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그 왕가
루돌프(1273 – 1281)가 합수부르그 가에서는 최초로 왕이 되었다.
왕권 강화를 위해서 주변국을 병합하여(룩셈부르그, 보헤미아. 뫼렌, 술래지언 등) 독일 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 루돌프는 보헤미아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보헤미아와의 통합 왕이 됨으로 왕가의 기틀을 닦았다. 이로서
합스부르그 왕가의 시작이라고 한다..
**카를 4세(1347-1378)
룩셈브르그를 점령하여, 통치 영역을 보헤미아, 뫼렌, 슐레지언으로 확대하여 잘스브르그, 그리고 북쪽의 마르크부란덴부르그까지 확대하였다.
독일의 최강의 왕이 되었다.
특히 프라하에 대학을 설립하여 문화적으로도 이바지했다.
*** 1500년 대
독일에서도 인구가 많이 불어나서,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합스부르가 왕가가 독일 연방에서 주도권을 잡았으라, 프로이센이
빠르게 성장하여 도전 세력이 되었다.
독일의 중앙부에 위치한 프로이센은 주변으로부터 영토를 지켜야
했으므로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국가를 철저히 조직화했다.
이러한 조직망이 강국으로 만들어서 독일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때 독일은 전역에 약 3000개의 도시가 있으나 대부분이 인구 1000명 미만이었다
약 150개는 1-2천 명 정도였다. 이들의 지도자인 기사계급(제후=성직자, 백작, 제후, 도시의 지도자 등)은 제국의회에 세금을 내고 참여했으나 황제 이외의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았다.
제국의회에 세금을 많이 내는 국가의 영향력이 더 크다.
선제후의 기득권이 막강했다. 그러나 일반 평민들을 보호하지는 않았다.
평민은 지역 영주의 보호를 받았다.
****합스부르그 왕가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세력의 확장
막시밀리안 1세(1493년 황제로 취임)가 스페인 왕가와 혼맥을 맺으므로 독일의 지도 국가가 된다.
그러나 독일 연방의 제후들은 막시밀리안 1세에 반발했다.
1495년에 보름스에서 제국회의를 열고, 연방주의에 입각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제국회의를 개혁하여, 독일 연방과 황제(신성로마 제국)의 충돌을
예방했다
--> 이로서 독일은 중앙집권적인 권위국가가 아닌 연방을 토대로
하여 근대를 맞이한다.
*****중세의 삶
1) 가족
혈연으로 구성되고 기본 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한 집에서 생활하는
공동체였다.
대가족은 할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살았다.
결혼을 하려면 가족을 꾸릴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영주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평민의 영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영주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2) 신분
귀족이 중심인 강력한 신분사회이다.
중앙 귀족과 지방 귀족 사이에도 서열이 있었다.
공작 -- 중앙 정부의 왕 밑에서 군사력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였다.
지방 귀족 — 왕의 권위가 미치지 못한 지방에서 통치자 역할을 했다.
백작 --- 왕의 직속 영지에서 통치했다.
그 밑에 아무런 끗발이 없는 평민이 있다.
농민 — 목축보다는 점차 농업에 종사하는 쪽으로 영주에 예속되어서, 주로 소작농으로 영주에게
목줄이 묶여 있었다.
3) 도시 발달
중세의 특징적 변화이다. 상공업자들이 몰려서 살았다.
4) 인구
상황에 따라 줄었다. 늘었다. 했다. 페스트 때는 왕창 줄었고,
그 이후 꾸준히 늘어서 근세에 접어들면서 인구가 아주 많아졌다.
(역사 공부에서 인구가 늘었다는 말이 나오면, 식량 생산이 증가하고 -- 살기가 좋아졌다는 말이다.)
5) 농민 폭동
1300년 대에 접어들면, 영국, 프랑스도 마찬가지이지만 농민 폭동이 많아진다. (폭동도, 억압이 심해서 반발이라는 뜻도 있지만 농민의 힘도 커졌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