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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자유로운 이야기 스크랩 [사진] [퇴촌일기] 133. 가시는 길과 보내드리는 길
知止 추천 0 조회 85 10.12.09 16:2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퇴촌일기] 133. 가시는 길과 보내드리는 길 

  

 

2010.12.09

병원에서 갓 퇴원하는 차안에서 경안천을 지긋이 바라보시며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신다.

'이제까지 더 살겠다는 생각은 안해봤는데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1924년生. 올해 87세.

 

어머니는 1999년부터 신장염을 앓아 한 쪽 기능은 이미 정지되었고 그나마 나머지 한쪽의 30%만으로 힘겹게 살아오셨다.

그렇지만 혈뇨로 입퇴원 주기가 점점 짧아지던 어머니는 지난 4개월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으셨다.

병세가 도진 것이 11월8일.

'애낳는 고통의 백배가 넘는다'는 독백에 '대신 아파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일 수 밖에 없었던 새벽! <知止>

 

새벽 3時에 퇴촌에 들어서는 순간 온누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며느리의 빈 공간을 채워 나가셨다.

 그러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한계가 최대 4개월이셨나보다.

 

퇴촌의 눈은 정말 아릅답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어제 아침에 어머니 방에 들어가니 향기가 진동을 했다.

 '목욕하셨어요? 어머니?'

 '아니 머리만 감았다!'

 

 환한 웃음을 웃으시며 머리를 털고 계셨다.

 '왜 오늘 좋은 일 있으세요?'

 '오늘 신부님이 오신단다.' 

눈은 모든 것을 가려준다. 조건없이 모두 안아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신부님이 오신다는 것은 곧 종부성사를 받으시겠다는 것!

 가톨릭에서 종부성사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해를 하고 영성체를 모시는 최후의 성사!  

10여년간 잘 빌려쓴 퇴촌 통나무집도 이제 새주인을 만날 때가 된 듯하다.

 11월8일 극심한 고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는 그사이 한 달동안 세 번이나 입퇴원을 반복하셨다. 

 어머니의 어지럽다는 표현은 혈뇨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지고 전해질이 빠져 나가 혈압이 떨어져 나타나는 것!

 그때마다 수혈과 수액, 요도관 삽입으로 응급조치하면 바로 퇴원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노인요양원과 일주일에 한 번 가사도우미를 권해드렸지만 어머니는 일언지하 거절하셨다.

 하루밤 고통의 증거가 될 피로 범벅된 기저귀 12개마저 행여 아들, 손자가 볼까봐 꼭꼭 꾸려 두신다.

 옛날 한국의 여인네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오래 남지 않은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

 

 '마음을 편히 잡수시는 것은 어머니 몫이고

  고통을 없애 드리는 것은 제 몫인데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일 거에요!'

끊어진 知止明家의 기타.

 요즘은 어머니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하고 싶으신 말 있으세요? 어머니?'

 '없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요?'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많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도!

 모두 부질없다는 것도 말이다.

나이든 진돗개 블랙탄 캔도 몸이 약해 집안에 들어와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이 얼마나 힘들면 일어나지 않으려 할까?  

 

 2011년 봄에는 넝쿨장미로 대문을 장식할 것이다.

 꽃을 좋아하신 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넝쿨장미!

 

 모두 해드리면 가시는 길을 재촉할까봐

 모든 핑계와 고집을 부리며 개나리로 장식했던 그 대문을 말이다.

 

 가시는 길도 보내 드리는 길도 험난하기만 한 퇴촌에

 함박눈이 한껏 내렸다. <知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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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2.09 21:50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이승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10.12.09 23:58

    마음이 찡하네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프신데 없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10.12.10 00:26

    그 제목에 철학이 있네요... 가시는길 보내시는길....

  • 10.12.10 06:19

    왜 인간은 아픔이라는 고통을 느끼고 살아야만 하는가!!!아픔과 안아픔이 있는 세상은 어디일까!! 그저 어머님의 아픔을 반만이라도 작아지게 할 수 없을까?????마음속으로 어머님을 불러봅니다...어머님.....

  • 10.12.10 11:03

    진정한 효도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하늘에 계신 어머님을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왜 아침부터 울리시는지...

  • 10.12.10 12:12

    이별을 준비하는 부모와 지식.. 가슴이 찡해집니다.. 살아계실때 더 많이 효도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 10.12.10 13:25

    마음이 뭉클합니다. 건강회복하여 장수하시도록 기도드립니다.

  • 작성자 10.12.11 00:13

    모두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글을 쓴 오후 병세가 도져 다시 입원하셨습니다.
    다 뜻이 있겠지요...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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