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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72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총칼로 싸우는 625전쟁은 휴전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간의 사상전쟁은 오늘까지 무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수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반대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은 사회주의로 가야한다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더가 믿음의 결단을 한 후 유다민족을 구하는 말씀입니다. 에스더시대와 동일하게 지금 한국교회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악법이 제정되기 직전이고 신막시즘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위장하여 모든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순진한 국민들을공산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운데 우리기독교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양보하고 포용해야만할까요? 오늘 말씀통하여 이런 위기의 시대에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잘 배우심으로 이 나라도 구하고 다음세대도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신중해야 합니다. (5장)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을 하였지만 무턱대고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신중하였습니다. 먼저 에스더는 4:16에서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에게 삼일 밤낮의 금식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5:1을 보면 삼일 금식기도가 끝난 후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어전 맞은편에 섰습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처럼 왕 앞으로 나아간 것은 위법이요, 목숨을 내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왕실법도를 어긴 왕후 에스더를 페르시아 왕은 당장에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마음은 에스더에 대한 연모의 감정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삼일 금식을 하다보니 마음이 가난해졌기 때문이였는지 뽀얗게 변한 에스더의 얼굴은 금식기도의 영성과 민족을 위한 심정으로인해 고상한 기운이 서렸습니다. 이로 인해 에스더의 얼굴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왕궁 안뜰을 배경으로 한 채 단아하게 서 있는 에스더의 자태는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입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벌을 주기는커녕 왕의 금규를 그녀에게 내어 밀었습니다. 이에 에스더가 금 규 끝을 만짐으로써 목숨을 내어 건 긴장된 순간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왕은 에스더가 왕의 호명도 없이 나온 것은 필경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며 사랑스러운 왕후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면 에스더는 먼저 왕을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에스더는 그 자리에서 당장에 소원을 말하지 않고 가장 좋은 기회를 만들어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만을 동석시켜 때를 봐서 하만을 유다 민족의 참소자로 고발하여 민족을 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에 왕이 하만을 급히 불러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왕은 이번에도 잔치 자리에서 에스더의 소청이 무엇인지 물으며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이때도 꾹 참고 내일도 잔치를 열테니 그때 소원을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다음 날까지 기다리고자 했습니다. 이틀 동안의 잔치를 통하여 왕을 향한 에스더의 사랑을 전달하여 먼저 왕을 기쁘고 흡족하게 하여 마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에스더는 비장한 믿음의 결단을 했지만, 그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에스더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사람의 마음을 얻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신중하고 인내심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하고자하고 남편을 구원하고자 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열정만 갖고 덤벼들었다간 저 마귀들에게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만은 어땠습니까? 9절을 보면 잔치 날에 하만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12절을 보면 왕후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다며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을 아내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모르드개 때문에 기분이 잡치고 말았습니다. 하만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왔지만 모르드개가 그를 본채 만체 하며 일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만은 심히 자존심 상했지만 꾹 참고 집에 돌아와서는 먼저 그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에게 자기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자기의 부의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을 자랑하고, 또한 왕이 자기를 높인 것과 에스더의 특별초청 받은 것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 모르드개 때문에 기분이 잡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말했습니다. 이에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이 한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구하여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하만은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나무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하만은 내일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는 그 나무에 자기가 매달려 죽게 될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잠언 27:1은 말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둘째. 강한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6장) 에스더는 이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자신만의 힘으로 하기보다는 왕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6:1을 보면. 왕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가져오게 하여 자기 앞에서 읽혔습니다. 왕은 기록을 듣는 중에 모르드개가 왕 암살음모를 고발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이러한 충신 모르드개에게 아직 존귀와 직위도 내려지지 않은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고자 사람을 불렀습니다. 마침 그때 하만이 왕궁 바깥뜰에 와 있었습니다. 하만은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매달기를 왕에게 구하고자 찾아온 터였습니다. 왕은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존귀하게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때하만은 속으로 ‘왕이 나를 존귀하게 하고자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아뢰기를, 그런 사람을 존귀케 하려면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타시는 말을 태우고 왕관을 씌우고 왕의 신하중 가장 높은 자가 직접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하만은 행복한 착각을 했습니다. ‘나 외에 누구리요’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자기 영광에 도취되고 허영심에 빠져 이제 곧 한 순간에 망할 어리석은 세상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0절과 11절을 보면 결국 하만은 왕의 명령을 따라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모르드개 앞에서 반포했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하만의 악한 도모를 파하시고 모르드개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하만은 이 일로 치욕을 당하여 번뇌하며 머리를 감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부인 세레스와 친구들은 그를 더 비참하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결국 이 말처럼 하만의 미래가 엎드러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원수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를 역전시켜 모르드개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민족에게 임하려 했던 저주를 복으로 바꾸는 반전역사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요즘 현대판 하만들은 악법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죽이고자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싸우겠다는 것이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런 사상과 악법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고후10:4)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혼자 일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강한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직접 하만을 테러하거나 살해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교회와 협력하여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도우심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7-10장)
하만이 모르드개의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왕의 내시들이 와서 하만을 에스더의 잔치에 불렀습니다(6:14).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나아갔습니다. 왕은 잔치에서 술을 마실 때 세 번째로 왕후의 소원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그제서야 왕후 에스더는 왕에게 요구사항을 말했습니다. 7:3b을 보면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여기서 ‘주소서’란 말은 ‘살려달라’는 뜻입니다. 즉 “내 생명을 살려주시고 내 민족을 살려주소서”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왕비와 왕비의 민족 유다 백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다민족의 진멸이 왕에게 유익이 되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만일 유다민족이 노비로 팔렸더라도 왕에게 손해가 갈 것이 분명한데, 하물며 유다민족 전체가 진멸하게 되면 노동력과 군사력 손실로 인해 왕에게 임할 손해가 얼마나 클 것이냐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유다민족의 진멸이 왕에게 큰 손해가 됨을 말했습니다. 이에 아하수에로 왕은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는가 물었습니다. 이 때를 놓칠 새라 에스더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에스더는 그 동안 참고 참다가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에 하만을 고발했습니다. 그녀에게는 감정을 다스리는 인내가 있었고, 권세 있는 자라도 고발하는 큰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두 번째로 목숨 내걸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페르시아 제국의 제2인자를 악한 자로 고발할 수 있는 용기는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린 데서 나왔습니다. 또한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에서 나왔습니다. 에스더의 말을 들은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벌벌 떨며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왕이 노하여 잔치 자리를 떠나 잠시 왕궁 후원으로 들어간 사이에 하만은 에스더의 의자 위에 엎드려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왕의 눈에 왕후를 성폭행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져서 하만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하만을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고자 한 그 나무에 달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8:1,2을 보면. 하만을 죽인 그 날에 왕은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 재산 모두를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고, 에스더는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 왕은 하만의 반지를 거두어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유다인을 멸하라는 왕의 명령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제정된 악법으로 인해 제국의 모든 유다인들이 진멸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또 다시 왕에게 울며 간청했습니다. 이에 왕은 이미 내린 조서는 취소할 수 없으니, 이제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을 위해 다른 조서를 쓸 수 있는 권한을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8:11을 보면 유다인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유다민족을 멸하려 했던 날, 곧 아달 월 12월 13일 하루 동안 오히려 유다인들로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하였습니다. 왕의 명이 심히 급하여 역졸들이 왕의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서 수산성을 비롯한 전 제국에 반포되었습니다.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유다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8:15-17을 보면 먼저 모르드개는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 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에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했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의 유다인들은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 곧 축제의 날을 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 땅에 함께 살던 본토 백성들도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한 연약한 여인의 결단으로 인하여 한 민족을 구하였습니다. 이 결단은 자기 희생의 결단이요 죽음도 마다 않는 결단입니다. 개인의 안위보다 민족의 안위를 위한 결단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고자 결단했습니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는 고난을 감당하고자 결단했습니다. 이런 결단은 당시에는 손해를 많이 보고 때로는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적인 결단을 축복하셔서 귀하게 쓰십니다.
결단이란 어떤 방향을 향해 분명히 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분명한 결단을 할 때 한 방향을 분명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결단이 없이 살아갈 때 마귀의 술수에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대적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승리하려면 영적 싸움을 하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주와 복음을 위해 결단하는 자는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니계신 것 같지만 우리가 죽기를 각오한 결단을 하면 반드시 우리 삶가운데 함께 하시며 주관하시며, 슬픔을 기쁨으로, 애통을 축제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 하나님께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갖고, 굳은 결단을 통해 험한 시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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