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좌차와 독경
단 두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봉암사 청규에서도 밝혔는데 ‘좌차는 계랍에 의함’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렇지 않는 문제 같지만 산문에 처음 들어온 행자들이나, 사미들에게는 주지 지상주의로 흐르도록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안에 승랍 순으로 앉지를 않고 벼슬중심으로 앉습니다.‘벼슬을 하는 자리에는 벼슬 순으로 앉고(朝廷 莫如爵), 마을로 돌아오면 고향에서는 나이순으로 앉는다(鄕黨 莫如齒)’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속인도 나이순으로 앉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봉암사 18개 조항에도 보살대계를 보름보름에 포살하도록 되어 있는데 거기에도 보면 좌차 문제를 법랍 순서대로 앉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불사해서 돈벌이는 잘하는데, 보살계 설해 돈벌이는 잘하는데 그 좌차 하나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주지가 되었다고 새파랗게 젊은 주지들이 노장들 위에 앉는 것입니다. 그리고 3직들 앉고 7증들 앉고 노장들은 저 밑에 밀려나 있기 때문에 노장들은 기분 나빠서 큰방에 안갑니다. 이런 사례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행자들, 사미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아! 주지가 최고구나’이렇게 해서 그러한 것들을 보고 종단 분위기가 주지 지상주의로 흐릅니다. 그것이 아주 큰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비단 선방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전 종도에 해당되는 문제인데 이것은 하루 빨리 뜯어고쳐야 합니다.
좌차는 승랍 순으로 여하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다 選佛場이라 걸어 놓고 그 밑에 앉아 살지 않습니까? 어디를 가도 선불장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닭 벼슬만도 못한 자리에 소임 순으로 앉습니다. 새파란 젊은 주지가 노장들 윗자리에 앉아 노장들이 큰방에 들어갈 기분 안 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를 생각해 본다면 가슴을 칠 일입니다. 계율에도 있는 문제이지만, 이것은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에서도 언급한 문제입니다. 이게 정말 우리 종단의 큰 폐단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주문하고 싶은 규약 중에 하나는 매일 한 시간이라도, 하다못해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경전과 어록을 듣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선방이 초기에는 율원사찰이나 강원사찰에 붙어살다가 나중에 독립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 영향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座主가 있고 교수가 있고 어록에 다 등장하는 소리가 아닙니까? 좌주와 교수는 전 대중들에게 경전과 어록을 가르치는 스승이란 말입니다. 무얼 알아야 앉아 있지요. 무턱대고 앉아만 있으니 동으로 가는 건지 서로 가는 건지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참 좋은 규칙을 세워서 하신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성철 스님께서 백일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백일법문을 해인사에서 하신 건 두 번째입니다. 김용사에서 첫 번째 하시고 그 다음해에 그 원고를 조금 더 다듬어서 해인사에 와서 두 번째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해에 제가 참석을 했는데 『육조단경』을 가지고 강의를 하셨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소참법문을 하시니까 수행하는 분위기도 훨씬 좋아지고 또 뭔가 알게 되고‘우리 가는 길이 이렇구나’이런 것을 일깨워 주는 일이기에 참으로 좋은 풍토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옹 스님은 봉암사에서『임제록』을 강의하셨는데 제가 1976년에 처음으로『임제록』을 공부했습니다. 백양사에 가셔서도 어록을 수시로 강의를 하시고 그 책이나 테이프를 전국 선원에 무상으로 배포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건 꼭 주문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대표선사이신 성철 스님은 개인도서관까지 있는 스님이십니다. 한번 백련암에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올라가면 백련암 식구들이 시자하고 내려오면 제가 시자를 한철 자청해서 시자를 살며 상당히 친해져서 나중에는 스님 도서관에 가서 구경하고 보았습니다. 스님은 심지어 문학전집까지 다 읽으신 분입니다.
저는 성철 스님이 中道狂이고 讀書狂이라는 말을 감히 합니다. 충격적인 표현으로 조금이라도 자극을 주고자 합니다. 전 세계 캐논 보고서를 위시해서 보고된 일체의 과학보고서, 연구보고서 등등 백련암에 앉아서, 저기 성전에 앉아서, 김용사에 앉아서 다 읽으셨습니다. 한국에 제일 먼저 보고서가 도착한 곳이 성철 스님 계신 곳입니다. 제가‘불교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여쭈면‘宇井伯壽의 『불교대전』을 읽어라,‘영명연수스님의『종경록』을 읽어라’하셨습니다. 『종경록』이 몇 권입니까? 백 권입니다. 그걸 읽어서 불교를 알라고 부탁하신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아무도 쓸 수 없는 독서광이라는 표현을 여기 원고 안에 썼습니다. 충격 받으라고. 사실은 그렇습니다. 연구 보고서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책 중 읽지 않은 책들이 없습니다. 과연 한국불교의 대표선사이며 국민선사입니다.
임제 스님과 대혜 스님은 수선행자의 모델이지 않습니까? 스님들이 열반에 드시면 망축을 하는데‘불망본사하시고 속환사바하시어 임제문중에서 기리 인천의 안목이 되어주소서...’이렇게 축원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닮고 싶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찌 경전과 어록을 읽지 않고 살았겠습니까? 대혜 스님이 요즈음 간화선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혜 스님이 깨닫고 나서 『화엄경』연구를 새롭게 했습니다. 대혜 스님 편지를 보면 수시로 『화엄경』인용문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깨닫지 못한 박쥐범부가 그냥 흑산 악귀굴 안에 쭈그려 앉아 있어야 되겠습니까?
사실 간화선이란 것은 앉아 있는 묵조 폐단을 일으켜 세워서 동선으로, 걸어 다니는 선으로, 활동하는 선으로 만든 것이 간화선입니다. 근데 도로 쭈그려 앉아버렸어요, 어떻게 된 심판인지, 앉아 있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근데 도로 쭈그려 앉아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19일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또 이 시대의 한국불교가 처한 여러 가지 사정들을 감안해서 우리는 정말 결연히 새롭게 일어난 그런 분위기로 있습니다. 참으로 숨 돌릴 틈 없이 시기적절하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다짐하는 자리가 더욱 굳혀지고 정말 이곳이 좋은 결실로 남아서 한국불교를 살리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한마디로 선원이 살아야 불교가 살고 불교가 살려면 선원이 살아야 합니다. 선원이란 것은 기둥뿌리가 아니고, 방석이 아니고 선원 간판이 아닙니다. 바로 수선납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건물이야 어디든지 가면 다 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논의하고 연구해서 다시 꺼져가려고 하는 한국불교의 등불에 휘발유를 수억만 톤 부어서 활활 타오르도록 점화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최적의 청규가 나와야겠는데 근본정신은 과거의 선원청규라든지 18조의 공주규약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이해가 갑니다. 현재 우리는 정부보조나 특정인의 시주가 없으면 불사다운 불사가 불가능한 이런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주공약에는 소작인의 소작세나, 특별 시주를 받아쓰지 말자하는 그런 말도 있고, 삿갓을 쓰고 가사 장심을 입고 육환장을 짚고 다니자 하는 등의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스님 중의 한분이 18조항 공주규약의 방함록에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연세가 많고 주도를 했던 분이 성철 스님이고 청담 스님입니다.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이 외형이나마 그렇게 지키신다고 육환장을 짚고, 당신이 카메라를 좋아하셔서 그것들을 가지고 택시를 타는데 육환장이 택시에 들어갑니까? 문을 열고 잡고 타는 겁니다. 이런 언밸런스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조건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마시고 시원시원하게 가지 칠 것은 치고 깨뜨릴 것은 깨뜨리십시오. 이 시대는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여기 공양하려고 가져온 CD 두 장은『신수대장경』과『卍자속장경』입니다. 나무로 새기면 장경판의 두 배가 되고, 나무로 찍으면 장경판의 두 배가 되고, 한지로 찍으면 세 트럭이 되고, 인쇄물이나 활자본으로 작게 해도 우리 짐으로 하면 석 짐이 거뜬히 됩니다. 그런데 그 방대한 장경이 이 CD 두 장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산다고 하는 사실, 이것을 감안을 하고 정말 최적의 청규, 가장 이상적이고 적합한, 실천 가능한 그런 청규를 만들어야 합니다. 不作不食만 들먹거려 가면서 하는 그런 노동은 하급인력이 해도 됩니다. 가장 빼어난 삶을 살고 있는 고급인력이 무슨 부작불식에 매달려 쌀 한 톨 얻자고 가서 농사짓는 그런 얘기 이제 걷어치우자고요.
좀 더 새로운 각오, 옛날 스님들보다 더 참신하고 바람직한 그런 안이 왜 못나옵니까? 이 시대에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정신은 계승하되 제도적인 문제는 이 시대에 맞게 기술적으로 잘 보완을 해서 진지하게 논의 해서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정말 중요하고 큰일입니다. 연구하시는 분들도 또 그것을 지켜나갈 우리스님들도 참으로 무거운 짐이지만 그러나 또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고 이런 것을 논의하자고 우리가 모였으니까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면 어디서 이런 말을 합니까? 말할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어버립니다. 말을 해서는 안 될 자리에 말을 하면은 말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말도 잃어버리지 않고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감히 좀 과한 감이 있지만 선원청규 편찬의 기본방향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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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기다리고 고대했던 언문입니다. 사실이질식고 하여서 새로운 기운으로 계속해서 나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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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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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큰스님을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입니다. -()()()-
-()()()- ...........큰스님의 귀한 말씀 <삼보제자> 카페에서 올려 경책으로 삼겠습니다. 나무문수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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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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