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벌거벗은 세계사 경제편 중 6장 벌거벗은 경제 도시 상하이의 내용을 요약해 보려고 한다.
상하이가 요즘의 모습까지 오기 전에 상하이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작은 어촌 마을이 이었다. 그럼 상하이는 어떻게 지금 같은 모습으로 변했을까? 그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까닭은 상하이에 영국, 프랑스, 미국이 상하이에 조계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계지는 외국인들만 살 수 있고, 외국법이 통한다. 그렇니까, 어떻게 보면 상하이는 외국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외국인들은 왜 상하이에 조계지를 세웠을까? 외국인 즉 영국의 목적은 무역과 선교였다. 상하이는 베이징까지 통하는 대운하와 양쯔강이 이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이는 가장 빨리 중국 본토까지 여러 방향으로 침투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왜 중국은 영국에게 이런 곳을 내주었을까? 중국은 영국에게 조계지를 내어주고 더 이상 서구 세력이 내륙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중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국한테만 조계지를 내어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 나라에게 조계지를 내어주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도 조계지를 탐낼 것이고, 그 결과 영국, 프랑스, 미국에게까지 조계지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렇게 까지 하는데, 그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노력일 수 있다. 하지만 조계를 발판삼아 조계지를 키워나가고, 지형적 이점을 사용해 중국 내부까지 서구 세력을 침투하게 만든 것 아닐까?
그런데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상하이에 많은 인구가 몰려 중국인 거주 금지 원칙은 깨지고 말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상하이에는 치외법권이 존재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조계지역에 있으면 진압하는 경찰들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일 때문에 영국을 중심으로 만국상단이라는 군대 조직을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뜻 밖에도 만국상단 때문에 더욱 더 많이 상하이로 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더 이상은 중국인들을 몰아내기 힘들어서 그냥 조계지역에서 임대사업을 시작한다. 물론 중국의 허락은 받지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이것에 모자라서 정말 하나의 정부처럼 경무처, 소방처, 위생처, 교육처 등 행정기관을 세운다. 그리고 회심공당이라는 재판소 겸 감옥도 만든다. 물론 차별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영국법이 적용되었다. 그러면서 상하이는 점점 발전해 나아갔다. 그렇지만 발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하이의 내면에는 매춘과 아편 문제가 사회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상하이에 있는 조계는 점점 커져간다. 초기 면적의 15배가 커졌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공공 조계를 만들었고, 프랑스는 단독 조계를 유지해 왔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므로 여기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그래서 결론은 상하이의 발전에는 비극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만 기억해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