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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지리산(智異山) 5
-지리산 법계사(法界寺), 그리고 하산(下山)-
천왕봉에서 1Km 지점부터 부지런히 홀로 내려와 일주문에 들어서서 예를 표하고 시계를 보니 12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니 지금가지 보아 온 단풍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곱게 들어 있었습니다.
적멸보궁이 살짝 보입니다.
이 법계사는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전국(全國)을 두루 다니시다가 천왕봉에서 약 2Km 아래에 있는 이 곳이 천하의 승지(勝地)로,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로 좌우가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만 트여 있어 동틈과 함께 지기(地氣) 와 천기(天氣)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라 하여 법계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종무소로 가는 길. 이 길 외엔 길이 없습니다.
단풍사이로 적멸보궁 현판이 빛납니다.
정말 환상적인 단풍나무입니다. 지리산 단풍 중 으뜸입니다!!!
법계사의 성보 사리탑이 살짝 모습을 보입니다.
법계사 연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해발 1450m) 위치한 법계사(法界寺)는 신라 진흥왕 5년 (서기 544년)에 인도에서 건너오신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여 창건하셨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 태종 5년(서기 1405년) 을유년에 벽계정심(碧溪正心)선사께서 중창하셨다.
그 후 임진왜란과 서기 1910년 한일합방때 또 다시 왜인에 의해 불타고, 1938년(무인년) 에 청신녀 신덕순씨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6.25동란 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그간 초라한 초옥으로 3층석탑을 지켜오다 불자와 신도님들의 발원으로 현 대웅전과 산신각을 복원하 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유물로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인 3층 석탑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기 2536년 법계사 주지 합장』
보궁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불좌(佛座)만 놓여 있습니다.
적멸보궁에 들어 삼배를 올리고 바로 108배를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삼배를 올리고 기도를 하고 법당을 나섭니다. 108배를 다 올리고 향불교 법우님들을 위한 기도도 끝냈 는데 아직 우리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든 전각을 참배하고 점심 공양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다음 사리탑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장엄한 풍광입니다.
보궁의 옆쪽은 채소 밭인데 채소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법계사 삼층석탑 (法界寺 三層石塔) 보물 제473호
이 탑은 법계사 유일의 문화재요 보물로서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위치한 법계사 유일의 문화재요 거룩한 성보(聖寶)입니다. 탑에 대한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한 이형석탑이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의 윗면을 삼단으로 가공하여 암반을 수평으로 고르 고 그 위에 몸돌을 얹었다. 자연암반을 기단석으로 이용한 예는 신라 이래로 유행하였는 데 이 탑처럼 하부 기단석을 모두 생략한 예는 많지 않다.
지붕돌은 두텁고 지붕주름은 각 층이 삼단으로 되어 있으며, 후대에 만들어 올린 것으로 보여지는 포탄형의 석재가 상륜부에 얹혀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과 만든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탑의 높이는 2.5m이다.
법계사는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런 형태의 탑은 설악산 봉정암 불뇌탑과 비슷함을 봅니다. 그리고 이 탑은 일본의 후 지산과 일직선상에 있다고 합니다. 일본이 쇠말뚝을 박고 절을 불태우면서도 사리탑을 그냥 놔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극락전(極樂殿)
산신각 모습
단풍속의 산신각
법계사 산신각은 여느 산신각과 별다른 것은 없지만 내용은 좀 다릅니다.
지리산 산신(山神)
지리산 여산신(女山神) 마고선인(麻姑仙人)
지리산에는 노고단(老姑壇)이란 것이 있는데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 (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老姑)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다 는 것에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그 노고(老姑)할머니가 여기 모신 산신일 것입니다. 그런 데 노고는 바로 마고(麻姑) 선인(仙人)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옮겨 적어 봅니다.
지리산 산신(山神) 마고(麻姑)할머니 이야기
『마고(麻姑)라는 말의 기원은 마구, 우마이, 할미 곧 창조주를 의미한다. 중앙아시아의 고대 투르크의 여신 우마이(땅을 관장하는 생명의 여신)에서 기원 되었으며, 몽골북부 흑 해 바이칼호수의 여성 무당인 어마이, 오마이, 우다간에서 왔으며, 우리 말은 할미에 해 당한다. 인류역사학자에 의하면 약 1만 4천 년 전 한 차례 기상 대이변 이후로 모든 생명 이 사라졌으며 마고이외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책, 신라시대의 박제상의 '부도지(符 都誌)'에 의하면 마고성(麻姑城)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고 천부(天符)를 받들어 선천 (先天)을 계승했다고 한다. 마고는 선천(先天)의 남자로 후천(後天)의 여자로 궁희(穹姬) 와 소희(巢姬)를 낳았고, 이 두 딸이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精)을 받아 결혼하지 않고, 각 각 황궁(黃穹), 청궁(靑穹), 백소(白巢), 흑소(黑巢)를 낳아 황인종, 청인종, 백인종, 흑인 종)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마고의 뜻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과 같은 사람, 약 일만 년 전 요하강과 동북아의 문 화를 꽃피웠던 주인공인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어머니이다. 마고가 사는 마고성은 북동 쪽으로 천산산맥(히말라야산맥)을 통해 중국과 인도로 접하고, 남서쪽으로는 율라이만 산 맥과 이란 고원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와 연결되어졌다고 한다.
마고할머니는 크고 위대한 인물로서 마고(麻姑, 마, 할머니)란 [마]의 땅의 여성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다. 삼베를 만드는 마(麻)는 마고성의 중요한 식물 중 하나여서 [麻(마)]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수의로써 삼베옷을 입혀 매 장하는 전통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麻(마)]자의 고대한자의 형상은 두루마기를 입은 지도자의 형상으로 그 지도자가 입은 옷이 삼베옷이었던 듯하다.
마고의 장녀격인 황궁(黃穹)은 마고성을 떠나 황궁씨(黃穹氏)족을 이끌고 북동쪽으로 향 하여 양고산(백두산)부근에 안착했다. 그 후 약 1,000여년이 지난 뒤, 황궁씨의 자손 환 인씨(桓因氏)가 천산산맥 가운데 영현산 부근에 환인국(桓因國)을 세우고 그의 자손인 환 웅씨(桓雄氏)가 부근의 씨족사회를 배달족으로 융합하여 환웅국(桓雄國)을 세웠다고 한 다. 마고시대는 고대의 모계 씨족시대를 상징하지만 환웅씨 이후부터는 부계 씨족사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마고는 12지파의 후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 나라를 세우고 번성하여 자신의 역할이 끝났 다고 생각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가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도 지리산 천왕봉(天王峰)에는 마고성모(麻姑聖母)를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지리산 골짜기 마다 봉우리마다 할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고할머니가 가지고 놀았다는 마고할머니 의 5층 공기돌바위. 말바위와 형제바위, 마고할미가 참았다가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발 이 바위를 파서 자취가 남아 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또한 마고가 지리산 산신이 된 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마고는 마고성에서 인간을 보살피다가 반야(般若)라는 천신(天神)과 사랑을 나누지만 반야는 매정하게 천상으로 올 라간다. 마고는 오랜 세월 옷을 지으며 반야을 기다렸지만 반야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 마고는 후손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반야를 쫓아 지리산에 오르지만 반야는 그녀를 외면하며 사라진다. 마고는 명상을 하면서 마음 을 다스리고 지리산의 성모신(聖母神)이 되었다고 전한다.』
-정호선(15대 국회의원)님의 글을 옮겨 적음-
☞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자를 병기했습니다.
용왕탱화
산신각에서 바라본 모습
적멸보궁 뒤모습
단풍나무가 포인틉니다.
종무소옆에 마련된 공양마당.
전각을 다 참배하고 이곳으로 오니 모두 모여 앉아 공양을 들고 계셨습니다. 묘법님이 보 이지 않아 알아 보니 보궁에 들어 108배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12시부터 2시까지 무료로 공양을 베풀고 있습니다. 맛깔스런 사찰음식으로 마련된 비빔밥이 정말 꿀맛 같았습니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싸 온 음식은 사절입니다. 여기는 성스러운 적멸 보궁이기에 탁한 세속의 음식은 사절입니다. 자기 음식을 먹으려면 일주문을 나가면 있 는 로타리대피소로 가야 합니다.
잠시 후, 묘법님도 기도를 끝내고 오셔서 공양을 드셨습니다. 이 법계사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실로 귀한 것이어서 한 톨도 남겨서는 안 되지만, 다른 일행들은 음식을 남겨서 버린 음식찌꺼기가 있음을 보고 법계사 관계자들은 남기지 말라고 소리를 높이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적멸보궁에서 이와 같은 배려를 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남겨서 는 안 될 것입니다. 음식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찻길이 있는 것도 아닌 데... 힘들게 지고 오거나 공수해야 되는 일입니다. 여기에 오면 식용유 등을 공양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 깜박했습니다. ㅎㅎㅎ 대신 다른 수단으로...
위장을 든든히 위로하고 나서 사리탑에 올라 단체사진을 찍고자 이동했습니다.
사리탑에서 기도하시는 보화님. 무슨 기도를 올리시는지...
황심행님도 탑을 한 번 우러러 보시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십니다.
언제나 맑고 향기롭게...
여기는 포토라인
언제나 씩씩하신 보화님. 멋집니다.
비니초님
두 분은 竹馬故友랍니다.
두루 참배가 끝나고 사진도 찍노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청량한 기운이 도는 법계사를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오후 1시 19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립니다.
법계사 바로 밑에 있는 로타리대피소 해발 1335m
여기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3.4Km로 가는 법이요, 다른 하나는 순두류를 거쳐 중산리로 가는 5.8Km 구간의 하산길입니다. 언뜻보면 3.4Km 길이 좋을 것 같지만 이 길은 좀더 험하다고 합니다. 반면 5.8Km 길은 순두류까지 2.8Km만 가면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순환버스를 타고 3Km를 가게 됩니다. 지난 번에 내려갔던 순 두류쪽으로 하산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경사가 있긴 하지만 천왕봉 밑처럼 그리 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다는 소리가 들리기는 합니다. ^^ 별다른 경관이 있는 것 도 아니어서 쭈욱 내려갑니다. 순두류에 점차 가까워지는데 물소리가 들려서 비니초님이 발을 담그고 가자 하여 모두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탁족을 즐기는 묘법님.
물이 무척 차가워 10초도 견디기 어려운데 묘법님은 한참을 견디시네요. 뼛속까지 전달 되어야 허리가 편안하다나 뭐라나... 대단하신 묘법님.
용담님도 차가운 물에 피로를 푸시고...
황심행님도 비니초님도 찬 맛을 보십니다. ^^
이 통에 보화님은 커피를 즐기시고...
저도 두 발을 담궈 봅니다.
여기가 순두류이니 불현듯 떠오르는 시조 한 수...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옛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武陵) 어디요,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曺植)-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옛 듣고 이제 와서 단풍(丹楓) 뜬 차운 물에 두 발을 담갔어라. 법우여, 선경(仙境)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백우(白牛)-
출렁다리 흔들지 마오... ^^
다리를 지나면 길은 아주 평탄합니다. 오후 2시 53분, 순두류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부터 중산리까지 3Km인데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순환버스로 이동합니다. 성의껏 1000원 이상 지폐를 내시면 됩니다. 동전은 가급적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평일에는 1시간에 1 대인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2 대가 번갈아 계속 운행한다고 합니다.
여기는 순두류
여기 안내지도를 보면 법계사가 빠져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법계사가 왜 빠졌을까 의문 입니다. 로타리대피소만 적어 놓고... 고의적 누락 같습니다.
제가 예상한 대로 시간이 척척 맞아 돌아갑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 다. 1 대를 보내고 우리 일행이 타고 중산리로 내려오니 3시 28분입니다.
여기서 시외버스터미날까지는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5천원입니다. 걸어가도 되긴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발이 무척 피곤하다고 합니다. 이런 대 택시도 먹고 살아야지요. 그리고 택시를 타는 이유는 매시간 50분에 원지로 가는 버스가 오는데 한 번 놓치면 1시 간을 그냥 보내야 합니다.
중산리에서 원지까지 이용료는 3,000원입니다. 시간은 대략 45분 걸립니다. 그리고 원 지에서 상경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므로 원지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니초님이 알 아보니 7시 차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예약을 안 하면 상경시간은 심야로 흐를 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원지에서 남부터미날로 가는 7시 차를 예약해 놓으니 시간이 널널합니다. 상경요금은 17,400원입니다.
중산리에서 3시 50분에 버스를 타고 원지에 도착했을 때는 4시 40분이었습니다. 회비를 6만원씩 걷었기에 비용이 충분하므로 인근 식당에서 든든하게 주린 위장을 위로 하며 담소를 즐겼습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았는데 혹시 진주에서 오는 버스에 빈자리라도 있으면 누구라도 먼저 상경하시라고 일렀으나 끝내 빈자리는 없더군요. 그리고 원지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보화님은 홀로 가시게 되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원지에서 인천가는 버스 가 있다니... 인천행은 6시 50분 차였으니 우리보다 10분 앞서 가시니 또한 다행이었습니 다. 이번 산행에 동참하신 보화님, 황심행님 내외분, 묘법님과 푸른솔님, 그리고 비니초 님 감사합니다. 함께한 산행 무척 즐거웠습니다.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리산의 감격이 미처 사라지지 않았는데 오늘 밤 11시 이 번 산행 12.3Km 보다 훨씬 긴 33.4Km를 무박 종주로 다녀오려 합니다. 성삼재에서 중산 리까지 라고 합니다. ^^
감사합니다. 백우 _()_
☞ 흐르는 곡은 소프라노 유현주님의 '자유ㆍ평화ㆍ행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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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참에 산행 마치시고 비니초님 친정 나들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백우님, 멋진 보화님 밑에 비니초님 사진에는 왜 말을 빼 놓으셨나요
그럼 제가 " 뒤 단풍나무와 조화를 이룬 비니초님, 예쁘십니다. "
이번 금요일 밤에는 친정나들이 울력봉사하러 가게 됩니다. 비니초 사진에 제목 제가 어떻게 그리 씁니까 법계사의 여름의 모습과 가을의 모습을 보니 분위가가 다르네요. 본질은 하나인데 겉모습 하나로 색다름을 느낍니다. _()_
백우님 팔불출이라고 흉안볼께요 비니초님 이쁘면 이쁘다고 하세요...
아무리 봐도 묘법이는 모델이 될수 없내요~~찍사를 원망하랴!! 이쁜것 하나 있으면 가보로 남겨 놓을련만. 이쁜 추억 사진 많이 찍으셨내요. 고생 하셨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찍사를 원망할 필요가 있나요 카메라가 엉뚱한 것을 찍는 것도 아니고... 거운 산행과 순례가 된 것 같습니다. 법계사를 두 번이나 다녀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원지에서 뜻밖에도 친정 작은 아버님을 만나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원지는 동네나 마찬가지이니... 정말 뜻밖이었네요. 지리산 산신은 정말 중요한 인물인데 보셨는지요 _()_
적멸보궁 법계사 변함없이 그대로 이네요 것때는 108배라는 것 조차 잘 모를때라 다시찾게 되면 꼭 108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한 번 꼭 올라가셔서 108배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지리산 산신 노고할미 즉 마고할미는 우리나라의 시조나 마찬가지 입니다. 법계사에 가시면 적멸보궁 참배 후 반드시 산신각에 들어 예배를 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_()_
백우님 봄에 다시한번 지리산 갈까요 우리 법우님들 이끌고 다니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
지리산에 반하셨나 봅니다. 봄에는 중산리에서 올라와 대원사에 이르는 코스를 타고자 합니다. _()_
덕분에 잘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한 산행거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