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6]나는 <원더>같은 '인생영화'가 좋다
오늘은 나로선 무척 낯설지만 영화 이야기이다. 손자를 돌본다는 美名으로, 용인 고기리에서 판교 아파트까지 ‘출퇴근’하는 일상 속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된 한 달여(음주는 아내의 눈치로 생각지도 못한다. 흑흑). 누구에게나 보기를 강추할 만한 영화 두 편을 모처럼 우연히 건지게 된 ‘幸運’이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본 <아빠의 바이올린>(터키영화)와 유선TV에서 본 <원더(WONDER)>가 그것이다. <원더우먼>이 아니다.
어떠한 영화평이나 추천 없이 한두 장면을 보다가 ‘이건 확실히 기막히게 좋은 영화’라는 걸 直感으로 느낀 가족영화. 검색을 해보니 영화평들이 역시 나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했다. 이런 것을 ‘엑설런트 초이스(Excellent Choice)'라고 해야 할까? 다른 부문은 몰라도 책과 영화가 나에게는 좀 그런 듯하다. 70년대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전주 홍지서림에서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Walden)』을 발견, 이 책이 다시 없는 古典이 될 줄 알아봤다. 영어 原書로도 읽을 정도로 몰입했고, 대학 논문도 준비했었다. 또한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熱讀하고 <씨알의 소리> 잡지를 정기구독했다. 나는 이것을 ‘良書’를 고를 줄 아는 '鑑書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서안’은 그후에도 계속 됐다. 이제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눈까지 생긴 것일까?
# 영화 <원더>를 이야기하자. 선천적 안면기형의 한 소년이 27번의 성형수술을 했으나, 외계인 형상이어서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다. 科學을 좋아하고 宇宙에 호기심이 많은 ‘평범한’ 소년 어기. 헌신적인 어머니의 지도로 홈스쿨링을 하면서 ‘못생긴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핼로윈 축제를 좋아한다. 아들에 대해 편견도 없는 부모는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을 시켜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상처를 많이 받지만, 그 속에서 싹트는 은근한 友情도 있다. 그런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는 누나대로 가정의 외톨이로 상처를 받고, 우정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특별한’ 한 소년을 둘러싼 ‘가족과 우정’의 액추얼리(actually)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인생 영화’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훈훈하다.
영화는 ‘친절과 용기’를 온몸으로 보여준 소년 ‘어기’가 학교에서 주는 최고의 상을 받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어느 영화평은 “모든 장면이 따뜻한 온기로 물들이는, 아주 소중한 영화”라고 했다. 2017년 개봉됐는데, 최근 CGV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다고 한다(상영시간 113분). 관람 강추. 시청 후 느낌을 말하자, 아내가 영화보다 原作이 더 재밌다며 즉석에서 책을 찾아 갖다줬다. 『원더』(R J 팔라시오 원장, 천미나 옮김, 책콩 2017년 펴냄, 487쪽). 내처 읽었는데, 정말로 영화보다 더 재밌다. 아내가 평소보다 더 예쁘게 보인다. 뉴욕타임스 선정 118주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 터키(튀르키예) 영화 <아빠의 바이올린>를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빠와 하나뿐인 딸의 이야기다. 결손가정의 두 형제가 30여년 전에 생활고로 찢어졌는데, 동생은 형이 자기를 버렸다고 誤解를 하며 잊고 살았다. 동생은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으나, 형은 결핵으로 시한부 삶을 앞두고 있어 동생에게 딸(조카)를 돌봐달라고 하는데, 얄짜없이 외면당한다. 거리의 악사 친구들은 법적으로 친구의 딸을 케어할 수 없어 속수무책. 다행히 동생의 피아니스트 아내가 조카를 안았고, 삼촌도 형이 죽으며 남긴 자신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을 보며 뒤늦게 오열(嗚咽)한다. 소녀의 말은 판판이 語錄이다.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는 글재주가 없어 표현이 안되므로 꼭 보시기 바란다. 상영시간 111분. 이 영화 역시 완벽한 가족영화, 인생영화.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아무리 <오징어게임 1, 2>가 지구촌을 요동치게 한다해도, 나는 정말 그런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 허나 우리 固有의 어린이 민속놀이(무궁화 어쩌고 하는 얼음땡놀이나 공깃돌놀이, 가전놀이 말X박기 등)가 세계 각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 다행이고 재밌는 현상이긴 하지만. 내일이면 칠십인데, 아파트 거실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훌쩍거리는 나라는 인간은 누구인가. 아홉 살 손자를 꼬셔 두 번째 봤는데도 눈물이 나온다. 영화를 보던 중, 형이 죽는 장면이 나오자, 손자가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 있다 나오는데, 많이 울었는지 눈이 벌겋다. 그 할래비에 그 손자인가? 그것도 재밌다. <원더> 영화도 장난감 사준다며 꼬셔서 같이 볼 생각이다. 참, 볼 영화도, 읽을 책도, 만날 친구도, 마실 술도 많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임을 언제나 피부로 느낀다. 살아가는 데 ‘가성비 짱’인 우리나라 만세닷! 오로지 ‘政治’ 만 잘 굴러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