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재
낙동정맥에서 가장 긴 구간을 만나 궁리끝에 동서울에서 오후 5시 안동행 버스를 타고 안동에서는 수비행 8시 40분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다.
안동에서 7시 35분에 내려 먼저 저녁을 먹으려다 매표소에서 수비행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7시 16분이 막차이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8시 40분 버스는 원래 없다고 한다.
저녁도 못 먹고 바로 7시 55분 버스를 타고 영양에 내리니 수비가는 9시 40분 막차까지는 30여분 시간이 남아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는다.
저녁을 먹고 불꺼진 터미널앞에서 한참 기다리다 이상해 근처에 서있는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수비가는 버스는 8시 20분이 막차이며 전에 있던 9시 40분 버스는 벌써 없어졌다고 하신다.
난감해서 어쩔줄 모르고있는데 마침 이 수비사는 아주머니를 태우러 남편분이 도착하고 운좋게 그 차에 동승해 수비로 향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산행들머리인 덕재까지 태워주기로 약속한 택시기사분 집앞에서 10시경에 내리지만 11시 30분쯤 올라갈 계획이니 1시간 30분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한다.
앞에있는 중앙슈퍼에 들어가 소주한병을 사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휠체어를 타신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고 이야기를 듣더니만 티브이를 보며 기다리라고 한쪽에 자리를 내 주신다.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기사분 집에 가니 부인만 있는데 남편은 모임이 있어 영양에 있다고하고 수비의 또 한분의 기사님은 아예 전화를 받지않는다.
아주머니는 그 외진 곳에 혼자 갈수는 없다며 난감해하다가 마침 놀러온 친구분과 함께 남편 택시로 덕재까지 데려다주니 긴 산행을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또 많은 운이 뛰따라준다.
- 추령
랜턴불을 밝히며 나무계단을 타고 찰흑같이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의자들이 나오고 무덤들이 줄지어 나타나며 불빛따라 나방들이 얼굴을 스치며 날라오른다.
나뭇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마을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작은 코팅판이 걸려있는 631.4봉을 지나고 컴컴한 숲속터널을 성능좋은 랜턴과 오랜 육감으로 헤쳐나간다.
죽파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잠이 몰려오며 평평한 무덤가에라도 눕고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어디선가 날카롭게 들려오는 짐승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추령 1.3km의 이정표가 서있는 635.5봉을 지나고 흐린 초생달을 바라보며 적송들이 서있는 숲을 내려가면 추령 임도가 나오고 지붕까지 있는 초막쉼터가 서있다.
배낭을 메고 잠시 초막에 누워있다 한기를 느끼고 잠을 깨니 어언 30분이 흘러갔지만 조금은 개운해진 몸으로 어두운 나무계단을 올라간다.
▲ 추령
- 한티재
봉을 오르고나면 아주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두번 급하게 꺽어져서 어둠속의 숲길을 비몽사몽 갈짓자 걸음으로 따라간다.
고개를 흔들어 잠을 뿌리치고 나무에 붙어있는 작은 이름판을 애써 읽으며 나무의자와 이정표들을 연신 지나친다.
상처입은 거송들을 불빛으로 바라보며 움푹 패인 돌밭길을 내려가고 황폐한 무덤들을 지나서 가파르게 봉우리를 넘는다.
오른쪽으로 우천마을의 불빛이 따스하게 보이는 우천재로 내려가 밭을 횡단하고 엉뚱한 곳으로 올라가다 돌아와 표지기를 찾아 산을 올라간다.
식물이름이 적힌 나무판들과 곳곳에 걸려있는 시인들의 시판을 구경하며 어두운 숲길을 이리저리 달려가면 쉼터의자와 이정표들이 외로운 산객을 반겨준다.
미끄러운 사면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무덤이 나오고 임도따라 낙동정맥 안내판이 서있는 88번 국도상의 한티재로 내려서면 서서이 길었던 밤이 물러나고있다.
▲ 한티재
- 612.1봉
쥐죽은듯 고요한 도로를 건너 어스름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산길을 올라가면 산새들의 지저귐으로 숲은 가득하고 멀리 일월산 정상의 불빛이 밤의 터널을 통과한 산객의 눈에는 기쁨으로 와 닿는다.
벌목된 사면을 지나며 랜턴을 끄고 멀리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붉은 기운에 가슴 벅차하며 무덤이 있는 봉우리를 넘는다.
임도가 지나가는 깃등재를 넘어 벌목되어있고 삼각점(소천 463/2004재설)이 있는 612.1봉에서 도시락을 풀어 아침을 먹으니 땀이 마르며 금새 한기가 찾아온다.
만들다 만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노송이 있는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못하고 푹신한 갈비에 누워 20여분 눈을 붙힌다.
▲ 백암산 너머로 밝아오는 여명
▲ 일월산
- 884.7봉
상계폭포와 하계폭포가 있다는 왼쪽의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아주 가파르게 봉우리를 올라 오른쪽으로 꺽어지고 연이은 봉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멀리 소나무들이 많이 서있는 884.7봉을 바라보며 울창한 수림을 따라가면 초지에는 큼지막한 참취들이 온통 군락을 이루고있고 아침나절의 시원한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온다.
다시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져 아름드리 노송들과 거목들이 서있는 능선을 따라 헬기장이 있는 884.7봉으로 올라가니 삼각점(소천25/2004재설)이 있으며, 벌목되었지만 조망은 그리 좋지않아 나뭇가지사이로 멀리 우뚝 솟은 일월산과 뾰족한 칠보산이 보인다.
이제 절반쯤은 왔다는 안도감과 잡념에 젖어 암릉을 지나다가 그만 고사목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는데 극심한 통증과 함께 붉은 선혈이 스며나온다.
인적없는 산중에서 봉합할 정도로 찢어졌으면 큰 낭패를 봤을텐데 수건으로 몇분 누르고있으니 다행히 곧 지혈은 되었지만 머리는 계속 지끈거려 어이없는 실수에 화를 내며 능선길을 내려간다.
▲ 884.7봉 정상
▲ 884.7봉에서 바라본 칠보산
- 칠보산
적송과 고사목들이 서있는 숲길을 뚝 떨어져 내려가 좌우로 등로가 뚜렸한 깃재를 지나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길을 오른다.
가지가 많이 갈라진 10지 춘양목을 지나서 연신 나타나는 작은 봉우리들을 어렵게 넘어서니 헬기장이 나오고 정맥은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쓰러진 나무들을 지나 사거리안부인 세신고개를 넘고 묵묵히 봉우리를 오르면 앞에 또 봉우리가 나타나고 양파껍질을 베끼듯 계속 나오는 잔 봉우리들에 힘이 빠진다.
옛 기둥삼각점(ROKA MS)옆에 새 삼각점(소천306/2004재설)이 설치되어있는 칠보산(974.2m)에 어렵게 도착하니 벌목되었지만 조망은 막혀있고 실망스럽게도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늘로 들어가 파리들을 쫒으며 남은 밥을 점심으로 먹고 지도를 확인하니 이제 광비령까지는 2km 남짓이라 새롭게 힘이 솟는다.
▲ 십지송
▲ 칠보산 정상
- 937.7봉
암릉을 오른쪽으로 길게 우회하고 뚝 떨어져 내려가면 멀리 마을과 도로가 내려다보이고 통고산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마루금이 흐릿하게 전면으로 나타난다.
낮은 봉우리들을 계속 넘고 내려온 칠보산을 바라보며 시야가 트이는 암릉지대를 따라가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까마득한 절개지앞에 선다.
아찔한 절개지에서 왼쪽으로 급한 수로를 타고 미끄러지지않게 조심하며 광비령으로 간신히 내려서고 바로 옆의 계곡에서 모자란 식수를 보충하고는 다시 급한 절개지를 올라간다.
왼쪽으로 정맥에서 벗어난 높은 봉을 바라보며 가파르게 능선을 올려치면 지친 산객을 배려하듯 오른쪽으로 편한 허리길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완만한 능선길따라 헬기장을 넘고 오랫만에 나타난 산죽지대를 통과해 삼각점(소천429)과 안내문이 서있는 937.7봉에 오르니 벌목된 나무들로 움막이 세워져있다.
▲ 광비령 내려가며 바라본 칠보산
▲ 광비령 내려가며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
▲ 광비령
▲ 937.7봉 정상
- 통고산
앞에 솟아있는 높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임도를 건너고 끝없이 이어지는 된비알을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올라 봉우리에 닿으니 그제서야 통고산이 멀찍하게 떨어져 보인다.
하산로와 왕피리 방향이 적혀있는 이정표삼거리를 만나고 헬기장과 통신시설을 지나 통고산(1066.5m)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이 서있고 대기가 흐려서 그저 동쪽으로만 흐릿하게 전망이 트인다.
마지막 봉우리의 정상석에 앉아 참외하나 까서 정상주 한잔하고 헬기장으로 내려가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넓직한 등로를 따라가면 길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기분이 좋아진다.
통고산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고 좁지만 푹신한 숲길을 나는듯 내려가니 하늘이 점점 어두어지더니만 가는 빗방울이 잠시 얼굴을 스친다.
▲ 통고산 정상
- 답운치
암릉들을 우회하며 적송들이 쭉쭉 뻗은 산길을 내려가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건너서 절개지를 올라 마지막 마루금을 따라간다.
봉우리에 올라 북쪽으로 꺽어지고 다음 봉에서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잡목들이 빼곡한 희미한 능선길을 신경써서 따라간다.
내려온 통고산을 바라보며 적송들이 서있는 암봉을 넘고 억센 관목들을 헤치며 헬기장에 오르니 앞에 진조산이 마주보인다.
울진에서 동서울가는 3시 30분 직행버스가 40분후인 4시 10분경에 답운치를 넘을 것이라 그 버스를 놓치지않으려 완만해진 숲길을 뛰기 시작한다.
낮은 봉우리들을 연신 넘고 묘지를 지나 구슬땀을 흘리며 산죽지대를 올라가니 반갑게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거리안부를 넘고 헬기장에 올라 왼쪽으로 넓은 길을 뛰어 내려가면 통신시설물이 나오고 드디어 4시 2분경 36번 국도가 지나가는 답운치에 내려선다.
▲ 답운치 내려가며 바라본 통고산
▲ 답운치
- 영주
고갯마루에서 옷을 추스르고 3시 30분에 출발한 동서울버스를 마냥 기다려도 차는 올라오지 않고 영주 가는 버스들도 많다는데 한대도 보이지않는다.
1시간을 더 기다리니 고대하던 4시 30분 동서울버스가 올라오는데 손을 마구 흔들어도 휴대폰을 귀에 대고있는 기사는 무심하게 그냥 지나가버린다.
뒤따라 올라오는 승합차를 간신히 세워 고개밑의 옥방으로 내려가면 검문소가 있고 영주가는 버스가 하루 몇대 없다고 해 의경에게 차편을 부탁한다.
마침 고개를 내려오던 영주가는 차를 얻어탄 후 이정표를 보니 얼마 안되리라고 생각했던 영주가 자그만치 70km나 되어서 영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예순이 막 넘으신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자분은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을 받아 마음대로 산행을 하지못한다고 하며 옆의 부인은 폐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이제 몇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하신다.
동네분들과 바다에서 회에 막걸리 몇잔하고 답운치를 내려오다 의경이 차를 세워 가슴이 덜컹했지만 영주가는 사람 좀 태워달라고해서 얼른 응했다고 말씀하시며 허허 웃어 그만 가슴이 찡해온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말씀해 드리고 기운내시라는 인사치레밖에 하지 못했는데도 선량하신 분들은 나그네를 생각해 일부러 북적거리는 터미널앞까지 차를 태워주신다.
잘가라며 담담하게 웃는 분들께 다시 힘내시라는 맥빠진 말만 던지고 도로로 내려서니 그동안 참아주었던 하늘에서 굵은 밧줄기가 마구 떨어지기 시작한다.
첫댓글 요즘은 저녁에 마시는 술덕에 근수만 늘어 이런 산행은 꿈일 뿐입니다. 장거리울트라 산행에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근수 좀 줄여야 될텐데^^
등로가 평탄해서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언제 단풍이와 소주나 한잔 하십시다. 뵌지도 오래됐고...
혼자서 산행하기도 힘들것인데 사진 찍고 기록남기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파이팅