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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슐러 목사의 ‘수정 탑'(Crystal Tower) 붕괴와 김창인 목사 케이스가 주는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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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슐러목사는 빈손에, 스테이션 웨곤 차 한 대를 몰고, ‘무작정 상경’식으로, 로스에인젤러스 지역에 왔다. 그리고 그 당시 비교적 낙후된 곳이라 할 수 있는 ‘가든 그로브’에서 그의 미니스트리의 깃발을 올렸다. 사람들은 별로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한 그의 모험을 비웃기도 했다. 그런데, 슐러 목사는, 그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롭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것은 ‘차를 탄 채 예배드리는’ 즉 ‘drive-in church’를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는, 극장계에서 새롭게 ‘drive- in theater'(차를 타고 영화를 보는 야외극장)라는 새로운 영화 상영 시설들이 막 유행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슐러가 시작한 ’drive- in 교회‘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인’아이디어‘로 비쳐졌다. 기존의 틀에 박힌 의식적 예배 참석에 식상하여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차를 몰고 가든 그로브의 ‘드라이브 인 처치’로 물밀듯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TV 방송, ‘능력의 시간’(The hour of Power)에서의’적극적 사고‘(Positive Thinking)의 참신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꿈을 심어주면서, 그의 새로운 스타일의 미니스트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교회 건물 건축에서도, 기존의 교회 건물과는 완전히 다른,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당시만 해도 전체 ’유리 벽‘ 건물은 드물던 때였다. 그런데 슐러 목사는 과감하게, 외부는 완전한 유리 벽으로, 내부는 철골을 감추지 않는 식의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택하였다. 드디어 찬란하게 햇빛에 반사되어 광채를 발하는 ’수정 타워’ ‘크리스틀 커시드럴’ (Crystal Cathedral)이 10에이커의 드넓은 부지 위에 우뚝 솟아올랐다. 이후 이 수정 교회 건물은 L.A. 지역, 관광 코스에 들어가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한때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100인’ 명단에 들기도 했던 슐러 목사에게 왜 이런 일이 닥쳐오게 된 것인가? 슐러 목사의 잘못은 무엇인가? 그는 어떤 유명 T V 부흥사처럼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없다. 언론이나 사람들에게서 비난 받을만한 무슨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다. 평생 목회자로서 훈륭한 길을 걸어 왔다. 그러면 오늘날, 그를 몰락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 상황은 무섭도록 빨리 변해가고 있는데, ‘그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과거에 이룩한 성공을 붙들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세운 후임, 2세 담임목사, Robert A. Schuller 목사(슐러 목사의 아들)는 교회의 위기를 발견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였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프로그램이나 제도 등을 고처 나갔다. 아버지 슐러 목사의 트레드마크인 박사 가운과 후드도 벗어버렸다. 특히 구세대보다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그러나 막대한 비용만 들어가는, TV 방송, 'The Hour of Power'를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슐러 목사는 이러한 아들 (담임목사)의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능력의 시간‘ TV 방송은 중단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자기의 아들인 2세 담임목사를 쫓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여전히 낡은 자기의 옛날 방식대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 했던 것이 결국 교회 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시대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에 자기가 이룩한 성취와 영광만 붙들고 있으면 결국 퇴보 내지 퇴출당하게 된다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전달 방법’ 및 진리의 ‘표현’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계속 변해야 하는 것이다. 슐러 목사의 케이스는 우리에게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슐러 목사의 잘못은 무엇인가?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이다. 그는 평생을 몸바쳐 ‘수정교회’를 건설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가든 그로브, 후진 지역에서 ‘Drive-in-church’로 교회를 개척하여,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1만 여장의 유리 벽으로 된 ‘Crystal Cathedral을 우뚝 세우고, 1만 명 이상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런데 그는 만80세까지 담임목사로 있다가, (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그 아들 Robert A. Schuller 목사에게 담임목사 직을 인계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회 운영의 권한은 놓지 않았다. 그 교회 조직에서의 교회 운영 실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회’에 슐러 목사는 ‘이사장’의 직권을 가지고 교회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 처리하였다. 아들 목사와의 갈등이 심해지자, 아들 목사를 담임목사 직에서 ‘해임’시킨 후, 그의 장녀 Sheila Schuller Coleman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웠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2010년 7월, 만 83세가 되어서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교회 형편이 회생불가 상태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드디어 교회 이사회는, 2011년 7월, 슐러목사에게 교회 쇠퇴와 재정파탄 및 후임목사 청빙에 관련된 가족간의 갈등으로 인한 리더쉽 혼란 등의 책임을 물어 슐러 목사를 ‘이사회’ 회원 명단에서 제명 처분했다. 이로서 슐러 목사의 50년간의 그 ‘빛나던’ 목회사역은 그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끝이 나고 말았으며, 1년 후에는 그가 우뚝 세워놓았던 ‘소망의 탑’ (Tower of Hope: 실제 교회 건물에 세워진 타워)은 무너지고 말았다. 참으로 애석하며 가슴 아픈 일이 아닐수 없으며, 후배 목회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케이스’이다. 한국에서, 대형교회의 하나였던, 합동측 장로교 ‘충현교회’의 원로 목사, 김창인목사가, ‘담임목사 세습을 회개한다’는 기자 회견하는 것을, 얼마전에 TV에서 보았다. (한 방송국에서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며 제작한 특별 프로그램 중에 그 장면이나왔다.) ‘충현교회’의, 김창인목사와 그가 세습해서 세운 아들 담임목사와의 갈등으로 생긴 여러가지 심각한 교회 문제들은, 이미 언론매체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교회문제는, (교회문제는 사실 너무도 복잡한 요인들이 많아 한마디로 말할수 없지만, 언론보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을 보면), (1)김창인 목사의 끝없는 욕심과 (2)세습으로 세워진 아들 목사의 ‘자격미달’이라고 본다. 슐러목사와 김창인목사는 (1)아들에게 담임목사직 세습햇다는 것, (2)교회를 내가 세운 개인 기업처럼 생각하는 끝없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김창인 목사의 결정적 잘못은 전혀 함량미달의 자격 없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사람됨이나 자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남 주기가 아까워서’인지 그런 아들에게 ‘세습’을 함으로 교회를 망치게 한것이다. 김창인 목사는 휠체어 타고 나와 기자들 앞에 나와, 그저 한마디 ‘세습을 회개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다. 부자(父子)간의 ‘싸움’의 연속이거나 갈등의 한 표현’으로 보일 뿐이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며, 담임목사는‘회장님’이 아니다. 비록 그가 피땀 흘려 세웠다고 해도, 교회는 그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은퇴를 하는 순간 담임했던 교회에 관계된‘모든 것’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목사의‘끝없는 욕심’은 결국 교회를 파탄 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몇년간 계속되어 온 감리교단의 '파행'도, 한마디로 말하면, 결국 목사들의 '내려놓지 못하는', 끝없는 '욕심'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교회는‘주님의 몸', 주의 것이며,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 , 나는 그의 '종’일뿐이라는 믿음과 겸손, 확실한 의식을 진정으로, 끝까지 가진다면 왜 슐러목사나 김창인목사 케이스, 더 나아가 현 감리교단의 파행 같은 문제들이 생기겠는가 |
첫댓글 그러고 보면, 유대교의 회당이라는 문화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조직이랄 것도 없는 마을회관 같은 분위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와 말씀과 교제, 그리고 삶을 공유하는 공간....그게 회당이라는 곳 아니었을까.
어쩌면 교회의 문제는, 지나친 조직화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직은 자꾸 강해지고 싶고, 힘을 확대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조직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게 되고, 조직이 커지면, 사유화와 지배의 논리로 빠져들게 마련이죠.
3주전에 들은 소식입니다만 제천에 있는 모감리교회도 재정에 문제가 생겨 교회 일하시는 분들의 월급을 한 달 늦춰 지급했나 봅니다. 범돌님의 말씀처럼 사회의 마케팅 논리, 즉 확장예상의 논리로 나가다 보면 안이 공동화 현상이 빗어지고 예상이 빗나가다보면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교회가 비대해지면 '목사천당, 불신지옥'의 길을 가더구만요. 여의도의 조 빛나리 목사께서는 어디로 가고자하는 방향이 설정되셨을까?
유대교의 회당, 콜!!^^
캐나다에 갔더니 세계에서 제일 작은 예배당이 있더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