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요커] 의 전설적인 편집자이자
앨리스 먼로가 가장 사랑한 작가 윌리엄 맥스웰
윌리엄 맥스웰은 1936년 [뉴요커]에 입사해 1976년까지 40년간 문학편집자로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J.D. 샐린저, 존 업다이크, 존 치버 등 거장들의 작품을 담당했다.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탈고한 후 바로 차를 몰고 맥스웰을 찾아가 그의 집 현관에 앉아 그날 오후와 저녁 내내 함께 원고를 읽은 일화는 그가 작가들에게 얼마나 신뢰받았는지를 잘 알려준다. 맥스웰은 작가를 대하는 고집스러운 태도로도 유명했는데, 존 치버의 소설 중 한 편을 [뉴요커]에 싣지 못하게 되자 (치버가 그 일에 대해 크게 화를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 긴 기차 여행을 함께했다. 그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맥스웰이 보여준 친절과 배려에 감사해했고, 그를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존 업다이크는 “그는 자신이 편집한 글을 통해 다른 작가들이 높은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유연함과 더불어 명민한 배려의 자세를 유지했다”고 했다. [황금방울새]의 작가 도나 타트는 맥스웰을 회상하는 글에서 “내 두 번째 소설을 쓸 때 나는 그와 정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내게 어떻게 하라고 했을까? 그와 단 몇 분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유도라 웰티는 “그는 소설가들의 본부였다”라고 맥스웰을 정의했다.
맥스웰은 6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안녕, 내일 또 만나] 출간 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전작 이후 [안녕, 내일 또 만나]를 발표하기까지 왜 19년이나 걸렸느냐”는 질문에 “별다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편집자 일을 하느라 그랬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느라. 함께 일한 사람들이 모두 훌륭한 작가여서 그들이 쓴 작품을 대하며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린 작가이기도 하고”라고 대답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맥스웰은 조용히 작품을 발표했고, 시간이 흐른 후 그를 흠모하던 작가들에 의해 거론되며 다시 주목받았다.
도나 타트, 앤 패칫, 에이미 밴더, 토비아스 울프 등 현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는 “윌리엄 맥스웰은 미국과 캐나다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내게 영감을 준 작가들은 업다이크, 치버, 조이스 캐롤 오츠이고 그리고 특별히, 언제나, 윌리엄 맥스웰이다”라며 여러 번 인터뷰와 기고문에서 맥스웰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또한 “(《안녕 내일 또 만나》를 읽은 후) 나는 전에 읽은 맥스웰의 소설들을 다시 읽었고 《시간이 흐르면 퇴색하리라》를 읽었으며 찾아낼 수 있는 단편들은 모두 다 찾아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썼어야 했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쓸 거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실제로 먼로는 《캐슬록에서 보는 풍경》을 쓸 때 윌리엄 맥스웰의 많은 작품들을 읽고 용기를 얻었으며 그의 《조상들: 가족의 역사》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또한 《디어 라이프》에 실린 단편 [자갈]은 《안녕, 내일 또 만나》와 같이 나이가 든 화자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끔찍한 사고를 회상하며 자신의 죄의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맥스웰은 위대한 작가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한다.
즉, 인간의 커다란 고통과 회한을 단순하지만 빛나는 언어로 살려낸다.“ _[옵저버]
유년 시절의 상실과 상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진실과 허구, 자신의 비극과 타인의 비극 사이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알맞게 균형을 잡은 놀랍도록 뛰어난 이야기
맥스웰은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그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그의 소설에는 유년 시절, 어머니의 죽음,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변화가 반복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그는 한 번도 자서전을 쓴 적이 없지만 그의 삶은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안녕, 내일 또 만나]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이 파괴되는 이야기, 남은 가족들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거의 무작위적으로 상처 입는 이야기, 그리고 삶을 계속 꾸려나가기 위해 각기 쏟는 노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맥스웰은 전에도 이 소재를 능숙하게 다루었지만 이 작품에서만큼 잘 다룬 적은 없었으며, 이 작품에서만큼 넓은 통찰력을 보인 적도 없다. 이 이야기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 부적절하고 무기력하고 파괴적인 성적 욕망, 불륜이라는 고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_ 앨리스 먼로, [맥스웰] 중
이 소설은 일리노이 주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불륜 사건과 그 결과 일어난 살인, 그리고 그 살인이 두 소년, ‘나’와 친구인 클레터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 살의 ‘나’는 1918년에 유행한 독감으로 어머니를 잃고 ‘모든 것이 빛을 잃은 듯한’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평생 혼자 지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재혼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던 나는 이사한 마을에서 클레터스 스미스를 만난다. 내가 무엇을 하자고 해도 받아들이고 같이 해주는 클레터스는 나에게 ‘상상 속 놀이친구’와 비슷한 존재이다. 하지만 클레터스의 아버지가 저지른 사건 때문에 짧은 우정은 곧 끝이 나고, 나는 클레터스를 볼 수 없게 된다. 몇 년 뒤 고등학생이 된 둘은 학교 복도에서 재회하지만 서로를 그냥 지나쳐버린다……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맥스웰은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내일 또 만나]의 경우에는, 제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떤 남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풀어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던 한 남자에 대해서요. 그를 떠올리자 당혹감에 얼굴이 구겨졌지요. 스스로의 반응을 깨닫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다니.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군.”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
1인칭 서술자가 단순히 서술자의 역할을 넘어 등장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나’가 되어 책 속에 등장했고 결과적으로 저와 클레터스 스미스라는 두 개의 이야기가 파생되었죠.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잘 섞여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있는 집에 머물던 어느 날, 침대에 앉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낮잠에서 덜 깨 멍한 채로 ‘침대 끝에 앉으면 매트리스가 상하겠지’라는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어떤 책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을 열고 자코메티가 마티스에게 조각(뉴욕 현대 미술관에 있는 [새벽 4시의 궁전]입니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내 소설이구나!”
_[파리 리뷰] 윌리엄 맥스웰 인터뷰 중
맥스웰은 자신의 비극과 더불어 타인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첫 장에 나오는 총소리와 자신의 어머니의 부재 사이에서 놀랍도록 중심을 잘 잡는다. 맥스웰은 스스로 만들어낸 무대에 한두 챕터 가량 등장해 자화상을 그려내고는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가 스스로를 감춘다. 그러고는 어린 시절 친구인 클레터스 스미스와 클레터스의 부모님, 이웃과 그 가족들, 심지어 강아지의 삶에까지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상상하여 그려낸다. 작가 찰스 백스터는 이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중요성을 낮춰 조연으로 등장해 다른 사람들을 더욱 돋보이고 이해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작가의 삶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어느 하나 작거나 사소하게 그려지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앨리스 먼로는 “중심가의 중산층 가족과 시골의 인접한 농장에 사는 두 소작농 가족의 관계, 엄청난 사랑에 압도되어 미움으로 바뀌어버린 완벽한 우정, (…)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받은 충격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자란 어른의 고군분투, 공공연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주인을 향한 개의 애정 등 얇은 책 한 권에 수많은 것들이 여유롭게 담겨 있다. 모든 내용이 제대로 다루어졌고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전혀 기법 같아 보이지 않는 기법을 통해 조화를 이루었다”고 평했다.
아주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 평생의 죄책감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속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남자
소설은 실제 인생에서 벌어진 잘못을 보상할 수 있는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작농의 피살 사건을 50년도 넘게 기억하는 건 첫째, 살인자가 내가 아는 이의 아버지였고 둘째,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는 나중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사건을 아마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상록이란 이름을 이 글에 붙여도 된다면) 이 회상록은 그때 내 잘못을 우회적으로 사과하려는 헛된 시도라 할 수 있다.
_[안녕, 내일 또 만나] p.22
어린 시절, 잠깐이지만 함께 ‘산산이 부서졌던 시간’을 공유한 친구 클레터스. 그에게 건네지 못했던 한마디 말 때문에 ‘나’는 5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죄책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이 죄책감은 결국 ‘헛된 시도’임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과거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원인이 된다. 나는 이 행위를 통해 클레터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나마 전하고자 한다. 맥스웰은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 리뷰: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선택한 헛된 시도였다고 어디선가 쓰셨죠. 정말 헛된 것이었나요? 소설은 실제 인생에서 벌어진 잘못을 보상할 수 없다고 보십니까?
맥스웰: 용서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몫이지 상처를 준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글쎄요. 당신이라면 날 용서할 겁니까?
파리 리뷰: 물론 그럴 겁니다.
맥스웰: 위안이 되는군요.
_[파리 리뷰] 윌리엄 맥스웰 인터뷰 중
맥스웰은, 도나 타트의 말을 빌리자면 “고통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고, 관례적인 종교적 희망에 의지해 위로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열렬한 실존주의자로서 확고한 태도를 지녔고 한 편지에서는 ‘나는 이 땅에 한 번이라도 태어났던 사람들 모두를 애석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의 소설 저변에는 끊임없는 삶의 변덕과 잔인함, 상실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 우정, 상실, 죄의식 등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통찰력 있게 다룬 [안녕, 내일 또 만나]는 1982년 전미도서상, 1980년 윌리엄 딘 하웰 메달을 수상했고 1981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스탠퍼드 대학 명예교수이자 작가인 토비아스 울프는 2012년 10월, 스탠퍼드의 독서 클럽 ‘다른 시선(Another Look)’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을 토론 도서로 채택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소개했다. 작가 리처드 포드는 [안녕, 내일 또 만나]에서 모티프를 얻어 2013년 [캐나다]를 썼고, 감사의 말에서 “어느 독자라도 이 글을 읽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의 존재를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영국 밴드 ‘봄베이 바이시클 클럽’은 2014년 2월 이 책의 제목을 본떠 동명의 앨범과 곡을 발표해 UK 앨범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예술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았다”라고 한 업다이크의 말처럼 맥스웰은 평생을 예술을 위해 살았고, 그 역시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또 편집자로서 존경받았던 맥스웰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동료, 후배 작가와 편집자들이 맥스웰을 기리는 글을 썼다. 도나 타트는 [미스터 맥스웰]에서 “나는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면서 맥스웰은 신사적인 매너를 갖추고 문학에 대한 대화를 이끄는,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그리는 문학인이었다고 썼다. 존 치버의 아들이자 작가인 벤자민 치버는 [그가 죽고 나서 읽은 것]에서 “문학은 그의 종교였다”고 썼다. [뉴요커] 편집자로 함께 일했던 알렉 윌킨슨은 [나의 멘토]에서 20대 때 맥스웰이 자신에게 베푼 자애로운 지도에 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그를 추억했다.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맥스웰을 너그럽고, 성실하며 예술적인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개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걱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착하게 굴려 애썼다. 평소보다 훨씬 더 착하게 굴려 애썼다. 그리고 주인은 그냥 읍내에 간 것뿐이며 곧 돌아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것이 명백했지만 말이다. 주인이 평소 하던 행동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는 울부짖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주둥이를 밤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채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그건 단순한 개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그 울음에는 늑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조상의 울부짖음이 다 담겨 있었다. --- p.200~201
나는 부모님의 친구들이 시간만이 약이라며 아버지를 위로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아버지는 입으론 “그래, 나도 알아”라고 하면서도 실은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는 현관에 있는 괘종시계부터 시작해 집 안의 모든 시계태엽을 감았다. 분침과 시침은 믿음직스럽게 돌아갔고 밖의 빛은 분침과 시침이 가리키는 바를, 즉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음을, 늦은 오후임을, 어둠이 창문을 누르는 밤이 되었음을 확인해주었다. 부모님의 친구들이 한 말은 진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시곗바늘이 계속 돈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치유되지 않는다. --- p.29~30
나에게는 어느 겨울날 새집에 갔을 때 다락을 통해 위층 침실 위로 내리는 눈을 본 듯한 기억이 있다. 어쩌면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행방이 묘연한 사진 앨범 속에 방금 내가 설명한 상황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직접 경험한 걸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진을 보고 기억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혹은 적어도 내가 기억이라 언급하는 것(즉 순간, 장면, 고착된 탓에 망각할 수 없는 사실)은 실은 마음속에서 반복해 들리는 어떤 이야기이며, 말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종종 바뀐다. 처음에는 서로 상반된 감정들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 우리는 삶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는 것일 터이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