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책임의식)이 없이 ‘권력놀이’만 있는 우익담론. 보기만 해도 울화통 터져!
[사회주의자의 주체성은 ‘당’의 명령에서 까라면 까에서 졸라게 복종하는 마음. 자유주의자의 주체성은 자조 자립 정신의 책임의식하에서 분명한 자기 책임 의식하에서 진취적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해 가는 것]
박대통령 시대에 ‘민족 주체성’이란 말에 대하여, 2007년 오늘의 맥락에서 재고찰을 하려 한다.
이화여대 한국학 연구소에서 ‘맑스 레닌주의자’ 이진경 교수와 함께 하는 국문학 연구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책을 내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노무현 세력들을 받아주니 이화여대 핵심 관계자들이 활동영역이 넓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렇다.
‘수유-너머 연구실’의 탈주의 유목학 이진경교수와 같이 하는 ‘놀이하듯’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을 이화여대 한국학 연구소가 지원하는 책이 대형서점에 있다고 지적하면, 괜찮은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적확하게 우익 주체성 입장에서 표현을 적시하면 내용이 달라진다.
‘성령’의 존재성에 대하여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존재의 사명으로 여기는 1987년 사회구성체 논쟁당시 맑스 레닌주의 원전으로 돌아가자면서 한시도 그 가닥을 잃지 않은 맑스 레닌주의자 이진경교수가, 그의 맑스 레닌주의적 신념과 입장을 같이 하는 인문학자를 모은 것을, 기독교 재단이 주축인 이화여대가 제 살 파먹기인지 아는 지 모르는 지 지원했다고 지적하면 정확하다.
1990년대는 일본어를 거쳐온 프랑스 철학을 통한 ‘수동태’문장의 전성기였다. ‘뭐뭐 되다’ 등등 노년 가닥에서는 손하나 딱 돌리면 팩팩 쓰러지는 가닥의 낡디 낡은 가닥일 진데, 철학적으로 생뚱맞게 고상하게 넣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탈주의 유목학이라고 하면 어디에서도 ‘자기 중심적으로 책임을 진다, 안 진다’하는 가닥이 들어있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철학자 들뢰즈에 대한 사상적 ‘와꾸(틀)’을 알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자는 선량한 (떠라이) ‘학생’이 있음을 안다.
예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된 이가 공시된 지 불과 몇시간만에, 반공교회 인맥을 동원하여 ‘용공철학의 사상적 와꾸(틀)’를 동원하여 당선된 것임을 드러냈다. [조선일보] 편집진은 졸라게 서운했고 당선된 직후에 반공교회 인맥을 당선소감으로 명시한 당선자는 서운하겠지만, 객관적으로 그 평론이 공시한 사상적 와꾸(틀)은 명확하게 용공사상적이었다.
이는 언론사에서 교정직이 ‘기술직’이란 분류와 연관되어 해석될 수 있다. 사상의 와꾸는 문장 교정 만큼이나 기술적이다. 반공교회 여자 성도가 용공사상 쓰고도 반공교회 인맥을 드러내며 좋아할 수 있음은, 제 안에 있는 ‘졸라(?) 황홀’ 세상에서 뻑간 것이다.
저절로 욕나오게 하는 ‘개념’없어서 너무 짜증나게 하여, 바다를 건너다의 염장을 지르길 졸라 즐기는 김성욱기자께서도, 이진경교수의 [노마디즘] 붙잡고 김성욱기자가 다니는 교회 성도들과 같이 토론하자는 제안을 좀 들었으면 한다. 이진경교수는 참 기발한 재능이 있다. 들뢰즈 책 읽으면 ‘사상의 와꾸’가 안 들어온다. 이진경교수의 [노마디즘]은 들뢰즈의 와꾸를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면서, 조갑제기자의 우익 철학이란 것으로서 ‘팩스 어쩌고’하는 것이 ‘지랄 쌈싸먹고 있네’임을 정확히 드러낸다. 김성욱기자는 법대 전공이다. 법조문이 있으면 판사의 판결의 와꾸가 정해진다. 이론 논거는 법조문 수준으로 명시적 가닥을 정해준다. 법조문 안 읽고 까부는 법대생이 설 자리가 없는 차원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유목 철학으로 최고봉을 이룬 이진경의 논거를 살펴보고 방향성을 알지 못한다면, 문제가 많다.
하기야, 조갑제기자의 논거 대부분에도 ‘주체성’이 없다. 오직, 맑스 레닌주의적 집단적 신념만 있다. 자유민주주의(개인주의)적 주체성은 없고 反김정일 사회주의자의 집단주의적 주체성만 있다. 예전 공산주의 운동 했다가 맑스주의 이분법 가지고 우익내에서 설치는 자들이 대개 전혀 구분 못하는 게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주체성’이란 말을 썼고,
김일성 주체사상도 ‘주체성’이란 말을 썼다.
이 둘이 씨발 같은 용어면 ‘의미’가 동일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조갑제의 입장은 일관된다. 주체사상에서 ‘고무찬양’부분을 들어내고 반 김정일 논거로 씌워진 황장엽 수준에서, 공산당 논거의 주체성으로 박대통령 입장을 해석하는 것이다.
조갑제기자에 ‘선생’이란 호칭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구체적 이유로 조갑제기자는 ‘선생’이란 이름을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 중에 속한다. 이는 ‘비하’가 아니다. ‘기자’직위만 해도 충분히 존경의 사유가 된다. 불필요하게 ‘인문학자’같은 외형을 빌어써서, 인문학자의 실질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기자 직위만 비하하는 꼴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성가 [그리스도의 계절]은 기독교인이면 다 안다.
그 속에서 “나라”는 구체적으로 드러나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현상학’이다.
원래, [조선일보]의 배경 학교인 연세대학교는 현상학과 해석학의 요람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이데올로기(박정희 정부의 철학자 박종홍 역할)인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의 깊은 영향 때문이다.
‘현상학’에서 ‘정신현상학’으로 그리고 20세기 자유주의 사상가로 이어지는 가닥을 대학교양강좌 식으로 요약해버리면, 졸라게 기술적이다. (바다를 건너다가 기억하는 반공서적의 대부분은 메이드 인 전두환 정부이다. 즉 연세대학교 이규호 전 장관의 영향력 속의 반공교재이다. 그 때 수준이 바로 반공교재에 자유주의 철학 요약본으로 기록된 것이다. 개별 하나 하나 빠지면, 한 구절만 해도 수백강좌 분량되지만 ‘조금 가르치고’ 빨랑 일하세요~ 어서!! 하던 산업화 시대 가닥의 ‘기술적 교육’으로서는, 자유주의 사상 가닥은 졸라게 기술적이다.
여기에서, 조갑제 글이 ‘관념론 배척’으로서 현상학 논거 속에서 ‘성령’의 존재성 증거 할 수 있는 바탕을 뿌리째 뽑아 버린다. 유물론 사상은 분명히 세속적 성상 파괴주의 사상의 맥락에서 이어져서 수천년 이어지는 철학사의 한 가닥을 이룬다. 조갑제는 그 가닥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개인의 신념’에서 이어지는 가닥으로 이해시키지 못하려 한다.
공관복음에서 ‘예수’께서 ‘약자’ 하나 하나 모두를 챙겼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란 차원의 ‘용어 선점’하여 집단주의 沒我적 상황을 만든 게 아니었다.
이 긴 해설문은 하나의 꼭지를 쓴 기자를 욕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http://www.freezonenews.com/news/article.html?no=13562
이 망할 넘의 기자는 어떻게 잃어버린 사회의 새 질서. 神이 임재하여 고쳐 낼 수 있는 새로운 이성적 실현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일차적으로 ‘한나라당’의 대권 보다도 상도동 가문이 아니면 적화되어도 좋다 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가 싶다.
어떻게 ‘우익 신문 기자’ 주둥이로 ‘대통령 유시민’이란 말을 할 수 있을까? ‘표현’은 사람의 속내를 반영한다.
김주년 기자는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상은 전혀 없고, 권력 놀이로 본다는 바탕을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저,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깨던 말던 남의 관심으로 바라보는 김주년 기자를 보면서, 왜 박대통령이 ‘남의 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그러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게 된 배경을 보게 된다. 그러한 박대통령의 외침을 배경으로 ‘늘어지고 풀어지게’하는 가닥을 유지하면 당연히 김영삼 가문이 인기가 오를 수 밖에 없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깨던 말던 남의 일로 바라보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김영삼세력은 한나라당 지지자에 진 빚을 청산할 때까지,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조금도 없다. 법률용어로 ‘손학규’와 ‘이명박’과 다수의 김영삼계 정치인에는 ‘이인제’ 이후로, 정치적 활보에 ‘가압류’상태임을 지적했다. 한나라당을 쪼개고 나가서 대한민국에서 정치할 수 있는 바탕은 전혀 허락할 수가 없다.
거짓말 잘 하는 사람들끼리는 속은 너희가 바보지 지만,
거짓말 안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민사상의 사기죄에 의한 부당이익 반환 청구소송권이 정치판에 들어서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기본 ‘정견’ 공시에 ‘사기성’으로서 속았다는 증명이 계속 외부에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선거 때에는 정견의 신뢰성 가지고 먹고 사는 것인데, 불과 십여년만에 ‘체계적으로 속았다’는 차원으로서 사기성에 대한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빅3 대세론이라고 한나라당의 행보를 남의 일로 바라보고 권력 놀이로 바라보는 세계관. 그것을 조갑제씨를 선생으로 치켜 세우며 말같지도 않은 논리를 사상적으로 좋다고 우기지 말고, 조갑제씨를 기자로 부르며 박대통령의 주체성논거--주체사상 주체성 말고--로 정확히 평가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바다를 건너다 선생 소생 6.25때 3학년이었답니다. 분명히 말해서 작금에 한나라당 보싶시요 자칭 보수라 하는것들 명바기 쩨끔 여론이 앞섰다니 일신에 훗날에 도장받기 위해서 정치가에 생명인 사상도 팔아치우는 것들을 철퇴를 내리기 위해서 박대표가 되어야합니다 도대체 온통 흠집투성이에 매달리는 무리들 저런사람이 정치가냐 의아심 든답니다. 도둑놈 세계에도 이런법은 없는데
바다 건너다는 구제불능의 사람? 그렇게 충고를 했건만 사람 말귀를 못알아먹는 정신박약아 아님 또라이? 참 인생이 불쌍하구만 어디서 줏어다가 올릴려면 제대로된 글들을 줏어와 올려야지.... 박대표님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우리들에게 전혀 걸맞지않는 글이니 곧바로 지우고 다른분들이 올린글들을 감상만 하는것이 어떠할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