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 10월 26일(주)
* 시작 기도
(딤전 4:3-5)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주님...
믿음에서 떠나 악한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각종 규례를 만들어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화를 당한다고 속입니다.
교회도 사람의 소리가 커지면 각종 규례들을 만들어 반드시 지키도록 합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당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먹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 행하는 혼인은 가장 정결함이며 또한 모든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은 이를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행동을 제약하는 규례를 만드는 사람은 아닌지요?
무엇은 먹어도 되고, 이것은 먹으면 안 된다는 규례가 나를 옥죄는 것은 그동안 누군가를 통하여 배웠던 장로들의 유전과 교회의 전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자가 되어 참 자유를 누리는 자로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슥 11:1-17
제목 :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30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10장에서 유다는 화려하게 회복된다.
하지만 11장에서는 냉엄한 현실로 돌아온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심판은 매우 광범위하고 준엄하다.
1-3절은 유다의 전면적 멸망을 예언한다.
이 예언은 스가랴의 애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장은 예언적 완료 형식이다.
이는 유다의 멸망이 확실한 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잣나무 그리고 바산의 상수리나무는 일차적으로 유다의 지도층을 가리킨다.
이들의 쓰러짐과 엎드러짐은 단순히 지도층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유다 전체가 완전히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이처럼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실 참 목자 곧 메시야를 오히려 그들이 미워하여 배척하는 만행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4-14절은 유다가 미워하여 배척하다 그로 인하여 멸망 받을 참 목자의 두 막대기와 품삯 등의 상징을 통한 행적으로 예언한다.
특별히 본문의 예언은 참 목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그것을 이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 목자에게 하는 명령이다.
그 양 떼는 거짓 목자들에게 잡혀 죽을 지경에 놓인 자들로서 이들을 먹이라는 명령이다(4-5절).
하지만 그런 명령을 하시는 하나님은 다시는 그 양 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이 원수들에게 잡혀 죽임 당하도록 유기하실 것을 말씀하신다(6절).
여기서 참 목자를 향한 목양의 명령이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온 것이라면, 양 떼의 유기에 대한 선언은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할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로마 제국을 통해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한편 목양 명령을 받은 참 목자는 은총과 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를 가지고 양 떼를 먹이기 시작한다(7절).
하지만 참 목자의 목양은 순탄하지 않다.
왜냐하면 목자들이 참 목자를 미워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참 목자는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제거하였다.
또한 양 떼를 치는데 필요한 두 막대기 중 은총의 막대기를 꺾어버렸다(8-1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들이 참 목자를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이에 참 목자는 연합이라는 다른 막대기마저 꺾어 그들을 흩어버린다(12-14절).
이 내용을 예언의 성취라는 차원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
참 목자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양 떼는 유다의 백성들을 지칭한다.
양들이 참 목자를 미워하고 싫어하였다는 것은 유다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실을 의미한다.
세 목자는 유다의 세 지도자 층인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은총과 연합이라는 막대기를 꺾었다는 것은 유다를 향한 축복과 보호의 손길을 거두어 이방 원수들에게 유린당하게 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양들이 참 목자의 품삯으로 준 은 30개는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몸값으로 가룟 유다에게 은 30을 내 준 것과 연결된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유대인들의 배척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17절은 바로 앞에서 예언하고 있는 한 목자 곧 참 목자와는 대조되는 다른 한 목자가 등장한다.
다른 한 목자는 악한 목자로서 그의 멸망까지 예언한다.
이 악한 목자는 예수님 당시 헤롯왕을 비롯한 유대의 지도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유다를 핍박한 로마의 황제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악한 목자는 어느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기보다 스스로 목자로 자처하면서도 실상은 양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며 양들을 잡아먹는 모든 악한 목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때에 자기를 위하여 수많은 양들을 잡아먹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오늘 본문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 인생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일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바로 본문 12절에서처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 두라. 그들이 곧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기서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는 11절의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배척하던 다수의 유대 백성을 가리킨다.
참 목자이신 주님은, 너희가 나를 좋게 여기면 내 품삯을 내게 달라고 하셨다.
여기서 좋게 여긴다는 말은 선한 목자로서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고맙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먹인 양 떼들을 향하여 자신을 선한 목자로 인정하면 그에 합당한 품삯을 지불하여 줄 것을 요구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양 떼에게 요구하신 품삯은 무엇인가?
악한 목자는 양들을 자기의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다.
따라서 그들은 철저히 물질적인 것을 요구한다.
이뿐 아니라 양들을 잡아먹거나 팔아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에게서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선한 목자가 양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만 순종과 믿음이다.
이는 참 목자가 가지고 있던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를 의미한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이 자기를 믿고 음성을 들으며 따라와 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것이 양들이 목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품삯을 요구받은 양들 곧 유대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는가?
은 30개를 달아서 주님의 품삯으로 삼아버렸다(12b).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은 30에 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포악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순종과 믿음, 은총과 연합에 합당한 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은 30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치욕과 모독을 주님께 안겨준 자이다.
입으로는 순종순종 믿음믿음 하면서도 속사람은 전혀 그러지 못하다.
나야말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임을 고백한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을 해서 마치 공원처럼 꾸몄다.
그러나 그 속은 썩은 물이 고이는 무덤에 지나지 않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일갈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독설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진멸이 아니라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다시 부르시고 그 품에 품어주셨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은혜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디 나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뿐이겠는가?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몸에 배인 악한 습관들을 행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꺾어버린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를 다시 붙이신다.
그리고 그 막대기로 나를 인도하신다.
그 곳이 바로 주님이 거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참 목자이신 주님이 요구하시는 품삯을 오해한 자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물질을 원하시는 줄 알고 지금도 여전히 물질을 드립니다.
은 30은 당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었는데, 예수님을 겨우 노예 취급한 것입니다.
나는 그것도 아까워서 물질을 드리되 동전 한 닢만 드릴 뿐입니다.
이것이 나의 실상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오니 주의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그리하여 이 시대의 참 목자로 설 수 있도록 나를 이끄소서.
나는 죽은 흙입니다.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아담의 생명으로 죽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비록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났지만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나 오직 우리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