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있는 사회란 양심의 자유로운 날개짓을 허용하는 사회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제한된 양심의
자유만 허용하는 사회였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법과 제도나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심을 이유로 처벌을 감행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양심을 드러내라고 강요하는 준법서약제가 존재하며, 양심에 반하는 집총거부를 항명이라고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존하는 레드콤플렉스는 평화공존을 위한 통일 논의에 조차도
붉은 색을 칠하며 통일운동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는 사상은 물론 양심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근거하여 가능했던 폭압적
통치체제였다. 이러한 폭압적 통치의 법제도 기반은 치안유지법이었으며 사상전향제였다.
하지만 그 먹구름의 진앙지였던 일본 열도에서는 반군국주의의 민주화의 일환으로 이들을
폐지했고, 일제의 망령 보호관찰제도와 사상전향제도는 여전히 한반도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침묵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 준법서약제와 창살없는 감옥살이를 강제하는 보호관찰
처분의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여 이 땅의 양심수들을 양산하고 있는
악법중의 악법인 것이다. 준법서약제는 변형된 전향제이며, 보호관찰처분은 조선 사상법 보호
관찰령의 한국판 버전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라 함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서의 군징집에 따른 '양심의 집총거부권'의 현실적인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사상전향제에 대해 그것이 존치하여야 하는 사유를 남북의 분단상황이라는 안보적
상황논리를 그 잣대로 기준하듯이 이 '양심적 집총거부권'도 마찬가지의 사유일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총 4,243명의 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했는데도 이 중 3,736명이 항명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한 해 평균 400명의 집총거부자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이들에 대해
사회나 국가는 침묵하고 방치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분단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대만은 대체복무를
도입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총을 드는 것이 자신의 양심 또는 종교의 근본을
부정하고 인격의 자기동일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투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적합한
행위가 아니라 할 것이다. 징병제를 통한 국가의 이익은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을 처벌하거나 강제
징집을 하지 않고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수 집단의 상황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법률을
집행하는 것은 현행 헌법 제37조 2항의 후단에 나오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않된다."는 말에 애써 귀기울이지 않으려는 것은 이 땅의
법집행 논리나 법해석의 무관심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빨갱이 콤플렉스로서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다. 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담론을
가로막는 중심에 '국가보안법'이 자리하고 있다. 즉, 명백하고 현존하지 않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분단 상황을 이유로 사상의 날개짓을 금지하는 우리 현실을 법 제도로서 총괄하는 것이 바로 국가
보안법이다. 사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0월 19일 기하여 발생한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의 반란
행위 및 순천 등지에서의 일련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란행위 특별조치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비상 시기의 비상조치를 위한 한시적인 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1961년 이승만에
의해 반공법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고, 1980년 전두환의 소위 '국보위'에서는 반공법과 한 몸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법은 일제의 군국주의 통치에 반대하는 생각만 가져도 처벌하는 사상처벌법
으로서의 '치안유지법'의 폐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에서부터 대안적인
사회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상을 반국가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한다는 명목으로 처벌
함으로써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를 대안없는 사회로 이끄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이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자유로운 사상의 날개짓이 시작되고 사회적 대안적 마련될 것이다. 남의
사정에 아랑곳 없이 자기 고집을 꺽을 줄 모르는 독불장군, 거기에다 남에게 위해를 가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자들의 원형이 희랍신화에 나온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물은 행인이 지나 다니는
길목에 두 개의 침대를 마련해 놓고 키가 큰 자가 지나가면 작은 침대에 뉘여 목을 잘라 버렸고, 키가
작은 자가 지나가면 큰 침대에 뉘여 몸을 잡아 늘리는 위해를 가했다. 온갖 악행을 거듭하던 끝에
아버지를 찾아 삼만리 길에 나선 테세우스는 맨 마지막의 시험대에서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나
오히려 몸집이 장대한 프로크루스테스를 작은 침대에 뉘여 목이 잘리는 최후를 만는다. 그렇듯
이 나라의 국가보안법이란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어어령비어령'의 한국판 프로쿠루테스의
침대라고 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국가보안법'과 '준법서약제'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토톤의 의제로
다루어 졌으니 '양심적 집총거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봅시다. 일간에서는 종교 및 사상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장병에 대한 처벌대신 '대체 복무제'를 시행한다면, 누가 과연 군대를 가려고 할
것이며, 집총거부에 대한 처벌이 간과된다면 어떻게 군의 지휘권이 바로 설 것인가에 대한 반론이
존재하며, 남을 살상하는 총을 드는 것은 본인의 종교적, 사상적 사유로 불가한 점에 대한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법리 해석이 상충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집총거부를 처벌하는 현행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가 있습니다.
첫댓글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그 대안이 논의된다면 우리의 징병제도는 불가불 일본이나 다른 나라처럼 '모병제'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기독교 중에 '여호와의 증인' 들은 이 '총'이라는 살상 무기를 드는 것 자체를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에 배치된다고 주장하지요? 더구나 개인이 믿는 사상중에는 남을
위해하는 행위를 금하는 교리도 있다고 봅니다. 이들을 굳이 '항명'으로 처벌만 남발한다면 또다른 '국가보안법' 상당의 사상처벌법이라고 생각되네요. 징병제를 행하고 있는 대만의 예를 드셨지만 세계 여러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징병제'를 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의 경우는 남북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는 것으로 징병제가 아직은 유효하겠지만요..즉, 집총거부는 개인의 종교적 사상적 신념에 따른 것인즉, 이를 처벌하는 것은 머리속에 든 사상이나 신념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 듭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세계 프로복싱 헤비급을 주름잡던 캐시어스 클레이가
이슬람으로 종교를 개종하면서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까지 개명하고 정부의 베트남 징병을 종교적 신념에 의해 거부 했을 때의 처벌이 아마도 챔피언 벨트의 박탈정도가 아니었나요? 그를 신체형으로 처벌까지 한 것은 아닌듯 싶은데요.
'양심적 집총거부'란 '양심적 병역 거부권'의 다른 말입니다. 우선 이 양심적 병역 거부권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현황을 살펴보면, 현재 유엔 가입국 210여개 나라중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약 80개국이며, 이중 양심적 병역 거부권이 제도화하여 대체복무권을 도입한 나라는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대만,
이스라엘 등 30여개 국이 운영하고 있으며, 1997년 유엔의 인권위원회는 1997년 종교적 병역 거부권을 어떠한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도 차별해서는 않된다고 결의하였으며, 1998년에는 양심적 집총거부와 관련하여 결의한 결의안 77호가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세계인권선언 제18조및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B규약)
제18조에 기초한 권리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양심상의 집총거부권과 대체복무제의 마련을 각 회원국에게 촉구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결을 살펴보면,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행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여 집총거부권과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환기시켰으나, 검찰의
항고로 이 사건은 그해 7월 대법원에서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를 우선할 수 없다'며 이들에게 유죄를 확정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2004년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의를 받아들여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정부와 국회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 바가 있으며
또한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27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 양심이란 일반적으로 한 인간이 지니는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고 정의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상기 본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고 하여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의 개념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란 인간 내면의 인격적 가치를 보호함으로써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도모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본권으로서 우리 헌법체계에 있어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본권에 해당된다. 양심의 자유는 1.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없이 자신의 판단대로 양심을 형성할 자유를 의미하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2. 양심을 표명하도록 강제 당하지 않을 자유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 당하지 않을 자유를 내용으로하는 침묵의 자유및 3. 소극적 양심활동의 자유는 물론 적극적으로 양심을 실천할 자유를 포함하는 양심실현의 자유로 나누어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양심의 자유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법학계에서는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역시 학설이 엇갈린다. 1. 긍정설로서 양심상의 이유에 의한 집총거부의 권리를 인정하는 견해는 헌법 제19조가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서 집총훈련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유엔 인권위의 결의가 헌법 제6조 제1항에 의하여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이므로 양심적 집총거부권은 이들 국제 법규에 의해서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그러나 2. 부정설은 우리나라는 헌법상 막연하게 '양심의 자유'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독일처럼 집총거부권 또는 대체복무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있지 않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에서 집총거부의 권리가 그 해석상 당연히 도출될 수는 없다는 것이며, 현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의 선진국들 대부분은 이 양심적 집총거부권과 대체복무권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시기상으로 우리나라도
시간의 문제일 뿐, 법으로의 도입과 실시가 멀지 않았다고 주장해 봅니다.
그래서 검토중이라고 알고 잇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