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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02월17일(화요일) 전남 강진군 여행일정
07:00~08:00 객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8:00~09:00 아침식사
09:00~09: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도암면 월곶로 473 번지에 있는 가우도 망호출렁다리 주차장으로 이동 [35분, 33.4km]
탐방지 : 전남 강진군 [가우도&병영돼지불고기거리&설록다원강진&백운동 원림]
탐방일 : 2026년02월17일(화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강진군 도암면 최저기온 영하2도C, 최고기온 9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4시간55분 소요)
09:35~10:40 가우도 탐방
[출렁다리 넘어 섬으로, 강진 가우도
전남 강진군 수정일 : 2020. 5. 20.
산 넘어 남쪽, 봄기운을 가득 품은 섬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2.5km 남짓한 산책로가 펼쳐져 있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뇌리에 담긴다. 마을 식당에서는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요리하는 손길이 바쁘다. 섬으로는 보기 드물게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까지 모두 갖췄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곳, 가우도 얘기다.
강진은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다. 해남과 장흥을 양쪽에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지만 유명하다 할 만한 것은 쌀, 딸기, 파프리카 등 바다와 별 상관없는 것들이다. 첫 손에 꼽는 음식도 해산물이 아닌 한정식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나 왕족들이 강진에 유배 갈 때 수라간 궁녀들이 따라가 궁중요리를 전파했다는 설이 있다. 군의 형상도 그렇다. 남쪽의 강진만이 군의 핵심부까지 깊게 들어와 대구면과 도암면을 갈라놓았다. 지도로 보면 그 모습이 바지나 말굽을 연상케 한다.
최근에는 가우도라는 작은 섬이 강진의 특별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섬의 위치는 예컨대 강진이 바지라면 무릎 사이 즈음이다. 소머리와 생김새가 흡사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구수 14호, 인구수 33명의 작은 섬이지만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4~5년 전 섬 양쪽에 출렁다리가 놓인 뒤로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의 핵심 관광자원으로 급부상해 해마다 수십만 명의 발길을 붙잡는 중이다. 출렁다리라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면 위험할까봐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튼튼한 나무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를 도보로 횡단하는 일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지역이라지만 군데군데 걸린 구명튜브와 스릴을 노리고 만들어 놓은 유리바닥 구간을 보면 더 그렇다. 다리는 대구면 쪽으로 연결된 저두 출렁다리(438m, 도보 10분 소요)와 도암면 쪽으로 연결된 망호 출렁다리(716m, 도보 15분 소요)가 있다. 걸어서 입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우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자동차는 드나들 수 없지만 섬 주민들이 외부에서 생필품 등을 사 나르기 위해 이용하는 사륜 전동 카트는 통행이 허락된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은 저두 출렁다리로 입도한다고 가정했을 때, 왼쪽으로 나무 데크길이 보인다. 이 데크길은 가우도의 서쪽 해변을 따라 0.77km 가량 이어져 있다. 해변의 생김새에 따라 들쭉날쭉 깔린 길이지만 남해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데크에 설치된 조명은 일몰 후 섬이 어둠에 잠길 때 등대 역할을 한다. 데크길이 끝나는 곳엔 망호 출렁다리가 있다. 출발지였던 저두 출렁다리 왼쪽 데크길이 트래킹 코스라면 망호 출렁다리 인근에는 마을식당이나 낚시터, 매점, 펜션 등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른 봄을 즐기러 온 향춘객들은 이곳에서 가져온 물을 나누어 마시며 다음 코스를 생각한다. 선택은 두 가지. 해변길을 따라 나머지 1.66km를 걷느냐, 마을이 있는 샛길로 빠져 섬 중앙부로 들어가느냐다. 해변길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나무 데크길이 아닌 콘크리트 도로와 흙길로 이루어져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선택하기 나름이겠지만 지금까지 해변을 따라 걸어왔으니 마을로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14호 뿐인 작은 마을이라 방심하는 순간 지나쳐버릴 수 있다. 새마을 깃발을 휘날리는 빨간 벽돌집이 마을회관인데, 이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과거에는 분교까지 들어선 북적이는 마을이었단다. 이렇게 마을을 통과해 저두 출렁다리로 가는 길은 해변길로 돌아가는 길보다 약 700m 짧다. 만약 샛길로 빠지지 않고 해변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돈다면 1시간~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코스의 이름이 바로 함께해(海)길이다. 섬을 한 바퀴 휘감는 생태탐방로 함께해길이 어르신들의 인기 코스라면 젊은이들은 청자타워 짚트랙을 찾는다. 청자타워는 가우도 산 정상에 위치한 청자모양 타워다. 함께해길과 연결된 등산로를 통해 10~15분 내외로 찾아갈 수 있다.
이곳의 짚트랙은 약 1km 길이로 해상체험시설로는 전국에서 가장 길다. 라인이 3개라 연인, 가족 단위 손님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타워 1층에서 안전장비를 갖춘 뒤 6층 정상에 올라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직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청자타워 높이만 해도 25m에 이른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발밑에 펼쳐진 까마득한 풍경 속으로 어떻게 뛰어들어야 할지 막막하지만 몸은 이미 와이어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안전펜스가 젖혀진 후 발판이 천천히 내려앉는 구조라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체험자들이 동시에 활강을 시작한다. 체험 시간은 1분 남짓. 손발이 저릿했던 공포는 어느새 성취감으로 바뀌어 마음을 흥분하게 만든다. 짜릿한 활강이 끝나면 저두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아예 섬 밖으로 나간 셈이 되므로 가우도에 더 이상 볼일이 남지 않은 때에 색다른 탈출 방법으로 이용하면 좋다.
가우도
-짚트랙 운영시간 : 09:00 ~ 18:00 / 개인 25,000원
-복합낚시공원 이용시간 : 일출 후~일몰 전/ 1일 사용료 성인 15,000원 (5월~11월까지만 운영)
-가우도 편의시설 : 화장실, 마을식당, 펜션, 포차, 매점
-저두, 망호 출렁다리 시작점에 있는 주차장 무료 이용 가능.
주변 음식점
-예향 : 한정식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186-61 / 061-433-5777
-설성식당 : 돼지불고기백반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92 / 061-433-1282
제공 : 한국관광공사
※ 위 정보는 2020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10:40~11:2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317-3 번지에 있는 병영돼지불고기거리로 이동 [42분, 37.8km]
11:22~12:20 점심식사
[불 맛이 최고인 '강진 병영돼지 불고기 거리'
전남 강진군 병영면 남삼인길
금나래 기자 pine9969@hanmail.net
우리문화신문 기사 등록 2023.10.06. 11:03:56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병영돼지불고기거리는 강진에서 이름난 맛 골목이다. 조선 시대에 새로 부임한 병마절도사가 집안 어른인 강진현감을 극진히 대접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전라병영성과 병영5일시장 일원에 식당이 여럿 있다.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올리고 연탄불에 구워 불 향을 입히며, 재료나 양념이 조금씩 달라도 매콤한 맛과 한정식처럼 푸짐한 상차림은 같다.
10월 28일까지 병영5일시장 일원에서 ‘불금불파’가 이어진다. ‘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의 줄임말로, 매주 금·토요일 야외 돼지불고기 파티가 열린다. 지역 가수와 EDM DJ, 사의재(다산 정양용이 강진에 유배돼 처음 묵은 곳) 마당극을 옮겨 온 〈장사의 신〉등이 흥을 돋운다. 여유롭게 식사에 집중하고픈 이는 인근 식당이 편하고, 동네잔치처럼 어울리고픈 이는 불금불파가 낫다. 불금불파는 인근 식당보다 반찬 수는 적지만 1인당 9000원으로 저렴하고, 광주에서 병영5일시장까지 금·토요일 각 2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강진 전라병영성(사적)은 성곽을 따라 거닐기 좋다. 사의재에서는 재현극 ‘조만간(조선을 만나는 시간)프로젝트’가 신명을 더한다. 갈대가 절정인 강진만생태공원도 가을에 꼭 들러볼 만하다.
문의: 강진군청 관광진흥팀 061-430-3313]
12:20~12:47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09-1 번지에 있는 설록다원강진으로 이동 [27분, 21.5km]
12:47~13:40 보성군의 대한다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다원인 설록다원강진을 탐방
[설록다원강진
녹차 하면 하동, 보성, 제주가 먼저 떠오르지만 강진에도 유명한 다원이 있다. 강진군의 설록다원강진은 보성군의 대한다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다원이다.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월출산의 뾰족한 암봉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 풍경은 무심한 발걸음을 자동으로 멈춰 세울 만큼 아름답다. 주변에 찻집이나 녹차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지만, 입장료 없이 호젓하게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진이 녹차 명소가 된 데에는 월출산이 큰 몫을 한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월출산이 큰 일교차와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 품질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강진 유배 시절 차 맛에 반한 다산(茶山) 정약용이 서울에 복귀한 이후에도 강진 차를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만큼 그 역사도 깊다.
국내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가 탄생한 곳도 강진이다. 어린 시절부터 차를 만들던 이한영(1868~1956)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현실에 대응하고자 고유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의미가 담겼다.
설록다원 인근에 위치한 백운차실은 이한영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 공간 겸 차실이다. ‘한상차림’ 예약 시 월출산이 보이는 온돌방에서 백운옥판차와 양갱, 한과, 떡 등 곁들이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백운옥판차는 찻잎 크기와 제다 방법에 따라 네 등급으로 나뉘는데, 계절이나 생산 현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 오늘의 차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발효차인 떡차다. 묵직한 향과 은은한 단맛이 곁들이 음식으로 제공되는 수제양갱과 특히 잘 어울린다. 차의 상큼한 끝맛을 느끼며 월출산을 바라보면 온 몸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 듯하다.
백운차실 (이한영 차 문화원)
-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 (강진 달빛한옥마을과 700m 떨어진 곳)
- 문의 : 0507-1345-4995
- 홈페이지 : https://www.1st-tea.kr/
- 운영시간 : 10:00~18:30
- 예약 : 떡차 이야기(제다체험), 백운옥판차 이야기(다도체험), 한상차림(월출산이 보이는 차실에서 다과 체험)]
[다산의 후학들이 만든 전통차, 백운옥판차 이야기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 기사 승인 2022.03.14. 08:00
월출산 남쪽 강진 경포대 인근에 위치한 설록다원
[여행스케치=강진] 다산 정약용의 제자들이 재배하고 제조한 전통 녹차, 그리고 한국 최초로 녹차 브랜드를 개발해서 녹차를 판매한 사람, 뒤이어 선대 어른들의 얼을 잇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한국 최초의 녹차 브랜드를 만든 이한영
월출산 남쪽 강진 경포대 인근에 설록다원이 있다. 규모만 따지자면 보성의 대한다원보다 넓다고 한다. 설록다원 주변은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월출산 남쪽 기슭의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우러진 녹차밭은 여행객의 가슴이 뻥 뚫리게 한다.
설록다원 아래쪽에 백운옥판차 이야기라는 조그만 찻집이 하나 있다. 이 찻집은 여행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카페가 아니다. 매우 뛰어난 한 선각자 이한영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한영 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외국에 수출까지 한 분이지요. 당시 만들었던 브랜드가 白雲玉版茶(백 운옥판차)입니다.”
백운옥판차 이야기 이현정 원장의 이야기다. 다산과 초의선사 이래 강진에는 차밭을 가꾼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은 강진과 해남 일대에서 수확한 차를 가져다가 일본 상표를 붙여서 일본과 미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한영은 우리 땅에서 수확한 차에는 우리 상표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고, 적절한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했다.
그리고 백운옥판차란 이름을 지어냈다. 백운은 알겠으나 옥판은 무슨 뜻일까? 동석한 강영석 강진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월출산 남쪽 능선에 옥판봉이라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으며, 다산이 이 봉우리에 다녀온 후, “옥판봉에 다녀왔는데 아름다운 경치는 기억에 없고, 아슬아슬한 절벽이라 죽다 살았다.”고 기행문에 썼다고 한다. 이한영이 상표를 개발했을 때가 40대 초반이었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다. 이한영이 생산한 녹차는 ‘白雲玉版茶’라는 자체 상표를 달고 판매되었다.
이한영은 상표만 개발한 것이 아니라 녹차 전문가였다. 그가 시도한 차의 4가지 분류는 요즘 홍차의 분류기준과 거의 일치한다. 잎이 하나 나왔을 때 수확한 차는 맥차, 잎이 둘인 경우는 작설, 잎이 3개일 경우는 모차, 잎이 좀 크고 넓은 경우는 기차라고 분류했다. 차를 분류할 때 수확하는 시기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잎의 개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킨 선비 이시헌과 후손들
다산 정약용은 18년만에 유배생활에서 해배된 후 양주에 살고 있었 다. 1830년, 다산은 강진에 살고 있는 막내 제자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에 보내준 차와 편지는 도착하였네. 이제야 감사를 드리네. 올들어 병으로 체증이 심해져서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떡차(茶餠)에 힘입어서일세.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주기 바라네. 다만 지난번에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서썩 좋지가 않더군.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서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야 잘 쳐서 먹을 수가 있다네. 알겠는가?(중략)” 제자 이시헌은 스승에게 해마다 차를 만들어서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은 다산이 사망한 후에도 이어졌고, 훗날 그 후손 들에 의해 100년 동안 계속 되었다고 한다.
이시헌은 다산에게서 녹차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이시헌은 다시 이흠 (이산흠)에게 전수했다. 이흠은 다시 이한영에게 녹차 제조 기술을 전수했고, 오늘 그의 고손녀 되는 이현정 원장이 백운옥판차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해남에서 이주한 원주 이씨 친족들이다. 이현정 원장은 학교 교사였는데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강진 녹차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진에 다산 선생으로부터 전해지는 녹차가 있으며, 그 줄기가 조부님들이란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교사생활도 좋지만 녹차와 조상님들의 흡인력이 더 강렬했다. 녹차를 더 체계적으로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되살려낸 조부님의 상표
지금 카페가 자리한 곳은 이한영의 생가가 있던 자리다. 생가 자리에는 기념관이 있고, 카페는 그 옆에 있는 셈이다. 그 중간에 지금 한옥도 채를 짓고 있다. 녹차 만들기 체험장과 귀한 손님들을 위한 숙박시 설을 만드는 중이다. 이현정 원장은 강진에 자체 다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질 좋은 녹차를 재배하고 생산해서 판매하고 있다.
현재 백운옥판차는 4종류가 있다. 월산 홍차, 월산 떡차, 월산 백차, 월산 청차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발효차다. 녹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월산차, 백운옥판차가 어떤 향을 내는지. 알 듯 말 듯 향긋하고 은은하다. 일반 녹차에서 나는 쌉쓰레한 맛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고소한 맛이 난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봄향기같다. 백운옥판차 이야기는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뿌려놓은 녹차 재배 기술과 제조법, 그리고 녹차 마시는 법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현장이다.
INFO 백운옥판차 이야기
주소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
문의 061-434-4995]
13:40~13:48 걸어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번지에 있는 백운동원림으로 이동 [0.4km]
13:48~14:30 백운동 원림 탐방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보이는 이곳에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 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었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은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으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강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다산이 사랑한 천년 강진茶 ‘이한영차문화원’
전자신문 발행일 : 2023-06-22 07:03
마을로 플러스 프로젝트’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미취업 청년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전남도는 2017년부터 취약한 산업구조와 마을사업장 등 사회적 경제 기업의 기반 구축을 도모하고 청년의 지속적 경제활동으로 지역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추진해왔다. 2018년에는 우수성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지원의 국가사업으로 확대됐다. 전남바이오산업진흥원(원장 윤호열)은 녹색에너지연구원과 함께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2026년 2월까지 고흥·구례·강진·곡성·보성·장흥·해남·화순 등 8개 군 참여기업과 청년의 일자리를 매칭 지원하고 있다. ‘마을로 플러스 프로젝트’ 참여기업의 현황과 주요 제품 개발, 마케팅 성과 등을 소개한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남쪽 기슭에는 호남 3대 정원중 하나인 ‘백운동원림’을 만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시절 차(茶)문화를 즐기고 제다법을 완성한 곳이다.
다산의 제다법은 다신계(茶信稧)를 통해 이어졌다. 다산과 제자들의 신의와 우정의 증표로 결성된 모임인 다신계는 매해 봄마다 차를 만들어 그간 공부한 글과 함께 보낸다는 약속을 맺었다. 다산의 가장 어린 제자였던 이시헌은 그 약속을 죽을 때까지 지켰고 후손들에게도 제다법을 물려줬다. 다산의 제다법은 이시헌의 손자뻘인 이한영에 이르러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를 탄생시켰다.
월남마을에 위치한 이한영차문화원의 이현정 원장은 이한영 선생의 고손녀로 직계후손이다. 그는 광주에서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로 재직하다 할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 교직을 그만두고 목포대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차 공부를 시작했다. 2013년 ‘강진 백운옥판차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한국 전통제다법에 대한 융복합 연구’라는 논문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 대기업이 갖고 있는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월산차’ 상표를 우여곡절 끝에 모두 되찾아 농업회사법인 이한영생가를 설립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며 ‘백운옥판차’ 판매에 들어갔다. 농림부 농촌유휴시설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해 이한영생가를 제다와 다도교육 공간으로 재구성했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관광벤쳐기업에 선정돼 관광객에게 차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전통차에 관한 연구를 통한 이론 정립 및 실험으로 지속적인 다양한 제품 개발 및 상업화에 힘쓰고 있다. 특히 호남 3대 정원으로 이어지는 차를 주제로 한 ‘강진 찻길’ 도보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일반인 대상 전통차에 대한 교육 및 다도 체험프로그램, 교육 프로그램 기반 전통차 소믈리에 과정 등도 선보이고 있다.
이 원장은 “월출산 일대 차 콘텐츠가 세계적인 자원이라는 믿음을 갖고 직접 야생 찻잎을 채취해 차를 만들고 차 상품을 기획하며 유통하고 있다”면서 “백운옥판차가 지켜온 신의(信義)의 정신이 대를 이어 월출산 자락 아래 성성한 차나무들처럼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해남=김한식 기자]
[강진] 월출산을 품은 백운동원림의 사람들
서울풍수 김규순 ・ 2021. 8. 2. 12:28
공간은 시간을 품는다.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에 따라 주인공들이 바뀌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강진 금당리에 살던 이담로가 월출산 옥판봉 아래에 전통 정원을 갖춘 별장을 지었으니, 그의 호를 따서 백운동원림이라 한다. 그로부터 조선 후기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강진 백운동 원림(대한민국 명승115호)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원림이다. 산과 계곡 그리고 울창한 숲 속에 집을 짓고 화단에 꽃을 심고 마당에 계곡수가 흐르게 하여 인공적 공간이 자연과 만드는 조화의 극치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전통 원림이다.
조선후기 남도의 핵심문화공간
월출산 옥판봉에서 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져가다가 지기가 머무는 곳에 백운동원림이 있다. 백운동별서는 계곡과 바위, 숲이 우거진 외원과 사람이 생활하는 담장 안의 내원으로 구성되는데, 자연과 인공이 서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자기안(自己案)을 갖춘 사신사를 구비하여 풍수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이다. 영성이 뛰어난 도인은 풍수를 배우지 않아도 지형을 보면 명당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백운동 별서에서 주인의 풍수경지를 헤아려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별서의 주산이 기암괴석과 암릉으로 이어져 도가의 신선이 선호하는 산이다. 따라서 백운동별서는 공동체 생활이 아닌 신선이 노니는 공간이다. 도가의 입산(入山)은 형식적인 면은 다르지만 불교에서 출가(出家)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선 사대부가 절에서 수행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백운동이란 공간에 도학적 연구와 도가적 수행을 조화시킨 선비가 백운동별서 주인이다.
이곳을 만든 첫 주인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의 본향은 원주이다. 이담로(李聃老)는 노자(老子)의 호가 담(聃)인데 이름에서 도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의 6대조 이영화(1430-1517)는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멸문지화를 피해 배를 타고 처가가 있는 해남의 마포로 숨어들었다. 그의 후손들은 높은 벼슬은 지양하되 학문의 끈은 놓지 않는 초야의 도학자를 지향했다. 강진 입향조는 무장현감을 지낸 이영화의 손자 이남(1505-1555)이다.
이담로의 백운동별서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선경(仙景)으로 유명해져 조선 후기 남도의 핵심적인 문화공간이 되었다. 백운동은 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낸 신명규, 3대 정승집안의 김창집과 김창흡 형제 등 정승 판서를 배출한 한양 권세가 사람들을 맞이했고, 송익휘, 정승 김재찬, 정승 이경억의 손자 이하곤 등도 방문하여 남긴 시가 전한다. 김재찬과 이하곤 외에는 주로 유배객으로 온 방문객이었다. 그들의 안목이 백운동주와 견줄만했다는 뜻이다.
사의재(四宜齋)
강진읍성 바깥에 있는 주막집.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도착하자 주모가 숙식을 제공한 곳으로 다산은 이곳에서 4년을 지내면서, 당호를 사의재라고 불렀다. 사의란 생각과 용모와 말과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하라는 경구이다.
다산초당
정약용은 주막(四宜齋)과 보은산방, 이학래의 집 등에 거처하다가, 외가인 해남윤씨의 도움으로 다산초당을 지어 안착했다. 그는 다산초당에서 18제자를 양성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저술했다.
다신계(茶信契)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와 다산초당에서 제자를 길렀는데, 이 때 제자들과 차의 재배와 생산을 위한 다신계를 만들었다. 다신계를 통하여 사제지간이 더욱 돈독해졌다.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남양주에 기거하면서도 이시헌에게 떡차[茶餠]를 보내달라고 하며 떡차를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적어서 보냈다(1830년). 편지의 내용을 보면 스승과 제자이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 이시헌은 매년 곡우에 차잎을 따서 만든 떡차를 다산에게 보냈다.
이것은 우리 전통차의 복원이었다. 떡차를 만든 사람은 이시헌이지만, 떡차를 만드는 방법은 다산이 자세히 알려주었다. 다산이 사는 남양주는 차나무가 살수 없는 지역이었으니 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의 제다법은 만불사의 만불차, 보림사의 죽전차로 전승되었고, 중국의 보이차와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월남사지와 이한영 생가
월남사지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현재 폐사지이며, 삼층석탑(보물298호)과 진각국사탑(보물313호)이 있다. 이한영 생가의 원래 자리는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주위이다. 이한영을 위시한 3형제가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빙둘러 집을 짓고 살았다. 삼층석탑이 마당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월남사지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므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생가를 이전 복원하였다. 옛날 이한영 생가에는 추사의 글과 초의선사의 그림, 소치의 그림도 벽에 붙어 있었으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달라고 졸라대니 집안에 흔한 것이 글과 그림이라 그것이 보물급인지 알지 못한 조모께서 하나씩 떼어 주었다고 한다.
백운옥판차 - 200년 가업의 상표등록상표
백운옥판차는 1920년에 이한영이 만든 우리차 최초의 등록상표이다. 이한영이 일본의 차문화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잠식하자 우리차의 브랜드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도안하였다. 월출산 옥판봉 아래 백운동에서 자란 차란 의미의 <백운옥판차>상표 옆에 꽃문양을 넣고 화제로 ‘백운일지 강남춘신(白雲一枝江南春信)’이라 적었다. 이한영이 독립자금을 모으던 사천 도솔사 효당스님과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볼 때 ‘춘신(春信)’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의 봄과 상통한다고 추론할 수 있으니 그의 저항정신을 엿보게 한다. 또한 백양사 방장 수산스님께서 이한영과 며느리에게 백운옥판차의 제다법을 배워 선종차로 맥을 잇게 하였으니, 백운옥판차는 유형무형의 문화재인 셈이다.
이한영의 현손 이현정 박사
다부(茶父) 이한영의 현손 이현정 박사가 월출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원주이씨 문중소유의 야생차밭에서 차를 따서 <백운옥판차>와 <월산차>를 만들어 200년 가업을 잇고 있으며, 생가 옆에서 이한영茶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 중 조상의 게시(?)로 월출산 떡차로 박사학위를 따고 가업을 이었다. 백운옥판차 홈페이지 www.1st-tea.kr
이시헌(1803-1860)은 이담로의 6세손으로 9살 때 다산초당에 입문하였으니 다산 정약용의 막내제자였다. 스승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이시헌에게 다성(茶聖)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김유 등 명사들과 이어주었다. 이시헌은 다산이 죽은 후에도 다산가(茶山家)에 매년 떡차를 보냈고 이일은 이시헌의 증손 이한영(1868-1956)때까지 지속되었다. 다산은 백운동의 정경에 매료되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여 백운동을 노래한 시와 엮어 <백운첩>을 만들었다. 백운동원림은 다산의 <백운첩>에 의거하여 복원하였으니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200년동안 지속되었다.
월출산 무위사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이다. 건립시기가 1430년(세종12년)으로 조선시대 불교건축물로 가장 오래되었다.
월출산 정기를 피어나게 한 원효
강진에 천년고찰 무위사와 백련사가 있다. 무위사는 원효가 창건하였다. 신라의 원효가 백제지역에 절을 창건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효와 의상은 인도를 순례한 이름난 고승이었던 현장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에, 원효가 밤에 목이 말라 마신 물리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아침에 알게 되었을 때 ‘일체유심조’의 깨우침을 얻어 당나라 유학을 중단한다. 삼국전쟁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당전쟁이 진행되어 온 백성이 상흔으로 피폐해진 시기에 의상은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였고, 원효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부처님의 손길로 백제와 고구려의 망국민들을 위로하였다. 혹자는 화엄경에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을 10등급로 나누는데. 원효는 8등급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그의 수행경지는 매우 높았다.
여수 향일암의 원효대, 무등산의 원효봉과 원효사, 변산의 원효굴, 대둔산 태조사, 삼각산의 원효봉과 원효사, 소요산 자재암, 남양주 묘적사, 삼성산 삼막사, 예산 가야산의 원효봉과 원효암, 곡성 도림사 등등 신라영역 밖에 산재한 원효사명과 원효지명에서 그의 활동영역은 전국적이다. 원효가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 첨예한 지역인 변산과 예산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강진의 월출산에서도 백제인의 저항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가 창건한 사찰과 그의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백제망국민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덕산 백련사
무염이 창건한 천년고찰. 고려시대 8명의 국사를 배출한 고찰로 유명하다. 강진의 무위사, 백련사, 월남사, 수정사 등과 해남의 대흥사, 미황사 등과 장흥 보림사, 광양 옥룡사 등 천년고찰이 남도 해안지역에 즐비했던 것은 왜구의 침탈이 잦은 고장이라 이를 방어하기 위한 호국불교가 주된 이유이었겠지만, 차 생산지가 가까이 있어 차를 구하기 쉬웠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랑생가
강진은 ‘모란꽃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1903-1950, 김해김씨) 시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강진군청 우측 뒤에 영랑의 생가가 있어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영랑생가는 그 자체로 뛰어난 풍수지형이지만 안산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만약 실개천이 생가를 감싸고 동출서류 하였다면 최고의 명당이었을 것이다.]
14:30~19: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백운동 원림을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귀경 [4시간30분, 346.3km]
강진군 가우도 안내도
강진군 [병영돼지불고기거리] 안내도
강진군 [월출산&설록다원강진&백운동원림] 위치도
강진 백운동원림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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