을·74
거미·76
굳은 살이 더 아프다·78
날 잊지 말아요·80
똘감나무·82
마지막 제복·84
매화 예찬·86
서재·88
아이고, 얄궂어라·90
어느 무면허 의사의 처방전·92
언택트 생일·94
유일무이·96
주진순 여사의 뽕브라·98
치매 5등급의 장미·100
퀼트 장지갑·102
킹콩이라 불리는 사내·104
구칠효
윤활(潤滑), 조금은 섭섭하게
양변기·109
속을 비운 둥구나무·110
신 빈교행(貧交行)·112
별과 설탕가루·114
일상·117
오월·118
나물처럼·120
마이산 탑사·122
함수 인생·124
볼펜 스프링·126
블랙 아웃(Black Out)·128
스티브 잡스·130
벤처의 외인구단·132
윤활(潤滑), 조금은 섭섭하게·134
흔적의 멋·136
삼재 부적·138
유행가 한 곡·140
진실과 사실 사이·143
해설│김남호·147
■ 시집 속의 시 한 편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살고파
이 산 저 산 다리품 수없이 팔았네
조건 맞으면 형편이 여의치 않고
형편 맞추니 마땅찮은 환경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허탕질
하늘이 복을 내리고 대지가 허용할 때
이웃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이 나온다네
자조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순천에서 멀잖은 곳에 자리 잡은 선동마을
평균연령 83.5세
저승이 코앞인 상노인들의 텃밭
여기저기 공가(公家)와 더불어
고요하고 쓸쓸하고 시린 바람이 인다
도둑고양이 발걸음으로 눌러앉은
운동산 끝자락 마당이 넓은 돌담집
노란 장미꽃과 궁중매를 가꾸며
참사랑을 갈무리하는 우리들의 쉼터
자주 할 말을 잊어도 좋아라
은은한 솔 향 뿜으며 반아별서 지키는 세 그루 파수꾼
사흘 밤낮 베갯머리송사로 피워 올린 마지막 선물
―「반아별서(半啞別墅)」 전문
■ 표4(약평)
어느 날 수녀님과 함께 찾아온 사람은 마음이 다 죽어버렸는데 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또 누구는 아무 글이든지 글 한 편 써오라고 했더니 울그락불그락 고개를 푹 숙이며 인터넷에 댓글 한번 폼 나게 달아보려고 왔는데 그런 것 못하겠다는 첫 만남이 불쑥 떠오른다. 벌써 십여 년이 훌쩍 흘러갔다. 그동안 여태껏 시를 놓지 않고 있었구나. 그 시의 향기가 가을처럼 풍요롭고 서늘해졌구나.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 시를 만나기 위해 연애처럼 두근거리고 설레는 시의 길에 들어선 네 사람이 모여 펴내는 4인 시집 『반아별서』, 반벙어리처럼 시문을 갈고 닦아 퇴고, 조탁한 반아자들의 시집을 펼치면 거기 네 사람이 걸어온 시향의 길이 강을 따라 흐르다 굽이굽이 사유 깊은 산색의 산길로 가 닿아 있음을 만나게 되리라._박남준(시인)
가히 ‘지리산 4인방 시집’이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리산과 시의 이름으로 만났으니 그동안 첫 인연의 지리산학교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등으로 분화 발전했으며, 누군가는 떠나고 다시 뭉치기도 했다. 마침내 이렇게 오붓한 동무, 나이와 성별 등의 차이를 극복한 한솥밥이 되었다. 시를 앞세워 따라가는 이는 자주 불행하고, 시와 어깨동무하는 이는 행복하겠지만, 삶이 앞서가고 시가 그 뒤를 발자국처럼 따라온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이남희-안순자-서만임-구칠효, 지리산 4인방 시인은 ‘시 쓰기’를 넘어 ‘시를 살아온 것’이니 더 기쁘고, 소중하고, 눈물겹다._이원규(시인)
그냥 시가 좋아서일 것이다.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가. 시라는 허망한 밧줄로 서로를 묶어서 기차놀이하듯이 칙칙폭폭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놀다 보니, ‘은하철도999’처럼 어느새 ‘반아별서’에서 ‘북두칠성’까지 달려온 것이리라. 그래, 그러면 됐다. 시로써 한세상 잘 놀면 되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_김남호(시인)
■ 지리산문예학교 4인방
이남희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이화여대 꽃예술 전문과정 수료. WRAPPING과 압화전시회(서울인터컨티넨탈, 광양 금호전시장). 순천시 운동산 아래 전원생활 12년차.
안순자
전남 장흥 출생. 전 거제시 8대 시의원. 전 거제시장애인총연합회 회장.
서만임
경남 하동 출생. 순천대 경영행정대학원 석사. 현 참조은재가복지센터 센터장.
구칠효
경남 사천 출생. 현 ㈜바로텍시너지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