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한복판에 있는 볼리비아의 정식 국명은 ‘볼리비아 다민족국(스페인어 Estado Plurinacio
nal de Bolivia )’이다. 국명에 국민의 다양성을 명기한 나라는 볼리비아가 유일하다. 행정수도(라파
스)와 사법수도(수크레)를 별도로 가지고 있는 나라도 볼리비아뿐이다. 볼리비아는 동쪽과 북쪽은
브라질에 감싸여 있고 동남쪽으로는 파라과이, 남쪽으로는 아르헨티나, 서쪽으로는 페루 및 칠레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볼리비아는 잉카제국의 일부였는데, 1532년 스페인에 정복되어 3세기 가까이 식민통치를 받았다. 18
09년 스페인人인 시몬 볼리바르 주도로 독립을 선언한 뒤, 16년에 걸쳐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인 끝
에 1825년 볼리비아공화국을 수립했다. 이때 파나마‧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 등도 함께
독립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볼리바르를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으며, 볼리비아라는 국명도 그
의 이름에서 따왔다. 볼리비아는 2009년 헌법을 개정하여 국명을 볼리비아공화국에서 볼리비아 다민
족국으로 바꾸었다.
볼리비아의 면적은 109만 9천㎢로 남한의 10배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는 고산지대가 많아 인구(2
016)는 1089만 명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산은 ‘네바도 사하마산’으로 6542m다. 3세기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전체인구 가운데 백인이 15%에 불과한 것은 살기가 그만큼 빠듯하기 때문이
다. 2016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3105달러에 불과했다. 볼리비아도 독립할 때는 태평양까지 국토가
닿아 있었는데, 1879년 칠레와 벌인 전쟁에서 패하여 태평양 연안의 비옥한 국토(4만 1799㎢)를 칠레
에 빼앗기면서 내륙국이 되었다.
볼리비아에는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해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전체인구 중 케추아족이
250만 명가량, 아이마라족이 200만 명가량 살고 있으며,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족인 메스티소가 가장
많은 300만 명가량 살고 있다. 그 밖에도 치키타노족 18만 명, 과라니족 12만 5천 명 등 다양한 소수
부족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 과라니족은 영화 《The Mission》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
지역의 지배권이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교체되면서, 당시 교황에게 반기를 든 포르투갈의 신교도들
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내용이었다.
티티카카호수는 불리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볼리비아-페루 국경에 걸쳐 있어 40%는 볼리
비아에, 60%는 페루에 속해 있다. 티티카카호수는 세계 호수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3800m에 위치하
고 있다. 최고 수심이 274m에 이르러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는 이 호수에서 해군 훈련을 실시한다. 티
티카카호수에는 갈대로 지은 우로스라는 인공 섬이 있는데,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우로스로 들어가
갈대로 만든 집에서 며칠 동안 지낼 수 있다. 원주민들이 만들어놓은 관광명소다. 집 안에는 전기를
끌어다 냉장고 TV 등 문명의 이기까지 설치해놓아 며칠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
우유니고원은 티티카카호수와 쌍벽을 이루는 관광명소다. 세계 소금광산 중 가장 큰 우유니소금사막
을 비롯하여 사시사철 홍학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는 콜로라다호수,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활화
산, 사막여우가 사람을 힐끗거리며 먹이를 훔쳐가는 모래사막 등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충청남도보다 넓은 면적(1만 2천㎢)의 우유니소금사막은 단연 인기 짱이
다. 우유니소금사막은 바다가 융기하여 안데스산맥을 이루면서 그 일부에 형성된 한반도 1.7배 크기
의 알티플라노고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고원에는 산맥이 융기할 때 함께 솟아올랐던 바닷물이
고여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물은 차츰 증발하고 소금만 남아 세계에서 유일
하게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짜로 걷어내는 소금도 짭짤한 수입원이다.
2015년 10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및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아이마라語 연구단>은 3년에 걸
친 연구 끝에 아이마라語를 한글로 쓸 수 있는 표기법을 완성했다. 아이마라족은 볼리비아에 200만
명을 비롯하여 이웃 페루와 칠레 등에 모두 300만 명가량이 살고 있는데, 고유한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 오랜 세월 불편하게 살아왔다. 아이마라족의 지도자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도입
했다는 뉴스를 보고 라파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의뢰하여 아이마라語에 맞는 한글을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구단은 실생활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한글 표기법과 함께, 모바일 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한글 입력기까지 개발하여 최대한 빨리 한글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300만 명의 아이마라족이 모두 다 한글을 배우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
나 찌아찌아족보다는 훨씬 진척이 빠를 것으로 기대되는 게, 찌아찌아족은 불과 7만 명인데다 한글
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게 아니라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원봉사 형식으로 가르쳤다. 그에 비해 아
이마라족은 인구도 훨씬 더 많은데다 공식적으로 연구단을 설립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한 끝에 생활용
어와 모바일 기기 사용이라는 복합적인 방법으로 출발했다. 널리 보급되어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
다. 2015년에 이 뉴스를 메모해놨는데, 잊고 지내다가 오늘 우연히 발견하여 여기 소개한다.
볼리비아에서는 2006년 에보 모랄레스(1959년생)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가 스페인 식민지로 전락한 이래 500년 만에 탄생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다.
그도 아이마라족이다. 모랄레스는 축구광으로도 유명한데, 2008년에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볼리비
아의 2부리그 소속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FIFA 랭킹은 우리(61
위)보다 높은 57위다. 그러나 주변에 세계적 축구강국이 즐비하다 보니 본선에는 1930년 우루과이, 1
950년 브라질, 1994년 미국 등 아메리카대륙에서 벌어진 대회에만 3회 출전했을 뿐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