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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3-14 철도여행기217 나주2(강진체험여행) |
사진은 아래의 사이트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sakaman5.com.ne.kr/photo_59.htm 오늘은 기차여행기를 적는 사람들의 18차 기차여행정모입니다. 장소는 전남 강진이며, 작년 2월에 12차 정모로 실시를 한 곳이라 낯설지는 않군요. 그렇지만 작년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가자!철마야님이 사전답사를 하신 뒤 왕복기차표를 무사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참석을 할 수 있었으면 하지만 현지에서 제공되는 차량의 인원제한으로 인하여 16명 이상은 참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먼저 여행정모의 일정 및 회비산출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비 : 어른 - 65,000원, 학생(대학생 이하 열차운임 20% 할인적용) - 57,000원(플러스마이너스알파) (왕복 열차비 40,800원, 연계차량비 4,000원, 숙박비 5,000원, 식사비 아침 5,000원, 점심 5,000원+기타비용 2,000원[비상금], 운영진수고비 3,200원) # 3.13(토) 1. 15:30까지 서울역 관광안내소 앞 집결(시간엄수) (인원확인, 유인물 배포, 인사, 자기소개, 정모안내) 2. #417 무궁화호 서울(16:05)->나주(20:32) : 20,400원 (단, 대학생 이하 : 16,300원) 3. 차량 나주역(20:32)->강진 민박집(자연이 좋은 사람들)(21:10) (100주년 기념 고무인 날인, 차량은 열차 도착 전 대기) 4. 캠프화이어, 고기 구워 먹기, 오락, 음주 기타 등(21:30~24:00) 5. 취침 및 개인시간(24:00~07:00) : 숙박 5,000원(1인당) # 3.14(일) 6. 기상 및 세면(07:00~07:30) 7. 숙소에서 아침식사(07:30~8:00) : 5,000원 8. 다도강좌(08:00~9:00) 9. 강진체험여행 : 차량 4,000원(1인당) 09:00 숙소출발-다산초당(09:20도착)-도보이동-백련사 백련사(10:40출발)-칠량옹기마을(10:55~11:10) 고려청자도요지(11:20~12:00)[기념 고무인 날인] 숙소에서 점심식사(12:20~13:00) 무덤이 있어 아름다운 집(13:10~13:20) 와보랑께박물관, 병영성(13:40~14:20) 무위사(14:35~14:50) 태평양 녹차밭(14:55~15:30)-월남사지-나주역(16:10) 10. #422 무궁화호 나주(16:22)->서울(20:49) : 20,400원 (단, 대학생 이하 : 16,300원) 11. 서울역 해산(인원확인 및 맺음말)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를 하고 여행신청을 받았습니다. 한 10명이나 겨우 신청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신청을 받자마자 금새 마감이 되어버리는군요(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약간은 당황스럽습니다) 회비입금까지 완료를 하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중간에 개인사정으로 신청을 취소하신 분들하고 출발역이 서울역이 아닌 분들 때문에 승차역을 바꾸느라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이름, 닉네임 순) 1. 박준규(박준규) : 서울역 2. 김숙이(셀리) : 평택역 3. 노윤선(써니) : 학생(서울역) 4. 박지현(백우) : 서울역 5. 이춘우(봄비) : 서울역 6. 유덕상(가자!철마야) : 학생(청주출발 조치원 합류) 7. 박준호(JⓞⓞⓝHⓞ™) : 영등포역(정모 물품 구입) 8. 김형심(SHIM) : 서울역 9. 장미연(울트라등쌀) : 영등포역(정모 물품 구입, 정모 자료 작성) 10. 박진숙([박진숙]) : 서울역(정모 물품 구입) 11. 권연남(권연남) : 영등포역(정모 물품 구입) 12. 최선영(곰발바닥) : 서울역 13. 김호진(팬더) : 영등포역(정모 물품 구입) 14. 황해연(시므나) : 서울역 15. 감주영(티라미슈) : 서울역후발 나주역 합류 16. 서정아(쩡아) : 학생(부산출발 조치원 합류) 17. 김민정(늘 행복하게) : 광주출발 나주역 합류 18. 최진(만물의주방장) : 조치원 합류 후 다음 날 오전 일찍 개별출발 19. 김명집(검둥이옵) : 정모 참석자 아님, 상행 열차 서대전역에서 합류 서울역, 영등포역에서 대부분의 회원님을 만나 본격적인 기차여행이 시작됩니다. 몇몇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쌀을 준비했으며, 서울역에서 오시는 분 중 박진숙님은 밑반찬, 영등포역에서 오시는 분들의 경우 맥주와 기타 반찬거리 등을 구입하였고요. 그리고 조치원에서 가자!철마야님과 쩡이님이 합류를 하면서 간단한 저녁 먹을 거리를 구입했고요(김밥 외......-배고픔에서 잠시나마 구원을 해주셨음) 회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앗! 논산역 부근에서 갑자기 만물의주방장님이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깜짝쇼를 연출! 그래서 약간은 조용했던 객실?(그 동안 울트라등쌀님의 목소리만 들리더니......) 안의 분위기가 UP이되고......(그렇지만 너무 소란스러우면 안되는데......) 4시간 30여분을 달려 나주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해서 광주에서 오신 늘 행복하게님과 만나고 100주년 기념 고무인을 날인 받은 후, 마지막으로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내려오신 티라미슈님을 만나 밖으로 나와 나주역 광장에서 자기소개를 하고(뻘쭘을 없앨 수 없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자연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들풀님의 차량을 이용하여 이동합니다(잠시 영산포 근처의 마트에서 추가로 먹을 거리를 구입)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나주역->나주터미널->강진터미널 or 성전 정류장 그리고 무위사...... 이런 방법이 되겠지요. 해남방향으로 한 40여분을 달려 도착(영암을 지나 성전 약간 못미쳐 경포대라고 적혀 있는 안내표지판이 보이고......) 예쁘장하게 생긴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호랑이와 비슷한 색상을 지닌 개 한 마리(겉으로 보면 개라기 보다는 늑대하고 닮은 것 같군요, 실제로는 착한 진돗개랍니다)가 불쑥 나타나 우리를 반겨줍니다. 이름이 무엇일까? 헉! 개피? 이런 잘못 들었습니다. 해피군요(이런 실수를 하다니......) 민박집에 도착하니 이미 캠프화이어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어 있고, 고기 및 야채구입 등도 준비완료...... 방에 간단히 여장을 푼 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합니다. 남쪽지방이라 그런지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 밖에서 캠프화이어를 해도 추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고기파티를 시작합니다. 간만에 해보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고기를 다 태워 먹고 이런...... 게다가 연기가 눈 안으로 마구 들어오니 절로 눈물이 나는군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슬슬 제대로 된 고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식당에서는 밥 및 반찬 준비를 시작하고(물이 차가워서 고생을 많이 하셨을 듯) 다른 한편에서는 식탁과 의자를 준비하여 걸레로 닦으며 테이블 세팅 중이고요. 모든 분들이 잘 도와주셔서 맛있는 고기 밥 그리고 술로 배를 채우며 캠프화이어를 실시합니다. 그 중에 만물의주방장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는군요. 고기를 굽다가도 장작을 떼기도 하고 가지고 온 기타로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이제 다음 주 수요일이면 군대를 가기에 마지막 정모에 참석하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쩡이님이 가지고 오신 스파클라로 불장난(이름 하여 “불꽃쇼”)도 하고......(실제로 불꽃놀이용 기구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그리고 맥주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써니 언니의 본격적인 행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01시까지 놀다가 아침부터 있을 일정도 있고 해서 쉬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잠을 잘 사람들은 2층으로 All Night를 하실 분들은 넓은 1층으로...... 간단히 맥주를 걸치며 부담없는 대화...... 간단히 우리 까페에 대한 소개 및 그 동안 있었던 일 등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대화를 듣기도 하고...... 먼저 뻘쭘 그 다음 써니(이런 약한 모습......), 팬더 그리고 저도 잠이 들기 시작합니다(03:00 헉 3시간 밖에 못 자겠군) 그리고 나머지 시므나님(심은하를 닮았다고 하시는데......), 티라미슈님, 만물의주방장님, 쩡이님을 밤을 꼴딱 새신 듯(대단한 체력들이시네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셨기에 졸림을 참을 수 있었을지? 뭐 만물의주방장의 입담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만......) 몇 분을 자지 않은 것 같은데 저의 시계의 알람이 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날 아침입니다. 06:30분에 일어나 월출산의 멋진 모습과 민박집 주변을 바라보고 아쉽지만 만물의주방장님을 떠나보내기 위하여(마지막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군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잠시 전송을 하러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밤을 샌 분까지 대략 8명 정도의 인원이 환송에 동참...... 들풀님의 15인승 이스타나에 탑승하여 영암터미널로 출발하는데 우리가 처음에 민박집에 도착할 때의 코스가 아닌 차 밭과 무위사를 지나서 가시는군요. 이따가 가보겠지만 멀리서나마 넓은 강진 차 밭을 구경을 하기도 하고...... 영암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5분이 지나지 않아 광주행 시외버스가 도착하는군요(버스에 적혀있는 출발시간으로 보아서는 해남에서 출발한 버스가 아닐지.......)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SHIM님의 전화(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셨는지?, 다들 만물의주방장 배웅해 주러 나갔는데요......) 민박집으로 돌아가는데 들풀님의 확실한 서비스가 시작됩니다. 먼저 완도 이야기...... 완도가 강진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청해진(완도)은 무역의 항구로써 굉장히 유명하고 전라도의 70%의 부를 가지고 있을 만큼 잘 살았기 때문에 문화, 경제면으로 많은 것들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는 말씀과 함께 작천면에 있는 황대중 장군의 애마의 무덤(논 가운데에 있는데 눈에 확 띌 뿐 아니라 상당히 이색적이군요) 그리고 충효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각을 잠시나마 살펴보며 설명을 해주시는군요. # 간단한 설명1(장려각, 양건당애마지총) " 용상리 구상마을에는 김억추와 함께 임진·정유재란 때 크게 활약한 황대중(黃大中, 1551∼1597) 장군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1795년(정조 19년)에 건립한 정려각(旌閭閣)이 있다. 황대중은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영암군수로 부임하던 증조부 황응을 따라 이곳 구상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일찍이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자신의 왼쪽 허벅다리 살을 베어 모친의 병을 낫게 한 대신 자신은 다리를 절게 되자 모두들 그를 효건(孝蹇)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효성에 감동한 조문객들이 10여리나 늘어섰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에게 정릉참봉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이를 사양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80여명의 별초군 중 한 사람으로 뽑힌 그는 여산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당시 어가를 호위하여 왕의 신변을 지켰으며, 영변에서는 왜장 3명의 목을 베었다. 1593년에는 김완과 함께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향도관이 되어 분전하였고, 병졸 300여명을 이끌고 진주성 싸움에 참전하였다. 1594년 거제도 싸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분전하다가 오른쪽 다리마저 중상을 입어 양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자, 이순신 장군이 그를 보고 "과거의 다리는 효건(孝蹇), 지금의 다리는 충건(忠蹇), 두 다리를 함께 절룩거리니 양건(兩蹇)이로다" 고 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호는 양건당(兩蹇堂)이 되었다고 전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함께 남원성 싸움에서 두 다리를 절면서까지 분전하였으나 적탄에 맞아 그만 전사하였다. 구상리에 있는 정려(兩蹇閭)는 그가 죽은지 200여년 후에야 암행어사 정만석의 상소문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1894년에 중수(重修), 1907년에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또한 그의 무덤은 마을 뒷 편에 있으며, 옆 동네인 척동에 기념관인 충효관과 사적지비가 있다. 한편 척동 논 가운데에는 황대중 장군이 아끼던 애마의 무덤(愛馬塚)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요즈음도 가끔씩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거나 수백리 길을 달려 주인집으로 돌아오는 충견(忠犬)의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이 말무덤도 주인과 말 사이에 얽힌 감동적인 사연을 담고 있다. 황 장군에게는 평소 둘도 없는 충복이요 수많은 전투 현장에 늘 자신과 함께 있었던 말이 한 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남원성 싸움에서 그만 전사하자, 이 애마는 눈물을 흘리며 주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김완 장군이 황 장군의 시체를 거두어 애마의 등에 태워주었더니, 이 말은 적의 눈을 피해 주야로 300리 길을 달려 이곳 구상리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굿간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 있던 이 애마는 황 장군의 장례가 끝난 3일 후에야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그러자 비록 짐승이지만 주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애마의 눈물겨운 충정에 감복한 유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말의 시체를 황 장군의 무덤 근처에 묻어 주었는데, 이 말무덤이 이른바 양건당애마지총(兩蹇堂愛馬之塚)이다." -출처 http://myhome.edunet4u.net/tooyoung/4kang/4-3-5.htm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SHIM님이 산책 중이고, 아침 준비가 한창입니다. 아침 메뉴는 녹차밥입니다. 녹차, 녹차 아이스크림 등을 먹어보았지만 녹차밥은 처음이군요. 식당에서 맛있는 반찬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고 씻은 뒤 본격적으로 일정대로 강진체험을 시작합니다. 08:35분 출발할 때는 모두들 눈이 초롱초롱 한 것 같은데 달리는 동안 조금씩 피곤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꾸벅꾸벅......(잠도 전염병인가 봅니다) 09:10분쯤 다산유물전시관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천천히 전시관을 둘러보는데 전시관 관계자님의 특별한 설명(단체관람이거나 외국인이 아닌 이상은 일일이 설명을 안 해주신다고 하시지만 들풀님의 힘으로......)과 함께 관람을 합니다. 그리고 다산초당으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한 700여미터를 가면 현 강진군수님이 하시는 다신계문화원(기념품, 음식 등을 판매하는 곳)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됩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와 푸른 잎사귀들...... 다신계문화원에서 한 800여미터를 걸어 올라가니(간만의 등산이라 힘드시지요?) 슬슬 다산초당이 보이는군요.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생활 중에서 10년을 생활하였다는 다산초당입니다. 옛날에는 초가집이었는데 70년도에 다시 복원하는 중간에 기와로 바꾸고 크기도 조금 넓혔다고 하는데 관리를 하기에는 어렵지만 옛날 모습으로 보존이 되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 간단한 설명2(다산초당)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18년 중 1808년 봄부터 10여 년을 지냈던 곳.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백여 권에 달하는 후기 실학서를 집대성한 곳이다. 주변엔 동백과 대숲이 어우러져 운치를 자아내고, 다산이 시름을 달랬다는 천일각에 서면 시퍼런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산’은 원래 차나무가 많은 만덕산의 별칭인데 차를 유난히 좋아했던 정약용은 이 초당에 머물며 자신의 호를 "다산" 이라 했다. 초당 주변엔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가 있고, 다산이 직접‘丁石’이라고 새긴 바위도 있다. 다산초당과 보정산방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데, 사실은 하나 하나씩 따다 쓴 것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씨체가 모두 다르다. 초당에서 다시 언덕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백련사가 있다. 다산이 명승 혜장을 만나기 위해 이용했던 오솔길로 호젓하고 어여쁘다. 꽃 피고 새 우니 더 없이 아름답다 출처 - http://blog.naver.com/eclick?Redirect=Log&logNo=100001042741 다산초당을 지나 옆으로 조그마한 못에는 의외로 큰 붕어 등이 보이는군요. 슬슬 이동을 해볼까요? 다산 선생이 많은 책을 집필한 동암 그리고 더 올라가면 강진만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고향을 생각했다는 천일각이 나타납니다. 천일각에 서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군요(시인이 된 듯한 상상을 하며 시를 읊어보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시가 없으니 이런......) 멀리 푸른 들판과 함께 강진만이 보이고...... 날씨가 좋다면 멀리 완도, 다도해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걷다보니 확 트인 곳에 동백꽃이 멋지게 피어 있는 곳이 보이기에 얼른 사진을 찍고...... 다산초당에서 800m를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백련사가 보입니다. 백련사 앞에 작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어떤 수상생물이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올챙이?, 두꺼비알?, 개구리알?......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오셔서 그런지 이번에는 멋진 작품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군요. 특히 삼각대까지 가지고 오신 봄비님 그리고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박진숙님, 홈페이지에 풍경사진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찍으시는 쩡이님, 티라미슈님 다들 보기 좋군요. # 간단한 설명3(백련사) " 청자 도요지로 유명한 전라남도 땅 끝의 강진. 강진을 말할 때에는 다산의 초당을 빼놓을 수 없고, 다산 초당을 이야기할 때에는 그 옆의 백련사라는 절을 빼놓을 수 없다. 강진 백련사는 동백림으로 유명한 절이다. 수령 약 300년 정도된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2만평의 땅을 촘촘이 덮고 있다. 천연기념물(151호)로까지 지정된 국가보물이다. 백련사는 높이 409m의 완만한 만덕산 품 안에 있어서 만덕사라고도 불리워졌다고 한다. 신라 문성왕 1년 (839년)에 무염선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검색 어떤 분이 백담사를 이야기하시는데 참고로 백담사와 백련사는 아무 관련이 없답니다. 이 곳에서는 정말 하얀 개(백구라고 불리는 것으로 추정됨)가 반갑게 저희를 맞아주는군요. 대웅전으로 올라가면 멋진 강진만도 내려다 보이고요(아쉬운 것은 주위에 공사 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합니다) 시계를 바라보니 10:30분이군요. 다산유물전시관에서 이곳까지 구경하고 주차장까지 내려가기까지 대략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 다음코스인 칠량 옹기마을로 출발. 5분 정도 달리면 중간에 철새를 관찰하는 곳이 보이는데 잠시 둑방 길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달립니다. 덜컹덜컹 차의 천정에 부딪힐 뻔 하는 등 약간의 고생을 하지만 그 대가로 드넓은 갯벌과 갈대밭이 펼쳐지는데 정말 멋있군요. 아울러 망원경으로 철새를 관찰할 수도 있었고요. 철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관찰하였으면 정말 좋았을텐데......(모두 그냥 앉아서 있는 모습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만......) 이렇게 15분여를 달리며 구경을 하고 일반도로를 만나면 잠시 징검다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11:10분쯤 칠량옹기마을에 도착(작년에 가보지 않은 곳이라 내심 기대를 하였음)했는데 헉! 아무도 없군요. 예전에 마을의 이 곳 저 곳에서 옹기를 많이 만들었지만 현재는 한 집에서만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막상 옹기를 만드는 곳에 도착을 했지만 아무도 계시지 않아 만들어 놓은 것만 구경을 하였습니다. 조그마하고 컴컴하며 허름해 보이는 집 안에 수 많은 옹기가 보이는데 보통의 옹기보다는 크고 튼튼해 보입니다(깨지지 않게 만드는 노하우가 있다는군요) 그리고 발물레와 함께 전기식 물레가 보이고(작년 고려청자도요지에서 도자기 체험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예전에는 제주도의 말과 교환을 할 정도로 유명한 특산물이었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면 멀리 숲이 우거져 있는 섬이 하나 보이는데 죽도라는 곳입니다. 강진에서 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유인섬이지요. # 간단한 설명4(죽도) "봉황 앞 바다 한가운데는 둥그렇고 거무스름한 섬이 하나 떠 있다. 이 섬은 대나무가 울창하여 대섬(竹島) 이라 부른다. 탐진만의 7개 섬 중 가장 위쪽에 자리한 이 섬은 주변 풍광이 뛰어나 금릉 8경 중 1곳으로 꼽힌다. [죽도귀범(竹島歸帆)]이 그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강진현여지승람](1895)에 따르면 죽도는 한양이나 강진 병영성에 전죽(箭竹,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을 납부하였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에 배를 타고 낚시질이나 뱃놀이를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출처 - http://myhome.edunet4u.net/tooyoung/4kang/4-10-11.htm 한 15분여 옹기를 구경을 하고 11:25분쯤 고려청자도요지로 출발합니다. 입장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 1000원(단체 800원), 중·고교생 500원(단체 400원), 초등학생 400원(단체 300원), 6세 미만·65세 이상 무료 실제로 강진청자자료박물관과 야외의 동상,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 만드는 곳 등을 모두 구경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간단히 야외의 동상과 강진청자자료박물관만 구경을 하기로 합니다. 강진청자자료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내 데스크에서 박물관 방문 기념 고무인을 날인 받는데 모양을 보면 귀엽고 깜찍합니다(강진군의 마스코트) 박물관에서 강진의 고려청자에 대해 잠시나마 공부를 하고 야외 전시장으로 나와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동상, 이쁜 도자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니 11:40분이네요. 다음은 와보랑께 박물관(http://woaba.com.ne.kr)으로 이동(헉 30분이나 소요되는군요) 12:10분쯤 도착을 하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아무도 계시지 않는군요(제가 기증한 기차표 등의 자료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들풀님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고 당혹해 하시고...... 실제로 안에 들어가서 전시물을 구경을 하면, 여타 전시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일상적으로 사용을 하고 그냥 버렸을 물건들을 나름대로 정리를 해 놓아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 놓았답니다. 작년에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철판 도시락, 연탄난로와 연통, 오르간, 새마을 잡지 등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그 외에도 기억이 날만한 것이 많이 있지만 갑자기 생각을 하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전시관 내부를 구경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주위를 구경하기로 합니다(추후에 홈페이지로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하고......) 전시장 건물 벽면에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적혀져 있는데 서울토박이인 저로서는 외국어 같이 느껴지는 단어라 해석하기가 정말 어렵군요. 주위를 구경하면 꽃과 나무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사진 찍기에 너무나도 좋은 장소입니다. 이 곳에서 15분여를 구경을 하고 병영면으로 가면 한창 신축 중인 병영성, 홍교, 하멜표류기에 등장하는 은행나무, 빗살무늬의 이색적인 담장을 시간 부족으로 인하여 차를 타고 가며 눈으로 구경을 하였습니다. # 간단한 설명5(병영 빗살무늬 담장) 황금벌판 너머 멀리 영암 월출산의 치솟은 바위들이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이는 병영면엔 골목이 넓고 길어 ‘한골목’ 이란 이름이 붙은 조선시대의 골목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의 골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담쌓은 방법도 특이하고 담장도 높다, 길쭉한 돌을 45도 각도로 좌로 기울어지게 쌓고 흙반죽으로 덮은 후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돌을 쌓는다. 이른바 빗살무늬 돌담 으로 1653년부터 약 7년간 하멜을 포함한 33명의 네덜란드인이 억류생활중 노역을 하면서 소개한 네달란드식 담장이다. 네덜란드식 담장은 역학구조상 일반 돌담보다 튼튼해 비바람과 홍수피해가 잦았던 병영은 이후 모든 담장을 네덜란드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담이 높은 것은 병마절도사나 군관들이 말을 타고 순시할때 담장이 낮으면 말 위에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으로 염려해 높이 쌓았다는 설과 일찌기 ‘북은 개성상인,남은 병영상인’이라고 할만큼 상업이 발달해 남정네들이 집을 비우면 아녀자들만 남기 때문에 보호차원에서 담을 높게 쌓았다고도 한다. 출처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21015000017018 # 간단한 설명6(병영 은행나무) 강진 병영면의 은행나무 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2m, 가슴높이의 둘레 7.2m로 마을 중앙에 있다. 뿌리가 민가의 부엌, 방 밑에까지 뻗어 있으며 뿌리 부근에는 주민들이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는 큰 바위가 놓여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병영면은 네덜란드 하멜(Hamel) 일행이 약 7년간(1656.3∼1663.2)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이들은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았다고 『하멜표류기』에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이 은행나무가 아닌가 추정된다.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이곳에 내려온 관리가 폭풍으로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로 베개를 만들어 자다가 병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베개를 나무에 붙여주면 병이 나으리라”고 한 말을 따라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후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5일 자정무렵에 은행나무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간단한 설명7(전라병영성지) 한창 복원 중인 국가문화재 사적 제397호 전라병영성지 제주도에서 표류 중이던 네델란드인 하멜 일행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7여년 동안을 머무르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복구가 되지 못하고 폐영되었다. 전라 병영성지는 당초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어 오다가 1997년 국가사적으로 다시 지정되었다. 800억을 투자해서 한창 복원 중에 있는데 2007~8년도에는 완성된 모습을 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눈으로 구경을 하고 들어가는 도중에 잠시 월남사지 3층석탑을 차 안에서 바라보고 숙소로 돌아 왔습니다. 점심 식사로 녹차 수제비를 먹고, 사모님으로부터 1시간여 동안 다도 강의도 들었는데 정말 어렵군요(많이 들어보고 실시를 해보아야 알 수 있을 듯) 식사를 하고 멀리 월출산을 바라보고(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만한 코스라 등산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는 말씀) 짐 정리를 하고 숙소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차량에 탑승...... 마지막으로 태평양 설록차밭과 무위사를 둘러보았습니다(근처에 경포대라는 곳이 있지만 다음 기회에......) 보성의 차밭과 비교를 한다면 보성 보다는 작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잠시 무위사(http://www.muwisa.org)를 구경을 한 뒤 나주역으로 이동을 합니다.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 하여 열심히 달려보지만 번번히 신호에 걸리고(이런 일도 드물다는데......) 16:18분 #422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기 위해 더욱 열심히 달려서 결국 16:15분 도착하여 광주에서 오신 늘 행복하게, 부산에서 오신 쩡이님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정말 죄송) 바로 승강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차에 올라(객차는 예전 무궁화호 특실전용으로 쓰이던 것이라 의자가 새마을호처럼 편리하군요) 너무나도 편안함에 피곤함이 쉽게 느껴집니다. 저를 비롯한 몇 명은 잠을 청하기도 하고(서대전까지 정신없이 잠을 잔 듯, 기차 안에서 이렇게 잠을 오래동안 잠을 자기는 처음이군요), 식당차에서 약간의 음주를 하시는 주4파(박진숙, 울트라등쌀, 곰발바닥, 써니) 그리고 경치를 감상 중인 권연남님, 독서 중인 백우님 등...... 서대전역에서 검둥이옵님의 깜짝 등장(공부를 하느라고 바쁘다고 하더니 거짓말인 듯) 영등포역에 내려 간단히 뒤풀이를 하고 집으로...... 작년에 강진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기차로는 나주역에서 타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므로 더욱 힘들겠지요?) 자가용으로 둘러보면 쉽게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후기 및 사진 등은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정모에 참석을 하여 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사전 답사를 다녀오시느라 고생을 하신 가자!철마야님, 자료집을 만드느라 수고를 하신 울트라등쌀님, 정모를 위한 먹을 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고생하신 박진숙님, 권연남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서정아(쩡아)님 홈페이지 이춘우(봄비)님 홈페이지 감주영(티라미슈)님 홈페이지 박준호(JⓞⓞⓝHⓞ™)님 홈페이지 박진숙([박진숙])님 홈페이지 |
첫댓글 수고 했어.. 아거 이번에 갔어야 되는데 이런 넘 아까워,....
우와~~~ 대단한 후기십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럼요..누구 주인님인데...ㅋㅋ
쩡아~ 니 주인님이냐..그럼 넌 준규형의 하인..ㅡ.ㅡa ㅋㅋ
우린.. 알프레도랍니다..ㅋㅋㅋ
역시.. 완벽주의 주인장님. 여행기에 완벽이 베였군요.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