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공, 太極氣空 Born Invincible, 1978
얼마전 고전무협에 해박하신 무림고수분의 도움에 힘입어
오랜 기다림끝에 드디어 다시 보게된 영화입니다.
<태극기공>은 78년 홍콩에서 제작된 무협영화이며
제가 처음 본 건 1981년도입니다.
당시엔 감독이나 배우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마냥 무협액션에 심취하며 보았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후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을 통해
주연배우들의 면모를 확인한 후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이번에 영화를 직접 보면서 낯익은 조연배우들의 등장에 놀라고
또 그들의 액션에 다시한번 감흥을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해서 이 영화에 대한 소개 및 감상을 짦게나마 적으려 합니다.
다만, 영화자체가 무협액션은 좋은 반면 스토리가 빈약한 관계로
불가피하게 사진위주의 포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태극기공, Born Invincible>은 1978년 홍콩 홍화영화사에서 제작되고
90년대 홍콩영화감독협회장을 지낸바 있는 곽남굉 감독의 작품입니다.
원화평은 무술지도와 스턴트로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주연배우는 특이하게도 악당으로 출연한 두 유명배우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후에 이들이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바로 나열과 황가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나열 - Lo Lieh
나열은 60년대 왕우와 더불어 쇼 브라더스사의 HERO중 한명이며
한국인 정창화 감독에 의해서 빛을 발하게 된
최고의 고전무협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에 50세가 훌쩍 넘어 참여한 ATV 드라마 <검소강호>를 통해
저에게는 아주 강렬하게 각인된 배우이기도 합니다.

(사진) 황가달 - Carter Wong
그리고 또 한명의 주연배우, 바로 황가달입니다.
황가달은 한국에선 그다지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유럽 및 미국의 쿵푸영화마니아사이에선
'Carter Wong'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아주 유명한 무협액션배우입니다.
황가달의 대표작은 역시 곽남굉 감독의 그 유명한 <소림사 18동인, 76년> 입니다.
저에게는 작은 키에 건장한 골격, 그리고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배우이며
무엇보다도 실버폭스 3인방 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캐릭터로 다가온 것이
바로 <태극기공>의 황가달의 모습이었습니다.
(※ 실버폭스 : Silver Fox는 사실 외국에서 불리우는 황정리의 닉네임이지만,
저는 그냥 백발마승의 배우들을 일컬어 실버폭스라 칭합니다.
3인방이라 함은 황정리, 황가달, 그리고 임세관이 그들이고
임세관은 <황비홍1>에서 이연걸과 사다리액션을 펼쳤던 노장배우이지요.)
영화는 무공을 수련하던 청년들 무리속으로
노인과 딸이 두명의 악당에서 쫓겨오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정의에 불타는 수련생들은 급히 사숙에게 도움을 요청해 두명의 악당을 격퇴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사숙역은 서충신, 그리고 두명의 악당은 각각 원규와 원신의입니다.


(사진) 서충신, 원규, 원신의
서충신 : 연기경력 40년의 베테랑배우로서 실제 무술감독으로 더 유명합니다.
험악한 인상으로 <황비홍 철계투오공>에서 마지막에
이연걸에 대적하는 인물로 기억에 남는 배우이기도 하죠.
원규 : 칠소복 멤버로서 <예스마담> <방세옥> 등의 감독이기도 하죠.
이 영화에선 아주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원신의 : 원화평의 동생으로 원가반의 핵심멤버이죠.
원신의 역시 원규와 마찬가지로 헤어스타일이 쥑입니다.
왜 원규와 원신의같은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유자들에게
웃찾사의 동남아보이스만큼이나 엽기적인 가발을 씌워야만 했는지...
아무튼 이 세 명의 조연배우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아크로바틱 액션을 선사합니다.
자신들의 제자가 격퇴당한 사실을 알게된 태극문파의 금(나열)과 은(황가달)은
태극문파와 깊은 원한이 있는 노인과 딸을 비호하고 있는
사형문파에 찾아가 각각 사숙과 사부를 상대로 대결을 펼치게 되고,
사숙은 암기가 숨겨진 금의 무기 금도쇄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어 사부는 온몸이 무기인 금강불괴 은의 필살기인 일명 무쇠대가리 덤블링 공격,
그리고 '띠용~' 하는 음향효과와 함께 역시 피살되고 말지요.
자신을 보호하려던 은인의 의미없는 죽음을 목격한 그 노인은
칼을 잡으면 화를 당한다는 계시를 깨버리고 복수를 위해 칼을 잡지만,
역부족으로 금과 은의 협공으로 그 역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수제자 3명은 사부와 사숙, 그리고 그 노인의 복수를 위해
차례차례 금과 은에게 도전하게 되지만 번번히 실패를 거듭합니다.



(사진) 대사형, 2사형, 3사형
결국 금도쇄 암기의 특성을 역용하여 기름을 바른 칼을 사용한
대사형에 의해 드디어 금을 물리치게 됩니다.
하지만 금강불괴 은에게는 대사형, 2사형 모두 격퇴당하게 되고
마지막 3사형만이 열심히 무공연마와 더불어 여러가지 궁리를 해보고,
또한, 너무나 비열하여 죽음직전에서만 실전한다는 급소공격마저도 소용없슴을 확인하고는
"어라? 저거 내시네!" 하며 놀란가슴 진정시키기도 전에 또 계속 얻어맞기만 합니다.
역시 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없을 것만 같았죠.
(영상) 대사형과 대결 中 태극진을 그리는 은의 모습
그러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여도사가 한마디 툭 내던지고 사라집니다.
" 득의양양을 노려라! "
3사형은 '그게 무얼까? 무슨 뜻일까?' 짱구를 돌린 끝에 찾아낸 해답...!
바로 은은 적을 격퇴한 후에 아주 괴기스런 자만의 웃음을 항상 보여주었던 것이죠.
은의 약점은 바로 목구멍...그 곳이었던 겁니다.
마징가 제트처럼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난 여도사에게 감사할 틈도 없이
사람모형의 나무를 세워놓고 목을 향해 단검던지기 연마에 열중하여
드디어 10점 만점의 기록을 세우게 되자 은을 찾아나서게 되고,
공교롭게도 은은 기다렸다는 듯이 3사형 앞에 나타나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 매번 싸우는 장소가 어찌나 비슷비슷한지...
지금에 와서 보니 출연진들이 몇일 산속에서 합숙하며 논스톱으로 찍은
초고속 저예산 영화같다는 느낌이...)

(사진) 여도사, 단검던지기 10점 만점에 8점
계획적이었는지 무공이 딸려서인지 아무튼 평소처럼 3사형은 흠씻 두들겨 맞고는
은이 자만의 웃음을 보여주길 기다리지만
그 날따라 은이 뭘 잘못 먹었는지 표정은 평소와 달리 과묵하기만 합니다.
안되겠다 싶었던 3사형은 자존심을 버리고
은의 특유의 간사스런 내시목소리 흉내를 내며 은이 하는 말을 따라하자,
은은 자만의 웃음이 아닌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짓게 되고
그 틈을 노려 웃는 입을 향해 단검을 던짐으로써 지루한 복수의 끝을 맺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잠깐...
은의 그 웃음소리!
처음 볼 때는 정말 꿈에 나타날 까 두려울 정도로 정말 괴기스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영어더빙판이라 제가 예전에 보고 들었던 그 웃음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름끼칠정도로 괴기스러운건 여전하더군요.
(영상) 꿈에 볼까 무서웠던 은의 괴기스런 웃음소리
※ 우리가 무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태극기공> 역시 '복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또한 단순하고 빈약한 스토리의 영화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오히려 태극기공을 익혀 약점이 없는 금강불괴의 몸으로 상대와 싸우고
또 태극진을 그려 그 안에서 기공을 주입하는 모습의
악역 황가달에 촛점을 맞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협객님들께서는 쇼브라더스 장철감독의 영화나
왕우, 강대위, 초교 등을 친숙해하고
또 그 이후에 골든하베스트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소룡과 성룡의 작품들은 많이 기억되고 회상하는 분들은 많은데 반해
주, 조연급의 액션이 돋보인 <태극기공>과 같은 영화는
홍콩현지에서는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슴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서만은 출연진들이 비주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형도수2>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으며
역시 협객님들에게조차 많이 기억되고 있지 못한 영화인 건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더더욱 이 영화에 애착을 갖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C.G와 Wire가 난무하는 최근의 홍콩무협영화에 식상하여
훨씬 내츄럴한 무협액션을 원하는 협객님들께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