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게 살지 말자!
겨울바람은 매섭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바람맛은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오랫동안 삶이 주는 희노애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과 회사 그리고 독감으로 인한 병원을 오가다가 갑자기 참으로 좋아하는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 나갔습니다.
동해바다는 내가 태어난 남해바다와는 달리 장대하고 광활하여 마음속에 걱정같은 찌거기를 한꺼번에 쏟아 토해도 쉬이 받아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있어 예전에 힘이 들거나 괴로우면 가끔 혼자서 가기고 하고, 아내하고 싸우고 나면 속에 불이 나서 무작정 차를 몰고 찾아가던 곳이기도 합니다만 언제 보아도 기분을 좋게 하는 마력을 지닌 곳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남해바다는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늘어져 있어 풍광은 그런대로 좋지만 속이 확 틔이는 곳은 아닌지라 어린시절 동심속에서는 아늑함이 있어 좋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 왠지 모르게 갑갑함으로 다가와 참 좋다는 표현은 하지 않게 되었나봅니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가진 어떤 작은 아픔도 바다는 항상 말없이 받아 주었기에 바닷가를 즐겨 찾는지 모를 일이지만 광활함이 주는 욕망의 끝자락이 보이지 않을 때 쉬이 놓아버리고 싶은 갈증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니 자주 가게 되나 봅니다.
바다는 항상 그랬습니다.
심하게 파도가 쳐도 그것에 순응하여 거부하지 않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이 잔잔해도 그것에 순응할 뿐이지 어떤 몸짓 같은 것을 스스로 하지 않았기에 그것이 주는 어떤 의미가 나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어가나 봅니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어 매서운 날 칠암이라고 하는 동네의 바닷가에 서서 우연히 바라본 해변가의 풍광 한 토막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가슴에 밀려오는 작은 느낌이 있어 여러분께 전할까 합니다.
그것은 넓은 바다와 주변의 풍광의 정갈함에서 추하게 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느낌이었습니다.
깨끗함은 겨울과 일맥상통한 느낌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겨울이 주는 은색의 향연도 그렇겠지만 움직임이 없는 더딤에서 오는 모든 것들이 성장과 달리 느림의 미학처럼 굳어지는 것이 깨끗한 느낌이 아닐련지요.
이것은 단순함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복잡하게 사는 것보다는 단순하게 사는 것이 훨씬 자신의 노출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깨끗하게 살수 있는 요인도 있겠지요.
흔히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하여 적당히 라는 용어가 각광받은 적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두루뭉술하게라는 모나지 않는 삶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 그런 삶이 나쁘다고 표현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찾은 칠암이라고 하는 동해 바닷가의 작은 동네는 넒은 선착장이 있고 참가자미 같은 것을 말려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어 어느 바닷가 마을과는 달리 생동감이 살아 있어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좋지만 혼자 있는 동안에 세인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존재하고, 장어회가 특히 유명한 곳입니다.
물론 회를 먹기 위해서 가는 경우도 있고 참가자미같은 고기를 사기위해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제처럼 그냥 바다와 그 내음이 그리워서 무작정 가서 맑고 깨끗한 바닷바람을 폐부 깊은 곳까지 흡입하고 찌든 삶의 찌꺼기를 내밷고 싶은 충동 때문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 어떤 연유로 가든 항상 좋다는 느낌은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선창가에서 서서 울산쪽으로 바라본 풍광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한 장의 사진으로 담으면서 하늘을 쉼없이 나는 갈메기의 유희를 보면 자유로운 삶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심하게 변덕스러운 구름길 따라 갑작스럽게 흩날리는 실비가 낭만으로부터 도망치게 하고 말았나 봅니다.
차안에 갇혀 긴 꼬리를 밟아가는 느낌으로 바라본 바다의 가장가지를 찾아 삶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지 못한 의문에 휩싸여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찾아낸 하나의 문장이 추하게 살지 말자가 아니였나 쉽습니다.
어떤 삶이 추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허지만 우연히 인생회향이라고 적힌 글을 읽으면서 그 속에 늙은이가 해야하는 어떤 모습이 있어 몇 번을 읽고 고개를 끄떡인 적이 있듯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생이 추한 것은 아닐까하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살아가는 공동의 생활 규범속에서 각자 열심히 살고 있고 그 사람마다의 목표와 추구하는 가치가 존재하겠지만 자신이 가진 확신이 남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추하지 않는 삶이란 화려하고 번듯한 것을 의미하지 않을테지요.
어떤 삶을 살든지 남으로부터 욕먹지 않고 사회에서 비난받지 아니하고 산다면 추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여건과 내가 가진 생각이 추한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강조하지 않아도 여러분이나 저나 같은 느낌으로 와닿을 것입니다.
우리 완벽하게 살수는 없을 겁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추한 것은 아닙니다.
완벽한 것과 추한 것은 공통의 분모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거니와 완벽한 것과 추한 것과는 상관없는 의제 일테니까요.
소박한 삶이라도 그곳에 자신이 추구하는 올곧은 생각의 뿌리가 존재한다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삶이라 하드라도 그곳에 삶아가는 의지가 존재한다면, 내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허지만 많은 것을 가졌지만 되돌아 볼 수 있는 아량을 가지지 않았다면, 명예를 지녔지만 겸손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며, 그 모습이 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것은 사람마다의 모습과는 다른 머릿속에 혹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혼과 같은 것이라서 겉모습과는 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보다 갖지 아니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작은 한 쪽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고, 내가 가진 작은 권력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 있을 때 존경스러운 것이고, 이런 모습들이 만개했을 때 우린 추하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무엇을 담고 사는지 혹은 한번쯤은 내 아닌 남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지, 진심으로 남을 칭찬한 적이 있는지, 아님 쌈짓돈을 내밀어 본적이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추하지 않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깨끗한 바람과 깨끗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생각들이 들어 아하! 나도 추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람은 작은 것에서 뉘우침을 알고 어떤 암시같은 것을 받는 것은 아닐까하고 오랜만에 나선 여행지에서 느낌을 주어들고 잠시 황홀한 꿈처럼 행복했습니다.
오늘 하루 창문을 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겨울바람의 상쾌한 맛을 느끼면서 누군가를 위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고 가슴이 따듯해진다면 추운 겨울바람도 따뜻하게 맞을 수 있는 멋진 인생이 될 겁니다.
추하게 살지 않는 것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을 나누어주는 것임을 알아가는 삶이 아니겠는지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첫댓글 감기에 이제사 해방되셨네요 동해바다 그림이 그려집니다..우리네 생 질척이지 않은 산뜻한 삶을 만들면 추하지 않을거란,,어제 전 광안리 해변에서 햇살속에 뿌리는 실비를 여우비라 하나요? 광안대교위에서 가로질러 피어있는 구름들이 넘 아름다워 카메라 없어 아쉬웠어요 여러 사람 작품사진 담느라 구경거리 많더군요..추워도 따뜻한 맘 담는 시간 만들어 보세요~
겨울바다 가고 싶어유~~ 스스로 생각해서 부끄럽지 않는 삶이라면 추하지 않은 삶이라 할수 있겠지요..좋은 생각의 행동으로 살면 될 것이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