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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5일(토)
* 시작 기도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또한 약속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야로서의 복음의 행위 곧 구속사역을 통하여 온 세상에 믿음의 근거가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를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믿음만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혼돈과 혼미함으로 갈 지(之) 자를 그리며 살아온 자입니다.
나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복음을 통하여 주님이 주신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는 고난 곧 징계임을 알고 난 후에, 이를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장사됨은 예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 또한 그와 합하여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롬 6:4).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가 되길 원합니다.
나의 의로 살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임을 믿사오니 주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슥 10:1-12
제목 : 모퉁잇돌과 말뚝이 그에게서 나와서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10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11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12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나의 묵상
본문은 겸손한 한 왕의 도래와 통치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곧 선민에게 주실 복락을 다루는 9장 후반부에 이어진다.
이는 유다 지파를 통하여 선민을 구원하심과 이방 열국 사이에서 선민을 소집하고 인도하심에 대한 예언이다.
본문은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과 함께 선민을 향하여 창조자이자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것을 권면한다(1절).
이어서 선민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우상과 거짓 목자들을 징벌하실 것을 선언하신다(2-3a).
다음은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를 통하여 구원자를 배출하시고 유다 지파를 후원하심으로 만민 중에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내용이다(3b-7절).
마지막으로 8-12절은 하나님께서 이방 열국 사이에서 선민을 소집하여 본향으로 인도하시고 견고하게 보호하실 것에 대해서 약속하시는 내용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목자가 없음으로 곤고를 당하고 있다고 탄식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거짓 목자와 대조되는 참 목자이자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를 후원하심으로 전 선민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곧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유다 지파 중에서 나실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한 야곱의 유언을 통해서도 예언된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요 13: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 14: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따라서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구약 성경 곳곳에서 메시야의 출생과 행하실 사역을 밝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절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여기서 준마는 강하고 빠르며 용맹스런 말을 가리킨다.
이런 말은 전쟁터에서 용맹한 장수들의 싸움을 돕고 고대 전쟁에서는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한다는 것은 유다 족속을 그 어느 대적과 싸울지라도 강하고 용감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물론 여기서 유다 족속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들 곧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와 같이 만들어 주시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중간기인 마카비 시대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고 유대의 독립을 쟁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본문 2절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 목자가 없어서 양같이 유리하며 곤고를 당한다.
하지만 4-5절에서 예언되는 모퉁잇돌과 말뚝 그리고 싸우는 활로 묘사된 메시야의 지휘와 하나님의 강하게 하심으로 곤고를 당하던 그들이 강력한 전사가 되어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유다 족속은 남유다를 지칭한다.
그리고 요셉 족속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 이방 민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로마서 9:24-26절의 말씀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롬 9:24-26)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전쟁에서 모퉁잇돌과 말뚝 그리고 싸우는 활로 묘사되는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모퉁잇돌은 건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기초석이다.
물론 지금은 건물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고 거기에 철빔을 세워 콘크리트 기초를 한다.
하지만 고대의 세계나 지금도 내가 있는 동남아 같은 경우는 건축 기술이 낙후되어서 여전히 모퉁잇돌을 기초로 하여 건축을 한다.
말뚝은 장막을 세울 때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장막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말뚝이 중요하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과 말뚝에 비유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장막 곧 교회를 견고하게 보존하시는 분이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무조건 승리를 주신 것이 아니다.
그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왕의 귀환을 의미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종려나무가지를 길에 펴서 환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자기들의 메시야 곧 로마를 뒤집고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와 도탄에 빠진 경제를 일으켜 줄 경제적 메시야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그런 파워풀한 메시야가 아니었다.
이미 상고한 것처럼 그분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오셨다.
이는 스가랴서 9:9절의 말씀의 성취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21:1-7절에서는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스가랴 9:9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한 마디를 추가한다.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중요한 것은 그냥 짐승의 새끼가 아니라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다는 것이다.
여기서 멍에를 멘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십자가 고난을 버려두면 오직 이 땅에서 받을 현실적 번영과 영광만이 보인다.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내가 바로 그런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 잘 될 거라 믿었다.
한 마디로 3A에 빠져 살아온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3A란, Appearance(보란듯함), Achivement(성공), Affluence(윤택함과 부요)를 말한다.
그런데 어디 예수를 믿는다고 모든 일이 이렇게 잘 되는가?
이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의 추구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나 역시 예수 믿는 것을 여타 종교와 똑같은 반열에 두고 행해왔던 자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기 전 창세전의 세계에서부터 이미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되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오시기로 작정되었다(벧전 1:20).
나는 그런 창세전의 언약을 전혀 알지 못하여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면 그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일이 훨씬 많았다.
“아~ 예수를 믿어도 안 되는 것이 많구나.” 하는 것을 경험치로 깨달았으면서도 복음을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런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오늘도 우리 주님이 지셨던 그 십자가에 나를 못 박는다.
그리고 우리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된다.
이는 나의 탐욕과 정욕을 함께 죽이고 장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안에 오직 예수로만 부요한 자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어리석음과 못남을 불쌍히 여기사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이 거듭남은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과거의 한 현상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일어나는 현재가 되게 하소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하여 3A가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이 타셨던 멍에 메는 짐승 곧 새끼 나귀를 타고 주님과 연합하는 날이기를 원합니다.
이 일은 나의 바람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언약이오니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신비임을 믿습니다.
날 붙들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