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만덕사지 유적을 찾아 나섰다
나선 김에 인근에 있다는 배바위 알터 유적도 겸사하여 답사를 하기로 하는데.....
만덕역 2번 출구를 나와 만덕1터널 방향으로 약10여분 가면
만덕사지 입구의 육교가 있는 지점 조금 못미친 지점 왼쪽에 사찰4개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그 안내판을 따라 왼쪽 오르막길을 오른다
먼저 비로사 인근 사기마을에 있다는 '배바위'를 찾아 나선다
사기(寺基) 마을 경로당
동래 온천동에서 구포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중턱에 있는 이곳에
지금까지도 사기(寺基)부락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전부터 대규모의 절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상학산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으로 흘러
GS칼텍스 주유소 뒷편의 금등사 쪽으로 이어지는 물줄기의 이름도 사기천(寺基川)이다
비로사
비로사 법당과 지장보살
비로사 주변과 절 뒷쪽 여러곳을 둘러보아도 '배바위'는 보이지를 않아
스님에게 물어보니 스님도 인근 주민을 불러 물어보는데 두 사람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란다
인터넷 검색으로 주변 지형 사진을 보여주니 아마도 이쪽이 아니고
도로 건너 당간지주가 있는 곳 인근인듯 하니 그곳으로 가 보란다^^
비로사를 돌아나와 육교를 건너 만덕사지 당간지주가 있는 곳으로 간다
만덕사지는 나중에 들러볼 요량이다
옛 만덕사지 당간지주는 만덕사지에서 약190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옛날의 만덕사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지 유추해 볼 수가 있다
당간지주로 가는 길은 이렇게 관리를 잘 해 두었다
이름하여 '역사 공원'
저기 사방으로 둘러친 담 안에 당간지주가 보인다
당간지주는 절의 문 앞이나 뜰에 큰 기를 달기 위해 세우는 장대를 지탱하는 받침 기둥을 말한다
만덕사지 당간지주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
가로 40cm, 세로 60cm, 높이 3.5m의 돌기둥으로
원래는 한쪽만 남아 있었으나 2014년에 현재와 같이 복원하여 쌍을 이루고 있다
당간지주 옆의 오랜 고목
당간지주 아래쪽 어디에 있을 '배바위'를 찾아 길을 재촉한다
당간지주가 있는 곳 옆은 개천이 흐르고 있어
그 옛날 산 아래에서부터 이 계곡길을 따라 만덕사로 오르내렸던 것 같다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20여m 내려오니 드디어 '배바위'가 보이는데
이 배바위는 만덕사지와는 상관이 없는 유적이다
배(舟)바위 알터 유적
알터는 원시 신앙의 한 형태로 아기 낳기를 빌고, 풍년과 부부간의 화합을 비는
기자풍농부부상합(祈子豊農夫婦相合)의 기원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배바위 알터 유적은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단순한 하나의 원이 아니고
인공이 가해진 두 개의 원형으로 정교하게 패인
두 개의 동심원(同心圓) 알터라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알터 모습
배바위 알터 유적에서 다시 거슬러 올라와 이제는 만덕사지로 향한다
1973년 만덕로가 동서로 관통하면서 주위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절터의 옛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육교 위에서 보이는 만덕사
만덕사지로 갈려면, 만덕역 2번출구에서 10여분 걸어오거나
33-1번이나 46번 버스를 타고 석불사입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만덕사지로 인해 사기(寺基)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있는 듯.....
옛 만덕사지(萬德寺址)에 새로 들어선 지금의 만덕사(萬德寺)
만덕사지(萬德寺址)는 금정산 상계봉(상학산) 기슭에 자리한 옛 절터로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옛 만덕사는 1차로 고려 말에 폐사되었다가 마지막 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의 만덕사는 1986년에 작은 암자 규모로 불사되어 옛 터를 지키고 있다
대웅보전
절터의 중앙부에 있는 장방형의 축대(동서 68m, 남북 54m, 높이 4m)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이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및 서북쪽 200m지점에도 법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의 초석이 있다
또한 서남쪽 190m지점에는 당간지주가 있다
1990년과 1996년에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축대의 내부를 발굴조사하였다
조사결과 동서길이 24.9m, 남북길이 20.4m의 금당지가 확인되었다는데
그 규모는 지금의 범어사 대웅전의 4배 크기였다고 한다
금당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평면구조는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다
만덕사지의 히말라야시다 거목
개잎갈나무 또는 설송(雪松)으로도 불리는 상록침엽수다
만덕사지의 내력에 대한 확실한 문헌자료는 없으나
《불교사전》에 ‘만덕사는 경상남도 동래군 우이면 만덕리에 있는 절로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창건’이라 하였는데 이것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고려의 28대 왕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가두었다는 기사가 있어
이 기록의 만덕사가 만덕동의 만덕사로 추정된다
그러나,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전국에 다섯 군데가 있어
만덕동의 절터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만덕사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하며
이 절터에서 출토된 각종 기와와 석조유물의 양식으로 보아
창건 연대는 고려 초 또는 통일신라시대 말일 가능성이 있고
폐사에 대한 기록도 없으나 조선 초기의 지리지에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폐사 시기는 고려 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금등사라는 소암자의 석탑과 석등, 분청사기의 출토 등으로 보아
마지막 폐사는 임진왜란 때로 추정을 하고 있다
옛 만덕사 유적같은 석물
1971년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유물 중에는
청동제인왕상(靑銅製仁王像 : 길이 11㎝)과 각종 와당, 연자방아가 있으며
구시바위 또는 떡메바위라 불리는 미완성 물통도 인근에 있어
이 절터가 규모가 큰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돌무더기도 옛 만덕사의 유물인듯 하여 카메라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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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받치고 있는 이 석대도 옛날 만덕사의 유물은 아닌지?
1979년 절터의 주위에서 수습된 삼층석탑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정원에 이전 복원되어 있고
연화대석(蓮花臺石) 등이 발견되었으며
만덕사지 인근의 금등사라는 소암자에 석탑의 옥개석 3개와 석등의 대석 2개가 있다고 한다
금등사는 나중에 마지막으로 답사를 할 계획이다
여름 끝자락의 물양귀비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 범어사가 아닌 만덕사였다는 설명
만덕사를 나서며 절 앞 계단에 서서 건너편의 백양산을 바라다 본다
이 만덕사지는 12년만의 재 방문이다~
<참고사진> 2012년 1월 25일 금정산 산행 후 만덕사지에서.....
(이태성, 권두경, 김기섭, 나, 그리고 김병환과 전일출)
만덕사지를 나와 석조수조를 답사하러 간다
명광사 앞을 지나는 길에 .....
명광사도 둘러 보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 일주문 현판의 글씨는 고등학교 은사이시며 부산 서예사에 굵은 획을 그으신
우당 한국원(于堂 韓國爰) 선생님(1911~2005)의 작품이라고 한다
명광사의 마애불
마애불의 모습이 특이하여 검색을 해 보았으나 확인이 되지 않는다
포장도로 오르막을 조금 더 오르면
만덕 오리마을과의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메아리산장 쪽 산길로 오르면
메아리산장 바로 위에 석조수조가 있다
만덕사지 오른쪽 언덕 위 금정산 등산로 옆 소나무 숲속에 있는 석조수조(石造水槽)
만덕사 석조수조(石造水槽)
길이 3.5m, 넓이 1.2m, 두께 28cm의 크기를 가진 대형 석조물로
만덕사에서 쓸 물통으로 사용하려고 조각을 하던 중 실패하여 버려진 것으로
이것만 보아도 옛 만덕사의 상주인구가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이 바위를 동네 사람들은 구유통과 닮았다 하여 구시바위, 구싯돌, 또는 떡메바위라고도 했다
여기까지도 옛 만덕사의 절터 안이었다면
저 아래의 당간지주 밑에 있었을 일주문에서 부터 당간지주-만덕사지를 지나 이곳 석조수조까지
도대체 옛 만덕사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제 마지막 답사 코스로, 옛 만덕사의 일부 흩어진 유물들이 있다는 인근의 금등사로 간다
만덕2터널 옆에 자리한 GS주유소 앞 마당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금등사가 나온다
금등사(金燈寺)
이곳 금등사에는 옛 만덕사의 유물인 '석탑의 옥개석 3개'와 '석등의 대석 2개'가 있다고 하는데
오래된 석물들을 하나하나 찬찬이 살펴 보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지스님을 비롯하여 공양주 보살 등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런 낭패~
법당 당우는 대웅전과 요사채 뿐이다
금등사 대웅전
대웅전 양 옆에 나란이 서 있는 석등(?)의 받침석이 오래되어 보이는데.....
대웅전 왼쪽의 석등(?) 받침석에는 한글로 음각된 글자가 보이니
옛 만덕사의 유물은 아닌것 같고^^
이것은 대웅전 발 디딤돌로 사용하고 있는 석물이고
이 5층 석탑의 받침돌도 오래되어 보이는데
수백년 전의 석물들이라 그 형태는 그렇게 온전하지 않을 것이겠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석탑의 옥개석이나 석등의 받침돌이었는지 일반인의 눈썰미로는 알 수가 없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이 절의 주지스님도 부임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스님은 알고는 있으려나? 시간되면 전화로나마 물어볼 참이다^^
주인없는 절을 홀로 지키고 있는 고양이에게 안부 인사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첫댓글 옛 번개산행 때
내가 사진 찍었지 싶은데... 나는 빠지고 없구나... 슬프다.
다른 사진들에도 얼굴이 안 보이길래.....
가만 보니 찍사였었던 모양일세
너무 슬퍼하지 마시게~
참 멋진 기행문이다.
세밀한 사진과 함께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명광사의 마애불이 상징의 가치를 뛰어 넘어
예술성이 빼어난 조각작품이다.
어느 이름없는 조각가가 무심한 심경을 투사했던 모양이다.
내가 부산을 떠나기 전 마지막 살았던 곳이
그곳 만덕이었다.
도로가 가팔라서 아이의 보행기가 행여
도로 아래로 굴러갈까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만덕동 위로 걸어가면 온천장쪽으로 넘어가는 좁은 차도가 있다.
그곳에서 병풍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가면
왼쪽으로 교회 묘지가 나오는데 선친의 묘소가 그곳에 있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부산을 갈 일이 있으면
꼭 아버지의 묘소에 들러곤 한다.
잘 보고 간다.
오랜만에 만덕동의 모습을 보게 해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늘 건강하기를 빈다.
천주교묘지에 부친이 영면하고 계시구나...
그곳 도로를 철학로라고 한다네~
명광사 一柱門의 金井山明光寺(금정산명광사) 현판은 于堂 韓國爰 선생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아이고~ 존경해마지않는 한국원 선생님의 옥필이였구나~ 블로그 에 올려두어야겠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