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草愈品(약초유품) 第五
2. 약초(藥草)의 비유
가섭이여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계곡과 평지에서
나서 자라는 초목과 숲과 온갖 약초들의 종류도 많고
이름과 모양도 각각 다르니라.
지금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죠.
그래서 온갖 풀과 온갖 나무들에서 새순과 새싹들이
앞 다투어서 새 순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 그런 상황이죠.
두터운 구름이 가득히 펴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일시에 큰비가 고루고루 흡족하게 내려면
모든 초목과 숲과 온갖 약초들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잎새와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새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상 중 하를 따라서 제각기 비를 받느니라.
이게 제가 말씀 드린 사람 사람들이 다 엇비슷한 것 같지만
그 세세하고 정확하게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복잡 미묘하고 불가사의 하게도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여기서 약초들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잎새와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새와
나무 중에서도 상중하 따라서 표현을 이렇게 밖에 안했지만
그 차별된 현상들이 얼마나 다종다양 합니까.
이것 보다 몇 백배 더 아주 다양 합니다.
나가서 들에 솟고 있는 풀들을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시고
산에서 이렇게 각양각색에 나무들이 잎을 펴고 있는데,
나무 나무마다 눈여겨보시면 정말 복잡 미묘하고 또 신기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지만 그 초목의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서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느니라.
이게 뭡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를 해서
우리의 인격이 달라지고 감동하고 변화가 있고,
내가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이러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런 여러 가지 우리의 정신적 양상 또 정신이 변화함으로 해서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뀜으로 해서 환경까지 바뀌고
한 사람이 그렇게 되니까 옆에 사람까지도 바뀌게 되고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바꿔가는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초파일에 등불을 켤 때
등불 하나를 처음에 대표되는 스님 주지스님 되었든지 조실 스님이 되었든지
대표되는 스님이 성냥을 하나 그어가지고 촛불 하나를 점화를 합니다.
점화를 하면 옆에 계시든 다른 이들이 와서
그 맨 처음 붙인 촛불에서 붙여 나가는 거예요.
거기서 점화해 나갑니다.
예를 들어서 열 명이 첫 사람한테 붙여서 나가면
그 다음에 또 열 명이 와서 촛불을 붙여 나가고
그 다음에 다음 단계 사람들이 또 와서 한 촛불에서 붙여 나가고,
이런 식으로 등불을 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모르고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불을 막 밝혀 가지고
성급하게 등불을 켜는 게 아니죠.
그건 원리를 모르고 이치를 몰라서 그러는데
맨 처음에 하나의 촛불을 켜고 거기서 열 명이 아니라도 좋아요.
세 사람이라고 합시다.
세 사람이 와서 붙이면 세 사람에서 세 사람,
세 사람에서 또 세 사람, 계속 세 사람 세 사람씩 붙여 나가면
그것 10분 안에 수 천 개의 등불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계산해보면 기하급수로 불어나거든요.
그렇게 하나의 등불에서 수많은 등불로 그 빛을 전해서 세상을 밝힌다는
그런 그 원리에서 나온 일이죠.
그와 같이 여기서도 초목의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서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가 달라지고 내 삶이 달라지고
내가 사는 환경이 달라지고 나와 함께 하는 삶들이 달라지고
그래서 그게 점점 펴져 나가서 온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한 분씩 한 분씩 그렇게 달라져 나가는 것.
우리가 가만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아까 설명 드린 촛불 밝히는 것을 상상 해보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 되고 감동을 하고,
그 감동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해서
인생을 아름답게 보고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적으로 보고
나가서 법화경의 가르침대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
서로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겼을 때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이것이 불교의 요체죠.
불교의 전체를 이야기 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비록 한 땅에서 나고 한 비로 적시어서 주는 것이지마는
여러 가지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는 것이니라.
그렇죠. 비는 한 가지 형식으로 그렇게 뿌리는데 갖가지 차별이 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똑 같이 받아들이고 똑 같이 이해한다면
그건 사실 별로 재미없을 거예요.
뭐 재미있으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 사람들이 살아온 배경과 경험과 지식과 사고가
그렇게 서로 다르게 복잡 미묘하고도 또 불가사의 하게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런 배경에서 부처님의 같은 말씀이라도
우리가 전부 이해하고 실천해 옮기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경전을 근거로 해서 우리 일상에 있어서 어떤 문제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도 상당히 참고가 될 만한 그런 내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한 가지 약초의 비유,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무슨 회사를 경영하는 문제라든지
심지어 목수의 일이든지 석공의 일이든지 어부의 일이든지 농부의 일이든지
이 현대사회에 업종이 얼마나 많습니까.
각자 자기하고 있는 그 분야에서
이 약초비유를 잘 사유를 하고 접목을 시켜서 활용을 해본다면
어디든지 해당 될 겁니다.
그리고 경전에서 못 다한 내용을 또 제가 설명을 한다지만
제가 미처 모르고 못 다한 내용들을 사회경험이 많은 여러 법우님들은
훨씬 더 멋지게 활용하고 멋지게 해석하고
또 아주 상상도 못할 할 그런 방향으로 이것을 해석을 하고 하는
그런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런 것은 여러 법우님들 몫이죠.
잘 들어서 잘 활용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약초의 비유는 법화경의 여러 가지 비유 중에서 상당히 아름다운 비유죠.
아무리 작음 풀이라도 비를 맞아서 자라지 않느냐.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하드라도 부처님 법문을 듣고
거기서 우리의 심성이 달라지고 바뀌어 지고 감동을 하지 않느냐.
많이 배운 사람, 지혜 있는 사람만 꼭 부처님 법문에서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못나고 배운 게 없고 처음 들어 왔고 그런 사람도
얼마든지 그 그릇만큼 이익을 얻어가고 그런 만큼 깨달아 가고
그런 만큼 감동을 하고 간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상당히 부처님의 법문에 근거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 일상에도 많이 활용이 될 수 있는 그런 비유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약초유품을 말씀을 드렸는데
약초유품에 들어가기 전에 여래의 무량무변한 공덕
이것은 과연 여래만이 가지고 있는 공덕인가
아니면 우리들도 공히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전기를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법화경 약초유품 이야기는 여기 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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