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단풍트레킹 (내장사 등 5개 천년사찰)
►트레킹 일자 :
2023. 10. 27.~29(금토일) 2박3일
●트레킹 코스
►27일 : 11시 서울 출발→
공주 마곡사→ 정읍(1박)
►28일 : 06:30분 정읍→ 내장사 출발
(교통소통 빵빵~~)
▷ 내장산 산행 : 우화정-탐방안내소-
일주문-내장사-전망대-연자봉(원점회귀)
▷백양사 트레킹 : 내장산→백양사
교통소통 원활
정읍(2박)
► 29일 : 정읍. 태인. 김제 금산사.
부안 내소사. 변산 새만금 탐방하고
군산에서 20:40분 출발→
30일 00:20경 서울 도착
►날씨 : 3일간 최고 맑은 가을날씨
►참가자 : 최폴리 등 가족 5명
▶트래킹 스케치 :
해마다
실시하는 가을단풍 트레킹
2023년 트레킹은 한달전 내장사.
백양사 등 남부지방 5개 천년사찰을
중심으로 단풍 절정기인 10월 말
주말에 가족 여행겸 트레킹을
결정했다
평년 같았으면
남부지방 단풍 절정기는 10월 말
그러나 금년은 1주일 가량 늦어
남부지방 단풍 절정기는 11월 초..
막상 내장산. 백양사등 여행하면서
남부지방 단풍은 40%가량 만
물들었으나 막 물든 단풍 색깔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그런대로
힐링 여행 겸 훌륭한 트래킹을
한 것 같다.
특히,
아침 일찍 내장사로 달려 가던중
내장호의 물안개가 눈앞에 펼쳐져
순간 아름다운 물안개에 감전
하마터면 한눈팔려 교통사고를
일으킬 뻔 하였으나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내 차뿐.....
잠시후
물안개가 사라지는 짧은 시간
황홀함의 극치를 선물한 神에게
감사드린다~~~
여타 스케치는 사진 중간 중간
설명으로 대체한다~~~
▼공주 마곡사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하나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마곡사 일원은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마곡사는 삼국시대인 640년
(백제 무왕 41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쯤에는 폐사가 되어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가 고려 명종 때인
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 이라고 사액(현판을 내려준다는
뜻)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절의 보물로는
5층 석탑(보물 제799호), 범종, 괘불 1폭,
목패, 청동 향로 등이 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한동안 머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치하포 사건으로 수감 도중
인천에서 탈옥해 전국을 돌며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곳에서 하은당이라는
승려를 은사 삼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승려로 출가하였다.
그러나 수사망도 좁혀지고 승려 생활도
하은당에게 갈굼만 당하는 등 영 좋지
못하자 금강산으로 가서 더 큰
가르침을 받겠다는 핑계로 6개월만에
절을 떠났다. 이후 백범은 부모의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환속하였고,
농촌 계몽운동을 거쳐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백범은 오랜 시간이 지난 1946년,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마곡사를 다시
찾았고 사찰 경내를 둘러보며
"사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기상으로 나를 환영하여 주나,
48년 전의 승려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라고 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한편, 광복 이후 방문했을 때
경내에 무궁화와 향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향나무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치하포 사건(鵄河浦事件)은
1896년 3월 9일 아침 7시경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21세의
백범 김구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 (土田譲亮)를
살해한 사건이다.
▼내장산 (內藏山)
동학혁명 백주년기념탑. 전봉준 공원
내장산 조각공원. 내장호
▼내장호 물안개
내장호 물안개
▶내장사 (內藏寺)
전북 정읍시 내장산 동쪽 기슭에 있으며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636년에 백제
영은(靈隱)이 창건하여 영은사(靈隱寺)라 하고,
1098년 행안(幸安)이 다시 지음.
1539년에 불타고, 1557년에 희묵(希默)이
다시 짓고 내장사라 함. 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고, 1639년에 다시 짓고, 이후
여러 차례 증축·보수함. 한국 전쟁 때 모두
불타고, 1957년부터 다시 지었다.
▶2021. 3. 5일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화재로
전소 636년 창건 이래 4번째 수난
백제 시대 창건된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50여 동의
전각을 세우고 영은사로 창건했다.
1557년(조선 명종 12년) 희묵 대사가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당우를 새로
건립해 중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 있다고 해 절 이름을
내장사로 칭했다.
첫 번째 비극은 조선 중기 때 닥쳤다.
정유재란 당시 사찰이 전소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이후 1639년(인조 17년)
부용 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도금했다.
1779년(정조 3년) 영담 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했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 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을
신·개축해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 초기인 1951년 1월 내장사와
암자가 전소됐다.
이후 1957년 주지 야은 스님이 해운당을,
1958년 다천 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했다.
1965년에는 대웅전과 불상과 탱화를
조성해 봉안했다.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산 복원 계획에 따라
대규모 중건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2년 10월 31일 또다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내장사는
잿더미가 됐다.
이후 또 다시 대웅전이
잿더미가 되는 수난을 겪었다
2021. 3. 5일 그당시
최근 절에 온 승려 A씨 (당시 53세)는
사찰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고 다툼까지
벌이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술을 마시고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로 방화
내장사 대웅전이 전소됐다
<지금도 소실된 대웅전 자리에 있던
자갈 모래등이 아래 사진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다>
▼연자봉 건너편 "서래봉"(줌으로 땡김)
▼연자봉에서 바라본 "장군봉"
▼연자봉 정상(675.2m)
▼연자봉에서 바라본 “문필봉“ “신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