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5]祖孫교육의 현장 "제발 漢字 320자라도"
일찍이 『만다라曼多羅』라는 소설을 발표, 영화화도 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킨 還俗스님이 있었다. 한문과 우리말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1947년생, 장편소설 『국수』를 쓰던 중견작가는 2022년 아쉽게 세상을 떴다. 그가 2005년에 펴낸 『김성동서당 1, 2』(청년사 2005년 펴냄, 각 180여쪽)를 여지껏 갖고 있었던 까닭은, 은퇴 후 기회가 되어 아이들에게 ‘基礎漢字를 가르친다면 이 책만큼 좋은 敎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絶版됐을 터, 운이 좋다면 알라딘중고서점에서나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이 특이한 것은, 기존의 <한석봉 천자문>類가 아니고, 事物의 槪念을 제대로 알려주는 “320자”만을 쉽게 풀이해 놓았다. 그 320자를 순조때 당상관 무신을 지낸 그의 6대조 할아버)가 직접 楷書(해서)로 써 묶은 책자가 家寶로 물려 내려왔다는 것이고, 그는 네댓 살 때 그 책자로 320자를 배웠다고 한다. 5대조, 고조, 증조, 조부, 부친도 그 책자로 한자를 익혔을 터. ‘어섯눈을 뜨다’는 말을 아시는가? 사물의 대강을 이해하여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작가가 풀어내는 320자만 알아도,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사물의 이름과 여러 현상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자식이라면 얼마를 살든지간에 최소한 어섯눈은 뜨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청맹과니는 안될 말. 따라서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책인 셈이나, 성인용이 아니라고 무시해서는 안된다(성인도 모르는 게 투성이인 것을). 되레 어른들이 어섯눈을 뜨는 데는 이런 책이 훨씬 더 나을 수 있을 듯.
초등학교 겨울방학이 꼬박 두 달이 되는 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졸지에 낮시간 아홉 살 손자를 보살피라는 責務가 아내로부터 떨어져 두 달간 용인 고기리 집에서 지내게 됐다. 農閑期인 데다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하는 性情에 내 손자임에야 무슨 문제랴. 아들집은 판교, 마을버스로 15-20분 거리(출퇴근). 오후에는 몇몇 학원을 가니 상관없는데, 오전 서너 시간을 게임만 뻗치는 손자와 함께 있는 게 곤혹스럽다는 걸 해본 친구들은 알 것이다. 아무튼, 기초한자와 바둑을 가르치려고 마음 먹었는데, 시골집에 묵혀 있던 『김성동서당 1, 2』가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의 도리는 무엇인가’ 등 人性을 기르게 하는데 “딱”이다. 저자의 할아버지도 후손들이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한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320자를 골랐으리라. 5대이면 최소 150년,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졌을 책자, 할아버지들의 숨결이 바로 들리거나 사랑스런 손길을 느꼈을 터, 하여 작가는 6대조가 쓴 그 글씨 그대로 스캔하여 책에 실었다<사진>.
아이가 부쩍 흥미를 느끼자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까지 100여자를 가르쳤는데, 퇴근하는 제 엄마 아빠에게 ‘사랑 애愛’자를 써 아느냐고 물어 보람도 컸다. 쓰는 획순을 제대로 알려주며 쓰게 하니 곧잘 따라하는데, 물론 그 다음날이면 또 까먹지만, 반복학습(복습)을 하니 효과가 확실히 있다. 초교 2학년인데도 해외에서 10개월여 국제학교에 다닌 보람으로 영어 어휘력이 상당하여 한자마다 영어로 말해주니 효과 두 배. 기초한자를 알면 修學力과 文解力이 향상될 것은 불문가지. 이 어린 나이(옛날에는 서너 살때부터 익혔다)에 320자만 머리에 박아놓으면 죽을 때까지 잊어먹지 않을텐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할 때에는 할아버지를 ‘선생님’이라 부르라해도 아무 소용이 없이 애교를 떠는데 어쩌겠는가. 아무리 實力이 좋아도 품안의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 그래도 한자에 대한 거부감은 갖지 않게 했으니 수확은 수확이다. <立春>은 예전엔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니 'New Year'이고 '大吉'은 크게 좋은 일 많이 생기라는 뜻이니 'Happy', <입춘대길>이 바로 '해피 뉴 이어'라고 알려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建陽多慶>은 '따뜻한 봄날 축하할 일이 많이 있으라'는 뜻이니 '복 많이 듬북 받으라'는 德談이라고 알려줬다. 이제 立春과 雨水도 알았으니, 철이 들었는가. 예전엔 節期를 알아야 철이 들었다고 했으나, 요즘 나조차 절기를 알지 못하니, 맨 철없는 놈들이 날뛰는 세상이 됐다. 4월에 시골을 가면 고향집 편액 <愛日堂>과 <久敬齋>을 읽어보게 해야겠다.
내일이면 칠십인 어른으로서, 창피하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안 사실 하나만 적시한다. 지금 사람들은 사람 수를 셀 때 “한 명, 두 명……” 또는 그냥 “하나, 둘, 셋……”이라고 하지만,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한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 사람들은 “한이, 둘이, 서이, 너이, 다섯이, 여섯이, 일곱이, 여덜이, 아홉이, 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도 옛날 어른들이 이렇게 세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에서 ‘이’는 ‘그이’ ‘저이’ ‘이이’처럼 ‘사람’을 나타내는 높임말이다. 人本사상(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의 시작이자 끝이 아니겠는가. 아아-, 나를 통하여 열 살에 이 320자만 확실히 알았으면 좋으련만.
작가는 머리말에서, 50여년 전 長竹으로 놋재떨이를 두드리며 320자를 가르쳐주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상기도(아직도) 귀청을 두들긴다며 “배우고 익히면 군자가 되구, 배우지 않은즉 소인이 되는 법. 아무리 아름다운 옥이래도 다듬지 않구서는 그릇을 맹글 수 읎듯이, 사람으루서 배우지 않는다면 義를 알지 뭇허너니…… 배운 사람은 논에 베(벼)와 같구 배우지 않은 사람은 피와 같은 법이니……”라고 끝을 맺는다. 아무리 인공지능시대라고 해도 아무렴 '베(벼)와 피'를 구별하지 못하면 쓰겠는가? 피와 벼를 구별하지 못하는 그런 '못냉이 인간'은 어느 시대나 언제나 있다. 연민이 앞선다. 쯧쯧쯧. 언젠가 그 320자를 한지에 졸필이지만 몽땅 써 벽에 붙여놓았더니 제법 그럴 듯하다(사진).
권말부록인 <우리말 사전>도 인상적이다.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너무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온다. 이미 없어졌거나 쓰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엔 100은 백이 아니고 온, 1000은 즈믄, 10000은 골, 억은 잘, 조는 울이라 했으나, 천을 뜻하는 ‘즈믄’만 서정주 시 <즈믄 밤 꿈으로 맑게 씻어서>로 남았다며 한숨을 짓는다. 우리말사전에 실린 몇 가지만 예로 들자. 가멸지다: 살림살이가 넉넉하다 갑션무지개: 쌍무지개 고갱이: 핵심 고빗사위: 가장 종요로운 고비에서 아슬아슬한 순간 능갈맞다: 얄밉도록 몹시 능청맞다 띠앗머리: 동기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것 뱀뱀이책: 교양서, 벼리: 일이나 글에서 뼈대가 되는 줄거리 부림짐승: 가축 손곧춤: 합장 숨탄 것: 하늘과 땅한테서 숨이 불어넣어진 모든 동물 쓰개질: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못된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짓 알음알이: 지식 애젖하다: 가슴이 미어지게 안타깝다 물몬: 사물事物 얄보드레하다: 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얇고 보드랍다 야로: 남한테 숨기고 우물쭈물하는 속셈이나 수작 웅숭깊다: 도량(마음, 그릇, 틀, 생각)이 넓고 크다 일떠서다: 기운차게 일어서다 저저금: 저마다, 제가끔, 따로따로 종요로운: 중요한 짯짯이: 빈틈없이 꼼꼼하게 채신없이: 말과 몸가짐이 가벼워 남을 대할 때 낯이 없이 톺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풀잎사람: 여느 사람, 서민, 백성, 민초 한허리: 중심 헤살질: 남의 일을 짓궂게 훼방하는 짓 활찌다: 드넓게 펼치어져 있다 한갓지다: 아늑하고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