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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사계절 출판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양현범입니다.
최근 KBS 드라마 <칭기스칸>의 방영으로 인해 몽골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희 사계절출판사에서는 중앙아시아 관련 도서들을 꾸준히 출간해 왔으며 최근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등의 도서가 <TV, 책을 말하다>에 방영되어 독자분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에 저희 출판사에서는 몽골의 재상 라시드 앗딘이 저술한 최초의 세계사이자, 칭기스칸과 몽골제국의 역사를 다룬 집사(集史) 3부작을 완역(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교수),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라며 아래에 보도자료를 덧붙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한 중앙아시아 관련서를 포함한 역사서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sakyejul.c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라시드 앗 딘 지음 / 김호동 엮음 / 2002-09-10일 출간 | 364면 | 20000원
라시드 앗 딘 지음 / 김호동 옮김 / 2003-10-29일 출간 | 508면 | 32000원
라시드 앗 딘 지음 / 김호동 옮김 / 2005-11-07일 출간 | 536면 | 32000원
칸의 후예들(라시드 앗 딘의 집사3)
세계제국 몽골이 집대성한 역사학의 고전
13-14세기 최대 규모, 최초의 세계사
1. 출간 의의
>> 13-14세기 최대 규모, 최초의 세계사
13세기 초 몽골의 기마유목민들은 수십 년에 걸친 부단한 정복전의 결과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몽골 세계제국의 출현은 오늘날 우리의 눈에뿐만 아니라 당대인들에게도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제국의 흥기와 팽창 과정에 대해 몽골, 중국, 이란, 러시아, 고려, 인도, 이집트 등 수많은 민족이 각기 자기들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갖가지 언어와 형식으로 기술된 이 수많은 기록들 가운데 정확성과 상세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바로 『집사』이다. 저자인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이란에서 칸의 최측근으로 재상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칸의 칙령과 후원을 받아 집필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원자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저술은 몽골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던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 서술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몽골 이외에도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유럽, 유태 등 여러 민족들의 역사까지도 집대성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의 역사를 망라하여 서술한 이런 규모의 저술은 그때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은 『집사』를 가리켜 ‘최초의 세계사’라 부르는 것이다.
>>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 수준의 완역
각국의 연구자들은 『집사』를 ‘불멸의 고전’으로 주저 없이 칭하면서도, 페르시아어 원본의 난해함과 그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선뜻 번역에 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번역본으로는 1858년 러시아에서 출간되고 1세기 후 소련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보완된 『부족지』의 완역본과, 김호동 교수가 『부족지』 역주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하버드 대학교의 쌕스턴 교수가 내놓은 영역본이 있을 따름이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사 연구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에서조차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중국에는 러시아 번역본을 다시 중국어로 옮겨 출간했을 뿐이다.
김호동 교수는 오늘날 학계에서 최상의 사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스탄불 톱카프 도서관의 사본(寫本)을 저본(底本)으로 삼았고, 고유 명사나 특수한 용어를 판독할 때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사본과 대조하였다. 이밖에 테헤란에 있는 이란 국민의회도서관에 소장된 no. 2294 사본,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Add. 7628 사본, 톱카프 도서관의 282,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113 사본 등, 모두 6종의 상이한 사본들을 대조·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 페르시아어를 모르는 학자들이 의존해 왔던 러시아 번역본에 있는 다수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투르크-몽골어에서 나온 특수한 어휘나 이름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들이 많았다. 14세기 초 페르시아어로 집필된 『집사』의 정확하고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사본(寫本)의 선택, 투르크-몽골 어휘에 대한 풍부한 지식, 그리고 몽골 제국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앙아시아사 연구자인 김호동 교수의 『집사』 번역은 우리들에게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 원문의 이해를 한 차원 높인 전문적이고 상세한 주석 작업
김호동 교수는 주석 작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 사본(寫本)들을 대조하여 만든 페르시아어 교감본(校勘本)을 참조한 것은 물론, 몽골 제국 당시의 관련 역사서, 『집사』와 몽골 제국에 대한 전 세계의 다양한 최근 연구 성과들까지도 주석에 반영하였다. 또한 투르크-몽골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어 원문의 어휘와 문장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 주석까지 첨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원문이 갖는 의미의 난해함과 모호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사계절, 2000), 『부족지-라시드 앗 딘의 집사1』(사계절, 2002), 『칭기스 칸 기-라시드 앗 딘의 집사2』(사계절, 2003)로 이미 최상의 고전 완역판을 소개했던 김호동 교수는 『칸의 후예들-라시드 앗 딘의 집사3』의 역주(譯註) 작업을 통해 과거 낯선 지역으로의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이며, 현재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풍부하게 넓혀주는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2. 『집사』에 대하여
1) 편찬 의도_ 몽골 정체성의 회복과 세계제국의 경영을 위해서
몽골 황제 가잔 칸이 즉위하던 1295년은 칭기스 칸이 몽골을 통일한 지 9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고, 그의 증조부 훌레구가 서아시아에 원정하여 일 칸국의 기초를 놓은 것도 반세기 전의 일이었다. 처음에 원정대를 지휘하며 그곳에 왔던 몽골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이미 타계했고, 그 후예들은 서아시아의 무슬림들 위에 군림하며 조상들이 일궈 놓은 성과를 향유하면서 자신들의 뿌리조차 잊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잔 칸은 몽골 귀족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군주에 대해 곧잘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역사에 대한 무지와 자신들의 계보조차 알지 못하는 몽골 정체성의 상실에 한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몽골 제국의 탄생 과정을 분명히 알려주고, 조상들의 뿌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다시 한번 인식시킴으로써, 이들 몽골 유목부족민들의 분권적 경향을 억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가잔 칸은 세계 각 민족의 역사가 아닌 몽골 제국사의 집필을 재상 라시드 앗 딘에게 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잔 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울제이투는 몽골족의 역사적 뿌리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잔 칸의 의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세계의 모든 민족과 지역을 포괄하는 세계제국의 경영자로서 그에 합당한 세계사의 편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확대 편찬을 지시했으며, 이렇게 해서 ‘연대기의 집성 - 즉 『집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2)『집사』의 구성
14세기 전후 시기에 일 칸국의 몽골 귀족들이 자기 선조들의 이름이나 업적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우선 제1권 『부족지』에서는 몽골 제국의 건설 과정에 참여한 부족들과 그 수령들의 정체와 활동상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장편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약력을 권두에 간단히 정리하여 놓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부족지』는 『집사』라는 전체 구조물의 주춧돌에 해당되는 셈이고, 본격적으로 몽골 제국사가 서술되는 제2권 『칭기스 칸 기』에서 비로소 『집사』의 진면목이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칭기스 칸 기』는 칭기스 칸 조상들의 사적, 칭기스 칸 자신의 일대기, 그가 남긴 유무형의 유산들을 정리함으로써, 주도면밀하게 몽골 제국 건설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였다. 『칸의 후예들』은 칭기스 칸 사후 그의 후계자들이 세계 제국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시기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등 제국의 전 영역을 포괄하여 몽골제국의 ‘세계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도 서술의 정확성을 잃지 않고 있다.
3. 『칸의 후예들』의 중심내용
>> 이 책의 구성과 서술 관점
본서는 모두 8편의 ‘기’(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칭기스 칸의 후계자인 우구데이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육, 뭉케, 쿠빌라이, 티무르에 이르는 5명의 대칸들의 기(紀)와, 칭기스 칸의 다른 세 아들인 주치, 차가타이, 톨루이 등 3명의 제왕(諸王)들의 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기는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 주인공의 자식과 후비(后妃)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계보, (2) 그의 통치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연대기적 기술, (3) 앞의 부분에 포함되지 않은 일화들이 그것이다. 이 8편의 본기들 가운데 처음에 나오는 우구데이나 뭉케의 치세에 관한 기록들 중 일부는 13세기 중반에 집필된 주베이니의 「세계정복자사」에서 채록한 부분이 상당히 있지만, 쿠빌라이 카안 기의 내용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고관을 지내다가 일 칸의 정치고문으로 파견된 볼라드 칭상(Bolad Chingsang)의 증언에 의거한 것이 많아서, 당시 몽골지배층이 중국과 중국에 대한 자신들의 통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고, 이를 중국측 자료들과 대조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150년 몽골 제국 경영의 실상이 드러난다
이미 번역·출간된 『부족지』와 『칭기스 칸 기』가 각각 몽골제국의 준비기와 태동기를 다룬 것이라면, 『칸의 후예들』은 세계제국으로 발돋움을 시작하여 그 최종적인 완성을 보는 시기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칭기스 칸 기』와 『칸의 후예들』의 비교를 통해 미묘한 차이를 포착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의 시대가 지나고 그의 후예들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몽골 제국의 경영 양상이 크게 변모했기 때문이다.
역주자의 말에 따르면, 칭기스 칸의 전쟁은 어디까지나 초원의 제왕, 유목민의 수령으로서 수행한 것이었을 뿐, 과거 수많은 유목국가의 군주들이 보였던 전쟁의 패턴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농경 지역을 정복하여 유목민과 정주민을 통합한 거대한 세계제국을 건설하려는 의도를 갖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거느리는 유목민과 유목국가에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고 안정된 공급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하고 난 뒤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가 되면서 전쟁의 패턴은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종래 약탈과 응징의 성격을 갖던 전쟁은 이제 정복과 지배를 지향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칭기스 칸 사후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학술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그 연유가 무엇이건 칭기스 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우구데이 카안의 시대부터 몽골 제국은 이미 ‘유목국가’가 아니라 ‘세계 제국’으로의 지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칸의 후예들』은 우구데이 이후 변화된 제국 경영의 양상들을 몽골사 연구자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4. 본문 맛보기
>> 칭기스 칸의 유언
그가 탕쿠트 지방에서 갑작스럽게 병이 들자,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조용한 자리를 만들어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정하고 보좌와 카안位를 그에게 정해 주었다. 또한 각각의 아들들에게 별도의 직무를 정해주며,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치와 함께 하도록 하라. 야사와 규범과 관례와 성훈들에 대해서 잘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차가타이에게로 가라. 관용과 관대, 은사와 재화를 [원하는] 사람은 우구데이를 가까이 하라. 용맹과 명성, 勝戰과 정복, 그리고 세계정복을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톨루이 칸을 모시도록 하라!”고 말했다. 또한 아들들을 위하여 아미르들과 군대들을 정해 주었고, [칭기스 칸]기의 말미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들 각자에게 일정한 몫을 각각 정해 주었다. 본문 16~17쪽
>> 우구데이 카안에 대한 일화
몽골의 야사와 관례에 의하면 봄과 여름에는 낮 동안 어느 누구도 물에 들어가 그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서는 안 된다.…… 하루는 카안이 차가타이와 함께 사냥에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한 무슬림이 물에 앉아 洗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야사에 관한 한 매우 꼼꼼했던 차가타이는 그 무슬림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카안은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고 우리도 피곤하니, 오늘 밤은 그를 구금해 두고 내일 심문해서 야사에 처하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를 다니시만드 하집에게 맡기고는, “銀 발리시 하나를 그가 洗淨하던 곳의 물 속에 넣어두라!”고 은밀히 지시하고, 그에게는 “심문을 할 때 ‘저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자산이 물에 빠져, 그것을 건지려고 [물 속에] 들어갔습니다.’라고 말하라!”고 전하도록 했다. 다음 날 심문을 할 때 그는 그 같은 변명을 둘러댔고, 그곳으로 [사람을] 보냈더니 [과연] 물 속에서 발리시를 찾아내었다. 카안은 “大야사를 감히 어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불쌍한 사람은 극도의 절망과 곤경에 빠져 이 보잘 것 없는 것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이런 까닭에 세상의 자유인들은 그의 품성에 노예가 되었다.…… _본문 116~117쪽
>> 두려움과 공포의 군주
구육 칸은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자부심과 지고함에 대한 자만심을 지닌 하늘처럼 웅장하고 바다처럼 장엄한 군주였다. 그가 즉위했다는 소문이 지상에 퍼져나가자, 그의 지엄함과 무서움과 엄정함은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명령이 적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거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였다. 각지에 주둔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분노에 대한 공포와 그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밤이건 낮이건 안정을 얻지 못했다. 그의 어전에 있던 大臣과 近侍와 귀족들은 한 걸음도 떼지 못했고,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감히 그에게 방책을 [먼저] 아뢸 수도 없었다. 또한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온 방문자들은 [칸이] 그를 부르기 전에는 말매는 곳에서 [어전으로] 한 뼘도 더 가까이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그의 치세동안 동서남북 온 사방에서 아미르들, 총독들, 관리들, 대신들이 그의 오르두로 향하였다. 쿠릴타이가 열리는 시기에는 손님들을 위하여 2천개의 흰색 천막을 준비하고 오르두의 주위에 下營할 곳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사방에서 대인들과 귀족들이 밀려들 정도였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많은 무리를 목격한 적이 없었고, 역사에서도 그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없었다. _ 본문 294쪽
>>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건설하다
칭기스 칸과 그의 자식들은 키타이 지방에 도읍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각각의 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다. 그러나 뭉케 카안이 그 지방을 쿠빌라이 카안에게 주었고 [쿠빌라이 카안은] 그 지방이 매우 풍요하고 그 주변에 중요한 왕국과 지방이 수없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곳을] 자신의 도읍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그곳 군주들의 도읍들 가운데 하나였던 칸발릭 시 ― 키타이 말로는 ‘중두라고 불리운다 ―를 동영지로 정했다. 그곳은 옛날에 점성가와 현자들의 의견에 따라서 지극히 상서로운 별점에 부응하여 건설되었으며, 온갖 축복과 행운을 지닌 곳으로 항상 여겨져 왔다. 칭기스 칸이 그곳을 [이미]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쿠빌라이 카안은 [다시] 건설하고자 원했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그 근처에 다른 도시를 서로 맞닿게 세우고 그 이름을 ‘다이두라고 하였다. _ 본문 407쪽에서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라시드 앗 딘
라시드 앗 딘(Rash d ad-D n, ?-1319)
이란 중부의 도시 하마단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익힌 제약과 의술 지식을 바탕으로 몽골 군주 일 칸의 궁정에 출사하여 문관으로서는 최고직인 재상(vaz r)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 칸국의 군주를 시해했다는 정적들의 모략으로 처형당했다. 역사학을 비롯해 신학, 식물학, 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저작들을 남겼으며, 재상 시절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집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최초의 세계사"로 칭해지고 있다. 중세 이슬람권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집사}의 몽골사 관련 부분은 오늘에도 그 독보적인 사료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옮긴이 : 김호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2002)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유목사회의 구조』(1990),『칭기스칸』(1992),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공역, 1998),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 『이슬람 1400년』(2001), 『부족지-라시드 앗 딘의 집사1』(2002), 『역사서설』(2003)이 있다.
그는 『부족지』(2002)와 『칭기스 칸 기』(2003)에 이어 『칸의 후예들』의 출간으로 처음 계획했던 『집사』「몽골사」 부분에 대한 번역을 일단락했다. 「몽골사」부분이 완역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에 대한 갈증은 일단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몽골사」 가운데 남은 서아시아 ‘일 칸(il qan)들의 역사’ 부분은 좀더 시간을 두고 완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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