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석유의 역사
1. 서강대 박현도 교수는 ‘중동’에 관한 대표적인 전문가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중동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적절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BS-Class-e에서 12강으로 개설한 박현도의 <중동석유의 역사>를 들었다. 언론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중동’ 관련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개론적 강의는 특정 문제에 대한 접근 전에 반드시 습득해야 할 기본적인 토대이다. 숲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 속에 심어진 나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현도 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강의로 알려진 류현수와 함께 특정 지역에 대한 충분하고 효율적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과 비교하여 동북아시아에 관해서 효과적인 강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
2. 중동의 석유는 20세기 초 이란의 유전 발견을 시작으로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전체로 유전 발굴 지역이 확산되었다. 유전의 발견은 철저하게 영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구열강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발굴과정은 손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발굴은 엄청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되는 시추에도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시추권을 획득한 서구의 모험적인 사업가들은 지속적인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석유의 발견은 인간의 끈질긴 모험 아니 탐욕의 결과로 성공에 이른 것이다.
3. 중동의 석유 발견은 서구의 석유회사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 석유회사들은 원유국들과 불평등 조약을 맺고 이익의 50% 이상을 가져간 것이다. 이러한 착취적 이익관계가 지속되자 원유국 사람들의 불만은 커져갔고 석유를 둘러싼 ‘민족주의’가 발흥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자원이 외국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란에서 발생했다. 이란의 민족주의자가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총리에 오르고 석유국영회사를 설립하여 서구 국가를 배제하려 하자 미국은 CIA의 공작을 통해 총리를 제거하고 국왕에게 다시 권력을 안겨주면서 철저하게 종속적인 관계를 수립한다. 이와같은 사례와 같이 미국과 영국은 압도적인 기술과 정치적인 공작을 통하여 한동안 중동의 석유를 장악한 것이다. 이때 활동한 대표적인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은 ‘세븐 시스터스(7인의 자매)’라고 불렸다.
4. 하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서 아랍인들의 각성이 확산되었고 석유의 국유화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져갔으며 서구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강고해져 갔다. 이런 아랍의 단결에 대한 분위기는 이스라엘과의 갈등 속에서 더욱 힘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중동국가들을 중심으로 석유수출기구(OPEC)과 중동석유기구 등과 같은 산유국 조직이 만들어졌고 서구의 일방적인 이익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중동국가들이 제4차 중동전쟁 때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며 발생한 ‘1차 석유파동’이 1973년 발생한다.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은 6일간의 전쟁을 통하여 시리아로부터는 ‘골란고원’을, 요르단으로부터는 서안지구를 이집트로부터는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뺏아았다. 영토를 재탈환하려는 이집트는 무력을 증강하여 전격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는데 이때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들에게는 석유를 팔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것을 수락함으로써 전 세계에 ‘오일쇼크’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5. 석유의 힘을 확인한 중동국가들은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석유자원을 국유화하고 석유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중동국가들의 파워가 세계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중동에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중동의 대표적인 두 국가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인 이유로 서로 적대적인 분위기이다. 1970년대 이란의 국왕 팔레비는 이란의 근대화를 시도하며 많은 예산이 드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는 비용을 얻기 위하여 석유가격 인상을 추진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다. 결국 이란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고 정치적 위기에 휩쓸리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2000년 이상의 왕조가 몰락하게 된다.
6.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로 무장한 이란의 변모는 주변 국가들을 위협에 빠트렸다. 이런 혼란은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석유를 둘러싼 갈등과 경쟁을 확산시켰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및 점령 또한 유전을 둘러싼 갈등에서 촉발되었으며 이에 대한 서구국가들의 개입 또한 석유라는 이익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미국에 의해 강행된 제2차 걸프전 또한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분으로 침공했지만 그 또한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의도의 반영에 불과했다. 이렇듯 중동의 정치적 갈등과 역학관계는 석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비극적인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7. 중동에는 많은 인구를 가졌음에도 국가들 형성하지 못한 민족이 있다. ‘쿠르드족’이다. 약 3천만 정도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살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고 국제사회 또한 협정을 통해 그들의 국가수립을 지지하면서 국가 수립의 희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쿠르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유전이 발견되자 쿠르드에 대한 독립 논의는 사라졌고 쿠르드인들은 오히려 탄압과 학살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쿠르드족이 석유 때문에 통합에 실패한 민족적 비극을 겪었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는 정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한동안 극단적 이슬람조직인 탈레반에 의해 통치되다 해방되었지만, 2021년 다시 탈레반에 의해 점령되었다.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에 의해 인간에 대한 탄압, 특히 여성에 대한 끔찍한 인권침해가 가해지는 아프가니스탄은 전셰계에서 비난받고 규제되어야 할 국가로 지칭되었다. 하지만 중동 지역의 특별 프로젝트인 ‘가스관’ 연결사업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면서 중동 국가들 뿐 아니라 서구 및 인접 국가들도 경제적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의 교류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잔혹한 반인권국가라 비난하면서도 경제적 이유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8. 중동의 석유를 둘러싼 역사를 보면 국제적인 정치와 외교를 둘러싼 인간의 물질적 탐욕이 윤리적, 인간적인 가치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어떤 명분도 이익을 능가할 수 없었으며, 어떤 중요한 인간적 가치도 이해관계 속에는 무력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것이다. 1940-50년대 이스라엘의 독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도 이스라엘의 무리하면서도 잔혹한 침략행위에 대해 당시의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대인은 있지만 이슬람인은 없다’라는 말로 철저하게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자인하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침공에 대해서도 미국은 전혀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이란의 침공을 억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사드’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잔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윤리적 가치는 끊임없이 파괴되고 괴멸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 "어떤 명분도 이익을 능가할 수 없었으며, 어떤 중요한 인간적 가치도 이해관계 속에는 무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 대통령 트루먼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대인은 있지만 이슬람인은 없다’라는 말로 철저하게 이익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