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에/최국진
언제부터인가, 가지 않던 이십대가
서른을 넘어 훌쩍,나이를 두려워하는
운명이 되었다.
찰나의 순간에 엄마를 놓쳐 버린 소년은
평생 그녀를 엄마로 여겼다.
보고싶은 엄마,버스를 따라 잡을 수 없는
소년의 뜀박질은
눈물로 부르며 또 외치며 따라갔다.
왜 가는지,,,.
서른 아홉에
불혹이 된다는 것이,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만이 알까?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세월을 구워 그 부르고 보고싶던,
울면서 뛰던,소년의 절규로 되돌아 가고 싶다.
마흔이 오기전에,,,.
돌아 갈 수 없을까, 그 어린 시절로 어느 시기가
적합한 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 시작 한다면 행복할까?
물처럼 바람처럼 살리라고 외로움에 병이 누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보내고 받았던 계절, 또 가을이다.
가을 창가엔 노을이 스치고 비바람의
회오리도 낙엽을 일으켜 쓰러진 영혼을 달래고 있다.
뒷모습이 쓸쓸하고 외로워 보여
차마,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연민은 벌써 서글픈 옛 언약이
되었다.
이제는 잃어버릴 것이 더 없는데,
잃어버릴 것을 또 염려 하면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돈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지렁이처럼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늘 분간이 없다.
하지만 가을은 나에게 쓰러지고 쓰러져도 일으켜 세워
생명의 분명함을 선보이고 있다.
살아야 한다.죽는 순간까지 나의 생명을 나의 것으로
지켜야 한다고,
들꽃처럼 반딧불처럼.
돌아와 눕는 밤이면, 갈곳이 어디인지를 모른체,마냥
잠이든다 .별일없는 아침을 위해서.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배회한다.
님은 갔다.나의 모든 님은 소리없이 거울 속의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사라졌다.
깨어있는 날이면 홀로 새로운 면역의 깔판을 찿아야 한다.
살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을 위해서.
순식간에 꿈보다 체념이 가까운 퇴색한 시간이지만
천번을 찍고 접는 벚잎처럼 날아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딴 생각에 한참을 서성거리고,
질투의 눈망울이 알밥같이 커지고,
투정을 욕처럼 토하는 사랑은 잊어야 한다.
이제는 쇠뿔의 가시처럼 혼자이지만 홀로 가치를 찿아야 한다.
샘물처럼 가을이 흘러 가고 있다.
가을이라 말하기에 어색한 무서운 추위가 맴돌고 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을 불러 들여야 하는 고민에
잠 못드는 밤을 세운다.
담을 수 없는 겨울비를 맞으며
말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가는 봄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그리워 한다.
이제 새봄이 오면,
새옷으로 갈아 입고 새로운 젊음을 불러야 한다.
떠나간 애한은 미련없이 깊은 골짜기에 묻어야 한다.
그리고 상심의 세월로 얼룩진 상처를 벗어야 한다.
어쩌면 얼마전의 봄이 더 희망찬 약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봄은 짧았고 돌아오는 올봄은 무르익어
가을처럼 나이테를 달았다.그리고 새봄은 돌이킬 수 없는 3월의 꿈과
여름의 정열, 가을의 갈등 ,겨울의 인고를 감내하고 난 뒤,
새봄이라는 명찰을 줄 것이다.그래서 죽을것만 같았던
고통을 새봄은 이제 성숙한 성인의 자태로 끌어
자석방처럼 남극과 북극의 묘미를
찬바람과 냉기로 갈라 놓았다,붙였다 하면서
새순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그리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유두를 봄가지마다
꽃순에 걸고 얼래고 달랠 것이다.
그래도 네가 있기에 살 수 있다고
모든 봄 유두에 곱게 아름드리 절과 절을 올릴 것이다.
소망을 위해,,,.
201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