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을 허물어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에피소드입니다. 이 사건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모두 등장합니다. 다만,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도됨에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당신의 공생활 초기에 이루어집니다.
갈릴래아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징이 일어난 직후에 이어지는
에피소드로 소개되고 있지요. 역사적으로 맞을지 간단히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성전 정화 사건은 그 안에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즈카르야서 “그날(곧 주님의 날)에는 만군의 주님의 집 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주님의 날’이 도래했음을
암시하고, 자신이 ‘주님의 날’에 ‘아버지의 집’에 온 아들이심을 암시하십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던
이야기 직후에 이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물이 포도주로 대체되었듯이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전을 당신 몸으로 대체하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곧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새 계약의 ‘성전’으로 제시합니다. 사실 유배에서 귀환한 후 즈루빠벨은 한 번
무너졌던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이 성전을 헤로데 대왕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증개축을 했는데, 입구와 성소 그리고 지성소로 구성된 그 성전에는 당시
신분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합니다.
이방인의 뜰, (이스라엘) 여인의 뜰, 이스라엘(남성들)의 뜰, 그리고 사제들의 뜰.
고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로부터 ‘하느님 현존의 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사회적 계급과 권력의 자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여기에서 ‘다시 세우다’라는 동사는 뒤에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 제자들이 믿게 되었다.” 할 때 ‘되살아나다’라는 동사와 같은 동사입니다.
‘사흘’이라는 시간 단위와 함께 예수님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한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넘어 ‘예수님의 몸’으로, ‘옛 계약’(구약)을 넘어 ‘새 계약’으로,
‘이스라엘의 영광’을 넘어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곧 ‘하느님의 새 백성’
으로 태어나게 하는 전환점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우리 안에 고착화 되어 있는 모든 편견과 계급적 사고, 그리고 세속적 가치 기준과
모든 종류의 차별을 타파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참사랑 안에
새롭게 우리 자신을 건설하라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글 :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저는 찬양 사도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10년은 제게 참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을 많이 허락해 주신
해였던 것 같습니다. 늦은 나이에 전역해서 ‘어떻게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으로 가득 차 두렵기만 하던 때, 육군 훈련소에
근무하시던 신부님께서 저를 매주 있던 세례식과 주일 미사의 찬양 봉사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찬양 사도로서 저를 있게 한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 내가 가면 좋아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찬양했습니다. 1,000여 명이 넘는
훈련병들 앞에서 남자인 제가 혼자 성가 연습을 시키고 묵상 곡을 나눈다는 것.
지금 생각해 봐도 떨리는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훈련병들의
큰 성가 소리와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 떨림은
조금씩 큰 기쁨과 기다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또한 묵상곡 노랫말을 조그마한 수첩에 적어 와서 그 뜻을 물어보는 훈련병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다른 부대 성당으로 찬양을 갔을 때
“훈련병 때 형의 성가를 듣고 힘을 받고 용기를 내었어요.”라고 이야기해 주는
소중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부님께서 “성가를 알고 불러야 해.”라고 말씀하시며 신학 공부를
제안하셔서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게다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공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읽은 책과 강의의
내용들이 조금씩 귀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요한 지혜를 배우는 기쁨과
나 자신이 많은 은총을 받고 있다는 깨달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단지 멋있는 노래를 부르면서 나 자신이 돋보이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내려놓고 ‘노래’가 아닌 ‘찬양’으로 노랫말을 한 번 더
묵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눌 수 있게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각에 미사 성가 봉사를 마치고 정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 뒤에서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체험들을 마음에 꼭 담아 두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찬양 사도로서 길을 걷고 있습니다. 흔히 찬양 사도의 삶은 ‘배고픈’
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왜?’라는 의문을 ‘아!’라는 감탄사로 바꾸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저에게
허락해 주신 소중한 찬양으로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 : 최준익 막시모 – 가톨릭 찬양 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