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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샤먼의 고향, 바이칼의 심장 알혼섬 글/사진:이종원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푸른 눈으로 통한다. 눈 속의 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 눈동자가 바로 알혼섬이다. 그 눈동자에는 비밀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의 7개 신비스런 장소중에 최고이며 육당 최남선은 한민족의 시원으로 알혼섬을 지칭하고 있다.
바이칼 호수의 원주민인 브리아트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알타이어를 사용하며 맷돌이 있고, 장승이 서 있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내려오며, 샅바를 잡고 넘어뜨리는 씨름을 하며, 곰을 숭상하는 토테미즘이 남아 있고 강강술래, 세형동검, 마고자 등 남의 땅이라고 하기엔 우리와 흡사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알혼~알 같은 섬에 혼이 묻어 있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나 박혁거세의 출생의 비밀의 원천은 알혼섬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몽고인종의 발원지며 신화의 산실이다.
알혼섬은 동아시아 샤머니즘의 뿌리며 영적인 에너지의 집결지다. 지금도 전세계 무당들이 기를 받기위해 지금도 알혼섬을 찾을 정도다. 우리 토종 무당도 이곳에 와서 며칠이고 머물며 바이칼의 기를 얻는다고 한다.
바이칼의 속살인 알혼섬을 다녀오지 않는다면 여행의 반을 놓치는 셈이니 꼭 가길 바란다.
알혼섬은 칼모양의 바이칼호수를 빼닮았다. 호수의 축소판인 알혼섬은 어머니 자궁속에 들어간 태아처럼 바이칼로부터 자양분을 받는다.
알혼섬까지는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호수 주변에 험준한 산이 솟아 있어 에둘러 돌아가야 한다. 북서쪽으로 바얀다이까지 대평원을 달리다가 남서쪽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거리는 300km 지만 도로가 좋지 않고 배을 갈아타야 하기에 넉넉잡고 6~7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시베리아 들녘에서 꽃도 감상해야지 노상에서 점심까지 먹는다면 가는데만 하루 일정을 잡아야한다. 알혼섬 내부도 볼 곳이 많기 때문에 1박 2일도 빠듯하다. 되도록 2박 3일 일정으로 여유있게 보는 것을 권한다.
출발은 이르쿠츠시다. 300여 곳의 물줄기를 받아낸 세게의 우물 바이칼, 호수물이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강이 앙가라강이다. 그러고보면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 북쪽 출구 달문을 빠져 머나먼 유랑을 거쳐 송하강으로 흘러가는데 앙가라강은 역시 북쪽으로 흘러 북해로 빠져나간다. 사랑의 자물통은 만국공통인가보다.
이르쿠츠크 시 외곽인 후모또바라. 야외 노천시장이 있어 섬에 들어가기 전 장을 보기에 좋다. 캠프화이어를 한다면 이곳에서 감자를 구입해 알혼섬에서 구워먹으면 된다. 뒤편으로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어 간식거리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러시아산 과자는 달고 느끼하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일게다. 술꾼의 천국으로 러시아답게 다양한 술을 판다. 보트카, 맥주가 흔한데 술의 나라 답게 3리터 맥주까지 보인다. 다양한 맥주를 구입해 맛보는 것도 체험
러시아의 신라면 맛은 어떨까? 40도 더위의 인도에서나 -40도의 시베리아에서도 한국산 라면을 보다니
역시 러시아에서는 팔도 도시락면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러시아 컵라면 80%를 차지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한국에서는 신라면의 위력에 눌려 거의 기를 펴지 못했는데 러시아에서만 3억개가 팔렸단다. 국토가 넓어서일까 컵보다는 널찍한 도시락 모양이 잘 팔리니 말이다.
오리온 초코파이 역시 러시아 파이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빙그레의 꽃게랑도 인기 만점이다. 한국은 새우깡 인기가 있는데 전반적으로 농심의 인기는 시들시들, 노란뚜껑 오뚜기 마요네즈는 오뚜기 생산하는 마요네즈의 1/3을 러시아에서 소비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무래도 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해 이렇게 기름진 음식이 맞나보다.
이 먼 러시아에서 한국의 먹을거리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먼 동토에 한국제품을 누가 홍보를 했을까, 춘천닭갈비는 면회 온 가족들이 입소문을 내 유명세를 탔듯, 우리기업이 홍보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보따리상이나 선원들이 스스로 홍보맨이 된 것이다. 1991년 러시아 어선들이 선박수리차 부산으로 입국했다가 꽃게랑을 가지고 귀국한 것이 오늘날 러시아 전역에 펴졌다. 도시락면은 보따리 상들이 팔면서 수출로 연결되었고 지금은 현지 공장까지 갖추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의 입맛은 우리와 같단 말이다.
알혼가는 길은 장쾌하고 짜릿하다. 끝없는 초지가 이어지며 자작나무 숲이 드문드문 보인다. 7월에 찾으면 온통 화원이라는데 잠시 눈을 감고 그 황홀한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중국 우루무치와 서안을 연결하는 길이 이렇다. 실크로드의 고즈넉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곳 초원길도 마찬가지. 그저 대륙의 장대함만 전해올 뿐이다. 아리랑 쓰리랑 굽잇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광경이다. 저편에 선만 그으면 길이 연결되니 길 내기 얼마나 쉬울까.
길 곳곳에 러시아식 성황당에 여럿 있다. 러시아 장승인 세르게는 하늘을 향해 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쌀을 뿌리고 담배, 동전 등을 올려 놓으며 여행의 안전을 기원한다. 우리네 고수레다. 도로에는 은근히 이런 세르게가 많다. 소원을 빌며 그 소원이 끊어지지 않도록 형형색색의 리본으로 단단히 묶는다. 은발의 러시아 사람들도 돈을 놓고 두 손을 모우고 기도를 하니 영 어색하게 보인다.
담뱃불 조심, 음주금지 등 포스터도 귀신이 등장한다.
세르게 옆은 자작나무 숲.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색이 곱다.
다시 또 평원을 달린다. 대머리에 드문드믄 보이는 머리숱처럼 자작나무 숲은 그만큼 소중하다.
시베리아 대평원 길. 끝이 보이지 않는다.
1년중 반이 혹한이니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오로지 목축업밖에 살길이 없다. 소와 말들이 뛰어논다.
브리아트족의 자치구 오스찌아르다, 백마를 탄 장군같은데 콧날이 오똑한 것을 보니 브리아트 사람이 아니라 서양얼굴을 하고 있다.
브리아트 민속박물관
민속박물관에는 금장신구, 뼈, 의복, 그림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 혼례식과 제사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포기.
비안다이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면 알혼 가는 길이다. 역시 초지가 펼쳐졌는데 아까보다는 자작나무숲이 많아졌다.
자작나무 아래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곳에 터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고려인이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 깻잎과 김치를 보니 힘이 솟는다. 고사리 맛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일행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왠지 난 이 길을 걷고 싶었다. 버스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베리아 대륙을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소와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평화 그 자체다.
소가 건초를 나르고 있었다. 벌써부터 겨울을 대비하고 있나보다.
그림의 수채화처럼 드문드문 자작나무가 보인다.
거의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달려보기도 하고 길 한가운데 눕기도 했다. 시베리아의 대지는 내 투정을 받아줄 정도로 넉넉했다.
자작나무 잎은 세상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황금이었다.
이런 지평선을 꿈꾸었단 말이다. 이번 여정에서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일몰을 볼 수 있을까
모처럼 승용차가 한 대 달려온다. 도로 한가운데를 내주며 비켜선다.
그 뒤로 내가 탈 미니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내가 꽤 걸었나보다. 미래관광이라는 한글을 달고 러시아 태평원을 달리고 있다. 대지의 기운을 마음껏 받은 난 버스에 올라타 다시 알혼을 향했다.
이번에는 자작나무 숲이 캔버스에 등장했다.
코발트 하늘을 콕콕 찌르고 있는 모습에 그만 버스를 세우고 말았다.
쭉쭉 내뻗은 자작나무 숲길
폼 한번 잡아 본다. 서울역 노숙자들도 이곳에 오면 모델이 될 수 있다.
노란 셀로판종이를 달고 있는 이쑤시게 같다.
이 천국같은 길에 들어서려고 하니~~
그림이다. 그림이야. 아쉬움을 남겨둔 때 다시 버스에 올랐다.
엘란츠에 오자 다시 초원으로 바뀌었다. 폐차와 타이어가 버려져 있는 가난한 시골마을이다. 아니 매일 색다른 그림이 펼쳐지는 갤러리 마을이랄까.
다시 포장길. 제법 높은 산이 보이는 걸 보니 호수가 가까워졌나보다. 엘란츼 주변에는 하얀호수는 염분호수다.
휴게소의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동서 냉전때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코카콜라. 이젠 모스크바의 맥도날드도 많다고 하던데
옆에 도로를 한창 내고 있는데 무려 10년째 저런 상태란다. 한국 건설사에 맡겼으면 3-4개월이면 끝냈을텐데. 딱딱한 자갈길보다 이런 흙길이 차를 보호한단다. 옆에 신작로가 있음에도 기사는 이 길로 간다.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자 버스는 우리가 북방민족임을 알아채린듯 말을 타는 것 같다. 맨 뒷자리는 유독 심해 바닥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다시 돌아올때까지 포장길은 만나지 못한다. 상하좌우로 움직여 시골버스를 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인천공항에서 산 17년산 위스키를 꺼냈다. 말을 타며 스트레이트로 독한 술을 목에 넘기니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3명이서 잔 하나로 돌려 마셨다. 그러다 보니 술병 바닥이 보였다.
아롱아롱~기분 좋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바이칼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호수가 아니라 코발트 바다다. 술기운까지 더해져 '나 걸어갈거야' 라고 호기를 부리지만 조 아래가 은근히 멀다고 할테면 하라고 한다. 다시 꼬리를 내리고 버스에 오른다. 바아칼 앞에서 객기를 부리면 안돼.
평화로운 MRS(Motors Reparir Service) 마을을 지난다. 소련시절 배를 수리한 공장이 있어 이렇게 팔뚝 문신같은 이름을 얻고 있다. 마을을 휘감아 돌면 말로에모아 선착장이 나온다.
바로 배에 올라타면 시간을 절약해서 좋고 배가 없다면 뒤에 언덕에 오르면 된다. 선착장에서 20분이 소요되면 숙소는 후지르에 몰려 있어 거기까지가는데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알혼섬 최대 볼거리인 불한바위가 마을 옆에 있어 일몰, 일출을 찍으면 된다. 다음날 북쪽 일대 알혼섬 숨은 볼거리를 보면 된다. 삼형제 바위, 하보이, 우주릐 등 삼림과 초지를 둘러보게 된다.
알혼섬의 크기는 제주도의 반으로 한라산을 하늘에서 누르고 남북을 찌그려뜨리면 알혼섬 모양이 나온다. 비스듬히 놓인 베개를 닮았다. 바이칼의 26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크며 길이는 72km로 길다.
알혼선 가기전 말로에 모어 선착장 뒷편은 기암절벽와 바이칼을 가장 절묘하게 볼 수 있는 포인트다. 구름과 바위 검푸른 호수 그리고 사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난 왜 이리 아둥바둥 살아왔을까? 절벽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대자연의 경외감에 빠진다.
저 위에서는 자신이 벼랑끝에 서 있는지 모른다. 다리를 내리지 말라고 했건만, 아랑곶하지 않는다. 나중에 사진을 보여줬더니 이렇게 위험한 곳인줄 몰랐다고 한다.
빠삐용에 나오는 수용소 섬 같다. 수심이 500m가 넘는다고 한다. 깊은 곳은 1600m, 우리가 덕유산을 오르려면 3~4시간이 걸리는데 이곳에 동전을 던지면 몇 분만에 바닥에 닿을까. 사진을 찍는 내가 다 오금이 절인다.
이 넓고 깊은 심연에 1만년의 몽고족 역사가 있고 설화와 전설이 숨어 있다.헤아릴 수 없는 실개천이 이 호수에 모여 지구 전체를 2cm 두께로 덮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지게 찍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내 사진은 이렇게 찍었다. 야속해~~
몇 시간이고 앉아 호수를 바로 보고 싶은 곳 . 바이칼호수는 세계 담수호의 20%를 담고 있으며 미국 5대호 물을 함친 것보다 물이 더 많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336개의 하천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이루지만 빠져나가는 강은 오로지 앙가라 강 하나다. 어떻게 수량이 조절되는지 아직껏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란다.
가만 보니까 백두산 북파에서 바라본 천지를 닮았다. 툭 튀어난 바위도 비슷하고
*참고자료 백두산 북파에서 바라본 천지
시베리아 날선 바람에도 굳굳히 버틴 야생화가 대견하다.
러시아 사람들의 모피옷처럼 꽃도 이렇게 털옷을 입고 있었다.
바이칼에 빠진 사람의 무덤이 아닐까.
바다에 있어야 할 갈매기가 하늘을 수놓는다.
러시아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줬더니 고맙다고 내 팔목을 잡더니 따라 오란다. 그리고는 돌을 주며 삼층으로 탑을 쌓으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이심전심으로 우린 통했다.
그 맘씨가 고마워 탑을 쌓았다. 대신 하느님께 바이칼을 보게 해줘 고맙다고 기도했다.
바닷가 염생식물도 아니고 붉은 풀이 코발트 호숫가에 피어 있다.은 삭풍에 시름시름 앓면서 콜록콜록 기침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건강하고 정열적으로 자라고 있었다.
저 멀리 알혼섬에서 바지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양쪽 지형이 바람을 막아주는 천혜의 항구가 숨어 있었다.
물은 수정처럼 맑았다. 물 한통을 얻기 위해 하루종일 사막을 가로지르는 탄자니아 원주민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중에 천국이겠지.
이렇게 물이 깨끗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보코플라프라는 새우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어 치우는데 2주일이면 사람의 뼈까지 말끔이 없앤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의 청소부가 새우라니 전설 같은 얘기가 아닐까. 어찌나 물이 깨끗한지 지름 40cm 쟁반을 수심 40m 호수안에 놓아도 육안으로 식별할 정도란다.
여러번 시도 끝에 버스가 어렵게 배에 올라탔다. 건너편까지 20분.
내가 어디서 이 물빛을 보았을까. 맞아, 통영 굴 양식장의 물색을 이렇게 파랗다. 저 산에 하얀 것은 뭘까
갈매기였다.
사람이 다가가지 일제히 비상한다. 양영훈 작가가 바이칼 새를 꼭 찍어 오라고 했는데
섬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이칼 물을 만지는 것. 바이칼 물에 손을 담그면 5년이, 발을 담그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그럼 물을 마시면~~
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길은 고운 춤사위였다. 직선길보다 굽이길이 수월하며 덜 힘이 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초원에 들꽃들로 가득찼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7월이 그렇단다. 내년 7월에 모놀답사 간다.
섬의 이동수단은 4륜봉고차. 차가 아니라 거의 탱크로 보면 된다. 길이 아닌 초지나 모래밭도 마구 달리는데 러시아 과학기술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차다. 몽고 초원의 양몰이도 말이 아닌 이 차량으로 한다고 한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차량이지만 사람이 타는 것을 잊어 버린 모양이다. 말을 타듯 승차감이 떨어지며 내부 계기판은 60년대 삼륜차 스타일이랄까.
뒤는 출렁이는 산줄기, 바다보다는 강을 닮은 바이칼호수가 알혼섬을 앞을 지난다. 초원에 딱 한그루 자작나무.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듯
나무라기 보다는 물음표 같았다. 자넨 왜 사는가? '우리가 있기 전에 우리가 오고, 우리가 있기 전에 우리가 그리워한 곳 ' 신대철 시인은 바이칼을 이렇게 그렸다.
저 나무를 향해 마구 달리고 싶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숙명이니까
백조들이 바이칼 호수로 하강에 깃털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사냥꾼이 깃털 하나를 몰래 감춰 버렸다. 결국 막내 백조만 하늘로 날지 못하고 지상에 남았다. 사냥꾼 총각과 결혼한 백조는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깃털을 내주었다. 하늘로 날아간 백조는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는 전설인데 우리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러고보니 툭 튀어나온 지형은 하늘나라 빨래판을 닮지 않았던가.
난 하늘이 만들어낸 경치에 취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또다시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번에는 초원을 마구 달렸다. 난 태초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더 갈 수 있었건만 난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소떼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인도나 중국은 소가 옆으로 지나가도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러시아 소의 성향을 모르겠단 말이다. 낯선 사람이라고 뿔로 박을까봐 거기 서서 차가 오길 기다렸다. BK박대일 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순한 소가 알혼섬 소란다. 난 믿음이 부족한가봐
바이칼의 들쥐가 내달린다. 두더지 같기도 하고
저 푸른 초원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남진의 님과 함께라면 바로 이런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뒷편엔 석호 한호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갈 길은 바쁜데 또 멈춰야만 했다. 한호이 호수가 모세의 바닷길처럼 길을 내고 있었다. 바이칼 호수안에 알혼섬이 있고 알혼섬 안에 한호이 호수가 있었다.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경포대나 영랑호처럼 밀려나온 모래가 연결된 석호다. 바다석호는 봤지만 호수석호는 처음 본다. 안쪽의 호수는 3도 이상 따뜻해 수영하기에 좋다고 한다. 양쪽을 오가며 온도차를 몸으로 느끼며 호수욕을 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생수처럼 깨끗한 민물이니 씻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야영을 하고 싶은 곳이다.
다른 방향에서
건너편 언덕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도 좋다고 한다.
산더미 같은 풀을 실은 트럭
이르쿠츠크를 출발해 8시간에 걸쳐 달려온 최종 목적지는 후지르마을. 섬사람 대부분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가장 왼쪽에 툭 튀어난 바위가 그 유명한 불한바위. 마주 하고 있는 모양이 독도 같다.
마을로 들어섰다. 밀려온 사주덕에 모래가 많다. 민박집마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 도록 산악자전거를 빌려준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젊은이들이 부럽기만 하다. 마을은 거의 대다수가 통나무집이다. 브리아트, 몽고, 한민족의 본향이건만 모두 떠나고 지금은 코쟁이 러시아사람만 보인다.
러시아는 전신주가 둥글지 않고 아니라 각이 져있다. 그래서 소가 가려울때 전신주에 긁는데 그 부위가 까맣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석양을 받은 바위는 우뚝 솟아 있었다.
먼저 불한 바위 반대편인 거북바위로 향했다. 한민족의 상징인 소나무가 벼랑끝에 서 있었다. 인간의 염원을 담은 총천연색 리본을 허리에 두르고 불한바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볼때는 한 개의 바위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두 개다.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하나되며 참과 진리가 하나임을 말해준다고 할까 검지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이 여기 있었다.
언덕에 엉덩이를 붙이고 바위를 응시했다. 편안하고도 따뜻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일조량이 풍부하다고 한다. 스위스 다보스가 일조량이 많다지만 그 곳은 높은 산 위에 있고 평지를 따진다면 알혼섬이 단연 최고다.
지구의 푸른 눈(바이칼)-눈동자(알혼섬)-홍채(불한바위). 지구의 엑기스 중에 엑기스가 바로 불한바위이기에 오늘날에도 전세계 샤면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한다.
기를 받아서일까 갈매기가 독수리처럼 보인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호변이다. 이 추운 날씨에도 수영복을 입은 러시아 사람들이 보인다. 젊은이들은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사색하며 밤을 지샌다고 한다. 한기를 느끼면 보드카 한잔 들이키고 목이 마르면 호숫물을 퍼마신다.
생각보다 모래가 고왔고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물이 맑았다. 호변을 거닐면 자연스레 발맛사지를 하게 된다.
예전 선창가 자리인가 보다. 썩은 나무 구조물이 보인다. 노을을 받은 땅은 붉게 빛났다. 불한바위는 붉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앉아 있는 사람은 많지만 소란스럽지도 않다. 구도자의 심정으로 불한바위를 마주한다.
반대편 언덕에 올랐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정월 초하루 얼음을 깨고 강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사람들이니 이런 날씨가 두렵겠는가? 눈 인사를 했더니 뭐라고 떠든다. 자기 DSLR 카메라를 올린다. 아마 같은 회사제품을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임마, 넌 니콘이잖아. 난 캐논이야"
좀 더 오르니 툭 튀어 나온 지형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거북의 머리 처럼 보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김수로왕의 출생신화가 떠올랐다.
더 높은 곳에 오르니 후지르 마을이 보인다. 알혼섬의 수호신은 불한바위였다.
반대편이다. 전세계 사진사들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포인트다. 소매물도 등대섬처럼 가느다른 목으로 연결되어있다. 안타깝게도 역광이기에 제대로 담기 힘들었다.
척박한 땅에 서 있는 나무는 인간세계와 하늘을 연결하는 무당이었다.
세상을 얼음으로 덮어놓은 빙하기때 바이칼은 열수(熱水)였다. 그러니 얼음 세상의 오아시스는 바이칼인 셈이다. 혹독한 추위를 피해 구석기인들은 유토피아 바이칼로 모여들게된다. 그러나 해빙기에 접어들자 큰 홍수가 일어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남하하게 된다. 따뜻한 곳을 찾아 흑룡강을 건너 만주까지 왔고 더 내려가 정착한 사람이 바로 한민족이다.
조선이나 고려는 '순록'을 뜻하는 말로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며 살아온 코리족은 순록의 먹이인 이끼를 찾아 만주까지 왔고 목축이 농업과 결합해 정착한 곳이 부여, 고구려다.
브리아트의 선조는 순록, 몽고는 늑대, 한국은 곰. 짐승을 숭상하는 토테미즘 사상도 바이칼에서 그 연원을 찾아야 한다.
마을쪽은 모래지만 반대편 해변은 자갈이다.
(펌) 일출사진. 햇살을 받는 바위가 영험하다.
브리아트족은 오른쪽 바위 뒷편에 호수쪽에 동굴이 바로 징기스칸의 무덤이라 신성하게 여긴다. 대대로 발굽에 가죽을 신겼을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자들은 동굴에 들어갔다 오면 다시는 출산하지 못했다고 해서 동굴 출입을 막고 있다.
너무 기가 세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해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펌)낮에 찍은 불한 바위 사진. 시시각각 물색이 다르다.
해 질 무렵. 불한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
잘 맺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바이칼의 그림자는 무척 길다.
건너편 육지, 바이칼호수, 불한 바위 그리고 연인
땅은 거북의 등짝처럼 갈라져 있다.
반대편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염원을 담은 돌이 놓여 있다. 하트도 그려져 있다. 부르한 곶의 북쪽은 알혼의 와이키키인 사리이스키다. 한여름 소나무 숲은 전세계 텐트로 가득하다고 한다.
동북아 샤면 신앙읜 근거지답게 세르게가 10개나 서있다. 파랑, 노랑, 붉은색 리본이 매달려 있다.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브리야트인 아메리카 인디안, 한국인은 DNA가 거의 같다고 한다. 그 시작은 바로 이곳.
안타깝게도 호텔은 후지르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다. 수영장, 샤워시설, 식당까지 갖춘 고급 호텔이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마을 민박집에 머물며 러시아섬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밤에도 불한 바위를 바라보며 별을 찾고 싶었고 일출, 일몰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좋은 호텔보다는 정이 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타깝게도 카운티 버스 바퀴가 모래속에 들어가 꼼짝을 못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어도 기사는 웃기만 한다. 결국 호텔에서 사륜 차량이 나와 수렁에서 차를 건져냈다.
다른 사람들은 노심초사했지만 이 때 나의 시선은 버스보다는 황금빛 노을에 꽂혔다.
해가 넘어가자 노을이 그 뒤를 이었다. 이렇게 바이칼의 하루는 저물어 갔다.
우리가 머문 바이칼 뷰 로켕. 다닥다닥 붙은 것이 판자집이나 공장처럼 생겼다. 열효율 때문에 붙여 놓은 것 같은데 옆방 소리가 다 들린다.
실내는 원목으로 꾸며져어 나무향이 솔솔난다. 전기 페치카가 있어 아주 따뜻하다.
러시아산 정찬으로 저녁을 때우고
러시아식 사우나인 반야를 즐겼다. 뜨거운 돌에 물을 뿌리면 수증기가 일어나는 습식사우나다. 혈액순환을 위해 자작나무 총채로 온몸을 때린다.
땀을 쫙 빼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감자를 구워 먹는다. 맥주와 보트카까지 들이키고 숙소에서 양주까지 들이켰다. 그렇게 먹고 마셨는데도 지치지 않는다. 여긴 바이칼이니까
이 행복한 순간이 왜 이리 훌쩍 지나 갔는지 모르겠다.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내 방을 찾는다. 그리고는 눈을 붙인다. 내일은 알혼 땅끝 트레킹을 해야 하니까~
3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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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장님~ 감사합니다. 바이칼호수의 깊이 만큼이나 깊은 감동으로 보았습니다. 내년 답사에 저곳에서 이 감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억수로 행복 합니다^^*
알혼섬으로 가는 길... 문득 터키답사때가 생각나네요, 허허벌판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 입은 호숫가 주변이 넘 아름답네요,
2013년 7월 답사 벌써부터 지둘려집니뎌~~ ^^*
네 알았어요 3부엔 또 어떤갑동적인 드라마가 펼쳐질까요~
내심 기대만빵! 저렇게 예쁜단풍은 언제가야 볼수있는걸까?
바이칼, 알혼......
너무 뜻 깊은 여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