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하나
김춘수
어제는 슬픔이 하나
한려수도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남태평양 쪽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또 슬픔이 하나
내 살 속을 파고든다.
내 살 속은 너무 어두워
내 눈은 슬픔을 보지 못한다.
내일은 부용꽃 피는
우리 어느 둑길에서 만나리
슬픔이여,
김춘수 시인의 [슬픔이 하나]는 모든 슬픔의 총체이며, 이 세상에는 수많은 슬픔이 있다는 것을 그의 일상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어제는 슬픔이 하나/ 한려수도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남태평양 쪽으로 가버렸”고, “오늘은 또 슬픔이 하나/ 내 살 속을 파고든다.” “내 살 속은 너무 어두워/ 내 눈은 슬픔을 보지 못”하지만, “내일은 부용꽃 피는/ 우리 어느 둑길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이 상승곡선을 그리면 기쁨과 즐거움이 따르지만, 이 세상의 삶이 하강곡선을 그리면 고통과 슬픔이 따른다. 기쁨과 즐거움의 양은 극히 작고, 고통과 슬픔의 양은 너무나도 크고 웅대하다. 고통과 슬픔은 피라미드의 하단부와도 같고, 기쁨과 즐거움은 피라미드의 꼭지점과도 같다.
[슬픔이 하나]. 이 하나의 슬픔에서 수많은 슬픔들이 생겨나고, 우리들의 삶이란이 슬픔을 딛고 이 슬픔과 싸우며, 피라미드의 꼭지점을 향해 가는 노역에 지나지 않는다.
슬픔은 한려수도의 물 속에도 있고, 나의 삶 속에도 있고, 부용꽃 피는 둑길에도 있다.
슬픔은 도처에 있고, 이 슬픔과 싸우며 사는 것이 삶의 기쁨을 꽃 피우는 것이다.
오늘날의 유태인들은 그 옛날 이민족의 노예로 살았지만, 그러나 그 슬픔을 딛고 오늘날 세계 일등민족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