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4일
대전에 / 처, 성민과 세피아로 내려감 /전용오가 띠울에서 점심 냄 /야마하모터트레이딩에서 김영철 부장과 만남/ R6를 선정/ 중수엄마까지 다섯이서 저녁 / 처자는 세피아로 고속도로 타고 나는 단독으로 새 바이크 타고 입경 새벽 1시 30분.
◆ 5월 1일
교대에서 한자검정시험 봄.
◆ 5월4일
肇貫姚園尾 / 처음 R6로 출근!!
◆ 5월 6일 목요일
새벽녘의 꿈
신기하고 희한타!!
거대한 뱀과 그보다 작은 뱀 두 마리..
나의 손은 큰 뱀의 입속에서 뱀을 어루고 있었고,
그 장면은 작은 뱀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그랬는데...
잠이 깬 아침에
전화들을 받았다.
비서실 송인성 선생의 전화.
한완상 총장님과 금요일 밤의 음악회를 주선하는...
두 번째 전화는 택시조합의 새로운 대인담당에게서...
월요일로 약속하였다.
학교의 하오.
제일기획 잠원지사에서 지난 가을 인터뷰했던 전혜진의 전화를 받다!
<문화일보> 와인세대 인터뷰 의사를 타진해 왔다.
그리곤 요원과의 시간 중에 기자의 전화 취재를 받다.
사진은 금요일 아침 일찍 찍기로 하였다.
하루 안에 일어난 세 가지 뜻밖의 기이지사(奇異之事)...
참으로 기몽이 아닐 수 없었다.
◆ 5월 7일 금요일
아침 일찍 찾아든 문화일보 사진부기자 곽성호 씨.
성민과 기자의 도움 속에 골드윙을 아파트 뒤 잔디 위로 끌어올리어
정성희와 나란히 앉아 <문화일보>에 올릴 사진을 찍다.
쫘르륵~~~~ 연속의 촬영 속에 괜찮은 사진 몇 장이 기자의 손에 뽑혀
드디어 이날 이른 오후 석간에 기사와 함께 등재되다!!
하오 6시 되어 총장실에 나아갔더니, 한완상 총장이 날 맞으며 기뻐해 준다.
"김교수가 신문에 나왔어!!" 그리고 그 신문을 기념으로 가지라며 건네 주었다.
비서실의 두 여인도 동반하여 인사동 <아리랑>에 갔다.
그곳 주인의 환대와 구수한 입담을들으면서 저녁하였다.
나는 한총장님의 바로 앞에 앉아 냅킨을 챙겨드렸다.
복잡한 금요일의 낙원동과 인사동길, 광화문 앞을 헤치고
하오 8시 음악회에 겨우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배익환 부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소나타 세 곡 연주 가운데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맨 나중의 크로이체르를 뒤에 두고
총장님과 그곳을 나와 다시 다이너스티 차에 올랐다.
기사분은 어떻게 그렇게 척척 차를 대기시킬 수 있는 건지...
압구정에서 총장님과 작별 인사하고, 나는 그분의 호의를 어기지 못하였으니,
그 다이너스티는 잠깐 한양아파트 우리 집 앞 횡단보도에 세워졌다.
◆ 5월 10일 월요일
생전 처음으로 상미를 세피아에 태우고
오후 2시에 있는 상미의 성균관대학교 수업에 맞춰 질주하였다.
마침 길은 잘 통하였길래 아주 여유롭게 교정 안에 데려다 줄 수 있었다.
그 애의 인사를 차창 뒤로 받으며 되돌아나올 때 기분이 가뿐하였다.
물론 역시 2시의 보험회사 사람과의 내 연구실에서의 약속에도 넉근히 맞춰 갈 수 있었다.
인사보상액은 100에 맞춰졌고, 나는 합의서에 조인하였다.
그리고 곧, 나는 또하나의 낭보를 받는다.
학술진흥재단...
지난 4월 21일 수요일에 골드윙으로 찾아가 했던 그 평가작업.
그건 2심이었단다. 6월 1일 있을 최종 3심의 평가에 초치된 것.
그 기이한 꿈의 징험이 계속되어지는 것인가?!!
◆ 5월 13일 목요일
여기는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앞의 만해마을 안 로비!
지금 하오 6시 28분이다.
오전에 속초로 가는 미시령 고개를 넘어 가며 <화암사>를 둘러 보고,
그 뒤는 속처 시내로 진입하여 꿈에도 선한 속초 시내를 가로질러
<동명항>에 닿았다. 속초를 여러 차례 갔지만 아직 발길이 닿지 못했던 곳...
그리고 다같이 둘러 앉아 점심의 회를 먹을 때 나 드디어 술에의 파계를 했다.
아내는 벌써부터 아무 관게없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좀 더 미루고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음주를 재개한 것이다.
짚어보니 만으로 꼭 85일을 확실히 넘기고 더 넘긴 다음이었다.
2월 16일 밤 10시50분 사고였고, 오늘 5월 13일.
3월 16일 밤 10시 50분 부로 만 28일,
4월 16일 밤 10시 50분부로 만 59일,
5월 16일 10시 50분부로 만 89일인데, 어제5월12일 밤10시50분까지만 쳐서
나흘이 모자라니 85일인 것이다.
아까 속초에서 다시 미시령을 넘어오면서
아내 생각에 가슴 찡하였다.
2001년 5월 당시 구룡령을 넘으면서 일어났던 사고,,,
이제 5월이니 그 일이 만 3년이 아니런가!!
함께 용달에 앉아 시름없이 서울로 돌아오느라 넘던 그 고갯길..
아, 순간 아내가 그리도 안됐고, 고마웁고,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생각으로 오늘 미시령을 넘은 그 일 하나만으로
오늘 사는 의미는 족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사무침을 아내에게 전화해서 적곰이라도 전해주었다.
어찌 말로 풀어질 그리움이리오, 사랑이리오..
◆ 6월 1일 화요일 늦은 밤
성민이 생각에 울적한 하루...
어제 5월 31일 월요일 아침에 녀석은 집을 나섰다.
오전 8시 42분이었다.
우연 상미, 그리고 용석이 상헌이 논산길을 다녀왔다.
이제 그애들은 더 이상 어린 애들이 아니었다.
성민이 녀석의 선택에 따라 나와 처는 집에 남기로 하였다.
용호처남이 그 아침에 떠나는 성민이를 배웅한다고 오다가
극적으로 서원국민학교 앞에서 우연과 성민이와 마주쳤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던 중간에마악 그길로 빠져나가는 애들과 만난 것..
정말 처참한 기분에 빠져있으려던 우리에게 용호는 막강한 위로였다.
칼국수를 먹고,햇볕 강한 한양아파트 1동 뒤를 함께 걸어, 계단 아래로 내려가
서원 국민학교 앞에서 손 흔들고 안녕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둘이 되어 집 안에 돌아와 앉았다.
오늘 아침에 처식은 종로문화셑너로 출발하고, 나도 뒤미처 학술진흥재단으로 향발하였을 때,
그리고 거기서 이런저런 일에 잠겨 있을 때만 해도 성민이 생각을 잠시 잊은듯 했는데...
학교의 내 방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감상이 엄습했다.
성민아, 나 다시 여기 돌아왔어...
그러나 지금은 더이상 네가 집에 있는 상태에서의 입실이 아니구나.
성민이의 지난 한 주를 회상하는 시간들에 사로잡혔다.
지난 주 오늘은... 이 시간에는...
그랬지.지난 주 월요일, 화요일 생각은 너무 떨어져서인가? 막연했다.
지난 주 화요일의 한문 수업은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도 요원과의 시간 뒤에 허겁지겁 운동을 위해 집으로 서둘렀는지, 아닌지..
그러나 수요일 되면 분명해진다.
강화 투어를 간 날이니까.. 그래, 강화 가는 길 내내 성민이는 R6로 내 뒤를 따랐지.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을 때 같이 대열에서 잠깐 빠져 타이어 가게를 들렸지.
삼부자집에서 그 애의 얼굴은 어두웠지.권기업, 안상건, 이상주, 울트라 들과 초지진 대교를 같이 건너고, 김포공항 앞을 통과하고, 여의도 공원에서 권기업이 사다준 음료수를 마시고, 그리고 집을 향해 서둘렀지. 그날의 후기를 옮겨 둔다.
LG25 그 자리는 한창 새로운 변모를 준비중!!
일단 모여진 바이크는 모두 8대.
권기업 씨는 강화에서 합류키로 기약.
이한기 씨의 중후한 로드로 번화의 강남역을 헤쳐 나와,
<제일생명>에서 좌회전하고 <사평로>를 통과하여
노량진 너머의 <노들길>을 한달음에 질주하니,
<김포공항>이 눈 앞에 가깝구나.
이제 헬멧을 덮은 얼굴은 더이상 쾌적일 수 없는
약간의 더위를 감내하며 조금은 힘겹게(?) 다다른 곳,
<강화대교>가 목전(目前)에 반가워라.
<강화대교> 건너자 내리막에 있는 <강화인삼센터>의 휴게소에 닿다.
최옥석 씨가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고 해안도로를 향해 막 출발하려는 찰나,
바로 앞의 멋진 바이크에서 던져 오는 반가운 시선과 손짓!!
이런, 권기업 씨 내외가 벌써 강화 진입이라고??
이제 9대의 바이크가 해안도로를 미끄럽게 달린다.
<덕진진>을 왼편으로 눈짓하고, 바야흐로 <초지진>과 <전등사> 갈라지는 그 길에 들어 섰을 때,
과연 오늘이 사월초파일임을 강력히 입증하는 차량의 행렬들...
지난 세월 그 길 다녀보도록 일찍이 볼 수없던 이 같은 광경,
그것은 꿈속에서나 만나봄직한 그런 장면이었다.
그러나 다행인 건 우리의 쉼터인 <삼부자집>이 저 꾸불한 길 너머의 지척에 보인다.
오늘 그 자리, 그 얼마만이던가??!!
그 곳의 주인 내외는 감격처럼 얼마만인지를 연호(連號)했고,
우리가 갖는 미안함의 정도도 그만한 크기만 하였더라.
"시골밥상"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실속 있고 맛있을 수 있음을 이날 비로소 실감,
이는 모두 주인 내외의 넉넉한 인심에서 비롯함이리라.
더욱이 이날의 점심은 안상건 씨가 STR1300 신차 구입을 기념하여
오래 벼르다가 이날 모처럼 같이 참석한 모두에게 베푸는 자리로 되었다.
귀로는 새로이 난 <초지진대교>를 건너서 오다.
강화 가서 <덕진진>에 오를 적마다 먼치에서 준설하는 모양을 바라만 보다가
오늘 드디어, 오랜 시간 눈으로만 사귀어 오던 그 다리를 설레임으로 건너 보다.
건너자 이내 R 차 세 사람과 헤어짐의 손짓하고,
<김포공항> 앞 다다러서는 최옥석 씨와, <등촌동> 께에선 이한기 씨와 차례로 아쉬움의 작별...
<노들길> 질러서 잠깐 휴식을 위한 여의도 공원, 권기업 씨가 건네는 음료수가 정겨웁다.
<88 대로> 달리던 한 중간에서 이상주 씨ㆍ안상건 씨와,
<흑석동>길 에서는 권기업 씨 내외와도 마침내 아쉬움 속에 헤어져 빠른 귀로에 들다.
왕복 145Km를 가름한 이날의 투어도 그렇게 끝을 맺었으니,
오늘을 함께했던 이들, 그리고 아직도 눈에 선한 강화 길...
그 모든 것이 애틋한 여운으로
지금 또다시 진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날 수요일 투어 후에 친구들과 술한잔을 한다 하고 나갔던 녀석이
바테리는 다 나가고, 누구더라 박찬서 정종우 들과 세븐에서 얘기에 빠져 결국 2시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고
다음 날 오전까지 나의 냉대와 백안시를 받아야 했었지.
이튿날, 나는 그냥 인사도 받지않고 학교로 가려다가
강남오토바이에서 펑크와 엔진오일 해결하고, 인현피부과에 들려 지루성 약과 발톱약 처방을 받고 약을 산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녀석과 점심을 먹고 학교 가기로 마음을 바꾸며...
녀석은 냉면을 선택했고, 우린 <이가면옥>에서 물냉면을 시켜 먹었지.
거기선 아르바치트 하는 그 애의 옛 친구를 또 보고.
그애를 골드윙으로 신촌까지 태워주었지. 연세대와 세브란스를 건너는 횡단보도 앞..
난 그애가 만나기로 한 김리원이를 보지않고 그냥 간다고 하면서 그 애와 헤어져 금와터널을 빠져나갔지..
소격소동 미숙이 사무실에 들렸을 때 이미 만남의 기대에 찼던
아내는 친정엄마와 함께 방배동 쪽으로 떠나고 난 뒤였다. 허전...
미숙이가 건네 준 냉수 마시고, 송희의 한자 물음에 답하는 동안
강원이라는 친구는 골드윙에 살짝 올라 앉아 보더라.
611 내 방에 들어서는 허전을 잊기 위한 몸부림에 빠졌지.
저녁 어두워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
그런데, 아아 그런데 비가 주춤한 때를 타서 귀가길에 들었는데,
그리하여 뉴코아 구관 앞을 마악 통과아여 신호등을 기다리려던 찰나!
날 부르며 내게 달려오던 녀석의 웃음과 흥분된 동작들이 내 눈을 채웠지.
"아빠," 밝게 소리내 웃으면서 어린 애처럼 펄쩍펄쩍 뛰며 내게로 오던 그 애의 모습!
낮 2시경 신촌에서 헤어졌는데, 밤 10시무렵 뉴코아에서 마주친 그 기이한 상봉이 신기하긴 나도 매한가지였다.
굳이 김리원인가가 원한다 하여 잠깐 내려 구관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나만 먼저 집 쪽으로 향했던 일.
집에 돌아와서, 성민이 만난 얘기를 했고,
. 밤 11시조금 넘어서 정성희가 내일 함지박에서 방배동 식구들 모여 저녁 하자는 전화를 했을 때 전화를 받은 미숙이는
막 버스에서 내려 반포 방배동 집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상황이 생각이 났다.
금요일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 녀석은 그림을 안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같이 나섰다.
성민이를 위한 소단 선생의 말과 몸짓들이, 그 호의가 너무도 고마웠다...
12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이제 녀석의 끝수업이 끝나고 있었다.
여전히 내리는 빗속을 달려, 크라운호텔을 지날 때까지도 리원이란 애의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소꼴집에까지 함께 앉았지.
녀석은 그 여자애의 집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
차를 가져가라 해도 굳이 택시로 가면 된다 하며 빗 속으로 나갔지.
그리고 남은 우리 세 가족은 따뜻한 숯불을 앞에 두고 괜찮은 점심을 가졌지.
금요일 저녁은 함지박 회동..
예약 시간(7시10분)에 맞춰 7시 15분 도착!
나는 차를 획돌려 은행나무 쪽으로 왔고, 상미는 따라 돌리지를 못해 사평로로 갔는데
우연 성민 상미가 탄 차가 먼저 도착하였더라.
이윽고 사무실에서 대중교통편으로 복잡한 도로를 타고 미숙이까지 오니,
모두 여섯이서 함지박 6호실에 앉았다.
지난 2월 27일 내 생일인가에 앉았던 그 자리에...
그렇구나, 석 달 만이구나.
내 오른 편에 처가 앉고, 내 왼편에 처제 앉고,
내 마즌편엔 성민이 앉고, 그애의 오른 편에 우연이 앉고, 왼편에 상미 앉았다.
고량주와 맥주를 반주하여 제법 흔건한 분위기의 저녁을 갖을 수 있었다네.
이제 미숙이는 상미 차에 타고, 정성희의 운전으로 반포 외가로 차 두 대가 움직인다.
외할아버지는 그 옛날의 일본어로 된 '군대는 요령'을 일러 주며 계셨고,
외할머니도 밝은 분위기를 위해 많은 말씀을 하신다.
상미는 작은 공간의 소파 맨 오른 편에 조용히 앉아있고,
우연이는 모두가 둘러앉은 협소한 거실의 복판에 앉아 씩씩한 태도로 대화에 나선다.
성민이는 그냥 밝게 '네!네'하고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
정성희씨는 적어도 담담하고 의연한데
나만이 생각이 많아 전전긍긍으로 앉았었지.
토요일엔 녀석이 저기 강원도 원통에서 훈련을 마친 상헌이를 데리러 간다 하고
최용석과 함께 세피아로 생전 초행길을 용케도 찾아 간다더니 찾아갔던 날 아니던가!!
그 사이 우리 부부는 인사동에 나가 초해서 법첩이며 종이를 사가지고 돌아오고.
돌아오자 곧 녀석도 어느새 서울 도착이었다. 길이 잘 통하였노라고.
그리고 그 밤에 친구들과 송별모임을 가진 녀석은 끝내 전화연락도 없이 새로 2시까지 종무소식타가
친구 찬홍이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나는 또다시 냉담일 수 밖에 없었지.
일요일은 거의 정오가 다 되어 일어들 났다.
그리고 그 저녁에 상미 포함하여 소꼴집에 갔는데,
바로 어제 친구들과의 모임 장소인 줄 그제사 개달았다.
성민이의 군 입대에 주인 아주머니가 갈비살을 그냥 더 내놓는다.
그녀의 온정어린 친절과 배려를 잊을 길 없다.
산사춘으로 다시금 다가온 전별 앞에 우리 가족들 정리와 정의를 나누었다.
사무실에서 귀가중이던 미숙이 이모가 성민이 앞으로 문자를 보내었다.
연상의 멋진 여인이 기다린다나.. 성민이가 그 내용을 짐짓 내게 보여주더라.
8시 30분 경에 나왔고, 애들은 다시 가벼운 술 한 잔을 위해 떨어졌고, 우리만 집으로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 성민일 둘러싼 여자들의 온갖 해프닝이 벌어진줄 우연이의 얘기를 통해 알게되었다.
그렇게 그밤 해프닝을 치루고야 들어온 성민이 녀석 해야할 일이 급박해졌다.
옮겨 놓겠다던 컴퓨터를 그제야, 새벽 1시너머 2시 다되어서야 착수했으니
굳나잇을 인사하고 각각의 방에 들어선 시각도 새로 3시나 되어서였다.
첫댓글 2004/06/03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