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 창녕읍 교리와 송현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대형고분군으로,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917년의 분포조사를 시작으로 1918년, 1919년에 걸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으나 제21, 31호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으며, 조사자에 따라 고분번호를 달리하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조사된 고분이 어느 고분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이 시기 조사를 통해 마차 20대와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품들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부 유물을 제외하고는 보관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199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1~4호분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횡구식 석실 구조와 봉토의 구획성토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였으며, 토기류, 각종 금속유물 등이 출토되어 창녕지역의 고분문화 및 편년 연구를 위한 기초적인 학술정보를 제공하였다. 한편 2004년에는 1917년 일본인에 의해 교동고분군의 분포조사가 실시된 이래 처음 정밀지표조사가 이루어져 이미 복원된 36기 외에 65기의 고분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또한 2002년부터 경남문화재연구원(2002년~2004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04년~2006년)에 의해 실시된 송현동고분군 6.7호분의 발굴조사에는 국내 최초로 배모양의 녹나무관과 함께 280여점의 토기를 비롯한 장신구·마구·무구·농공구 등 90여점 이상의 철기와100여점이 넘는 목기가 출토되어 학계의 큰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06년~2008년 까지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대형봉토분인 15·16호분과 중형봉토분으로 추정되는 17호분, 7기의 소형석곽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15·16·17호분의 경우 이미 도굴이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이기는 하였으나 봉토의 축조수법과 관련된 자료를 확득할 수 있었으며, 특히 15호분에서 확인된 4구의 순장인골에 대한 학제간 융합연구를 통한 복원연구는 고고학계에 큰 이슈를 남겼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를 통해 보면 금동관, 금·은장신구, 은관장식, 금동관모,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장식무기류, 비늘갑옷을 비롯한 각종 철제무기류, U자형삽날을 비롯한 각종 농공구류와 금속용기류, 각종 토기류와 목기류가 교동·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되었다. 일부 토기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물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그 양상과 형태가 거의 흡사하며, 고분의 구조와 함꼐 볼 떄 5~6세기 전반의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각각 사적 제80호와 제81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2011년 7월 28일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한 인접지역 고분군 통합에 의해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기타정보
교동고분군 주변에는 창녕박물관이 소재해 있어 창녕 고분군의 조성방법과 형태, 신석기시대부터 근래까지의 창녕군 역사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