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에 본 두 모습
저는 서울에서 봉제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30대 주부입니다.
지난 추석 날이었지요. 황금연휴 속에 민족 대이동,
정말 실감할 수 있더군요.
저 역시 시어른들이 계시는 경기도 이천의 큰집에 갔다가
귀경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그 때 얘기 좀 해볼까 합니다.
시댁은 이천에서도 얼마나 더 들어간 곳이었는데
우리는 태평리 라는 곳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를 타야 했지요.
그러나 표를 팔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매표소 직원에게 "왜 서울 표 안 팔아요?"
그런데 그때 젊은 여자 직원, "그것도 몰랐냐"며
대뜸 면박을 주는데 정말 황당하더군요.
저는 그때서야 ‘장호원’ 에서 출발하는 차가 만원이 되어
이곳을 거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리며 "왜 서울 차가 안 오냐"며 물었었지요.
그럴 때마다 "그것도 모르냐"며,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쏘아 부치는 그 매표소 직원이었습니다.
추석날 쉬지도 못하는 그 심정 이해는 가지만 너무 심하더군요.
남들 흔해빠진 자가용 하나 없는 사람들이라고
푸대접 당하는 느낌도 들었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줌마! 오늘 같은 날 수고 하신 줄 알겠는데요,
손님들 한데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귀찮으면 하나 써 붙이던지 하셨어야지요.” 하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시비가 붙었고 남편이 뜯어 말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천까지 와서야
천신만고 끝에 겨우 서울 차를 탈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자리 잡아 앉았을 때,
그 안도감 속의 기쁨이란 우리 서민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차가 출발하고 5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뽀시락! 뽀시락! 누군가 사탕이나 과자를 꺼내 먹는
그 소리가 틀림없었는데 얼마나 신경을 거슬리는 소립니까?
드디어 기사 양반 거울을 보며 한 말씀 하시는데,
“손니~임! 저도 하나 주세요! 나눠먹는 맛이 더 있는 것인데!”
하며 빙긋이 웃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딸과 함께 사탕을 먹던 젊은 엄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기사 양반뿐만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골고루 하나씩 나눠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안은 금방 가족 같은 분위기에 웃음이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손님들을 압도한 기사 양반,
이번에는 손님들을 향해 오랫동안 참으면 큰일 난다며
화장실들은 다녀왔냐며 묻더군요.
서울까지 두 시간 반이 걸린다며 단단히 마음먹으라는 것이었지요.
전에는 한 시간 걸리던 거리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손님 중에 에어컨을 틀 테니
추운 분은 말씀 하세요! 하며 찬바람을 보내 주는가 하면,
얼마 있다가는 에어컨 끌까요? 하며 물었고,
또 있다가는 좀 덥지 않아요? 틀께 요! 하며
그렇게 다 오도록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도 다녀오라며
갓길 간이 화장실 옆에 차를 세우기도 하고,
그렇게 손님들을 생각하며 친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길이 터지며 차가 조금 달린다 싶을 때는
삐~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기사 양반,
“몹시 신경들 쓰이시죠?” 하며
시내를 운행하던 임시 차여서 90킬로가 넘으면
과속하지 말라고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글 솜씨가 없어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이왕에 내 직업이 이것이라면 즐겁게 일하며
손님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울 터미널이 가까워졌고,
그때 그는 “저기 창가에 보름달을 보세요!
잘들 보여요? 오늘이 추석입니다.” 하고 외쳤지요.
하지만 흐린 날씨는 달을 볼 수가 없었는데
그는 뭔가를 그렇게 전해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때 한 손님이 터미널 앞에서 내려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교통 경찰관들이 지키고 있다며,
제가 벌금을 물게 되면 손님도 마음이 안 좋을 것이라고
정중히 이해를 구하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종점에 내릴 때는 이별 곡을 틀어놓는 가운데
인연이 있으면 내년에 또 만나자며 일일이 인사를 하는가 하면,
꼬마 귀엽게 생겼네! 하고 쓰다듬어 주는 모습은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비록 길이 막혀 더디고 긴 여행이었지만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겁게 올 수가 있었던 것은
기사님의 그런 정성을 다한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순간의 인연이었지만
하루 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였듯이
오래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추억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매표소에서 당한 불친절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습니다.
추석날 이천에서 오후 5시 45분 출발하여
8시 10분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신 이덕수 기사님이셨습니다.
이런 분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가꿔 나가시는 훌륭한 분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항상 즐겁게 안전 운전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10월4일 아침 두꺼비(파비우스)
출처/MBC여성시대
그림/김점선(선물)
음악/Yuriko Nakamura-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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