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 서모 /황선유
또 또 전처소생 자녀를 학대한 계모 뉴스이다. 죽이기까지 했다.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고 가방에 넣어 밟아 죽이고 헤어드라이어 열기로 데워 죽이고 뜨거운 물 찬물로 제겨 죽이고…, 연필로 200번이나 찔러 죽였다. 가만 시청하기가 힘들어 대강 넘어갈까 해도 뉴스 채널마다 몸서리치는 내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십여 년 너머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조심스럽다. 친구는 장터의 가게와 붙은 집에 살았다. 방문을 열면 바로 건어물 가게였다. 그날 친구는 어른처럼 멸치볶음을 만들어서 밥상을 차려냈다. 지금도 친구가 멸치를 볶던 모습이 어렴풋하다. 막 밥을 먹을 참이었다. 웬 남자가 가게 안을 보고 서 있었다. 친구는 양푼에다가 밥과 반찬을 담고 숟가락을 걸쳐서 나더러 좀 갖다주라고 했다. 얼떨결에 밥 양푼을 들고 나가 남자에게 건넸다. “니 이름이 뭐꼬?” 목소리는 점잖았고 많이 그을긴 해도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남자가 친구의 이복오빠라는 말을 바람결에 들었다. 친구의 엄마는 가게 밖 그 남자에게 계모였다.
불편한…, 그렇다. 애써 떠올리기 불편한 한때가 나에게 있었다. 오래 외면하고 있던 기억이다. 일을 그만두고 종일 아이를 돌보던 때였다. 태어나자마자 호흡장애증후군을 앓아 한 달 만에 집으로 온 아이는 밤낮없이 기침을 했다. 먹이면 기침하고 기침하면 토하고…, 수북하게 빨랫감은 쌓이고 어느 때는 이불과 갈아입힐 옷도 부족했다. 한밤중 지치고 잠에 취해서 토해 놓은 이불을 걷지도 않은 채 새 이불을 덮어 깔고는 다시 아이를 눕힌 적도 있다. 그렇게 두어 해, 나는 우울했고 극도로 예민해졌다. 남편이 헛기침만 해도 고함을 질렀고 아픈 아이에게도 큰아이에게도 친절하지 못했다. 내가 계모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들렸다.
그날따라 오후 내내 아이는 토했고 내 기운은 소진했다. 더러워진 옷이며 이불이며 치울 새가 없었다. 쪽쪽 욕실로 던졌더니 바닥에 널브러져 그득했다. 겨우 씻겨서 옷을 갈아입히고 우유를 먹인 아이가 또다시 왈칵 토했다. 머리가 팽 돌면 그리하는 것인지. 아이를 욕실에 둔 채 문을 닫았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도 문을 두드리는 절박한 소리도 멀리 아득했다. 때맞추어 초인종 소리가 났다. 욕실 앞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았던 내가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 그때 내 모습이 어땠는지. 남편이 책가방을 내박치고 윗옷을 던지고 벗겨 내린 바지를 걷어차고 욕실로 달려갔다. 아이를 어르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욕실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초벌 빨래하여 세탁기에 넣고…. 그러는 내내 남편은 한마디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날 내가 했던 말을 똑똑하게 기억한다.
“내가 계모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세월이 지나도 그날의 그 말이 다행이라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계모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뇌리에 나쁜 이름으로 저장되어 왔는지 모른다. 잔혹동화라고도 불리는 동서양의 계모 이야기들이 다 고전古典이다. 그러니 글자를 알고부터 그런 동화를 읽어왔다. 시대를 넘어 영화나 연극, 애니메이션은 물론 다양한 패러디로도 재현되어 함부로 잊어버리지도 못하게 한다. 동화 속 계모들은 말 그대로 독악하고 잔혹하다. <장화홍련>의 계모 허 씨는 의붓딸들을 학대하다 누명까지 씌워 죽였다. <콩쥐팥쥐>의 계모 배 씨도 콩쥐를 구박하다 결국은 죽게 했다. <신데렐라>의 머리 나쁜 계모는 신데렐라에게 집안일만 시켰고,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는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였다.
동화가 말하는 권선징악을 따라 독악한 계모들은 잔혹한 벌을 받는다. 동양의 독한 계모들은 다 죽었다. 장화와 홍련의 계모는 능지처참을 당했고, 콩쥐의 계모는 즉사했다. 서양의 악한 계모들은 금방 죽이지 않고 훨씬 더 잔혹한 고통을 받다가 죽게 했다. 신데렐라의 계모는 새에게 눈알이 쪼이는 벌을 받고,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는 빨갛게 달군 쇠로 만든 신발을 신고 너무 뜨거워서 미친 듯 펄쩍펄쩍 뛰다가 죽는다.
불편한 것들의 소환으로 불편하게 뛰던 심장 박동을 누그러뜨린다. 가만 호흡을 가다듬는다. 뉘라서 처음부터 계모를 꿈꾸었을까. 너나없이 떠안은 생이 아린 탓이리라. 늦가을 인정 없는 바람에 끝내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위태하게 구르는 마른 잎 하나를 오래 지켜보는 것도 내 생이 아린 탓이고, 계모라는 이름으로 사는 저들 또한 저들에게 내맡겨진 생이 아린 탓이다. 장화와 홍련 콩쥐 신데렐라 백설공주의 계모도, 장터에 살던 친구의 엄마도 그들 앞에 던져진 야속한 생에 에인 때문이다. TV 뉴스에서 고개를 떨군 젊은 계모의 목덜미가 곱다. 아무렇든지 그녀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동화 속 잔혹한 계모들의 벌에는 더 굵게 더 진하게 더 길게 밑줄을 쳐야 한다. 착한 계모가 나오는 동화를 다시 써야만 한다.
처음으로 서모(계모, 경남 지방에서는 서모라고 부름)라는 이름을 알았다. 모두가 큰올케언니의 친정엄마를 서모라고 불렀다. 언니는 행여라도 서모에게 설움 받을까 하여 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한다. 그런 언니를 두고 어른 손에 자라서 버릴 게 없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을 자주 들었다. 어느 해 여름날의 기억이다. 언니의 서모가 딸네 집에 왔다. 장조카가 외할머니를 부르며 바깥마당으로 내달렸다. 흰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은 서모는 얼굴이 하얗고 내 엄마보다 젊어 보였다. 장조카를 안고 볼을 비볐다. 나는 멀찍이 안마당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따라온 사람이 갖고 온 동구리를 열자 그 안에 정갈하게 담긴 떡이 서모를 닮은 듯도 보였다.
조금 후였던가. 서모가 함석 대야에 물을 받아와서는 낯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저고리 소매를 걷고 장조카 얼굴의 땟국물을 씻겼다. 그 옆에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은, 딸의 시누이인 내 얼굴도 씻기고는 목에 둘렀던 광목 낯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 느낌이 좋아서 가만있었다. 얼굴에서 수건이 걷히고 그제야 눈을 떴다. 꽃밭의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가 한껏 붉었다. 서모는 함석 대야의 물을 꽃들에 골고루 나누어 부었다. 그리하여 서모라는 이름은 기분 좋을 만큼 아릿한 기억, 여름날의 순정동화 같은 풍경이 되었다.
엊그제다. 그때의 서모보다 훨씬 나이 들어버린 큰올케언니가 딸기 한 알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연거푸 세 번을 묻는다. “딸기가 어디서 났을꼬?” 땀박땀박 유순하던 질녀의 목소리가 고만 흔들린다. 나는 가만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 십 년만 더 내가 사 온 딸기를 먹으소.’ 내 속말에 내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