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 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흘러서 자정을 알리는 때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애틋한 마음을
두견새야 알겠느냐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고시조집 해동가요, 청구영언, 병와가곡집에 실려 전해오는 다정가(多情歌)는, 고려의 국운이
저물어가는 여말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신이자 시인인 이조년(李兆年,
1269년~1343년)이 봄밤의 정서를 시각적·청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형상화한 고시조이다. ‘배꽃’과 ‘달빛’, ‘소쩍새’의 이미지를 통하여 봄밤의 애상과 우수에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청초·결백·냉담·애상 등의 속성을 지닌 '이화(배꽃)'를 소재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恨)을 표현한 애상적(哀想的) 서정시이다. 이화, 월백, 은한, 삼경, 일지춘심, 자규, 다정, 병, 잠 못 들어 하노라 등 시어(詩語)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국민 시조라 할 수 있다.
이 시조는 오늘날 전하는 고려시조 가운데
표현기법과 정서면에서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자연을 소재로 한 동시대의
작품들이 자연에 대한 단순몰입에 그쳤던 것과 달리 자연물을 통해 현대적 의미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점과 시 전편을 통해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안향(安珦-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 학자)의 제자로 벼슬이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던 이조년이 자신의 주군인
충렬왕의 황음(荒淫)을 여러 차례 충간하다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星州)에서 만년을
보낼 때 임금의 일을 걱정하는 심정을 읊은 충애(忠愛)의
시이며 노래다.
고려 중기의 호족이었던 이조년의 부친 이장경은
아들들의 장수를 빌며 이름을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라 지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특히 이억년과 이조년의 ‘투금탄 (投金灘)’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고려 말기의 어느 날, 두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인 조년이 우연히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인 억년에게 한 덩이를 건네 준다. 집안 살림이 넉넉치 못하고 식구가 많은 어려운 형편에 황금 덩이를 줍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횡재를
만난 셈이다. 억년과 조년은 기쁨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고 곧 양천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던 조년은 돌연 금덩이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린다.
깜작 놀란 억년이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이냐?" 아우가 대답하기를, "형님! 금덩이를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줄곧 형님이 없었더라면
황금 두 덩이를 몽땅 내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란 욕심이 솟구쳐 형님이 원망스러웠고, 심지어 형님이
가진 금덩어리를 다시 뺏고 싶었을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형제가 갑자기 금덩어리로 해서 원수가 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형도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는 일화다.
후에 사람들은 이 양천나루를 투금탄(投金灘)이라 했다. 금덩이를
던진 여울이란 뜻이다.
충렬왕은 고려 제25대 왕으로 몽골의 공주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통혼한 최초의 왕이었다. 당시 원나라는 적자를 두지 못한 성종
티무르의 건강이 좋지 않아 왕위 다툼이 한창이었다. 충렬왕의 셋째 아들 충선왕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1307년 티무르가 죽고 충선왕이 지지하고 있던 무종이 차기왕으로 유력시되자
사태는 완전히 반전되어 충렬왕은 충선왕에 의해 측근들을 모조리 잃고 왕권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때
이조년은 어느 편에 서지도 않고 충렬왕을 끝까지 보필했다. 이조년은 부자 간의 권력 투쟁에 연루되어
멀리 유배를 갈 수밖에 없었다. 충직한 그는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모든 벼슬을 접고 13년간을 고향 성주에서 학문을 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이조년을
고려 500년 제1의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이조년은 다정가가 보여주듯이 뛰어난 문장가요
시인이었으며, 유능한 행정가로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위기를 바로잡는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조년의 "이화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오래 전부터 외운 시입니다.
오늘 선생님의 글을 보며 지난 날의 아름답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