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 타듯 농꾼 시름도 사라지길
전남 광양 이천 마을 달집 태우기를 보고
조경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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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마을(전남 광양) 달집 태우기. 요즘 농촌에서도 달집 태우기는 사라져 가는 풍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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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조경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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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정작 시골에서는 달집 태우는 광경을 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는 대보름 때면 마을 앞 논에 커다란 달집을
짓고 그 날 하루 동네 잔치가 벌어지고, 아이들은 쥐불놀이로 밤을 새웠습니다. 불장난으로 밤을 새워도 아무렇지 않은 날은 이날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열심히 쥐불놀이를 하다 설빔으로 산 외투에
구멍을 내 부모님께 야단 맞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 노인들만 남은 제가 살던 고향은 달집 태우기가 사라진지 오랩니다. 대보름날이면 누가 뒷산에서 대나무를 베어올 것이며, 누가 잔치 음식을 마련할 것이며, 누가 지신 밟기 때 꽹가리를 잡을 것인지 대보름 하루 전 마을 회관에 모여 의논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회관 마당에 모여 앉은 우리들은 쥐불놀이에 쓸 깡통과 철사를 어디서 구할 것이며, 총놀이 할 때 사용할 빨간 딱지 화약을 얼마치 살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 돼지를 잡는 지를 미리 알아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는데, 삶은 돼지고기와 순대를 맛볼 수 있는 1년에 몇 안 되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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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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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조경국 |
일이 있어 나갔다가 우연히 보게된 이천마을(전남 광양) 달집 태우기는 장관이었습니다. ‘펑, 따닥’하고 불에 익은 대나무 터지는 소리에 아이들이 어른들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고, 동네 어르신들은 하늘
높이 타오르는 달집 주위로 모두 나와 꽹과리와 장구 소리에 어깨에
추임새를 넣습니다. 보름달은 끝내 보이지 않고 낮게 깔린 구름 뒤로
숨어버린 것만 제외하면 예전 고향 마을의 달집 태우기와 똑같았습니다.
대보름날 달집 태우기는 긴 농한기를 끝내고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마을의 큰 행사입니다. 한해 액운을 태우고 풍년 농사가 될 수 있도록 기원하고 마음을 다지는 일종의 제천의식인
셈입니다. 모든 화는 태워 없애고 남은 재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정말 오랜만에 달집 태우기를 보았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얼마전 발표된 추곡 수매가 인하와 끊임없이 삐걱거리고 있는 휴경 보상제, 그리고 더 나아질 것도 없는 농촌 부채. 지금 농민들의 마음은 바로 구름에 보름달이 가린 오늘 같지 않을까 합니다. 풍년이어도 걱정, 흉년이어도 눈물인 농촌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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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들어가는 달집 앞에서 어깨춤을 추고
있는 아주머니는 올해 농사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비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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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조경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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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정부가 쌀농사 만은 포기하지 않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습니다. 농촌이 다시 사는 길은 농사꾼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농업의 밑바탕인 쌀 농사를 포기하는 것은 농사꾼을 절망의 벼랑 끝으로 모는 것입니다. 어느 농부가 자기 땅을 놀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단지 경제적 논리만을 앞세워 쌀 농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농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이런 걱정, 저런 설움 모두 털어 버리고 달집 태우기를 통해 한해 농사를 힘차게 시작하려는 농민들의 마음을 땅과 하늘은 알고 있을 겁니다. 올해에는 부디 농민들의 주름살이 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