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내가 훌천에 기교대 후기를 쓸줄 생각도 못했지만
영창글 댓글에 기율교육대 후기를 원하길래 한번 써보기로 한다.
(육군에도 기율교육대가 있나? 내가 쓰려는건 의경 기율교육대)
나는 09군번 932(973)기로 일이경땐 맞고, 겁나 고생했지만 조현오 전 청장의 개혁으로 인해 피 본 기수다
솔직히 뭐 다들 피봤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 기수 근처들이 피 본 기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육군 훈련소 수료후 경찰학교 에서 꿀을 빨다가
12월 20일 쯤 해서 자대로 배치 되었다. 신병보호기간이라고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기간에
(물론 우리중대 소대별로 총 백명이 가까이 선임들 기수 이름, 미란다원칙, 관내, 음어는 존나 외웠음)
크리스마스 기념 중대 체육대회가 열렸다.
눈이 와서 녹았다 얼어서 땅은 얼었고, 눈 또한 세차게 왔던걸로 기억된다.
뭐라도 선임들에게 이쁨 받을라고 축구를 존나게 열심히 했는데,
다른소대 동기와 공중볼 경합을 하다가 밀려서 땅에 곤두박혔다. 어깨로 (동기는 90키로가 넘는 거구였다)
넘어지면서 뚝 소리가 났고 너무 아파서 일어날수가 없는 정도였다.
체육대회가 다 끝나고 중대로 복귀한뒤 점호 까지 다하고 소대 부관과 같이 경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시밤 소대원이 아파서 일어나질 못하고 눈물까지 흘리는데 바로 병원가는게 맞는거 아니냐?
쇄골이 부러지고 어긋난 채로 하루 반나절을 눈물로 보낸거 같다)
응급실 가서 쇄골이 부러졌다는 소리를 듣고 뼈를 다시 맞추고 중대로 복귀했다.
와마 소대에 누워있는데, 내 맘대로 할수 있는게 없을정도로 너무 아팠다.
선임들은 일하고 있는데 난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존나 눈치보였다.
내 생에 최고의 가시방석이었던것 같다.
더 웃긴건 중대장이 입원을 시키지 않으려 하더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빽 써서 (이 전까지는 어머니 쪽에 빽이 있는걸 몰랐다. 어머니도 나한테 말씀 안했었고)
이틀? 후에 경찰병원에 입원했다. 시밤.. 입원하는것 까지 빽을 쓸줄이야.
서론이 겁나 기네
여튼 난 병원에서 사고를 쳤기 때문에(간단하게 실내에서 흡연, 무단외출후 피시방 이용)
중대에서 복귀하라는 연락이 왔고
난 뭐 어쩔수 없이 복귀하게 되었다.
그 벌로 불침번 3개월( 우리중대는 불침번 하루에 매 한시간 반씩 총 5명 정도 근무 하는데 그중 한자리를 내가 맡았다)
외박 2회 취소를 받았고, 짬찌 시절이었던 나는 중대 고참들과 지휘관들의 갈굼을 먹으며 지냈다.
또한 그때 우리 소대가 교통 지원이었기에 하루에 3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했고,
찻길에서 근무를 서며 졸기 까지 했던 최악의 기간을 보냈던거 같다.
여담으로 하루는 불침번 근무를 서던중 잠깐 졸았는데, 그걸 우리 소대 부관에게 걸렸고,
소대 분대장 2명을 깨워 나를 갈구라고 지시를 했었다.
와 얼마나 피곤하겠냐 하루에 세시간 밖에 못자는데
이쯤엔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던 때라 고참들도 나를 좀 불쌍히 여겼었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참들은 착했는데, 지휘관들이 나를 갈구라고 시켰던것 같다)
나를 데리고 담배피는 곳에 가서 힘드냐(따뜻한 느낌) 하면서 담배를 하나 물려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30분은 계속 울었던듯...
여튼 이러한 지옥의 시간을 3개월 보내니 고참들도 다 다시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여느 의경들과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쯤,
중대장 이 미친놈이 기율교육대를 다녀오라는거다.
난 저 위에 공적제재 2개가 끝인줄 알았는데,
뭐 모범이 되야 한다느니 뭐 어쩌고저쩌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어쩌겠냐 중대장이 가라는데.. 행정소대장님하고 우리 소대장님하고 나 많이 고생했으니까
기율교육대는 보내지 말자고 그랬었는네 씨알도 안먹혔었다.
기본적으로 금연이이라기에 기율교육대 앞쪽 편의점에서 담배 겁나 폈던거 같다.
행정소대장님도 좀만 고생하라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결국 기율교육대 입성.
시작은 기는 자세로 시작했다. 중대차에서 내리자마자
집합소 까지 기어갔다. 모래바닥도 아니고 걍 시멘트 바닥을
걷는것부터 가르쳤다. 걍 걷는게 아니고 그 북한군 사열식 할때 걸음걸이 있지?
팔은 아래부터 머리위까지 다리는 무릎 나갈정도로. 걷는게 가장 힘들었다고 할수도 있겠다.
하루일과는 기상, 식사, 체력단련(말이 체력단련이지...),식사, 체력단련 혹은 교육, 식사, 끝.
아 여기서도 불침번을 시키더라
체력단련의 종류에는 방패들고 연경장 뛰기, 포복자세로 100미터 이동후 200계단 오르기, 선착순,
이동중 목소리 작으면 그 자리에서 부터 포복후 이동, 목소리 째기(중대 복귀후 중대사람들이 목소리 왜이러냐고 그러더라),
새벽에 깨워서 피티 시키고 목소리째고 연경장 뛰기 등등 지금은 오래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정말 힘들었다는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흙위를 기고, 뛰고 구르고 했으니.
그리고 물이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준다는게 뜨거운 보리차.... 마시지도 못함.
더 싫은건 진압복 입고 단련을 받았는데, 물과 모래로 더렵혀진 똑같은 옷을 일주일 내내 입혔다는것.
교육의 종류에는 자신의 별명짓고 소개하기, 구타 방지교육, 본청 과장출신 경찰관의 교육,
뭐 이런거였다.
웃긴건 다른 아저씨들은 구타를 하던 가혹행위를 하던 그런 것들 때문에 왔는데
난 담배피고 피시방 간것 때문이었으니.. 게다가 거기서도 제일 막내였다.
이경이 기율교육대라니 이경은 나뿐이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딱히 몰랐었다 교육이 거의 구타,가혹행위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정말 잠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기율교육대 퇴소를 했다.
행정소대장님이 고생했다고, 중대 가니 선임들도 다 고생했다고 하고
따뜻한 관심들을 줬던것 같다. 그때 상황이 좀 많았었는데, 차라리 중대가 더 편했다.
그리고 내가 우리중대 기율교육대 1기였기 때문에(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또한 내 뒤로도 없었다...)
질문도 많이 받았던것 같다.
쓰고나니 기율교육대 얘기보다 내 힘들었던 얘기가 더 긴거 같다.
궁금한거 있으면 질문해도 됨

첫댓글 수고하셨네요.. 정작 가야할 새끼는 따로있는데.. 제도가 글러먹었어요
뭔 병신같은짓이냐 진짜...군대는 진짜 어딜가든 윗사람을 잘만나야된다...
이시절 의경 장난없구나ㄷㄷ
저는 이 밥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악!
쩐다..군기교육대+영창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