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다릅나무
대동문화201207 한송주의 산사엽서
달라이라마를 어찌하려오
절에서 ‘일불제자一佛弟子’라는 말을 자주 써요.
일불제자는 크게 두 가지 경계로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는 수행 쪽이고 다른 하나는 신행 쪽이어요.
수행 쪽으로 보자면, 불도를 닦는 데는 여러 방편(方便)이 있지만 이 방편들이 결국 모두 성불하자는 것이니 서로 차별상이 없다는 의미지요.
일승(一乘)이네 삼승(三乘)이네 간화네 위파싸나네 돈오(頓悟)네 (頓修)네, 어느 길로 가든 근기따라 깨달음에 이르면 됐지, 시비 우열을 다툴 것 없다는 뜻이어요.
신행 쪽으로는 부처님 법을 실다이 믿고 따르면 그만이지, 믿는 이의 신분이나 처지에 따라 분별을 두어서 뭐하냐는 경책입니다.
국적도, 지위고하도, 남녀노소도 따로 없이 불국(佛國)의 백성이면 누구나 똑같다는 평등관이지요. 하물며 출가 재가가 따로 있고, 조계종 태고종이 따로 있으며, 무슨 문중 무슨 가풍이 따로 있겠어요?
일불제자라는 표현 속에는 부처님이 고구정녕 타이른 불이법(不二法)이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는 셈입니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고 했는데 불제자가 둘이고 셋일 리가 없지요.
한마디로 모두가 똑같은 부처님제자입니다.
지난 번 시방의 일불제자들이 한국 여수에 모여서 우의를 다지는 큰 잔치가 열려 일화세계(一花世界) 일화불국(一花佛國)의 환희를 흠뻑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법석에서 한 ‘딴불제자’가 재앙을 부려 우의를 살짝 깨트렸다고 하네요. 중국스님들이 티벳스님들을 매도하며 법석을 박차고 나갔다는 겁니다. 옥의 티로 넘길 일이지만 대작불사 뒤끝이 찜찜해졌다고 어른스님이나 신심불자들이 못내 언짢아 하더군요.
이번 대회의 집행위원장인 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더군요.
“참으로 난감하고 서글픕디다. 정치가 종교를 휘두르면 저런 꼴이 되는구나, 실감했어요. 우리 모두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깊이 참회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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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사태의 뿌리는 실은 달라이라마에 있다고 교계에서는 진단하더군요. 달라이라마 14세 텐진갸초(Tenzin Gyatso)스님은 이번 한국대회에 꼭 참석하고 싶어했다고 해요.
갸초스님은 한국불교를 매우 존중하며 한국에 와서 한국불자들 앞에서 설법을 하는 것을 필생의 서원으로 삼고 있다고도 하지요. 그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세계에서 두 곳 뿐이랍니다. 한국 서울과 티벳 라싸.
이번에도 당초 행사준비위에서 달라이라마의 초청 방안을 논의했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와 중국불교협회에 대한 배려를 이유로 초청을 하지 않았데요. 중국불교협회가 이 대회에 100여명의 참가단을 파견하기로 약속해 중국의 참가 여부가 대회 성패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진단했기 때문이라나요.
그치만 중국에서는 결국 이번에 달랑 6명만 여수에 왔어요. 한마디로 한국을 우롱한 거지요.
달라이라마는 진즉부터 뜨거운 감자여요. 갸초스님의 한국방문은 이미 1990년 제17차 WFB 한국대회에서 거론된 바 있는데 하지만 당시 노태우 정부가 중국과의 수교에 걸림돌이 된다는 핑계로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지요.
이 문제는 그 뒤로 계속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부에서도 중국에 쫄아서 당대의 선지식 초청을 외면했어요. 2005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만해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달라이라마를 초청했지만 무산되었고 2009년에는 달라이라마가 손수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에 참석하러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어요.
당시 강원룡 목사 백도웅 목사 함세웅 신부 청화스님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는데 아이구, 하물며 이명박 정부에게 통하겠어요? 보기좋게 새됐지요.
세계가 존경하는 갸초 영감의 연치도 어언 77세라고 알고 있어요. 갸초영감은 신라 원측스님의 <해심밀경소>를 매우 좋아해 법문에 인용할 정도이며 한국불자들을 무척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반듯한 불교국가임을 자랑삼는 한국이 이 힘없는 영감의 소원 하나 못 들어 준다니 예라이 그 백성됨이 창피하네요.
중국이나 한국이나 정치가 종교를 휘두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을 수호하는 국민과 불법을 수호하는 일불제자들이 함께 쇄신해야 할 제일과제 아닌가요.
한송주<월간 송광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