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일의제에 들어감(入第一義諦)]
【왕생론주】
入第一義諦者:
【번역】
제일의제에 들어감이란, 다음과 같다. (일체 장엄을 모두 제일의제 속으로 거두어들임)
【왕생론】
彼無量壽佛國土莊嚴,第一義諦妙境界相,十六句及一句次第說,應知。
【번역】
저 무량수불 국토의 장엄은 모두 제일의제의 미묘한 경계 모습(第一義諦妙境界相)으로, 16구절 및 한 구절을 순서대로 설하오니, 마땅히 알라. (17가지 국토의 장엄 중, 첫 번째 구절은 총상總相[총체적인 모습]이고, 그 뒤의 열여섯 구절은 별상別相[개별적인 모습]이며, 총상에 의거하여 별상을 순서대로 전개함)
【왕생론주】
「第一義諦」者,佛因緣法也。此「諦」是「境」義,是故莊嚴等十六句,稱為「妙境界相」。此義至「入一法句」文,當更解釋。
「及一句次第」者,謂觀器淨等總別十七句觀行次第也。云何起次?建章言「歸命無礙光如來,願生安樂國」。
此中有疑。疑言:「生為有本,衆累之元。棄生願生,生何可盡?」為釋此疑,是故觀彼淨土莊嚴功德成就,明彼淨土是阿彌陀如來清淨本願無生之生,非如三有虛妄生也。何以言之?夫法性清淨,畢竟無生。言「生」者,是得生者之情耳。生苟無生,生何所盡?盡夫生者,上失無為能為之身,下湎三空不空之痼。根敗永亡,號振三千。無反無復,於斯招恥。體夫生理,謂之淨土。淨土之宅,所謂十七句是也。
【번역】
“제일의제(第一義諦)”란, 부처님 지위의 인연법을 말한다. 여기서 “제(諦)”는 “경(境)”이라는 뜻이므로, “장엄” 등 16구절을 “미묘한 경계 모습(妙境界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7가지 장엄을 설한 구절 중, 첫 번째 구절을 제외한 16구절에서 말한 극락국토의 장엄이 모두 제일의제의 미묘한 경계 모습이라는) 이 뜻은 “하나의 법구로 거두어들임(入一法句)”을 언급한 문구에 이르러 마땅히 다시 해석하겠다.
“및 한 구절을 순서대로(及一句次第)”란, 기세간의 청정을 관찰하는 하나의 총상과 16가지 별상 등 총 17구절의 관행(觀行) 순서를 말한다. (관찰할 때) 순서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문장의 시작 부분에서 전체 글의 종지가 “무애광여래께 귀명하오며, 안락국에 왕생하길 발원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에 의심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생(남)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고, 모든 우환의 근원이다(생이 있으면 삼계의 인과가 있고, 생, 노, 사 등의 고난과 우환이 있게 된다). (삼계의) 생을 포기하고 (극락의) 생을 추구한다면, 이 생이 언제 다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하여 저 극락정토의 장엄공덕성취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저 극락정토의 생은 아미타여래의 청정한 본원을 증상연으로 하는 (무생법성에 계합하는) 무생의 생으로, 삼유(삼계)의 허망한 생과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법성이 청정하여 필경 무생(왕생한 이와 최상의 선인들이 함께 청정한 법성을 증득하여 필경 남의 모습[生相]을 얻을 수 없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왕생의) “생”이란, 왕생을 구하는 자의 허망한 분별일 뿐이다(본래 생이 없음에도 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왕생의 당체當體가 무생이다. 제불은 중생의 분별심에 수순하여 “왕생”을 말한 것이다). 왕생이 만일 본래 무생이라면, 어찌하여 왕생을 다 없앤 후에 무생을 얻을 필요가 있겠는가? 정말로 생을 다 없애버린다면, 위로는 무위능위(無爲能爲)의 몸을 잃게 되고, 아래로는 삼공불공(三空不空)의 고질병에 심취하게 된다. (종성이 결정된 성문들은) 성불의 선근이 손상되고 법신혜명을 영원히 잃어버렸기에 당연히 삼천대천세계가 진동하도록 통곡해야 하고, 진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본래 갖춰져 있는 불성을 회복하지 못하여 치욕을 초래하게 된다. 몸소 이 생의 미묘한 이치를 깨닫는 것을 정토라고 부른다. 정토의 집이란, 이른바 17구절이 그것이다.
*생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고, 모든 우환의 근원: 생은 삼계 내 생사과보의 근본이고, 각종 우환의 근원이다. 유(존재)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마련이므로, “유”라고 부른다. 이 유에는 삼유(三有)와 25유가 있는데, 삼유란 삼계 내 생사의 과보가 있다는 것이고, 25유란 유를 세분화하면 욕계의 14유, 색계의 7유, 무색계의 4유가 있다.
*무생의 생: 극락정토는 무생의 일진법계로서, 왕생이라고 말하나 실은 무생을 얻게 되는 무생의 생이다. 그럼에도 “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범부중생에게 왕생이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께서 이에 수순하여 무생의 경계 속에서 방편으로 왕생을 말한 것이다. 《관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모든 죄업이 소멸되었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미 윤회 환생하도록 끌어당길 죄업이 없기 때문에 왕생은 삼계육도의 허망한 생이 아니다.
*무위능위의 몸: 부처님의 몸은 진리에 상주하여 일으킴도 없고 지음도 없으나(無起無作), 중생과 감통(感通)을 이루어 각종 몸을 나투어 일체 인연 있는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
*삼공불공의 고질병에 심취하다: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아닌 완공(頑空)의 고질병에 심취한다는 것이다. 삼공(三空)이란,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 등 세 가지 해탈을 말한다. 삼공불공이란, 소승의 삼공은 진공(眞空)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승의 삼공은 중도실상인 제일의공을 관하지 않아 공과 유가 둘이 아니며, 세간이 곧 열반임을 모르고 회신멸지(灰身滅智)하여 공에 집착하므로, 이 공 역시 공함을 모른다.
*성불의 선근이 손상되고 법신혜명을 영원히 잃어버렸기에 당연히 삼천대천세계가 진동하도록 통곡해야 한다: 《유마힐경·부사의품》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영원히 (성불의) 선근이 끊어지고 이 대승에 있어 이미 썩은 종자와 같나이까? 모든 성문은 이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을 듣고 모두 삼천대천세계에 진동하도록 통곡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왕생론주】
十七句中,總別為二:
初句是總相,所謂是清淨佛土,過三界道;
彼過三界,有何相?下十六種莊嚴功德成就相是也。
一者量,「究竟如虛空,廣大無邊際」故。
既知量,此量以何為本?是故觀性。「性」是「本」義。彼淨土,從正道大慈悲出世善根生。
既言出世善根,此善根生何等相?是故次觀莊嚴形相。
既知形相,宜知形相何等體,是故次觀種種事。
既知種種事,宜知種種事妙色,是故次觀妙色。
既知妙色,此色有何觸?是故次觀觸。
既知身觸,應知眼觸,是故次觀水、地、虛空莊嚴三事。
既知眼觸,應知鼻觸,是故次觀衣華香熏。
既知眼、鼻等觸,須知離染,是故次觀佛慧明照。
既知慧光淨力,宜知聲名遠近,是故次觀梵聲遠聞。
既知聲名,宜知誰為增上,是故次觀主。
既知有主,誰為主眷屬?是故次觀眷屬。
既知眷屬,宜知此眷屬若為受用,是故次觀受用。
既知受用,宜知此受用有難無難,是故次觀無諸難。
既知無諸難,以何義故無諸難?是故次觀大義門。
既知大義門,宜知大義門滿不滿,是故次觀所求滿足。
復次此十七句,非但釋疑;觀此十七種莊嚴成就,能生真實淨信,必定得生彼安樂佛土。
【번역】
17구절 중에 총상과 별상 두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구절은 국토의 총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른바 “청정한 불국토는 삼계의 도를 뛰어넘었네.”이다.
극락국토가 삼계를 뛰어넘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구체적인 모습이 있는가? 아래의 16가지 장엄공덕성취의 모습이 그것이다.
첫 번째는 양공덕(量功德)으로, “궁극적으로 허공과 같고, 한없이 광대하기 그지없네.”인 까닭이다.
이미 양공덕을 알았으면, 이 양공덕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극락정토의 성공덕(性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성”은 “본(근본, 본원)”이라는 뜻이다.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의) 정도의 대자비인 출세간의 선근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미 극락정토가 아미타불의 출세간 선근에서 생겨났다고 말한 이상, 이 선근에서 생겨난 국토는 어떠한 모습인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형상공덕(形相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형상공덕을 알았으면, 마땅히 이 형상은 무엇을 본체로 하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종종사공덕(種種事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종종사공덕을 알았으면, 마땅히 종종사의 묘색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묘색공덕(妙色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묘색공덕을 알았으면, 이 묘색의 촉이 어떠한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촉공덕(觸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몸의 촉을 알았으면, 눈의 촉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물, 대지, 허공 장엄의 삼종사공덕(三種事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눈의 촉을 알았으면, 마땅히 코의 촉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허공에서 옷과 꽃을 내리고 한량없는 향기가 국토에 널리 풍김(衣華香熏)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눈과 코 등의 촉을 알았으면, 모든 염착(染着)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광명공덕(光明功德)인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춤(佛慧明照)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지혜광명의 청정한 공덕력을 알았으면, 마땅히 극락정토의 명성이 얼마나 멀리까지 알려졌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묘성공덕(妙聲功德)인 청정한 명성이 멀리 퍼짐(梵聲遠聞)을 관찰해야 한다.
이미 극락정토의 명성이 멀리 퍼졌음을 알았으면, 마땅히 누구를 증상연으로 하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주공덕(主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극락정토의 교주를 알았으면, 누가 이 교주의 권속인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권속공덕(眷屬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권속공덕을 알았으면, 마땅히 이 권속들의 수용이 어떠한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수용공덕(受用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수용공덕을 알았으면, 이런 수용에 어려움이 있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무제난공덕(無諸難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무제난공덕을 알았으면, 무슨 이유로 어려움이 없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대의문공덕(大義門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 대의문공덕을 알았으면, 마땅히 대의문이 원만해졌는지도 알아야 하므로, 이어서 극락정토의 일체소구만족공덕(一切所求功德)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다음, 이 17구절은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17가지 장엄성취를 관찰함으로써 진실하고 청정한 신심을 일으켜 반드시 안락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
【왕생론주】
問曰:上言知生無生,當是上品生者。若下下品人,乘十念往生,豈非取實生耶?但取實生,即墮二執:一恐不得往生,二恐更生生惑。
【번역】
묻기를: 위에서 말한 생이 곧 무생임을 아는 사람은 상품으로 왕생한 사람일 것이다. 만일 하품하생의 사람이 (임종 시 묘법을 듣고) 겨우 십념염불로 왕생하였다면, 어찌 실유(實有)의 생을 취한 게 아니겠는가? 실유의 생을 취하기만 하면 바로 두 가지 집착에 떨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왕생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예컨대 ‘내가 이미 지옥에 떨어질 중죄를 지었는데, 겨우 염불에 의지하여 십만억 불국토밖의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는가?’라며 의심하는 것이다)이고, 또 하나는 다시 생에 대한 미혹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예컨대 ‘왕생에 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지 않겠는가? 왕생을 해도 계속 윤회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걱정하는 것이다)이다.
【왕생론주】
答:譬如淨摩尼珠,置之濁水,水即清淨。若人雖有無量生死之罪濁,聞彼阿彌陀如來至極無生清淨寶珠名號,投之濁心,念念之中,罪滅心淨,即得往生。
又,是摩尼珠,以玄黃幣裹,投之於水,水即玄黃,一如物色。彼清淨佛土,有阿彌陀如來無上寶珠,以無量莊嚴功德成就帛裹,投之於所往生者心水,豈不能轉生見為無生智乎!
又如冰上燃火,火猛則冰解,冰解則火滅。彼下品人,雖不知法性無生,但以稱佛名力,作往生意,願生彼土。彼土是無生界,見生之火,自然而滅。
【번역】
답하기를: 마치 청정한 마니주를 흐린 물에 넣으면 물이 곧 청정해지듯이, 범부중생에게 비록 한량없는 생사의 탁한 죄업(罪濁)이 있으나, 저 아미타여래의 지극한 무생청정보주명호를 듣고 이 명호를 탁한 마음에 던지면 염념마다 죄업이 소멸되고 마음이 청정해져서 즉시 왕생하게 된다.
또한, 이 마니주를 채색 견직물로 싸서 물에 던지면 물이 곧 견직물의 색깔과 똑같아진다. 저 청정한 불국토에는 아미타여래라는 이 위없는 마니보주가 있는데, 이 보주를 한량없는 장엄공덕으로 성취된 견직물로 싸서 왕생한 사람의 심수(心水)에다 던지면, 어찌 실제로 생이 있다는 허망한 견해를 무생의 지혜로 바꿀 수 없겠는가?
또한,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불이 세면 얼음이 녹고, 얼음이 녹으면 불은 꺼진다. 저 하품으로 왕생한 사람이 비록 법성이 곧 무생임을 모르지만,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힘으로 왕생할 생각을 가지고 저 안락국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면(실제로 “생”이 있다고 집착하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극락왕생을 구하는 것은, 마치 법성이 본래 무생인 “생”의 얼음 위에 불을 지피는 것과 같다), 저 극락국토가 무생의 세계이므로, 실제로 생이 있다고 보는 집착의 불길이 (무생이라는 지혜의 물에 의해) 자연히 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