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추우(山中秋雨)
산속의 가을비
유희경(劉希慶, 1545~1636)
백로가 지나니 가을 하늘 더욱 높고
산속에는 활짝 핀 계수나무 꽃 무리
가장 높이 핀 꽃다지를 꺾어 들고
밝은 달을 벗 삼아 함께 돌아온다.
白露下秋空(백로하추공)
山中桂花發(산중계화발)
折得最高枝(절득최고지)
歸來伴明月(귀래반명월)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입추가 지나면 한풀 꺾이기 마련이고 처서 무렵이면
비가 한 번 올 때마다 땅이 식는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온 백로에는 찬 이슬로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 이 시의 제목은 가을비라 해놓고 정작 내용은 공활한
가을 하늘과 밝은 달을 노래한다. 모순이다. 그러나 제목을 시의 일부로 인정
한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산속에 들어갔다 가을비를 만났다. 비가 그치자
계수나문 꽃이 물기를 머금고 만발했다. 맨 위에 핀 꽃가지를 꺾어 들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어느덧 떠 오른 밝은 달이 이 시인을 따라온다. 달과 짝하여 계수나
무 꽃과 함께 돌아온다.’ 참고로 계수나무는 오월에 꽃을 피운다. 모양이 비슷한
목서가 시월에 꽃을 피운다.
[작가소개]
유희경(劉希慶)
조선시대 『촌은집』을 저술한 시인.
이칭 : 응길(應吉), 촌은(村隱)
성격 : 시인
성별 : 남
출생~사망일 : 1545년(인종 1)~1636년(인조 14)
본관 : 강화(江華)
<정의>
조선시대 『촌은집』을 저술한 시인.
<개설>
본관은 강화(江華).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 아버지는 종7품인 계공랑(啓功郎) 유업동(劉業仝)이고 어머니는 배씨(裴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또 중국 사신들의 잦은 왕래로 호조(戶曹)의 비용을 모두 쓰게 되자 그가 계책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하사받았다. 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이 모후(母后)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그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 협박했으나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다.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른 뒤에 그 절의를 높이 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려주었고, 80세 때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제수 받았다.
그는 당시 같은 천인신분으로 시에 능하였던 백대붕(白大鵬)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다. 이 모임에는 박계강(朴繼姜)·정치(鄭致)·최기남(崔奇男) 등 중인신분을 가진 시인들이 참여했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었던 남언경(南彦經)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장례의식에 특히 밝았으므로 나라의 큰 장례나 사대부가의 장례를 예법에 맞게 치르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시는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叟詩話)』를 살펴보면, 유희경을 천인으로서 한시에 능통한 사람으로 꼽았다.
천민 출신이나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했으며 자기 집 뒤의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유명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했다. 그때에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아 『침류대시첩(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문집으로 『촌은집(村隱集)』 3권이 전하며 그 밖의 저서로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아들 유일민(劉逸民)의 원종(原從)주 01)으로 인하여 자헌대부한성판윤(資憲大夫漢城判尹)에 추증됐다.
<참고문헌>
촌은집(村隱集)상례초(喪禮抄)택당집(澤堂集)어우야담(於于野譚)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희조질사(熙朝軼事)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유희경(劉希慶))]
첫댓글 물기 머금은 꽃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한 건필하시길
소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