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선도 신부님은 어느날 담담한 어조로 자신과 관련된 성소에 대하여 고백을 시작하신다. 이 고백서에는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세속에 대한 열정적 삶과 부귀를 한 순간에 내려 놓으시고 하늘나라를 섬기고 그 뜻을 받아 전하는 사제가 된 것이다. 각자 삶 안에서 신부님의 고백서 하나만으로도 삶의 위안과 용기를 얻어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기에 나눔의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리기로 하였다. 또한 노년의 사제의 어버이 같은 마음이 드러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모시고 함께 떠났던 피정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여행기도 함께 올린다.
미국으로 갈까? 아니면 신부가 될까?
내 성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도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신비인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인간을 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시는지 알 수는 없다. 당신의 뜻이라는 것 외에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6절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부르려면 직접 만나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마음에서 무엇을 느끼게 해 주신다. 그 느낌은 주님의 부르심의 표시다. 사람은 그 표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사람들은 특별한 경향이나, 고집하는 생각이나 소원이나, 향수를 통해서 마음속 깊은 데에서 그런 감동을 말 없는 하느님의 부르심의 표시라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유스럽게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도 있고 또 거절할 수도 있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 젖을 먹으며 신앙을 받았다. 내가 말할 수 있을 때부터 어머니는 아침기도와 잠자기 전 기도, 그리고 묵주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가족들은 매일매일 다 같이 기도를 했다. 나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7살 즈음에 남미에서 유명했던 리팔다 신부의 교리책을 거의 다 외웠다. 그 책에 있는 기도문을 하나씩 외울 때 마다 어머니에게 뛰어가서 책을 보지 않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어머니는 아주 사랑스럽게 나를 칭찬해주고 계속해서 열심히 배우라 했다. 나는 몇 주일 동안에 사도신경, 십계명, 칠성사, 주모경, 통회의 기도, 자비의 행실, 칠복팔단, 성령의 열매와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배웠다. 8살 때 한 첫 영성체는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의 현존과 우정을 느끼고 아침 5시 미사에는 기쁘게 복사를 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주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수사님이 여러 동네를 두루 다니면서 초등학생들을 모아 도시에 있는 마리스따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마리스따 수사가 되려 거든 자신을 다라 오라고 해 나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내가 그 수사님을 따라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고 나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하느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무시했다. 그렇지만 언젠가 신학교에 가서 사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큰형과 작은형이 벌써 신학교에 있었으니 아버지에게 신학교에 가겠다는 말할 용기가 없었다. 식구도 많고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나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도 못 가고 아버지 농자에서 병아리를 기르고 일을 하다가 도시에 나가 라디오 기술을 공부하며 가구점에서 일도 배우고 스냅사진을 찍는 일도 했다. 마침내 미국에 가려고 국경도시에 가 불법으로 넘어 갈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가 과달루페 성모님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데 마음 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 너의 자리는 세속이 아니다”
나는 그간 몇 년 동안 여러 일을 하면서도 자주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곤 했다. 성당에 가서 성가만 들으면 마음이 하늘에 오르고 사제가 되고 싶은 열렬한 소원이 생기곤 했다.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세상을 더 알 고 세속적인 성공을 하고 싶어 주님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부르심을 계속 무시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 신학교에 갈 마음이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느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때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면서 성당을 나왔다. 그날이 내가 회개한 날이다.
그날부터 과달루페 성모님을 내 성소 보호자로 모셨다. 고향에 돌아간 나는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갈까, 예수회 신부가 될까, 아니면 선교사가 될까,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했다. 세 군데 모두 매력이 느껴졌다. 생각 끝에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 입회하기로 하였다. 신학교에 간다는 것을 알리러 고향에 갔을 때, 본당 신부님은 “ 너의 성소는 네 어머니 눈물과 신학교에 있는데 네 형제의 기도 덕택이다” 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면서 이제는 형제나, 친구나, 연인이나, 어머니의 눈물까지도 내 길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일생에서 예수님이 이기신 것이다. 그때 열아홉 살이던 나는 소신학교에서 열둘, 열세 살 어린이들과 같이 공부해야만 되었다. 그것은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성숙한 어른으로서 십대 청년들과 공부했던 료욜라의 성 이냐시오를 생각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소신학교, 수련원, 그리고 대신학교, 12년 과정이 다 끝나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제서품 날이 왔다. 나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받치던 그날, 한편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평생 사제로서 주님께 충실할 수 있을지 큰 두려움이 사로잡혔다.
(과달루페 수도회 사제들과 합정동 수도원에사)
그러나 신학교 시작부터 지금가지 용기를 준 “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립 4,13 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큰 도움이 되었다. 독일로 유학 가 다른 나라 언어로 신학을 공부할 때도,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며 한국문화에 익숙하기도 전에 사목 할 때도, 환갑 지나서 로마에서 2년 동안 원목 신학을 공부할 때도, 그 외의 아주 힘든 일이 닥쳐올 때에도,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꼭 주님의 도움을 느낄 수 있다.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내 이기심과 나쁜 습관 때문에 절망에 빠질 것 같은 때에도, 바를 불러 주시는 주님께서 무능한 나에게 언제나 어려움을 이겨 나가도록 도와 주신다. 그래서 나는 목숨이 다할 때가지 이웃 안에서 마음껏 주님을 섬기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멕시코 추기경이신 형님과 함께)
1936.9.18. Birthday, Yahualica, Jalisco, Mexico.
1948 Elementary School graduation.
1948-1953 Helping my father at the country house, specially in the farm.
1953-1954 Guadalajara City, work in a forniture stor.
1954- 1955 Tijuana City, on the border with the USA. Work as a snaps photographer.
1955, october Entrance to the Minor Seminary of the Guadalupe Missioners at Guadalajara City.
1956-1959 Study at the Minor Seminary.
1959-1962 Philosophy Study.
1962-1963 Noviciate.
1963-1967 Theology Study in Bamberg, Germany.
April 16 1967 Ordination as a Catholic Priest.
1967 English Study at Colorado Springs, USA.
1967, October, Arrival in Korea.
1967-1969 Korean Language Study.
1969-1970 Sun Chon, Cho Chon Dong, Chaplain.
1970-1972 Sun Chon, Cho Kok Dong, first Parish Prist.
1972-1973 Mexico, Novice Master.
1973-1977 Archdiosis of Seoul, Song Su Dong, Parish Priest.
1977-1978 Cha Yang Dong Fisrt Parish Pastor.
1978-1979 Mexico, Novice Master.
1980 Switzerland, Vocations promotion and conscientization on Problems of the Third World.
1981 Nemi, Roma, Italy, Continual Education Course.
1982-1986 PERU, Missionary Work.
1987-1991 Member of the Genaral Council of the Missioners of Guadalupe.
1992-1996 Kwang Yu Archdiosis, Ssang Chon Dong Parish Pastor.
1996-1998 Roma, Camillianum Institut, Study of Theology on Pastoral Work for the Sick.
1998-2002 Sun Chon City, Carollo Hospital Chaplain.
2002-2006 Seoul, National Medical Center Chaplain.
2006-2008 Con De Hosptal Chaplain.
2006-2009 Sabbatic Year to work on the book about Suffering in Buddism and Christianism.
2009-2011 Huk Sok Dong, Chung Ang Hospital Chaplain.
2011-2016 Yahualica, Pastoral Work in St. Michael s Parisch.
2016 --- Sabbatic Year
2017 Golden Priestly Jubilee. April 16.
( 멕시코 가족들과 함께)
(현지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사목중이신 모습)
1936.9.18. yahualica 에서 출생
1948. yahualica에서 초등학교 졸업
1948-1953 집에 계신 아버지를 도와 농장일.
1953-1954 Guadalajara City에서 가구상점에서 일.
1954- 1955 Tijuana City의 미국과 경계지점에서 스냅 사진사로 일.
1955. 10 Guadalupe 외방선교회 소신학교 입학
1956-1959 소신학교에서 공부
1959-1962 Mexico City에 TLANPAN 신학교(대신학교 )에서 철학공부(2년)
1962-1963 Noviciate.(성직자가 되기 위한 견습생 과정)
1963. ~1967. 독일로 파견(독일의 Bamberg에서 4년간 신학공부)
1967.4.16. 신부서품성사 (yahualica대성당에서 Guadalajara주교님 모시고)
1967. 미국의 Colorado Springs에서 영어공부(6개월)
1967. 10 한국 도착.
1967-1969 한국어 공부
1967-1970 저전동본당 보좌 (순천, 광주대교구)
1970-1972 조곡동본당 주임 (순천, 광주대교구)
1972-1973 Mexico, Novice Master.
1973-1977 서울대교구 성수동 본당 주임 - 야간학교 설립 운영
19?? ~19 금호동성당(서울)
1977-1978 자양동 본당 주임- 본당 설립
1978-1979 Mexico, Novice Master.
1980 스위스에서 소명운동과 제3세계 의식화운동에 관한 문제.
1981 네미, 로마, 이탈리아에서 수학
1982-1986 페루, 선교
1987-1991 Guadalupe의 일반선교회 위원.
1992년 한국에 2번째로 다시 오심.
1992-1996 광주대교구, 쌍촌동 본당 주임
1996-1998 로마 Camillianum Institute에서 원목신학(석사) 공부.
1998년 한국으로 3번째로 돌아오셔서 원목사목 시작
1998-2002 성가롤로 병원(순천) 사목.
2002.7.2-
2005.11.23. 국립의료원 원목실 사목
2002.10.27. 대한민국 서울시 명예시민상 수상
2005.11.24 ~
2006.11.30. 건국대병원 원목실 사목
2006-2008 건대병원 사목
2006-2009 고통앞에서 (Suffering in Buddism and Christianism)"저서 발간
2006.9.18. 70세 생신
2009-2011 중앙병원(흑석동) 사목
20?? ~ 20?? 순천향병원
2011. 5.18 멕시코 본국으로 귀국
2011.~ 2016 yahualica에서 St. Michael s Parisch 사목
2014.10.14.~
2014.10.29 국립의료원 교우들과 멕시코 성지순례
2016 ~ 안식년 Sabbatic Year
2017.4.16. 사제서품 금경축, 한국에 일시 귀국 하심.
(4월 귀국하신 후 자양동성당 미사집전과 금경축 행사))
한국을 떠나신 후 국립의료원 원우들이었던 서울지구 재속회회원이며 의료봉사팀들을 멕시코로 초청해 주신다. 사랑과 환대로 꿈만 같은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일행들은 금경축 때 들어 오신다는 귀뜸을 받고 나름대로 준비를해 왔다. 그러나 일정이 문제였다. 너무 분주하신 일정이 전국에 산재되어 있어 시간내시기 어려웠지만 2박 3일 정도 말미를 주셨다. 그러나 항상 토요일 잡혀 있는 성지순례와 걸음여행이 일정이 문제라 1박 2일로 축소하여 다녀 올 수 밖에 없었다. 일자가 잡히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선을 확정한 후, 미사 집전장소, 음식, 숙박지를 모색하며 가급적 한국적인 면모가 뚜렸한 곳으로 정하였다. 모든 것을 준비한 후 모임장소를 잠실운동장역 2번 출구로 정하였다. 동행할 사람들의 동선을 배려한 결과다. 오전 6시 30분 모인 후 인사를 나눔한 후 서울을 출발하였다.
첫날 미사장소는 강원도 풍수원 성당 공소중 한 곳인 금대리 공소로 정하였다. 박데레사 수녀님께 부탁을 드려 허락을 받은 후 본인은 휴가 때라 금대리 담당 오수녀님께 모든 준비를 부탁하셨다. 출발 전일 8시 미사시간으로 정한 후 당일에도 일찍 전화를 주셔서 준비에 대하여 재차 알려 주셨다.
찬미예수님~ 그리고 라파엘 성인을 부른 후 조용하게 혼자만의 기도를 드렸다. 평화와 온유함이 깃든 피정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밀알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무심하게 흐르는 한강 거슬러 올라 달렸다. 합수점을 지나 국수를 경유하여 달리는 강변 길 늘 상쾌하고 아름답다. 도시문명에 속박된 잡다한 일상들이 씻겨나가니 마음 피정의 반은 이룬 것 같다. 금새 용두에 도착하였다. 비로서 산과 산 사잇길을 달리게 된다.횡성으로 나가는 이 길은 깊은 산중이다. 물이 풍부하다하여 붙여진 이름 豊水院! 이곳에는 강원도 천주교의 머리돌이 앉은 자리다. 천주교 믿음을 막으려 박해를 시작하여 피를 흘려 죽였지만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사방으로 퍼져 오히려 씨앗으로 성목이 되어 간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섭리다. 풍수원을 요약하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교우촌, 오래된 성당, 김대건안드레아 , 최양업토마스 신부 다음 사제가 되신 5명중 한 분이 오셔서 사목하신 곳, 강원도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 이광재 티모데오 신부님 부제로 계시던 곳으로 요약할 수 있다. 풍수원은 4개의 공소를 안고 있는데 오랜 신앙적 전통을 이어 오는 교우촌이다. 원주교구에 소속된 사제들께서 대부분 이곳 출신이 많으시다. 4개의 공소중 한 곳인 금대리 공소는 공소 아래 뜰이 참 평화로운 곳이다. 산중에 일자로 펼쳐진 전답은 육신의 양식이지만 공소는 마음의 양식이다. 종일 뜰에서 일을 하는 백성들을 사랑과 평화로 지켜주시는 형세를 지닌 금대리 공소, 소신부님의 미사집전 장소로 선택한 이유다.
시종 인자하신 모습으로 강론을 통해 복음을 마음 그릇에 담아 주셨다.
창촌 공소에 계신 박수녀님도 오시고 금대리 마을 교우분들도 많이 참석해 주셨다. 원주에서 계신 두 형제 자매님도 합류해 주시고 아침식사 대용 떡을 만들어 오셔서 미사 후 뜰 테이블에 풀어 놓고 형제적 친교를 두 수녀님과 마을 교우분들과 나눔을 갖은 후 다음 일정을 향해 길을 나섰다. 피정여행 일정은 다음과 같이 잡았다. 금대리공소 미사 - 평창용평 정강원 점심 - 월정사 전나무 숲 길 - 선재길 일부구간 트레킹 - 월정사 탐방 후 - 숲속 다실에서 차 한 모금으로 마음을 내려 놓고 -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용평 메인스타디음, 점프시설 관람 - 주문지 어시장으로 이동, 제철 횟감 여섯가지(보리숭어 등) 구매하여 식당으로 이동 회식과 저녁식사 - 숙소 양양비치로 가 하루 일정 마감~~^^.
한국음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만들어 손님도 맞는 정강원을 찾은 이유는 한국움식을 좋아 하시는 이유도 있지만 한옥이 풍기는 여백의 멋을 공유하고 싶어 선택한 곳이다. 선택이 좋았는지 다들 환호성으로 좋아들 하신다.
이곳 저곳을 안내해 드리자 가득한 미소로 답해 주시는 신부님!
세베리노가 다들 최고라 하신다. 그것은 오해다!! 사실은 신부님 최고라는 분위기 연출상 세베리노가 주문하여 도입된 액~~~~션이다. 사실 신부님은 한국에서 병원 사목을 초석을 놓으셨다. 로마에 가셔서 환갑이 지나신 연세에 원목사목에 대한 공부를 하시고 3번 째 한국을 방문하신다. 그리고 병원사목에 열중하셔서 병원사목을 보편화 시키신 것이다. 그래서 최고시다. 여러차레 최고라는 환호에 맞춰 촬영 해두었다.
귀국하신 후 전용기사 역활로 수고가 많으신 성인신 모니카 자매님과 그 조수 장영희 데레사 자매님! 분명 천주께서 축복으로 답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모니카 자매님은 성지 순례에 당분가 참석하실 수 없는 이유가 이렇게 분명하다. 샬롬~~ 수고 참 많습니다. 두 자매!
점심 후 국도를 이용하여 전나무 숲으로 왔다. 세베리노는 차를 주차 시키고 부지런히 역순으로 달려 가 신부님 걸어 오시는 모습을 앵글에 담아 드렸다. 걸음이 얼마나 산뜻하신지 놀랍다!
나는 머리를 내미는 곳이 낮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하시며 보여 주신 신부님의 익살~~ 보기 좋아! 무엇이 ? 격이 없으신 모습이 너무 좋으시다.
징검다리 건너가기가 좀~~ 그런데 이외로 신부님이 건강하고 또렸하게 훌쩍 넘으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들 박수치고 놀라는 표정들이다. 오래토록 영육간에 건강하셔요 신부님 하며 여러장의 사진을 만들었다. 왜? 화보를 만들어 드려야 하니깐요, 샬롬
연신 좋아요 세베리노씨 좋아요 하신다. 함박웃음이 너무 좋으신 신부님이 좋아요~ 속 마음으로 답례드리며
형제들을 모아 사진을 찍으며 제노베파가 빠진 것에 대해 생각하며 쾌유를 빌었다. 이 시간을 많이 기다렸는데.....아멘~~ 즐거운 계곡과 숲길 걸음을 접고
월정사 경내를 살폈다. 선지자들의 참 모습이 가득한 절집 도량은 언제 보아도 정결하다. 그리고 쉼이 없으면서도 정동중이다. 바람이 불어 숲으로 숨자 동시에 추녀에 걸린 풍경에서 맑은 소리가 마음을 깨운다. 풍경의 추는 물고기 형상이다. 물고기는 잠을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잔다. 수도자는 잠들며 안되고 항상 개워 있어야 한다는 진리가 숨은 불가의 성물이다. 마음에 울림이 다가 온다.
성물방에 들러 소품으로 여름을 샀다. 밥상을 덮는 하얀 모시 덮개, 이를 덮어두면 여름 금새 달아 날 것 같다. 순 간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생각났다. 모시 적삼과 은쟁반~~ 벌서 여름을 몰아낼 궁리 중이라니.... 신부님 얼굴에 약간 피로가 보이는 듯하여 모니카 자매님에게 다실로 모시고 먼저 가라 하였다.
작은 연등이 전나무 가지 매달린 모습이 광명으로 전해 온다. 각자 취향에 맞춰 차를 시켰다. 草衣선사의 동다송이 떠올랐다. 아무튼 여백의 쉼은 참 고요하다. 빛도 가라 앉고 맑은 계곡물 소리가 정겹고 산사의 정취도 고즈넉하고 우리들 마음도 평화롭다. 생각하고, 보고 , 느낌에 따라 평화가 스며 들고 발 길과 손끝과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따라 사랑이 고인다. 퍼득 든 생각이다. 보기 좋은 환경은 늘 사색을 바르게 이끈다. 참! 지금 시간 만큼은, 세베리노 사고의 영역이 참 맑다. ㅋㅋ. 샬롬 알렐루야~~
산사를 돌아 나와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용평으로 갔다. 이제 다시 멕시코로 돌아 가신 후 동계올림픽 모습을 보시며 우리들과 추억을 되새김하시라는 이유에서다. 신부님~~ 좋은 추억을 주셔서 무척 감사해요. 글썽거린다. 벌서 말이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그래도 슬프다. 가시면 또 뵙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일부러 이 마음을 늘리고 싶어 구비구비 대관령 옛길을 택한 후 넘었다. 내려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옛 길, 끝이 다가 왔다. 주문진 어시장에 들러 마음껏 회 잔치를 열었다. 정말 맛있게 드셨고 들었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신부님 피곤을 풀어 드리려 숙소 해수 사우나로 모신 후 하루 일정을 접었다. 숙소에 오신 후 성무일도로서 하루 일정을 정리하셨다.
자리에 누우시는 모습을 뵙고 문간방으로 와 자리에 누웠다. 내일 일정을 스크린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빠져 들었다. 그 때 신부님 목소리가 들렸다. 세베리노씨~~~ 내일 아침 미사는 7시반입니다. 나는 즉시 네~~ 알겠습니다. 신부님~~~^^^* 정말 이젠 잠이 깊이 들었다.
다음날~~^^
아무래도 익숙지 못한 잠 자리가 자주 뒤척이게 만들었다. 작은 소요의 물 소리에 잠이 깨다. 신부님이 벌써 일어나신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6시 전이다. 서둘러 자리를 갠 후 대충 짐을 정리하였다. 세면이 끝나신 후 나오시면서 반갑고 정겨운 목소리로 신부님이 아침 인사를 주셨다. 세베리노씨 잘 잤어요? 네 편히 주무셨습니까 신부님하고 인사를 드렸다.
샤워를 한 후 밖으로 나오자 신부님은 베란다에 의자를 놓으시고 아침 성무일도를 하고 계셨다. 그 때 모니카 자매님과 데레사 자매님이 미사보와 초를 들고 찾아 왔다. 식탁에 미사준비를 마련 한 후 초에 불을 붙일 라이터가 없어 마트에 가 사 온 후 포도주를 따르기 쉽게 열어 놓았다. 그리고 갖고 온 종을 살며 시 제대 옆에 놓아 두었다. 모두 모여 입당 성가를 부르며 사제를 모시고 아침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아침식사 대신 과일과 차를 나눔 한 후 짐을 챙겨 차에 실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다가로 나갔다. 오늘 일정은 숙소 출발 - 학사평으로 이동 두부음식으로 식사 - 설악동 권금성행 케이블카 탑승 설악권 조망, - 미시령 - 용대리 - 백담사와 숲 길 걷기 - 만해마을 - 게세마니아 - 서울이다.
바람은 참 모질었다. 바람이 이렇게 불어대니 비가 모자랄 수 밖에 없다. 원래 습도가 놓은편인 양양, 실내에선 답답할 정도로 숨익 막혔는데, 밖으로 나오니 너무 상쾌하였다. 밝은 모습을 보니 자유란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상에서의 탈출 만이라도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데, 항상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벗어 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해답은 복음 안에 있다. 믿으며 따르고 내 안에 항상 모실 수 있다면 그와 동시에 진리안에서 자유를 얻게될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모두 앉았다.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만들었다. 사람을 나와 너로만 나눈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우리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더 삭막하지만 형제적 친교로 나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조합은 없는 것 같다. 형제적 친교~~ 그런 마음으로 신부님에 대한 존경심을 보태어 피정 여행을 떠나 온 것이다.
개인사진을 만드는 시간을 갖었다. 좀 딱닥한 구도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정 부분 액션을 주문하여 얻은 사진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자 날아갈 것 같은 모니카 자매님을 꼭잡고 지켜주는 모습, 데레사 자매님의 모습이 보기 좋은 그림이 되었다. 때론 상대의 발, 손, 눈, 마음이 되어 줄 수 있다면 불화나 시기, 다틈 등도 사라질 것이다.
모래사장으로 나가는 길에 보기 좋은 항아리가 있어 일행을 붙잡았다. 벼란간 깊은 산골 박해를 피해 살며 옹기를 굽고 팔아 연명하던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던 거룩하신 순교자들이 떠 올랐다.
사진촬영에 있어 주제도 중요하지만 주제 못지 않게 중요한 것도 부제다. 서로 상생하는 관계다. 부제의 역활에 대하여 진수를 보여준다는 뜻에서 시작한 악동 모습이 결국 신부님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어 드렸다. 모두 유쾌한 시간이다.
스페인 유명 건축가 가우디 모자이크를 흉내낸 조형물 의자에 신부님을 앉으시라 권해 드리고 살펴 보니 조화가 보였다. 아름다운 상생이 편안했다. 함께라는 의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 좋음이다. 모두라는 단어도 좋은 단어 이지만 모임에 드는 사람은 우선 기본적 소양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을 우선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우선 듣는 입장이 고수되어야 한다. 신부님이 꼭 그러하신 분이시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 많은 노력을 하시는 사제이시며 모든 신자들의 이름을 꼭 기억하신다.
동행하는 형제들을 불러 함께 모이도록 한 후 신부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도록 도모했다. 그리고 해안선을 걸어볼 겸 울타리 밖으로 나가도록 권유하고 난간에 기대에 포인트를 기다렸다.
어린양들을 이끌고 가는 형상이 잡혔다.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가 일직선이 되도록 한 후 셧터를 길게 눌러 이 사진을 만들었다.
두 장의 신부님 독 사진, 기분 좋으신 모습과
무엇인가 사색이나 묵상을 하시는 듯 분위기가 연출되셨다. 분명 이 바다물은 신부님 멕시코 해안과 연결되었을덴데... 그 말씀을 들릴까 하다 멈춰다. 그리고 다음행선지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모래가 뭇은 바지단과 신발을 에어블러쉬로 말끔하게 털어 드렸다.
해안을 떠나 학사평 할머니 두부집으로 옮겨 갔다. 이 댁도 천주교 신자들이다. 챙겨주신 아침 모두들 맛있게 들었다. 신부님께서도 바위미역을 초고추장에 찍으셔서 맛나게 드셨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노루목을 넘어 설악동 소공원으로 접근하였으나 관리인이 오늘 강풍으로 케이블카 운행 중지입니다. 하고 말을 전해 온다. 다들 실망이다. 소공원과 권금성을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설악의 백미다. 오르지 않고 천불동 계곡과 천화대, 공룡능, 마등령,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데... 신부님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드릴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를 돌려 시령을 넘어 용대리에 도착 한 후 백담사행 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이동하였다.
오백 나한전 옆에 있는 蓮池(연지) 앞에서 오래토록 서 게셨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부님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다. 요약해 보면 선지식, 수도자들의 무소유, 연꽃이 담고 있는 불교적 의미들, 그리고 흰코끼리,거북이와 탑 등등에 대한 소중한 생각을 지니고계셨다. 그리고 여러가지 불교적 화두에 대하여 나름 그리스도 사상을 대비시켜 저술하고 펴 내신 고통앞에서란 책이 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다시 한국에 들어 오셔서 책을 수정보완하여 재출간 하신 후 이웃들에 주셨다. 나 역시 책을 받아 소중하게 읽고 보관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따르는 고통이란 것은 삶의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대차 문제다. 시지프스처럼 반목되는 절망적인 의식에서 벗어나려 인간들은 종교 안에 자신을 온전하게 의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백담사 작은 연지 앞에서 오래토록 서 계신 모습에서 사제로서의 사색이 오버랩되어 자리를 피하였다. 모두 다실에 모여 기호에 맞춰 차를 시킨 후 마음의 여백을 차 한모금으로 건져올렸다. 삶의 일생중에 차 한 모금을 마시는 지금, 찰나일지 모른다. 그 찰나가 정직하고 진리스럽지 못하면 모든 것은 헝크러지게 된다.
의식이 살아 있는 삶이 중요한 이유다. 작은 시간을 이용하여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떠나야 함을 알기에 일부러 옛 도천길을 선택한 후 백담계곡의 일미인 조약 돌탑을 배경으로 화보를 만들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무수한 삶 안에서 위태로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돌찹을 쌓고 소원을 빌고 기도 드리는 형상물인 탑, 물이 물어나면 다 계곡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소원이 완결되지 않는 한 불탑을 세우는 행위는 대를 이어 이어질 것이다. 어리석움을 깨닫는 일이 바로 성불이고 회개이다. 새로운 것을 얻어 자유로게 되려면은 우선 진리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 쉬운 일인가! 반복적인 행위로 관념화 시켜 생물인 마음을 진리로 붙잡아야 한다. 확철하게 아주 확철하게 다시는 세속적인 잣대가 마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백담산장이 있던 곳을 찾기위하여 숲 길을 찾아 걸었다. 피곤하실법한 신부님이시지만 강건하셨다. 시종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으시는 안면, 자비심과 사랑이 깃드셔서 만들어지는 평온이다. 산장 가까운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일행을 반기는 듯 다람쥐 가족들이 몰려 들었다. 공기가 맑고 숲이 건강하니 새소리도 아름답다. 평화는 참 맑음이다. 분쟁은 분렬이고 소음이다. 강자가 되어 지배하려 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늘 욕심이 화근이다. 신부님을 통해 세속적인 일들이 알게 모르게 정리되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은 평화의 기운이 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젠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서울로 떠나야 하였다. 다시 앞장 서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 발권을 한 후 용대리 즉 외가평으로 나와 차를 서울로 몰았다.(계속)~~
첫댓글 소선도 요셉신부님 모시고 여행기
잘보았 습다.
넘 아름답고 경치좋은 해변가~~~
아~
가고파 짐니다.^^
신부님 넘 건강하시고
멋지십니다. 함께 하신 님들
축복 받은 분이시네요~
세베리노 단장님 귀한 신부님에 대한 자료와 사진 ,여행기 엄지 척 입니다
또 그새 그립고 보고싶어지네요 우리 신부님~~~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재회를 예지하는 일, 그 소원은 합당하고 당연지사이니 하느님께서 자리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동안 추억을 되새김 할 수 밖에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