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伽倻(구가야)는 君主制(군주제)가 아니고, 九干(구간)들의 聯合指導下(연합지도하)에 統治(통치)되었다.
이 九伽倻(구가야)는 各其(각기) 伽倻(가야)의 盟主(맹주)가 되고자 하였고, 九伽倻(구가야)의 主(주)들은 여러 가지로 人間(인간) 現實的(현실적)인 努力(노력)을 하였는데, 黃山伽倻(황산가야)의 九干(구간)들은 天君(천군)을 위시하여 九伽倻(구가야)의 眞正(진정)한 統治主(통치주)가 나오시기를 하늘에 빌었으니, 漢建武八年(한건무팔년) 壬辰(임진) 正月三日 이었다.
丑山(축산)에 壇(단)을 모으고 天君(천군)이 九干(구간)을 代表(대표)하여 祭天(제천) 二十八日間에 得夢(득몽)하니 꿈에 天神(천신)이 나타나서 가로되 “九人(구인)이 다같이 龜山(구산)에 가서 다시 祈禱(기도)하라” 하는지라, 이로 인하여 同年(동년) 二月十五日에 아홉干들이 沐浴齊戒(목욕제계)하고 龜山(구산)에서 祭天(제천)하기를 十日間 하였더니, 忽然(홀연)히 龜山(구산)이 大鳴(대명)하거늘 九干(구간)들이 크게 놀랐다.
이윽고 神語(신어)가 들리는데, 風樂(풍악)을 갖추고 歌舞(가무)하되 “移御龜丘”(이어구구)라고 외치라 하는지라, 다시 그러하기를 七日間하니 同年(동년) 三月三日이라.
靑天(청천)에 紫雲(자운)이 실같이 내려 덮히더니 金色(금색)의 궤가 天上(천상)에서 내리거늘 九干(구간)이 절하고 받아보니 궤 속에 빛나는 알(卵)이 아홉 個가 있는지라 淨潔(정결)히 모셨더니 翌日(익일)에 본즉 九卵(구란)이 化爲九人(화위구인)이라.
그 중 一人(일인)이 가로되 “나는 金天(금천)에서 나왔고 九金之精(구금지정)이라. 天命(천명)이 있어 이 땅에 내렸으니 餘八人(여팔인)은 모두 나의 同氣(동기)라” 하시다.
金天(금천)에서 오시고 金궤에서 나시고 九金之精(구금지정)인 까닭에 스스로 “金”으로서 爲姓(위성)하시니 九君之中(구군지중) 元君(원군) 이시다. 諱(휘)를 首(字) 露(字)로 하시니 大槪(대개) 처음 나오신 분의 뜻이더라.
그 뒤부터는 龜山(구산)은 龜旨峯(구지봉)으로 改稱(개칭) 되었다.
그 후 十年이 지나니 壬寅年(임인년)이라, 三月十五日에 寶齡(보령) 十一歲(십일세)로 九伽倻(구가야)를 統合(통합)하여 登極(등극)하시니 國號(국호)는 “駕洛”(가락)이요, 年號(년호)는 “開皇”(개황)이라. 伽倻(가야)이름은 八伽倻(팔가야)에 있어서는 小國名(소국명)이며 地方名(지방명) 이었으나 黃山伽倻(황산가야)는 本伽倻(본가야)로 改稱(개칭)되고 이 地方(지방)에서의 “伽倻”(가야)는 單純(단순)한 地方名(지방명)으로 되고 말았다. 元君(원군) 以外의 八君(팔군)은 八伽倻(팔가야)에서 干들이 모셔다가 各其(각기) 自國(자국)의 君主(군주)로 삼으니 八君(팔군)은 다 推戴(추대)된 登位(등위)였다.
이로서 弁韓九國(변한구국)은 各各 自治(자치)하되 한 분의 盟主統治(맹주통치) 體制下(체제하)에 있게 되니, 東은 黃山江(황산강)에 닿고, 西는 方丈山(방장산)까지요, 北은 伽倻山(가야산)이 境界(경계)요, 南은 滄海(창해)에 이르니라.
元君(원군)은 龍準龍顔(용준용안)이요 雲眉重瞳(운미중동)인데, 龜背麟紋(구배인문)에 少鬚長臂(소수장비)라. 나는 새도 떨어질 眼光(안광)이나 威(위) 보다는 德(덕)이 더 높아 百姓(백성)이 慈愛(자애)서러운 父母(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開皇元年(개황원년) 十月에 假宮(가궁)을 지으시니 土階三尺(토계삼척)이요, 茅茨不剪(모자부전)이라. 九干(구간)등이 奏曰(주왈) “宮(궁)이 너무 낮고 허술하여 可히 元君(원군) 마마의 居處(거처)하실 곳이 못 됩니다”하니, 가라사대 “朕(짐)이 어찌 百姓(백성)의 괴로움을 즐겨 하리요” 하시다.
開皇(개황) 二年 癸卯(계묘) 春正月(춘정월)에 “朕(짐)이 都邑(도읍)을 定하여 社稷(사직)의 터전을 마련하고 後世(후세)에 지치리라” 하시고 假宮(가궁) 南(남) 新田(신전)에 납시사 四方(사방) 山勢(산세)를 살피시고 “이 땅이 비록 좁다하나 그 勢(세)가 빼어나고 그 形(형)이 奇異(기이)하여 可히 天乙諸衆(천을제중)도 聚團(취단)하여 살 만 하거늘 어찌 聖人(성인)의 起創(기창)에 一德(일덕)이 成三(성삼)하고 自三成七(자삼성칠)하며 萬戶成都(만호성도)가 못되리요. 正히 九聖(구성)이 居(거)할 땅 이로다” 하시다.
同年二月에 城(성)을 둘러싸게 하시니, 周圍(주위)가 一千五百五十四步(일천오백오십사보)라, 城(성) 이름을 “金官城”(금관성)이라 하시다.
이어 官府(관부)와 有司(유사)의 집과 나라의 各種(각종) 庫(고)집을 지을 곳을 定하시고 農期(농기)를 避(피)하여 일하도록 하시니 百姓(백성)의 收穫(수확)에 支障(지장)이 없었다.
同年十月에 諸(제) 役事(역사)를 始作(시작) 하시다.
開皇(개황)三年 甲辰(갑진)二月에 新宮(신궁)과 諸建築(제건축)이 이룩되니, 三月三日에 宮(궁) 이름을 “永明宮”(영명궁)이라 하시다.
三月十五日 永明宮(영명궁)에서 大駕洛(대가락) 九君會議(구군회의)가 열렸다. 八君(팔군)을 賜姓金氏(사성김씨) 하시고 各各 賜名(사명)하시니, 曰 次露(차로)요, 曰 東露(동로)요, 曰 南露(남로)요, 曰 西露(서로)요, 曰 壬露(임로)요, 曰 眞露(진로)요, 曰 春露(춘로)요, 曰 末露(말로)라.
다시 封君(봉군)하시니 次露(차로)를 星珍君(성진군)으로, 東露(동로)를 非火君(비화군)으로, 南露(남로)를 古珍君(고진군)으로, 西露(서로)를 古寧君(고녕군)으로, 壬露(임로)를 碧珍君(벽진군)으로, 眞露(진로)를 阿羅君(아라군)으로, 春露(춘로)를 加珍君(가진군)으로, 末露(말로)를 彌珍君(미진군)으로 各各 封(봉) 하시니, 從此(종차)로 八國(팔국)의 이름이 저절로 바뀌어져서 星珍伽倻,(성진가야) 非火伽倻,(비화가야) 古珍伽倻,(고진가야) 古寧伽倻,(고녕가야) 碧珍伽倻,(벽진가야) 阿羅伽倻,(아라가야) 加珍伽倻,(가진가야) 彌珍伽倻(미진가야)로 되니라.
元君(원군)과 八君(팔군) 사이에는 義(의)를 君臣(군신)으로 定하고 誼(의)는 兄弟(형제)로 定해지다.
八君(팔군)은 八伽倻(팔가야)를 自治(자치)하고 駕洛(가락)以外의 地域(지역)이나 國家(국가)와의 關係(관계)는 元君(원군) 마마의 命(명)을 받도록 定해졌다.
本(본) 伽倻地方(가야지방)은 大駕洛(대가락) 元君(원군) 直轄統治區域(직할통치구역)이 되니 伽倻(가야) 國名(국명)이 없어지다. 이래서 開皇(개황)三年봄 以後(이후)는 大駕洛國(대가락국) 內에 直轄國(직할국) 하나 外 八伽倻國(팔가야국)이 있게되니라.
駕洛(가락)以前(이전) 制度(제도)인 九干(구간)의 任事(임사)를 改定(개정)하시니
一 司天干(사천간)
二 司地干(사지간)
三 司宰干(사재간)
四 司典干(사전간)
五 司農干(사농간)
六 司工干(사공간)
七 司庫干(사고간)
八 司軍干(사군간)
九 司正干(사정간) 이라.
前九干(전구간)은 百僚之長(백료지장)일뿐 首干(수간) 以外에는 各其 分擔(분담)된 責任(책임)의 限界(한계)가 뚜렷하지 못하였다.
이에 司天干(사천간)은 天機(천기)를 管掌(관장)하는 任事(임사)요, 司地干(사지간)은 地理(지리)를 管掌(관장)하며, 司宰干(사재간)은 百官人事(백관인사)의 總攬責任(총람책임)이며, 司農(사농)은 農業(농업)을, 司典(사전)은 典法(전법)을, 司工(사공)은 工商(공상)을, 司庫(사고)는 國財(국재)를, 司軍(사군)은 兵務(병무)를, 司正(사정)은 그릇됨이 없도록 하는 任事(임사)의 各各 長(장)이 되니라.
初任者(초임자)는
司天干(사천간) 我刀(아도)
司地干(사지간) 汝刀(여도)
司宰干(사재간) 彼刀(피도)
司典干(사전간) 五刀(오도)
司農干(사농간) 留水(유수)
司工干(사공간) 留天(유천)
司庫干(사고간) 神天(신천)
司軍干(사군간) 五天(오천)
司正干(사정간) 神鬼(신귀)
가 各各 任命(임명)되니 九部(구부) 司干制(사간제)는 그 뒤 八君(팔군)이 各各 歸國(귀국)하여 그 나라에도 그대로 施行(시행)하니라.
가락국기와 비교하면 탄강년도가 임진년(서기 32년)으로 임인년(서기 42년)보다 10년 빠르고, 6형제가 아닌 9형제로 9가야를 건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