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보좌진이 기업 임원에 “국회로 들어오라”… 아침에 가니 한밤 나타나 “요즘 인사 잘 안오네”
[국감 ‘갑질’ 구태]
의원실 보좌진도 ‘갑질 논란’ 반복
국내 10대 기업의 한 임원은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인 최근 휴일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으로 출근해 하루를 보냈다. 전날 한 의원실 보좌진이 “부하 직원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상사인 당신이 내일 당장 (국회로) 들어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보좌진은 만날 시간을 정해주지 않았다는 점. 결국 휴일 아침부터 국회 인근에서 대기했던 이 임원은 “요즘 인사를 잘 하러 오지 않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밤늦게야 보좌진을 만날 수 있었다.
10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정감사의 ‘갑질 논란’은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각 의원실이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등을 문제 삼아 대기업 총수, 대표 등을 증인으로 부르면서도 정작 피감기관에도 의원실이 고압적으로 나서는 관행이 끊이지 않는 것.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번 국감에 증인·참고인 50명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한 의원실에서 5명을 무더기로 신청한 사례도 있었다. 한 국회 보좌진은 “의원 1명당 질의시간이 대략 15분 정도인데 증인·참고인을 5명이나 부르면 모든 시간을 다 써도 1명당 3분꼴”이라며 “기업에 대한 갑질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영향력 과시 차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출석을 요구하는 관례도 여전하다. 한 야당 의원은 최근 가석방 전력이 있는 재벌 총수들에 대해 ‘가석방 제도 의견 청취’를 이유로 증인 출석을 요구했다.
또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으로까지 ‘국회 갑질’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보통신기술(ICT)을 다루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통화에서 “회사와 무관한 업계 이슈에 대해 ‘업계 의견 청취’를 이유로 증인 출석을 요구했다”며 “국회 대관 업무에 취약한 중소기업으로서는 대응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감 시즌은 ‘전현직 보좌진 카르텔’이 가장 왕성하게 발동되는 시기다. 현직 보좌진이 특정 기업에 증인이나 참고인 출석 요구를 하면 전직 보좌진이 해당 기업에 접근해 “증인 명단에서 빼주겠다”며 채용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식이 대표적이다. 국회의 한 보좌진은 “전직 보좌진이 여의도에 ‘행정사’나 ‘컨설팅’ 간판으로 업체를 차리고 기업에 국감 증인 빼주기 로비를 해주겠다고 장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나중에 자기도 비슷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일부 보좌진이 실제로 증인에서 빼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