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왕의 장남인 충혜왕(1315~1344. 재위 1330. 2~1332. 2. 1339~1344)은 부왕의 선위로 16세에
보위에 올랐다가, 성정이 포악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즉위 2년 만에 폐위된 전력이 있었다.
1339년 부왕이 죽자 다시 즉위했지만, 부왕의 후궁인 수비(壽妃) 권씨와 몽골인 왕후 숙공휘녕공주를
잇달아 강간하는 등 패륜만 저질렀다. 견디다 못한 수비 권씨는 자살했으며, 공주는 충혜왕의 만행을
낱낱이 기록하여 원나라 황제에게 고해바쳤다. 서모까지도 강간한 자였으니 민간의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
원나라 황실에서는 감사관 두 명을 급파하여 충혜왕과 그에게 강간 등 황음한 짓을 하도록 부추긴 몽
골인 및 고려인 측근 20여 명을 묶어 원나라로 압송했다. 고려의 모든 권력은 충혜왕에게 강간당했던
숙공휘녕공주에게 넘어갔다. 그녀는 충혜왕이 자신을 강간할 때 방관했던 자들을 유배하고 중신들을
대폭 교체했다. 구금되어 있던 충혜왕은 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인 고려인 기씨의 도움으로 연경을
탈출하여 1340년 4월 귀국했다.
그러나 충혜왕은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왕족이고 귀족이고 민간이고 가리지 않고 반반한 여
자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했다. 그의 주변은 반반한 여자들을 잡아다 바치거나 정보를 제공해주고 포
상금을 받아가는 자들로 들끓었다. 심심풀이로 민간의 재물을 약탈하고, 연일 연회를 열어 신하들과
함께 음탕한 짓을 즐기는 등 非行은 끝이 없었다. 동복형제인 충혜왕과 공민왕은 제27대 충숙왕과 고
려인 공원왕후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같은 혈통에다 함께 연경에서 자랐지만 불가사의할 정도
로 성향이 정반대였다.
기황후의 오라비 기철은 충혜왕의 죄목을 상세히 기록하여 원나라 황실에 고변했다. 원나라 황제는
충혜왕을 체포해오도록 명했다. 고려에 파견된 원나라 장수들은 충혜왕의 측근들을 모조리 베고 그
를 연경으로 끌고가 변방에 유배했다. 충혜왕이 끌려가자 기철은 충혜왕의 애첩을 포함한 측근 120
여 명을 궁에서 추방했다. 1344년, 충혜왕은 유배지에서 독살당했다. 충혜왕은 고려인 3명, 몽골인 1
명 등 4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제1비인 몽골인 정순숙의공주가 제29대 충목왕을, 제2비인 고려인 윤
씨가 제30대 충정왕을 낳았다.
충혜왕의 장자인 충목왕(1337~1348. 재위 1344~1348)이 7세에 즉위하자 충목왕의 모후인 몽골인 정
순숙의공주가 섭정을 시작했다. 공주는 충혜왕이 내린 모든 왕명을 폐기하고 그의 측근들도 모조리
참수하거나 유배했다. 공주는 그 동안 자신을 보필한 인사들을 요직에 앉혀 국정을 장악했다. 어린
임금은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잘 익혔으며, 공주는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학문을 보급하는 등
성실하게 섭정 직을 수행했다.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문란한 조세제도를 복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13
48년 8월 충목왕이 각중에 와병하더니, 모후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 11살의 어린 나
이에 숨을 거두었다.
충목왕의 급서로 이복동생인 충정왕(1338~1352. 재위 1348~1351)이 10세에 보위에 오르자 죽은 충
목왕의 모후인 몽골인 정순숙의공주와 충정왕의 모후인 고려인 희비 윤씨 사이에 차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공주는 원나라의 고려 통치기관인 정동행성을 기반으로, 희비는 새로 설치한 경순부를 기
반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다. 나라나 백성들의 안위는 뒤로한 채 두 여인이 건곤일척을 벌이는
틈을 타서 왜구가 대거 고려를 침공했다. 해안에서 소규모 노략질을 벌이던 왜구는 조정에서 이렇다
할 대응이 없자 내륙 깊숙이까지 침투하여 점점 과감하게 노략질 규모를 확대해나갔다.
몇 차례에 걸쳐 고려가 거덜나게 생겼다는 보고를 받은 원나라 황제 순제는 충정왕을 폐위하고 1351
년 10월 제28대 충혜왕의 동복동생인 왕기를 고려왕에 책봉했다. 제31대 공민왕이다. 말기에 이른 고
려는 충혜왕과 그의 두 아들인 충목왕‧충정왕이 차례로 나라를 통치한 21년 동안 기강이 완전히 무너
진 무질서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00년 가까이 자행된 원나라의 부당한 간섭이 빚어낸 적폐
였다. 세 왕은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원나라의 꼭두각시였을 뿐 고려와 백성들을 위한 왕은 아니
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원주 지인의 집으로 초대받아 1박2일의 일정으로 다녀옵니다. 지난 2월~3월 방콕의 팍총 리조트 여행을 함께한후 몇달만의 회우라 재미난 뒷얘기로 가든파티의 숯불구이가 더욱 밤 운치를 더할것 같습니다. 잠실에 집이 있지만 원주의 별장이 편하고 좋다며 자리를 잡은 20여년의 전원생활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건설사 임원출신 이어서 일찍부터 선택한 노후의 장만이 섬유사 보다는 다른 각도 였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