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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매우 가난했다..
나는 항상 집에 혼자였었다.. 가족들은 바빴고.. 초등학생때부터 아니 그 이전 어릴때부터(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항상 밤에는 혼자 집에 있었고 혼자서 잠에들었다..
나는 어릴땐 축구를 좋아했었다. 점심시간엔 초등학교 5~6학년 형들과 항상 축구를 했고
항상 학교가 끝나곤 학교운동장에서 동네 친구,형들과 축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축구심판 출신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선생님께서 나보고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가서 축구를 제대로 배워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것을 어린나이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어렵게 부모님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역시 나도 부모님도 비용이 매우 부담스러웠기에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기엔 무리였다.
그때부터 였을까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들었다.
가난을 벗어난다면 항상 저녁엔 가족들과 하하호호 하면서 즐거운 저녁을 보내는 꿈을 그때 쯤 언젠가부터 꾸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의 환경에서는 공부라는 방법 이외엔 다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데 공부를 해봤어야알지. 하는방법도 몰랐고 그냥 뭐든 책을 보면서 저녁시간을 혼자 보냈던거 같다.
그렇게 어찌저찌 중학교를 입학하게 됐다.
중학교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항상 전교1~3등을 했고 우리집 형편을 아는 선생님들은 항상 방과후 보충수업을 무료로 듣게 해주었고 교재또한 지원해주셨다.. 학원은 엄두도 못냈다.. 그저 묵묵히 혼자서 할 뿐이었다.
중학교 졸업시즌이 왔다 내신이 아깝다며 특목고(외고)를 가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담임 선생으로부터 수 없이 많이 받았다.
특목고를 다니면 학비도 분명 일반고보다 많이 들것이고 더군다나 나는 수학을 좋아했었고(잘하지는 못했던거 같다)
중학교때 수학선생님이 돈많이 벌고 싶다면 경희대 한의대를 가라고 했던 말을 듣고 막연하게나마 메디컬 계열로의 진학을 꿈을 꿨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냥 집근처 일반고로 진학하게 됐다.
고등학교때부터 수학이 완전 달라졌다.
학원을 다녀봤어야알지, 선행을 해봤어야 알지 처음 맞이한 고등학교 수업은 중학교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정도로 어려웠다.
(중학교떄 A급 수학 이런 것도 씹어먹던 나였는데..)
그렇게 흥미를 잃어가면서 , 그나이대에 집에 혼자 있고 집에 컴퓨터가 있으면 할게 컴퓨터 밖에 더있겠니..
그렇게 게임에 빠지게 됐다. 당연히 성적은 공부를 안하니 매우 후져졌다.
고2때인지 고3때인지 리그오브레전드라는 새로운 게임을 친구가 해보자해서 해봤다.
정말 재밌었다.. 재능이 있었는지 시즌2 다이아몬드 2260점 / 시즌3,4 챌린저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프로게이머 판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곳 저곳 팀에서 연습생제의를 많이 받았다.
내가 게임에 재능이 있었다니 ,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그 어린나이에 정말 기쁘고 기대가 됐었다.
앞으로 나도 행복한 인생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2년가량이 지났다.. 큰오산이었다.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단지 점수만으로 상위0.001%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 좋은 팀과 팀원을 만나는 운도 없었던거 같다.
당시 중국팀에서도 연봉 4천정도로 오라는 제의가 있었는데 뭔가 중국팀은 무서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두려웠던거 같다.
그리고 애매한 재능으로 준비만 하면서 게임이아닌 "일"이라 느낀 순간 게임에대한 나의 흥미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를 도전해보고자하는 꿈도 포기하였다.
애매한 재능이 참으로 무섭다고 느꼈다.
이러한 재능이 공부에 있었더라면 뭐라도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많았다.
그래서 다시 메디컬 준비를 하려고 수능 준비를 했다. "메디컬"이란 목표가 항상 내마음속에 한처럼 맺혀있었다.
처음으로 인터넷 강의라는것을 들어보았다. 천국이었다. 고등학교땐 정말 어려웠던 내용들이
뭔말인지 알아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된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수능준비를 하고 약 1년6개월간의 수능준비를 하게됐다.
결과는 부산대 기계공학과 성적이 나왔다. 나이는 있지만 그래도 먹고 살지는 않겠냐는 주변의 말이 있었으나
하지만 내꿈은 메디컬이었다.
과감히 버리고 메디컬을 못간다면 자살하자는 마인드로 다시 수능준비를 하려했다.
근데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허리,골반통증이 너무 심해졌었다. 병원가서 진료를 받았다.
허리디스크,이상근증후군등 의사들도 진단이 갈리더라.
그시점에 뇌수막염도 같이 걸렸었다. 더이상 공부를 하는게 너무 괴로웠다.
그렇게 3달 가량을 치료에만 전념하고 거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신기하더라 몸은 반응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어떻게든 밖에 나가서 일을 했다.
프로게이머 연습생들 코칭,치킨집 알바 , 돈까스집 알바 , 야간 피시방 , 노래주점 알바등등 그냥 돈이 되는 것들이면 뭐든 했다.
돈을 쓰는 법도 몰랐다. 그냥 모았다.
그렇게 5년가량 일하니 제법 큰돈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엄마랑 나랑 모은돈으로
지방에 둘이서 살만한 작은 구축 아파트도 하나 구매했다.
건강도 예전보다 괜찮아졌다.
그리고 공부할 자금도 내기준으로 꽤 많이 모아졌다.
이정도면 충분히 3~4년은 공부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한번 메디컬 준비하려는 찰나.
내인생에서 가장큰 변화를 가져다준
내인생에서 가장 소중했었던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2023년 7월이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길을 지나가는데 그사람에게서 빛이났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가서 그녀의 번호를 물어보았다.
그녀도 당황하더니 번호를 건네주고선 우리는 그렇게 몇번을 만나 대화를하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집도 걸어서 10분거리 밖에 안되더라 서로 정말 신기했었다.)
29년 인생중 가장 행복했었던 인생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 그녀에게 말했다
메디컬 준비를 하려고 일 그만두고 잠깐 쉬다가 일하면서 모아놓은 돈으로 원래의 꿈인 메디컬 준비를 하려 한다고 그래도 나 만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내꿈을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2023년 7월 부터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돈을 모아놓은걸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처음으로 해외여행도 가봤다.
도쿄였는데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녀도 2023년말 퇴사를하고 2024년 1월 함께 유럽을 가게되었는데 아름다웠다 행복했었다. 그녀와 함께여서 행복했던거 같다.
유럽을 갔다온뒤 , 그녀는 나한테 말했다.
"근데 만약 너가 메디컬을 가더라도 30대 넘는 나이에 메디컬을 가는데, 거기서 또 6년을 공부해야하고 대학생과 만나기는 뭔가 어려울거 같다고 하였다"
솔직히 공감됐다. 메디컬을 당장 내년에 합격한다하더라도 , 입학 후에도 6년을 대학생활을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나는 결론을 내렸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던것일까?, 그냥 전문직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녀를 놓치기 싫었던 것일까?
이유는 모른다.
그냥 단순히 전문직 중에서도 가장 수험기간이 적게 걸린다고 하는 노무사를 선택하게 됐다.
그리고 빨리 합격해서 돈을 벌고 그녀와 미래를 행복하게 살고싶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2024년 2월 처음으로 노무사시험을 진입하게 됐다.
아무런 정보없이 그냥 1차 시험을 준비했다. 2024년부터는 문제 수도 40문제로 늘어나서 더 어려워질거라는 얘기가 많았다.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냥 열심히해서 합격할 뿐이었다.
시간갈아 넣는것만큼은 자신있었다. 적어도 메디컬 도전보단 쉬울거라 생각했다.
평일은 미친듯이 공부만했다. 주말엔 그녀를 만났다.
삶이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2024 5월 1차 시험을 합격하고, 그때부터 2차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다.
1차시험과 비교도 안되는 공부량,공부피로도를 느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랑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 하나로 나에게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매일 14시간은 책상앞에 앉아있었다. 그냥 시간을 무한하게 갈아 넣는 것 밖에 없었다.
2024년 8월에 치뤄진 2차시험은 동차반만 듣고 시험을 쳤다, 노동,인사,행쟁은 그나마 답을 조금이라도 쓰고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 교시인 경조는 정말 뭘써야할지, 아예 모르겠어서 중도퇴실을 결정하고 , 중도 퇴실시 앞서 봤던 노동인사행쟁 점수는 나오는건지 물어보고 나온다고 시험본부에 확인받고 중도퇴실하였다.
문제를 보고 이시험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구나 느꼈었다.
그리곤 제대로 2차준비를 이제 정규강의 0~3기 들었다.
그렇게 노동 인사 행쟁 점수 결과가 궁금했는데 결과발표날 모든과목 0점 (무효)처리 되어있길래 의문이었다.
산인공에 문의를 했다.
중도퇴실하면 모든 과목 무효 처리라고한다.
나는 전에 본 과목 점수는 나온다고 확인받고 퇴실했다고 했고 , 시험 도중 말로 물어볼 수는 없어서 답안지에 적어서 물어본거라 분명 확인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건 감독관이 잘 몰라서 그런거고 시험규정은 0점처리라고 도와줄수 있다는게 없단다
뭐 어차피 합격점수 나올리 없으니 그냥 무시하고 다시 공부했다.(그래도 작년의 내 노동,인사,행쟁 점수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그저 묵묵히 공부했다.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만을 꿈꾸면서 공부했다.
그런데 우리의 700일이 되던 6월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우리는 나이가 어느덧 30이넘었고, 내가 올해 합격을 한다는 보장 또한 없고 ,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 있냐고 할때마다 답하기가 무서워 진다고 하더라 남자친구가 노무사 준비하고 있다하면 아이고 수험생 만나는거 힘들겠다 , 아이고 불쌍해라.. 그거 붙기도 어려운 시험인데 떨어지면 어떻게 할라고등등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기는 어느순간 그게 엄청 스트레스가 됐다고 하더라..
물론 그러한 문제 뿐만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도 걱정되고 수험생으로서의 한계도 분명 존재하니 힘든게 많다고 했다.
난 그녀를 다 이해했다.. 당장 해결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고 싫었다.
내 인생 전체를 부정 할 만큼 과거에 나자신에게 적당히 타협해서 적당한 직장을 구해서 살지 않았느냐고 많은 후회와 자책을 했다.
나 또한 수험생 만나는 그녀가 힘들거라 충분히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무조건 맞추고 잘해주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주말에는 항상 그녀를 위한 시간을 썼고 국내여행도 몇번 갔다왔고, 해외여행도 3번 갔다왔다.
사실 나도 이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그녀를 위해 쓴 시간만은 아니었다. 내가 행복했으니까.
그녀와 700일간 만나며 단 한차례도 싸우지도 않았다.
아니, 싸울 수 없었다. 나도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여자친구에게 하지못할 짓을 하고 있다 생각했고, 죄인이라 생각하면서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합격하자는 생각밖에 없었고, 나 만나는 동안 여자친구가 힘들지 않았으면 해서
항상 먼저 맛있는것도 많이 사주고 , 어지간한 비용도 내가 다 지출하려고 했었다.(물론 여자친구도 부담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 만나본 사람중 내가 자신에게 가장 잘해준 사람이라고 말을 했었다.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더라.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잡을 수가 없다. 내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끝이났고 , 나의 미래와 행복은 끝이났다.
그이후 7월에 내생일이 있었는데 그녀가 챙겨주었다.(정말 고마웠다.)
시험이 90일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그래도 버텨야한다.
나는 꼭 이번에 합격해서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하고 싶었다.
정말 꼭 합격하고 싶었다. 내인생에서 2025년 6월~8월31일 까지가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다.
그리고 제일 힘들었던 날들이다.
상상할수도 없을만큼 많이 울었다. 울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교재를 씹어먹을만큼 외우고 또 외웠다.
오로지 합격해서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났다.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
특히 행정쟁송법에서 1문 처분사유 추가변경 명시적동의판례를 왜 일반론에서 언급을 안하고 포섭에서만 녹여냈을까.
1-2문에서 왜 무효확인소송 보충성을 빼먹었을까.
왜 3문에서 븅신같이 항vs당 비교인걸 알면서도 시간에 쪼들려서 쟁점 못잡고 처분성만 논했을까.
정말 아는만큼 쓰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노동법을 잘썼으니까 혹시모르는 기대를 했다.
그래도 행정쟁송 답은 다맞으니까 혹시모르는 기대를 했다.
결과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괜찮게 썼다고 느꼈던 인사에서 52.23점이 나왔다.
노동법도 예상외로 점수가 높게 튀지 않았다.
단순히 인사는 암기해서 열심히 써놓는걸로는 점수를 주지 않는 과목이구나,
노동법은 62.4점이긴 하지만 더 높은 점수 나올줄 알았는데 포섭과정에서 단순 줄글로 포섭하는건 고득점에 한계가 있구나,
행쟁은 답보단 쟁점을 잘 찾는게 중요하구나 느꼈고(2문에서 변경명령재결 일반론 포섭은 사례집처럼 잘했는데 여전히 왜 점수가 낮은지 모르겠다)
경조는 그냥 책에 있는거 그대로 암기해서 쓰면 딱 60점정도 나오는구나 느꼈다.
다시 노무사시험을 준비할지 안할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인사관리 0기를 다시 들어볼 생각이다.
책대로 정말 잘썼다고 생각했는데 점수가 상상이상으로 저점이 나오는걸 보고 , 단순히 열심히 외워서 잘쓰고오면 합격할줄 알았던 나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지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시 0기를 듣고도 뭔가 깨달음이 없다면 아마 이 수험은 그만둘듯 싶기도 하고, 미래는 모르겠다. 뭘하면서 살고있을지..
사실 이 시험을 불합격 한거보다는 나는 그녀에게 다시 전화해서 만나자고 얘기할 수 없다는게 더 마음이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사실내가 바랬던건 메디컬도, 돈을 많이버는 것도 아니고 ,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롤챌린저를 찍었을때, 프로게임단 연습생으로 입단했을때, 작고 오래된 구축아파트를 샀을때도, 현금으로 1억을 모았을때도 물론 좋았겠지만 그녀를 만났을 때 만큼 행복했을 때가 없었고 , 그녀와 헤어졌을떄만큼 아팠을때가 없다.
단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이카페에서 글 쓸일은 없을 것같다.
다른 삶을 살든,노무사를 계속 준비하든 그저 열심히 해야할 것을 할 것 같다.
아 혹시나 노무사를 준비하게되면 모고자료같은거 얻으러 매매/교환 게시판에 올수는 있긴하겠다만
더이상 자유게시판에 글쓸 일은 없을거같다.
그냥 문득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남에게 알리고 싶은건 아닌데
그냥 글쓰면서 그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다시 회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들은 왜 별것도 아닌걸로 지랄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인생에서는 가장 행복했었고 아팠던 순간들이었다.
합격자든 불합격자든 다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수험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진정으로 바랬던것은 메디컬도,프로게이머도,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 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녀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 행복했으면 좋겠고 , 이글을 보는 다른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수험기간을 함께 했던 사람과의 이야기를 그냥 해보고 싶었다.

첫댓글 몰입해서 잘 읽었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든 후회없는 선택하시길 바라며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11.20 21:49
긴글이지만 애틋하네요
수험가의 통설은 가는여자 잡지 말고 오는 여자 막지 마라 입니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시겠죠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11.20 23:00
진짜 멋있으신 분이십니다.. 적어도 어깨피고 고개들고 살 자격은 충분하십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마음이 회복되실겁니다. 아직 30은 뭘해도 좋은나이니 어느방향이든 나아가면 잘하실분 같으세요. 화이팅 입니다.
저도 비슷한 나이에 도전하고 있는지라 글을 읽는데 울컥하네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실겁니다 분명..앞으로의 길을 응원할게요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힘냅시다!!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했습니다. 국내/해외 여행에 대해 굉장히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의 행복해하셨을 선생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지막 문단이 압권이네요. 인생의 진리를 몇 문장에 바로 압축시켜버리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엔 막다른 길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거 깨고 넘어가셔서 또 새로운 길을, 지금껏 그래왔듯 멋지게 개척해나가실 거라 믿습니다. 정말 그러실 것 같아요.
온 마음을 다해 선생님의 앞날에 행복이 깃들기를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