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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광교산 청련암 (光敎山 靑蓮庵)을 찾아서
봉녕사 순례를 하고 봉녕사에서 공양을 해결하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되지 않아서 봉녕사를 물러나왔는데, 청련암으로 향하기에 앞서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두부요리 식당을 찾았으나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무영쌈밥집이 눈에 띄어 그리로 향했습니다. 무영쌈밥은 쌈장이 각종 영양가 있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 있고 각종 채소가 푸짐하여 채식으로도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완전 채식을 할 때 고기만 배제하며 즐겨 먹던 곳입니다. 체인점으로 되어 있어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재수 좋으면 눈에 띄지요. ㅎㅎㅎ 순례 중이라 채식을 하려는 의도로 왔지만... 그런데... ^^
청련암의 위치는 청안님이 익히 아는 바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인근에 누님이 사신다고 하네요. ^^ 오후 1시 반 경 청련암에 도착했습니다.
환희루(歡喜樓)
수원 광교산(廣敎山) 청련암(靑蓮庵)에 대하여
청련암(靑蓮庵)은 수원시 조원동 474-1번지 광교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입니다. 이 절은 원래 창성사(彰聖寺)의 암자가 있던 곳에 세운 절입 니다. 창성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원각국사가 이곳에서 입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창성사가 이전 중수되어 봉녕사(奉寧寺)로 바뀌면서 이 암자는 퇴락하여 빈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조 1년(1777) 비구니 청련(靑蓮)스님이 심락서 등의 시주를 받 아 이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청련암(靑蓮庵)이라 하였습니다.
그후 고종 30년(1893)에 극락보전을 세웠고, 1902년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 왕 이은(李垠 1897~1970)의 생모 귀비엄씨(貴妃嚴氏)가 중창하였습니다. 그후 1955년, 주지 장영선(張永善) 스님이 요사(寮舍)를 지었고, 1980년에는 김상용(金常湧)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82년에는 김도문(金道文) 스님이 도량을 크게 확장한 이래 오늘 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련암을 찾아서
이 절은 바로 인가와 인접해 있습니다. 이 일대 주민들에게 귀의처로 각광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차장 풍경
연화유치원
어린이 유치원이 있는 것이 반갑습니다. 절이 숱하게 있어도 유치원이 있는 곳은 극히 드문 일인데 이렇게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어린이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배 워 미래의 꿈나무로 자라기를 합장해 봅니다.
정면에 보이는 환희루는 안에 들어가면 범종각입니다. 이 누각을 통로로 하여 경내로 들어 갑니다. 그 문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그려져 있습니다. 부릅 뜬 눈에 호법의 의지 가 굳게 빛납니다.
환희루 대문의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나라연금강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는데 여기는 다물고 있네요. ^^
밀적금강(密跡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密 跡金剛)은 입을 다물고 ´훔´ 소리를 내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는 범어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로, 나라연금강은 출발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의미로 공격 자세 를 취하고, 밀적금강은 소멸의 단계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또, 이 두 역사가 내는 소리는 합쳐서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진언 ´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라연금강은 힘이 엄청나게 세서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밀적금강은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으로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본서(本誓)가 있으므로 밀적(密迹)이라 합니다.
범종각
이 범종각은 들어올 때의 편액은 환희루이고 경내에서는 범종각입니다.
대웅전
경내는 공사중이었던 모양입니다.
우중의 청련암 경내
청련암 종무소
대웅전. 청안님이 멀찍이 서 있습니다.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지장탱화
신중탱화
무슨 대화를 하시는지...
해사랑님과 황심행님
현실님, 금강대도님, 도솔님, 그리고 비니초님.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고종 30년(1893)년에 처음 지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건물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중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보처 대세지보살 본존 아미타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이신데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계십니다. 좌우 보살님들도 수인이 똑같습니다. 여기에 모신 여래상과 보살상은 석고로 최근에 조성하여 금칠하여 모신 삼존상입니다.
석고로 조성한 부처님과 아라한 성중
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여덟 분의 아라한상을 모셨고, 좌우 끄트머리엔 신장상을 나란히 모시고 있습니다.
신중탱화
고종 30년(1893) 7월 17일에 조성했다고 합니다.
합장한 분은 누구?
극락보전 우측 벽에 조그마한 탱화가 있는데 지팡이를 팔 안에 넣고 합장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머리는 언뜻 스님상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뒤에 비녀가 꽂혀 있습니 다. 이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어 알 수 없지만 밑에 조금 남아 있는 글자에 소화(召和) 운운 하고 창건주 운운한 글자로 보아 청련암을 중창한 영친왕의 생모 귀비엄씨상(貴妃嚴氏像)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칠성각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치성광여래상(熾盛光如來像)과 칠성탱화(칠성 幀畵), 그리고 산신탱화(山神幀畵)가 있습니다.
칠성각 옆에는 요사가 있네요.
금륜보계 치성광여래(金輪寶界 熾盛光如來)
산신탱화
독성각(獨聖閣) 정면, 측면 1칸의 정방형 팔작지붕.
1893년에 조성한 독성탱화. 나반존자(那畔尊者)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이 석가탑은 높이 8.2m로 조성하여 1993년 11월 봉안법회와 보살계 수계 산림법회를 성대 하게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리 크지는 않는 사찰이지만 봉녕사와 인연있는 절이요, 영친왕의 생모 귀비엄씨가 중창한 사찰이라는 절이라 특별히 청련암을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귀비엄씨는 남달리 불심이 돈독 하여 이 절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올렸고, 기도후 중창불사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청련암 을 두루 참배한 후 용주사로 향했습니다.
☞ 다음은 화성의 화산 용주사입니다. 흐르는 곡은 '진흙 속에 핀 연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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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절에 유치원이 있는 것을 보니 반갑군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족이 세운 절이라는 생각을 하니 의미가 색다르네요.
교회마다 유치원이 있는데 절에는 드문 것이 현실인데 이렇게 유치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흐뭇했습니다. 귀비의 불심으로 중창불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청련암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청련암을 지금은 청련사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_()_
감사합니다...비오는데도 사진은 다 찍어오셧네요.
비 온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자 카메라에 빗물이 들까 염려되기는 합니다. _()_
청련암은 순례 갔다왔는지 생각 조차 나지 않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사진 찍으셨나요.....나무묘법연화경()()()
이번에 순례다닌 세 절은 깊은 산중에 있지 않은데도, 아늑하고 고요하여 수행하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_()_
봉녕사는 주변 논을 메꿔 도량을 넓혔고, 청련암은 마을에 인접해 있고, 용주사도 평지에 있으니 쉽게 접근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늑하네요. _()_
누님깨서청냔암근처에살았는대 그때는 마당에서 청년암이보였는대 정말많이변했더라구요
그랬군요. 지금은 여기 살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지요. 이제 청련암이 청련사로 우뚝 서는 모양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