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실컷 울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세 번째 자살 기도도 실패한 여자, 15살 때 그녀를 강간한 사촌오빠 보다 엄마가 더 미운 여자. 피를 토하는 수치와 아픔을 엄마에게 호소했을 때 딸의 아픔보다 체면이 더 중요했던 엄마, 그 엄마의 기도는 자기가 가진 부와 명예를 위한 포장지였을 뿐이라고 느끼는 여자. 그런 엄마의 위선을 응징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던 여자, 그녀가 내키진 않아도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수녀인 고모의 손에 이끌려 교도소에 갔다. 독해 보이지만 맑은 영혼이 엿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사형수. 내내 거칠고 불쾌하게 구는 그 녀석이나 잘못한 거 없이 쩔쩔 매는 고모나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가관이네!”하고 바로 잊어버렸을 텐데, 어쩐지 마음이 울컥하다.
엄마에게 버림 받고 고아원 행을 거부한 채 병든 동생을 데리고 앵 벌이에 나섰던 소년 윤수, 그 나마 기득권 자에게 붙들려 죄 없이 묻 매를 맞고 길 바닥에 쓰러져 자다가 죽어 간 동생, 그 윤수가 범죄의 소굴에서 헤매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손을 씻고 밝게 살려고 하지만 죽어가는 그 여자를 살리려다 본의 아닌 살인을 하게 되고 믿었던 선배의 배신으로 그의 죄까지 뒤집어 쓴 채 사형수가 된 윤수, 산다는 것 자체가 지옥일 수 밖에 없다. 그 앞에 죽은 동생이 그렇게 좋아했던 애국가 잘 부르던 가수 문유정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처럼 동정도 어색한 기색도 없이 그저 서늘하게 그를 보고 있던 그녀, 두 번째 만난 날. 억지로 왔다며 기분 더럽다며 신경질을 부리던 이 여자, 어쩐지 그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눈을 뗄 수 없다.
교도소 만남의 방.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부유하고 화려한 한 여자와 가난하고 불우했던 남자. 너무도 다르지만, 똑같이 살아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던 그들. 처음엔 삐딱하고 매몰찬 말들로 서로를 밀어내지만, 이내 서로가 닮았음을 알아챈다. 조금씩 경계를 풀고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온기만큼 따스해져 가는 마음. 그들은 비로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유정의 고백을 들은 윤수의 진심 어린 눈물은 유정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윤수의 불행했던 과거와 꼬여 버린 운명은 유정의 마음을 울린다. 상처로 상처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그들의 절망은 기적처럼 찬란한 행복감으로 바뀌어 간다.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제 여자는 스스로 죽을 결심 따위는 할 수 없게 되고, 남자는 생애 처음 간절히 살고 싶어진다. 세상에 ‘사랑’이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을 알게 해준 서로가 더 없이 소중하다.
그들이 만나는 목요일이 매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바램이 그들 마음에 가득 차 오를 무렵,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순간이 찾아 오고, 사형 틀 앞에서 토해내는 윤수의 독백이 진한 감동으로 모든 관객을 울린다.
" 모든 것이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정씨, 사랑합니다. 내 얼굴 까 먹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을 죽이라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첫댓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기라도 한 감동이...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 마음 다 바쳐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인가
요즈음도 가끔 영화를 보고 감동하며 사색하고 그 느낌에 공감을 구하는 길수의 삶이 참으로 젊고 생기가 넘치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기껍네 부디 그 감성, 사물에 대한 흥미, 길이 간직하기를 ....
영화를 아주 심도 있게 분석하며 감상하였군. 그 실력이 부럽네...^^*
역시 길수는 만년 소년이라고,현상을 순수하게 받어들이고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마음도 년륜에 들어가다 보니 매말러서 인지 그저 객관적인 현상으로 밖에 느끼고 인식할수 없으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