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을 점점 더 벗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헤어, 화장,패션 등등 머피소 시절부터 몇 달에 걸쳐 차근차근 벗어가면서 '코르셋 비용'이 점점 줄어들었고 수중에 남는 돈이 생겼다. 읽고 싶던 책을 잔뜩 사고 좋아 하는 식당에 가는 횟수가 늘었고 TV 다시보기 유료결제 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 사소한 여유들을 만끽하다 내 코르셋비용을 계산해 봤는데 어떤 생각이 들어 좀 길고 지루한 글을 쓰게 되었다. 중간 중간 패스하더라도 끝까지 읽어줬으면 한다.
거두절미하고, 나의 코르셋 지출 내역을 적겠다. 웜련들도 여기에 추가 항목 정도만 간단히 넣어서 계산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글이 길면 이 부분은 패스해도 될 듯 하다.
스킵한 코르셋들은 헤어부문, 화장부문, 패션부문 위주로 적겠다. 난 손톱이 약해 네일을 하지 않았는데 네일 하던 련들은 그 비용을 추가해보고 피부과나 에스테틱 다녔던 련들도 추가해 봐라. 렌즈 끼는 련들은 렌즈 비용도 포함해라. 성형이나 뭐.. 외에도 알아서 ㅇㅇ
스킵한 것들의 비용 (직접 쓰던 제품) :
인터넷 최저가로 적겠다. 세일할 때 산 것도 있지만 백화점 가서 제 값 다 주고 산 것들도 많기 때문에 그게 그거 일듯 해서 치밀한 계산까지는 안하기로. 귀찮음. 백원 단위 이하로는 빼버리겠음. 6달치 기준으로 적었다. 어차피 기초도 색조도 피부 덜 나빠지라고 다 못써도 6개월에 한 번은 새로 샀고 더 빨리 소모한 것들도 있으므로.
지금은 편한 레깅스나 직업상 입어야 할 바지에 티셔츠 +아우터만 걸치고 신발은 운동화만 신고 있다. 예의 차려야 할 곳에 갈 때 신을 점잖은 굽 낮은단화는 구비해 놓음. 난 직업상 옷이 소모품인지라 코르셋과 상관없이 자주 사는 편이다. 그래도 모임용 코르셋st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안 사게 되어 두 달에 10만원은 덜 쓰는 듯하다. 6달치로 계산하면 = 30만원
코르셋 바짝 조이는 연령대를 20세~ 60세로 잡았을 때2015년 기준으로 여성 인구수는 대략 1480만명.
300만원을 곱하면 14,800,000 * 3,000,000 = 4440000000
44조 맞노? 나련 다섯 번 읽었다. 내 눈을 못 믿겠다.
난 저 금액을 보는 순간 난 납득해 버렸다. 나라에서 여자들에게 코르셋을 입히고 후려친 이유를 말이다. 코르셋이 한국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것도. 우리가, 여자들이, 코르셋을 입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기업이 사라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우리는 시장을 돌리는 주 고객층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할까. 이유는 하나다. 우리는 주축이 아니라 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탄광의 석탄을 캐면서 탄광의 고통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고마운 탄광이라며 기념비를 세워주는 사람은 없다. 석탄이 바닥난 탄광은 결국 버려진다.
분명히 44조보다 훨씬 많을 거다. 난 다섯 배 까지도 본다.남자들이랑 다르게 여자들은 비누 대신 바디워시를 써야 하고 향긋한 바디로션을 발라야 하고 항상 향기 나도록 향수와 코롱을 뿌린다. 추우면 따뜻하고 간편한 목도리 대신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백화점표 캐시미어 머플러를 둘러야 한다. 때 안타고 따뜻한 아웃도어 패딩이나 점퍼 대신 관리비도 많이 들어가는 울 코트와 가디건을 입어야 한다. 따뜻하고 편한 방한화 대신 금방 망가지고 불편하지만 예쁜 가죽부츠를 신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초과소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을 것이다. 난 20~60세만 계산했지만 이런 식의 과잉소비는 영유아기 시절을 제외한 온 일생동안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은 별로 많지 않다.그러나 필수품만 팔아선 돈을 많이 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 없다. 경제가 발전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구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와 과학의 발달이 맞물려 생활 보조품들이 나왔다. 냉장고나 세탁기, 식기세척기, 가스레인지,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 말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하지만 코르셋은 다르다. 코르셋은 내 삶을 고달프게 하고 내 멘탈을 망가트린다. 우리는 왜 코르셋을 입을까? 왜 저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일까?
혹시 내가 멍청해서, 바보라서 코르셋을 입었던 것일까?내가 정말 저게 힘든 줄 몰라서, 내가 힘든지 안 힘든지 조차 판단할 줄 몰라서, 심지어 즐겁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던 걸까?
난 고양이를 키운다. 난 내 고양이를 사랑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고양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고양이답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난 고양이의 발톱을 제거하는 수술이 비인도적이라는 것을 안다. 성대수술이 나쁘다는 걸 안다. 고양이의 털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밀어버리는 행위가 고양이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을 안다. 고양이의 수염을 제거하면 굉장히 불편해지며 그런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이라는 걸 안다. 고양이를 염색 하는 행위도 순전히 사람만을 위한 일이며 고양이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지탄했다.
그러나 난 그 일들을 내게 행했다. 난 자학하고 있었다.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 모르지 않았다. 난 그 행동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고 불편만을 초래한다는 걸 판단할 줄 알았다. 구두를 신다 발에 물집이 잡혀 아파할 때는 운동화가 신고 싶었다. 화장독이 올라 피부가 뒤집어질 때는 민낯으로 다니고 싶었다. 짧은 치마에 스타킹만 신어 달달 떨 땐 기모가 두둑이 들어간 바지를 입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브래지어를 벗고 편함을 느꼈다.난 모르지 않았다. 무엇이 편하고 행복한지 잘 알고 있었다.그렇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몸이 편해지면 비아냥대는 소리를 들었다. 학대하지 않으면 나를 깎아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섭고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코르셋이라는 갑옷을 입었다. 갑옷은 무겁고 딱딱해 온 몸에 물집이 잡혔지만 안전했다. 갑옷을 입지 않으면 나는 누구나 막대해도 되는 존재가 됐고 반항조차 용인되지 않았다. 공격당하고 싶어서 갑옷을 입지 않은 거라며 되려 욕을 했다. 나도 당했다. 내 친구도 당했고 내 동생도 당했다. 그 공격은 나이 먹은 여자도, 돈이 많은 여자도, 권력을 가진 여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무서웠다. 그래서 입었다. 나를 정말로 괴롭히는 것은 코르셋을 입지 않았을 때의 멸시어린 눈길과 깎아내리는 말이었지 코르셋이 아니었다. 코르셋은 내 방어수단일 뿐이었다. 견고한 코르셋은 나를 안전하게 했다. 난 날 지켜주는 이 갑옷을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멋진 갑옷이라고 자랑했다. 멋진 갑옷을 입은 모습을 뽐냈다. 각종 카페에 가입해서 더 멋지고 튼튼한 갑옷을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경쟁했다.
난 내가 코르셋을 입었던 것이 부끄럽지 않다. 코르셋은 나를 공격하는 악의 무리로부터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흔적이다.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쳤기에 코르셋을 벗을 수 있었다. 날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나를 갑옷으로 가두는 법이 아니라 내가 강해지는 법을 택할 수 있었다. 난 더 강해질 것이다. 코르셋이 단 한 순간도 필요하지 않도록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첫댓글 ㅇㄱㄹㅇ
나도 코르셋 하나하나 벗어야지.
와... 이런 쪽으론 생각 안해봤는데 와..
눈물난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